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상대는 기시다 아니라 아베다]
[간 이식 다음날 배달된 金大中 친필편지]
[韓 대통령 첫 참석 NATO 회의, 美·유럽·日 함께 엮는 ‘범동맹외교’ 계기로]
尹의 상대는 기시다 아니라 아베다
온건파 기시다, 강경파 아베 입김에 휘둘려
日과 과거사 해법 협상 전 피해자 설득부터
“바카야로(바보)!” 2015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외무성 심의관에게 크게 화를 냈다. 심의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일본 정부 대표단장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군함도에서 강제 노동(forced to work)이 있었다는 사실을 대표단이 인정한 뒤였다. 아베는 강제 노동 인정을 반대했다. 한국 정부가 등재를 반대해 등재 여부를 표결할 상황이 됐다. 일본 대표단은 부결 가능성을 보고했다. 어쩔 수 없이 강제 노동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곤 담당 심의관에게 그동안 뭐 했느냐며 직접 역정을 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부정하는 아베의 인식은 뿌리가 깊다. 일제강점기 한인을 강제 노역시킨 사도 광산을 올해 초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는 과정에도 개입했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한일관계를 고려해 올해는 추천하지 않으려 했다. 아베가 “역사 전쟁을 피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기시다의 결정은 뒤집혔다.
아베의 힘은 윤석열 대통령이 4월 한일 정책협의단을 일본에 보냈을 때도 확인됐다. 협의단은 기시다뿐 아니라 전직인 아베를 만났다. 협의단은 아베와 면담 전 아베의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상을 만났다. 협의단은 “과거사 문제 해법을 한국만 내놓으라고 하는 건 잘못됐다”고 했다. 하기우다는 “한국이 자초한 일이니 한국이 해결하라”고 반박했다. 이게 아베의 정서다.
기시다는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싶지만 아베와 자민당 강경파의 눈치를 봐야 할 처지다. 자민당 중진 대부분이 아베 시대에 당선됐다. 기시다는 아직 당 장악이 힘들다. 총리로서 자기 색깔을 내기 힘들다. 일단은 아베의 계승자를 자처해야 한다.
“도베나이 하토하.” 그래서 일본 정계는 기시다를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도베나이’는 날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토하’는 비둘기파. 날지 못하는 온건파라는 뜻이다. 강경파 아베 세력에 발이 묶여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기시다의 처지를 보여준다.
‘한국이 과거사 문제 해법을 가져와야 한다. 그럼에도 일본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할 일이 있다.’ 이게 기시다의 속내라고 한일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했다. 후자를 공식화하기엔 기시다의 정치적 입지가 아직 약하다.
기시다가 당장 한일관계 핵심 쟁점인 과거사 문제에서 양보할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이달 말 나토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려도 마찬가지다. 과거사 문제에서 윤 대통령도, 기시다도 전격적인 해법을 내놓을 상황이 아니다.
다음 달 10일 참의원 선거 이후 3년간 일본은 선거가 없다.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을 차지할 경우 기시다는 아베 입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한국도 2024년 총선까지 2년간 선거가 없다. 한일관계 전문가들은 이때를 한일관계 향방을 가를 중요한 시기로 본다.
당장 한일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현실성 없는 기대를 높이는 건 무책임하다. 과거사 문제에서 한일이 함께 해법을 찾기 전 윤 대통령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강제징용, 위안부 피해자들을 찾아 해법 동참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래야 피해자들의 지지를 업고 일본과 협상할 수 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거나 의지가 있다는 얘기가 들리지 않는다.
-윤완준 국제부장, 동아일보(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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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식 다음날 배달된 金大中 친필편지
‘고노담화’ 주역 감동시킨 DJ, 우익 성향 총리도 깍듯이 배려
尹, DJ의 對日 전략 연구해 기시다의 적극 호응 끌어내길
2002년 4월의 일이다. 한국에 ‘위안부 담화’로 널리 알려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일본 관방장관이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의 아들인 고노 다로(나중에 외무상 역임)가 선뜻 간의 일부를 기증해 이뤄졌다. 기자회견을 통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

2000년 03월 27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고노 요헤이 전 외상을 접견하고 있다./e영상역사관
그 다음 날 오전 9시. 고노의 비서관이 의원회관에 출근하자 주일 한국대사관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고노 선생님께 보내신 겁니다”라며 DJ의 친필 위로 편지를 건넸다. 전날 고노의 수술 소식을 들은 DJ가 편지를 써서 마지막 비행기 편에 보낸 것이다. 고노는 자신의 회고록 ‘일본 외교에 대한 직언’에 DJ에게 감동한 사실을 기록했다. 그를 ‘외경(畏敬)하는 정치가’라고 불렀다.
