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世界-人文地理]

[“우리는 칠면조가 아니다”] [이집트와 터키의 쿠데타]

뚝섬 2022. 6. 4. 06:19

“우리는 칠면조가 아니다”

 

알록달록한 열기구가 가득한 카파도키아의 하늘, 하얀 치마가 활짝 펼쳐지도록 빙글빙글 돌면서 추는 세마춤, 고대 하드리아누스 신전…. 터키 유적지와 문화가 소개될 때마다 관광객들은 “헬로 튀르키예”를 외친다. 터키 공영방송에서 방영 중인 이 1분짜리 동영상의 홍보 대상은 관광지가 아니라 ‘튀르키예’라는 이름이다. 터키의 영문 국명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정부 캠페인이다.

터키 정부가 최근 영문 국호를 ‘T¨urkiye(튀르키예)’로 변경해 달라고 유엔에 요청했다. 이에 따라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등에서는 앞으로 터키의 정식 국호를 튀르키예로 쓰게 된다. ‘터키인의 땅’이라는 뜻의 이 이름은 터키가 1923년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을 때부터 써온 국호다. 문제는 영어식 국명인 ‘터키(Turkey)’가 칠면조와 스펠링이 같다는 것. 일반명사로 멍청이, 패배자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점도 터키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국가가 개명하려는 목적은 다양하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통용되던 ‘홀란트(Holland)’라는 이름을 폐기했다. 마리화나와 성매매가 합법화된 북홀란트 지역의 퇴폐적인 이미지가 국가 전체로 확대된다는 이유였다. 체코는 형용사 ‘Czech’에 ‘공화국’을 붙여 사용하는 국호가 너무 길다며 ‘Chechia’라는 이름을 만들어 병용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식민지 시대에 사용됐다는 이유로 ‘실론’이라는 기존 국호를 버렸고, 스와질란드(Swaziland)는 ‘Switzerland(스위스)’와 헷갈리지 않겠다며 독립 50주년이 되던 2018년 ‘에스와티니’로 새 국호를 달았다. 이미지를 바꾸는 리브랜딩 작업이다.

 

터키의 대외 이미지 개선 시도는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마주보는 터키는 러시아-우크라 간 평화협상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나토(NATO) 회원국으로 목소리도 키워가는 중이다. 그런 터키로서는 추수감사절의 칠면조 요리를 연상시키는 국명이 달가울 리가 없다. 터키 정부는 영문 국호 변경으로 무역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업들은 수출품에 ‘메이드 인 튀르키예’ 표기를 시작했다.

▷터키 일각에서는 갑작스러운 변화가 못마땅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내년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불만을 대외 캠페인으로 돌리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2003년부터 19년째 장기 집권 중인 그는 최근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환율 하락으로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호를 바꾸면서 “문화와 문명, 국가의 가치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했다. 나라의 가치는 이름뿐 아니라 실제 국력과 국격이 뒷받침될 때 올라간다는 점도 함께 되새기면 좋겠다.

-이정은 논설위원, 동아일보(22-06-04)-

________________________

 

 

이집트와 터키의 쿠데타

 

2011년 이집트 국민이 민주화 혁명으로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축출했을 때 그들은 오랫동안 꿈꿨던 민주주의가 곧 실현되리라 믿었을 것이다. 이듬해 30년 만에 민주적 선거를 거쳐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뽑으면서 그 꿈은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온 듯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무르시 대통령의 선출을 도운 이슬람주의 단체 무슬림형제단은 권력을 잡자마자 종교라는 이름으로 국민들 목을 옥죄기 시작했다. 2013년 무르시 정권에 대한 반감을 핑계로 세속주의 성향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집트 민주주의는 약 2년 만에 막을 내렸다.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적이 돼 쿠데타를 불러온 이집트의 비극은 민주적인 제도와 절차가 항상 민주주의를 지켜주지는 않음을 보여줬다. 최근 터키 쿠데타도 마찬가지다.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003년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세 차례 연임으로 11년간 총리직을 수행했다. 재임 기간 빛나는 업적도 쌓았다. 취임 당시 3030억달러였던 터키 국내총생산(GDP)은 2012년 8172억달러로 2배 이상 늘었다. 유럽연합(EU) 가입 협상도 시작했다. 그러나 권력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국민이 뽑아 준 총리는 이슬람주의를 앞세우며 '21세기 술탄'을 꿈꿨다총리는 3연임만 가능하다는 당헌(黨憲) 때문에 물러나야 할 상황이 되자 헌법을 고쳐 내각제를 대통령제로 전환하고 2014년 대통령이 됐다. 그는 비판하는 언론을 탄압했다.

지난 16일의 터키 쿠데타는 역설적으로 '독재자 에르도안'의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터키 군부도 이집트 군부처럼 정교(政敎)분리와 세속주의를 지지했지만 쿠데타는 실패했다. 무르시는 실각했지만 에르도안은 돌아왔다. 에르도안이 쿠데타를 빌미 삼아 정적 6000여명을 체포하자 영국 언론 가디언은 "민선(民選) 독재자를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세속주의를 앞세운 두 나라 군부 쿠데타는 극과 극으로 갈렸지만 민주주의 실패라는 결과는 같다.

이집트와 터키의 이야기는 우리 현대사와도 중첩된다. 한국 역시 민주적 선거를 거쳐 들어선 정부가 독재로 변질되는 것을 목격했고, 쿠데타로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과정도 거쳤다. 우리는 많은 희생을 치르며 민주적 절차와 제도를 확립했다고 자부한다. 물론 이집트와 터키보다는 낫지만 제도와 형식이 민주주의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님을 우리 정치권이 증명하고 있다. 권력자를 중심으로 계파를 나누는 것은 거의 고질병 수준이다. 국민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권력을 다지는 데 더 관심이 많아 보이는 행태도 국민을 실망시킨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국민이 그것을 이루고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미국 교육행정가 로버트 허친스는 "민주주의는 매복이나 암살로 죽는 게 아니라 냉담과 무관심으로 인한 영양 결핍으로 서서히 소멸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터키와 이집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오윤희 국제부 기자, 조선닷컴(16-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