[대통령의 ‘일상’과 ‘쇼’ 사이]
[尹의 공정, 公私 구분 흐릿하면 ‘말짱 도루文’]
[디테일해야 소통이다]
대통령의 ‘일상’과 ‘쇼’ 사이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강남구 신세계 백화점 한 매장에서 신발을 신어보고 있다. /독자 제공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취임 닷새째인 주말에 쇼핑을 했다. 매출 규모가 전국 으뜸이라는 한 백화점에 갔다가 종로 전통 시장에 들른 다음 남산골 한옥마을을 산책했다. 오후 3시쯤 시작됐는데 기자들도 몰랐다. 사진은 우연히 대통령 일행과 마주친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언론사들에 제공했다. 대통령이 신체 사이즈를 드러내는 신발을 신어보는 장면까지 찍혔다. 새 대통령이 앞으로도 보통 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계속 보여줄지 관심이 갔다.
▶사실 앞선 대통령들도 물리도록 비슷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는 명절을 앞두고 전통 시장을 찾았다. 차례상 제수용품을 샀는데 때론 29만원어치라고 액수까지 공개됐다. 아내가 현금을 꺼내 결제하면 남편은 물건을 들고 곁에 서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9월까지 네 차례나 수도권 전통 시장을 방문했다. 대구 서문시장, 구미 시장도 자주 들렀다. 지지율이 흔들릴 때 힘 얻으러 간다고들 했다. 과거 대통령 때는 비서실이 이런 장면을 찍어 언론에 홍보 자료로 돌렸지만, 윤 대통령은 비공개로 했다는 점이 달랐다.

▶오바마는 현직 대통령 때 바이든 부통령과 햄버거 가게에서 6달러 95센트짜리 점심을 사 먹은 적이 있다. 색깔 치즈를 얹은 스위스 치즈버거, 할라피뇨 고추, 머시룸 버거, 매운 겨자를 주문했다. 오바마는 5달러를 팁 박스에 넣었다. 이날 오바마의 ‘보통 사람 점심’에는 차량 20여 대가 주변 길을 통제하며 함께 움직였다. 프랑스 외무장관이 샹젤리제 거리의 노천 카페에서 회담을 하는 장면도 봤는데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장 보는 모습은 많이 다르다. 베를린의 한 수퍼마켓은 그녀가 수십 년 전부터 매주 들르는 단골 가게다. 퇴근 후 수퍼 앞에 총리 승용차가 서면 단발머리 메르켈이 구겨진 장바구니를 들고 뒷좌석에서 내렸다. 직접 1유로 동전을 넣어 카트를 꺼냈고, 평범한 물건을 구입했다. 양배추 껍질을 떼어내고, 루콜라가 싱싱한지 살폈다. 종이에 적어온 쇼핑 목록을 꺼내봤고, 계산대에 줄을 섰다.
▶베를린 시민들은 메르켈의 장보기에 별 관심을 두지 않지만 우리 대통령의 주말 나들이는 보통스럽기 어렵다. 사람이 몰려오고 사진도 찍는다. 좀 소란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벤트는 하지 않겠다”면서 시장에 안 갔다. 대통령의 쇼핑 외출은 대개 선발대가 동선을 살피고, 사람이 붐비는 시각, 우호적인 상인을 고른다. 시장에 가면 사랑받고 있다는 환각 효과라도 있는 것일까. 이런 대통령 모습은 얼마만큼 진정한 것일까. 결국 국정 운영의 성과로 평가받을 것 같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22-05-16)-
______________________
尹의 공정, 公私 구분 흐릿하면 ‘말짱 도루文’
[박제균 칼럼]
귀향하며 “해방됐다‘는 문 전 대통령, ‘文의 나라’ 해방된 사람들 하고픈 말
‘공정’ 표방 尹의 첫 인사 기대 이하… 동창·檢친목회 연상, 변호인단 중용
尹, 대통령 자리 쉽게 본 건 아닌가
“저는 이제 해방됐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10일 경남 양산 사저로 가는 길에 ‘해방’이란 단어를 세 번이나 말했다. 그 말을 접하며 역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분이란 생각을 다시 확인했다. 문재인 시대의 대한민국은 공정 정의 상식은 물론 안보까지 흔들린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하고픈 말을 본인이 앞세운다.