DJ의 일본에 대한 배려는 친한파뿐만이 아니었다. 2000년 4월 ‘한일 미래 파트너십 선언’ 주역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자민당 간사장이던 모리 요시로(森喜朗)가 갑자기 총리 자리에 올랐다. 그는 한국에 호의적인 정치인이 아니었다.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神)의 나라”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던 우익 성향 인사였다.
그럼에도 DJ는 개의치 않았다. 첫 남북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2000년 5월 모리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만나게 되는 것은 모리 총리님 덕분”이라며 자신을 바닥에 내려놓고 모리를 하늘 높이 띄웠다.
오부치 장례식이 남북 정상회담 일주일 전인 6월 8일로 확정됐다. DJ는 두말없이 도쿄행 비행기를 탔다. 장례식에 참석, 모리와 다시 만나면서 일본이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리가 한국을 돕고 나섰다. 2000년 6·15 합의문이 나온 직후인 같은 해 7월 오키나와에서 주요 8국(G8) 회의가 개최됐다. 모리가 주최국 의장으로 ‘G8 한반도 특별성명’이 채택되도록 힘을 썼다. 한국 외교부가 만들어 준 초안을 바탕으로 기념비적인 성명이 채택됐다. “남북 정상회담을 열렬히 환영하며 이 회담이 가져다 준 긍정적인 진전을 전면적으로 지지한다.” 이후 2002년 평양 북·일 정상회담, 2003년 6자회담 개시로 이어지며 한동안 ‘동북아의 봄’이 계속됐다.
돌이켜 보면 문재인 전(前) 정부에서 2018~2019년 한반도 상황은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던 2000년보다 여건이 더 좋았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도 세 차례나 만났다. 하지만 ‘어게인 2000년’이 되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향후 북한에 식민지 배상 차원의 경제적 지원을 할 일본의 배제에서 찾는 분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지적했듯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를 우군화하지 못한 것이 파국적인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2020년 ‘조선반도와 일본의 미래’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문 대통령과 그 정권에 결여된 것은 남북 화해 진전을 도모할 때 일·한(日韓) 간 의사소통을 깊게 하는 복안(複眼)적인 외교전략”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선 ‘백지상태’라며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일본과의 신뢰를 지금보다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말 스페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회의에 참석,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 총리를 처음으로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민국 외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일본의 존재를 인식, 상대방을 감동시켰던 DJ의 전략을 세밀하게 연구해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기시다의 적극적 호응을 끌어내기 바란다.
-이하원 국제부장, 조선일보(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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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대통령 첫 참석 NATO 회의, 美·유럽·日 함께 엮는 ‘범동맹외교’ 계기로
[유로 스코프]
NATO 정상회의 참석은 소홀했던 대유럽 외교를 공고히 할 기회
러의 우크라 침공으로 유럽 국가들 집결… 중국과 대립 구도 강화
일본과 관계 개선하고 유럽·호주·뉴질랜드와 파트너십 확대해야

나토 가입 요청한 스웨덴과 핀란드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이 마드리드에서 개최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이 된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NATO 무대에 서게 된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그리고 회원국을 신청한 스웨덴·핀란드와 더불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정상이 초청을 받았다. 한국은 2006년 이후 NATO의 글로벌 파트너 국가가 되었고, 최근 NATO 사이버방위센터(CCDCOE) 정회원으로 가입한 바 있다. 이번 NATO 정상회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동맹 차원의 대응과 더불어 신규 회원국 가입, 전략 개념의 재설정, 그리고 대중국 안보 기조와 글로벌 이슈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를 논의하는 주요한 다자 외교의 장이 될 전망이다. 한국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에 이어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는 한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도 된다. 그러나 이번 마드리드 정상회의의 핵심 목표는 무엇보다도 범(汎)동맹 체제에 기반한 대(對)유럽 외교의 기조를 확립하는 데 두어져야 한다.
