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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그 청년은 어디서 무슨 생각 할까] [중국의 5월 35일]

뚝섬 2022. 6. 4. 06:19

33년 전 그 청년은 어디서 무슨 생각 할까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한 청년이 탱크 행렬을 맨몸으로 막아서고 있다. /조선일보 DB

 

1988년 8월 미얀마에서 군부 독재를 비판하는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경제 실정이 겹치면서 학생뿐 아니라 시민들도 빠르게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군부는 주저 없이 총을 꺼내더니 발포했다. 3000여 명이 사망했다.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1988~1989년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는 쿠르드족 민간인에게 화학 무기를 썼다. 5만~10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를 집단 매장하고 그 위에 고속도로까지 만들었다. ‘안팔 학살’이다. 사람을 파리처럼 죽일 수 있는 체제엔 민주화 바람이 통하지 않는다.

 

▶33년 전 오늘 베이징 천안문(天安門) 광장은 탱크와 기관총, 비명 소리로 아수라장이었다. 부패 척결과 정치 개혁,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런데도 중국 공산당은 시위대 사망자는 27명에 불과하고, 진압하던 군인이 1000명 희생됐다고 선전했다. 1년이 지나서야 “민간인 사망자는 875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위를 이끈 학생들은 ‘사망자가 7000명 이상’이라고 한다. 실제 피해 규모조차 불분명하다.

 

▶한 청년이 맨몸으로 탱크 행렬을 가로막는 사진이 전 세계에 천안문 비극을 알렸다. 사진 기자는 “청색 옷의 남자 2명이 그를 바로 끌고 갔다”고 했다. 장쩌민 전 주석은 1990년 미국 인터뷰에서 “그를 절대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왕웨이린(王維林)이란 사람인데 대만으로 이주했다’ ‘감옥에 있다’ ‘평범하게 살고 있다’ 등 온갖 소문이 돌았지만 지금껏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다.

 

▶시진핑 집권 초만 해도 ‘천안문 역사’와 화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피해자 가족의 소규모 추모 행사를 허용하고, 천안문 비극을 소개한 해외 학자의 책도 출판하게 했다. 시진핑이 정적 제거에 이용한 ‘반(反)부패’가 천안문 시위대의 요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시진핑이 1인 독재를 강화하면서 ‘천안문’은 다시 탄압 대상이 됐다. “미국이 중국을 궁지에 몰려고 민주화를 부추긴다”고 몰고 갔다. 천안문 시위 관련 검색어는 전부 막았다. 중화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 신세대는 천안문 사건이 뭔지도 잘 모르는 지경이다.

 

▶작년까지 홍콩에선 천안문 희생을 추모하는 성당 미사와 집회가 열렸다. 그런데 홍콩 당국이 민주 인사인 추기경을 체포하면서 미사가 취소됐다. 집회 신청도 불허했다. 중국 본토는 물론 홍콩에서도 천안문을 지우려는 것이다. 서방세계는 중국이 경제 발전을 하면 민주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돈과 기술을 지원했다. 헛된 기대였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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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5 35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과거 베이징(北京)을 일컬었던 여러 호칭 중 하나는 베이핑(北平)이다. 북쪽 지역의 평온(平穩)과 안정(安定)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중국인은 보통 그 둘을 줄여 ‘평정(平定)’이라는 단어로 곧잘 적는다. 

 

전란과 재난을 잔혹하리만치 자주 겪은 중국인의 심성에 평온과 안정을 향한 꿈은 아주 견고하다. 이른바 ‘태평(太平)’을 갈구하는 심리다. 달리 태평(泰平)이라거나 승평(昇平), 또는 승평(承平)으로도 적는다.

 

수도(首都)의 대명사처럼 쓰는 장안(長安)이라는 말이 우선 그 맥락이다. 우리도 “장안의 화제다”라며 곧잘 사용한다. 이 단어는 ‘태평’을 향한 심리가 정치적으로 영근 이름이다. 본래 오래도록 다스리며 안정을 이루다(長治久安)’라는 말에서 나왔다.

 

베이징의 얼굴인 천안문(天安門) 이름도 마찬가지다. ‘하늘의 명을 받아 나라를 잘 다스리다(受命于天 安邦治國)’라는 말에서 글자를 뽑았다. 예나 지금이나 치세(治世)를 지향하는 중국 통치 권력의 뚜렷한 정치적 상징이다.

 

마침 천안문 앞에 동서(東西)로 55㎞인 장안가(長安街)가 지난다. 베이징의 또 다른 상징인 이 도로는 옛 황궁인 자금성(紫禁城)의 남북 축선 중 천안문과 겹치면서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둘의 이름 모두 평온과 안정의 ‘평정’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남쪽의 천안문 광장에서 1989년 6월 4일 청년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당국은 이들을 총칼로 진압했다. 민주와 자유를 향한 젊은 중국인들의 꿈이 치세를 유지하려는 무형의 정치적 구조물에 걸려 사그라진 ‘6·4 천안문 사태.

 

중국 당국은 이를 동란(動亂)으로 규정해 기념식 등을 막고 있다. ‘6·4′라는 숫자의 포털 검색 등도 금지한다. 그래서 민간은 그 날을 5월 35일로 적어 기념한다. 중국에서만 유독 긴 그 5월이 ‘태평’의 적막감 속에서 또 저문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조선일보(2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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