대통령 퇴임 후 ‘잊히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대통령 문재인’을 잊고 싶은 국민이 오히려 많은데, 잊히고 싶다면서 퇴임 직전의 언행은 정반대였다. 이제 양산에서라도 ‘잊힌 삶’을 살아주시길 바란다.
그래도 그를 추앙하는 국민이 아직도 적지 않으니 본인으로선 행복한 은퇴 이후일 수도 있겠다. 대통령이 돼서도 철저히 우리 편만 든 데 따른 보너스가 무비판적인 팬덤 구축이다. 하지만 그 보너스엔 대가가 따랐다. 반쪽만의 대통령인 ‘반(半)통령’으로 남은 것이다. 그는 최고지도자도 철저히 우리 편만 들면 자신은 손해 보지 않는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자신은 손해 보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통합해야 할 분이 가서는 안 될 길이다.
양식 있는 국민들은 까놓고 우리 편만 챙긴 문재인 나라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았다. 그래서 공정과 상식을 표방한 윤석열 나라는 확연히 다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조각(組閣)과 대통령실 인사는 기대 이하다. 대통령의 인사는 대(對)국민 메시지인 만큼 어느 정도의 안배는 반드시 필요하다. 윤 대통령의 첫 인사는 지역 직역 학교 성별 세대별 안배에 실패했다.
백보를 양보해 윤 대통령의 지론인 ‘능력 위주’ 인사를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치자. 동창회나 검찰친목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학연 직연(職緣)에 치우치고, 자신과 가족의 변호인단을 다수 요직에 중용한 건 공사(公私) 구분을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김건희 여사를 ‘남편을 빛나게 할 평강공주’에 빗댄 낯 뜨거운 글을 쓰고 문제 발언이 숱한 사람을 대통령비서관으로 발탁했던 건 그야말로 낯 뜨거운 일이었다. 그의 사퇴로 정리됐지만, 이 인사의 기용에 김 여사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항간에 돌았다. 그 진위를 떠나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부터 이런 우려가 제기된 만큼 앞으로도 윤 대통령이 각별히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 대통령의 인사가 대통령과 직간접으로 통하는 인물을 기용하는 ‘연고(緣故) 인사’의 색채가 짙어진 건 박근혜 대통령 때부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좌파·운동권 세력에서 ‘형’ ‘아우’ ‘누나’ ‘동생’으로 통할 만한 이너서클에서 주로 사람을 골랐다. 코드만 맞으면 구체적인 연고는 따지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과 다른 점이었다. 연고 인사는 대통령의 권력의 사유화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윤 대통령의 첫 인사에서 권력 사유화의 그림자가 비친 건 우려할 만하다. 공정과 상식을 중시하고 누구보다 권력 사유화의 폐해를 잘 아는 그가 왜 그랬을까. 아직은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의 마력에 빠졌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정치를, 대통령이란 자리를, 대통령의 인사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함의(含意)를 너무 쉽게 본 건 아닌가.
정권이 교체됐다지만, 윤석열을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듯한 거대 야당과 좌파 기득권의 발호가 상상 이상으로 거세다. 국회 질서와 합의를 뒤집고, 꼼수에 꼼수 범벅을 하고도 되레 당당한 기괴한 집단이 된 것 같다. 여기에 실질적인 권력의 이동 여부를 가늠할 6·1지방선거가 코앞이라 윤 대통령의 첫 인사 실패가 다소 상쇄되는 감이 있다. 그러니 윤 대통령은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과거 한국 정치의 어른들은 ‘나보다는 당(黨), 당보다는 나라’를 앞세운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을 말하곤 했다. 선공후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공과 사를 구분해 이해(利害) 충돌 소지가 있는 일을 삼가는 게 대통령 인사의 기본이 돼야 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공과 사를 버무리다간 ‘문재인 때와 달라진 게 뭐냐’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공보다 사를 앞세웠던 운동권 좌파 권력의 대못을 뽑으려면 윤 대통령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박제균 논설주간, 동아일보(22-05-16)-
____________________
디테일해야 소통이다
[朝鮮칼럼]
오늘날의 대표적 시대정신 가운데 하나는 소통이다. 가정과 직장, 학교를 불문하고 어떤 사회적 모임에서나 소통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분위기다. 리더나 구성원 공히 소통 문제에 극도로 민감한 때가 바로 요즘이다. 소통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되는 것은 국정이다. 보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는 한결같이 국민 소통을 약속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식 코드가 소통이라 말할 정도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정권이 결국 소통 빈곤, 소통 부재로 끝났다.