유럽은 그동안 한반도 평화 정착과 국제 통상에 있어 주요한 파트너가 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 외교에서 유럽은 과소평가되든지,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에는 한국의 대유럽 외교가 빠지기 쉬운 함정들이 있다. 우선 유럽은 급하게 필요하지 않은 외교적 파트너라는 인식이다. “기-승-전-북한”으로 끝나는 단일 목표에 함몰되어 대북 정책에 대한 유용성으로 외교적 상대를 판단했을 때 유럽 국가들은 종종 4강 외교의 뒷전에 놓이곤 했다. 둘째, 유럽은 쉬운 외교적 상대라는 인식이다. 유럽은 큰 기복과 충돌 없이 한국의 이해관계를 수월하게 관철시키고 협조를 도출해 낼 수 있기에 언제든 동원 가능하리라는 예상이다. 셋째, 유럽은 미국과 다르다는 인식이다. 이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특히 북한에 대한 우회로가 존재한다는 선입견은 미국과 유럽이 갈등 양상을 보일 때 더 강하게 나타났다. 미국을 우회해서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 수단으로 유럽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2018년 ASEM 정상회의에서 참사에 가까운 시각차를 드러낸 바 있다. 미국과 유럽이 간혹 서로 다투더라도 가장 상위의 동맹 구조로 엮인 노부부와 같은 관계라는 것을 간과한 대가는 한국 외교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졌다.
유럽은 결코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은 상대이다. 30여 국이 훌쩍 넘는 국가들이 가지는 상이성과 유럽연합이라는 통합체를 동시에 다루기 위해서는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다. 유럽의 외교는 가치와 원칙, 규범을 중시하고, 글로벌 의제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러한 기조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다자적 차원에서 장기적인 투자와 연계를 필요로 한다. 다자 외교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신뢰는 오랜 시간 위에 축적된 행동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가 민감하게 부상하는 상황에서 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외교의 우선순위는 종종 뒤로 밀려왔다. 유럽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수사적 언급과 실제 관심도에 있어서는 상당한 온도 차이가 존재했다. 미국과 유럽 간의 대서양 동맹의 근간을 이루는 NATO 역시 한반도의 관심사에서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었다. 여기에 비해 일본은 미·일 동맹과 더불어 NATO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해 왔다.
지정학의 흐름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새로운 냉전의 도래와 더불어 전면전과 핵무기 사용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 위치한 유럽 국가들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가속화하면서 미국, 유럽,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한국의 주요 동맹국 및 협력국들이 집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 대한 유럽의 입장도 빠르게 바뀌었다. 2021년 NATO 정상회의는 기존의 “기회이자 도전”이었던 중국을 국제 질서와 동맹 안보에서 함께 대응해야 할 “체계적 도전”으로 규정하고, 인권·안보·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대립 구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쿼드(QUAD)를 넘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구체화되고 있으며, 경제와 안보, 공급망과 정치 협력이 재편되는 상황 속에 유럽은 빠르게 동진하고 있다.
여러 유럽 정상들과 조우할 수 있는 이번 마드리드 NATO 회의는 한국이 대유럽 외교의 기조를 명확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여기서의 원칙은 미국과 유럽, 일본, 호주와 뉴질랜드를 아우를 수 있는 ‘범동맹 외교’가 되어야 한다. 미국 따로, 일본 따로, 유럽 따로의 파트너십을 엮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주요 동맹인 이 주체들을 함께 엮어낼 필요가 있다. 범동맹 외교의 틀하에서 한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인권과 법치라는 가치와 원칙을 공유하는 주체임을 명확히 하고, 그 틀 안에서 유럽과 일본을 외교의 핵심 축으로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북한의 핵 보유 의지는 더 강해졌다. 더욱 난제가 된 비핵화 협상은 기존보다 더 강력해진 국제 공조를 필요로 한다. 기후변화와 팬데믹 같은 글로벌 의제 역시 더 이상 뒷전으로 밀어둘 부차적인 의제가 아니다.
글로벌 중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적인 외교적 시각를 넘어서야 한다. 한반도로 함몰된 외교적 시야를 넓히고, 협상의 레버리지를 강화할 동맹과 파트너십을 확대해야 한다. 이번 NATO 정상회담은 그 과제의 큰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한류의 확산과 더불어 한국에 대한 유럽의 관심은 안에서부터 조금씩 더 높아지고 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럽 외교의 기조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서로를 잘 모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걸 메꾸는 노력들이 한국 외교의 신뢰를 높이고 글로벌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이번 마드리드 방문 일정은 짧지만 큰 무게를 지닌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대학 장 모네 석좌교수, 조선일보(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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