소통을 안 하고 못 하는 것에 관련하여 수많은 이유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로, 언제부턴가 우리가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는 특정 소통 형식이나 언어생활에도 작지 않은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파워포인트(PPT) 프레젠테이션 관행과 그것의 단짝인 개조식(個條式) 문체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공개 발표나 공동 작업을 위한 시각 보조 자료로 탄생한 PPT는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말 이후 정보화 열풍을 타고 인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현재도 각종 회의나 강연, 수업 등에서 PPT는 모임의 상전(上典)이 되기 일쑤고, 이른바 PPT의 달인이 전문가나 능력자처럼 보일 때도 많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PPT는 국회 본회의장까지 입성했다.
물론 PPT 특유의 데이터 전달력과 감각적 호소력은 소통 미디어로서 대단한 강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PPT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PPT 형식이 이야기를 조각 내고 사안을 단순화할 뿐 아니라 제작 기법과 발표자 언변이 콘텐츠를 압도한다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PPT는 참가자들 사이의 인격적 교감이나 면대면 토론을 비활성화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존이나 도요타 같은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현대카드나 KB국민은행 등이 PPT 퇴출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PPT 자체에 무슨 죄가 있으랴. 관건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점인데, 문제가 한층 더 심각해지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PPT식 글쓰기가 대세로 기운 경우다. 한국인의 문해력(文解力)은 국제적으로 최하위이거나 계속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가다. 문해력은 단순한 글 읽기를 넘어 타인과 공감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총체적 언어 능력을 뜻하는데, 지금 우리 주변에는 글자는 알지만 말뜻은 모르는 실질적 문맹자(文盲者)가 늘어나고 있다. 이때 적어도 그 원인 일부는 PPT가 행정, 경영, 교육, 학술,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개조식 문체를 확산시키는 데 있어 보인다.
“글 앞에 번호를 붙여가며 중요한 요점이나 단어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정의되는 정체불명의 개조식은 키워드 중심 문장이 핵심 기술이다. 따라서 개조식의 주인공은 단연 명사로 대표되는 체언이다. 형용사나 동사와 같은 용언은 조연 기회마저 얻기 힘들며, 조사나 부사는 단역으로도 등장하기 어렵다. 그 결과, 개조식은 생각과 감정의 복잡 미묘하고도 풍성한 세세함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소통에는 원천적으로 역부족이자 부적격인 셈이다.
개조식이 좋아하는 명사나 명사화(名詞化·nominalization) 문장은 세상을 딱딱하고 메마르게 한다. 기본적으로 명사는 ‘닫힌’ 말이다. “명사는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든 독특한 품사”다(심리학자 김경일 교수). 이에 반해 동사는 음식의 육수나 양념처럼 “제 몸을 풀어헤쳐 문장 전체에 글맛을 낸다.”(김정선 ‘동사의 맛’) 주재료에 해당하는 명사에 밀려 늘 찬밥 신세지만 말이다. 한편 부사는 “세계를 흥미롭고 맛깔나게 해주는 마음을 닮은 품사”다(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비록 명사처럼 명료하지도, 동사처럼 활기차지도 않지만 말이다.
언필칭 소통 시대를 맞아 지금 우리는 소통 수단인 줄 알았던 PPT 형식과 개조식 문장이 오히려 불통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소통의 맛은 과연 사람 중심의 대면 방식에서 나오고, 소통의 힘은 역시 올바른 어문(語文)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진리가 확인되는 셈이다. 누구보다 비장한 소통 의지로 임기를 시작한 윤 대통령, 내친김에 PPT 줄이기와 개조체 멀리하기를 범정부 차원에서 한번 시도해 보면 어떨까. 이는 단지 소통을 늘리는 방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디지털 해독(解毒)과 국어 정상화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조선일보(22-05-16)-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時事-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보수 후보 차라리 추첨하라”] (0) | 2022.05.17 |
|---|---|
| [대통령과 여야 회동 불발, 무조건 만나.. ] [‘발목 잡기’와 지지 하락 법칙] (0) | 2022.05.16 |
| [“5.16으로 문 연 박정희 18년... 가장 위대한 ‘전진의 시대’였다”] (0) | 2022.05.15 |
| [성범죄 일상화 정당이 국회 장악하고 입법 폭주 중] (0) | 2022.05.14 |
| [광우병의 추억? 탄핵의 손맛?] [지지율 압도하는 혐오도... 文의 실패는.. ] (0) | 2022.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