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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제안 톱10’ 논란] [국정은 민원(民願) 청취나 민원(民怨) 해결 그 이상이다]

뚝섬 2022. 7. 29. 08:39

[‘국민제안 톱10’ 논란] 

[국정은 민원(民願) 청취나 민원(民怨) 해결 그 이상이다]

 

 

 

‘국민제안 톱10’ 논란

 

‘가요 톱10도 아니고….’ 국민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겠다며 대통령실이 공개한 국민제안 톱10. 그런데 열흘간 투표가 끝나기도 전에 국민투표를 당장 중단하라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국민제안 톱10은 대통령실이 지난달 신설한 소통 창구인 국민제안에 올라온 약 1만2000건의 청원 중에 10개를 추려 온라인 국민투표에 부친 것이다. 현재 ‘대형마트 의무 휴업 폐지’가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고 있다. 이어 ‘9900원 K-교통패스 도입’ ‘휴대전화 모바일 데이터 잔량 이월 허용’ 등의 순서다.

문제는 국민제안 톱10이 이른바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인기투표라는 데 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배너를 예로 들면, ‘현재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지역·업종별로 차등 적용’, 달랑 이 한 줄의 설명과 함께 ‘본 제안이 마음에 드시면 하단의 ‘좋아요’를 눌러 주세요’라고 되어 있다.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지역과 업종은 어떻게 분류되는지 같은 기본적인 판단의 근거는 제공되지 않는다. 물론 ‘싫어요’를 선택할 수도 없다. 댓글 같은 공론의 장도 열려 있지 않다.

▷대통령실은 지난 정부의 국민청원이 오히려 세대·이념·젠더 갈등을 촉발했다는 문제의식 아래 국민제안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청원 내용과 청원자를 공개하면 국민청원이고, 이를 비공개하면 국민제안이라는 설명이다. 사실상 같은 제도다. 국민청원 당시에도 정부와 국회의 갈등 조정 과정이 생략된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한 줄짜리 설명과 인기투표로 진행되는 국민제안도 이런 우려를 피해 갈 수 없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관련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 참여합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던 소상공인들이 모인 카페마다 국민제안 순위를 올리자는 독려 글이 올라오고 있다. 소상공인들의 집단행동에 맞서 아르바이트생들은 “지금도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제안이 오히려 양측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인기투표로 정책을 결정하면 갈등이 조정되기보다 증폭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계가 달리거나 건강이 달린, 누군가에게는 삶이 송두리째 바뀔지도 모를 정책들을 온라인 인기투표로 결정한다는 그 발상에도 한숨이 나오지만, 온라인 투표 과정 자체도 허술하다. 이해관계로 뭉친 단체들이 조작 투표를 해도, 한 사람이 기기를 바꿔 여러 차례 투표를 해도 걸러낼 방법이 없다. 이렇게 수렴된 국민 의견이 어떤 대표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바로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하니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비판이 나온다.

-우경임 논설위원, 동아일보(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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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은 민원(民願) 청취나 민원(民怨) 해결 그 이상이다

 

[朝鮮칼럼]

신문고식 민심 청취는 제왕적 권력의 상징일 뿐
국민 고충 상담을 대통령실서 해야 하나
큰 그림 그려야할 국정이 사소한 민원 해결에 매몰돼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길 때 민원실은 따라오지 않았다. 따라서 대통령을 상대로 하는 청원서나 탄원서를 어디에 접수해야 할지 몰라 여기저기 헤매는 국민이 많이 생겨났다. 옛날 청와대에는 ‘연풍문’이라는 민원인 안내 시설이 있었다. 새 대통령에게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고 싶어 하는 국민이 적지 않은 탓에 ‘용산 대통령실’은 엊그제 새로운 소통 창구로서 ‘국민제안’을 신설했다.

 

국가 지도자와 일반 국민이 서로 소통하는 일은 그 자체로서 민주주의의 표상이다. 국민이 국가기관에 대하여 문서로써 어떤 희망 사항을 청원할 수 있는 권리는 헌법상 기본권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운영한 ‘국민청원’ 제도에는 문제가 많았다. 특히 ‘청와대 국민소통 게시판’의 경우가 그랬다. 문재인 정부는 그것이 접근성과 신속성에 있어서 소통 정치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것으로 자평(自評)했지만, 실상은 크게 달랐다.

 

5년 동안 누적 방문자가 5억명을 넘었던 청와대 국민소통 게시판에는 하루 평균 600건 정도의 글이 올라왔는데, 대부분은 정제되지 않은 분노와 검증되지 않은 호소였다. 국민청원이 아니라 국민 애원에 가까운 것이 더 많았고 국가적 주요 의제 또한 여론 재판에 희생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른바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 관련하여 유난히 의욕이 넘쳤다. 청와대는 민원 청취의 주역을 자임했을 뿐 아니라 공론장의 역할까지 자청하고 나섰다.

 

함께해준 국민 덕분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습니다”라는 문 대통령의 퇴임 전날 허언(虛言)과 더불어 국민소통 게시판 자체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전(前) 정부의 ‘국민청원’이 새 정부의 ‘국민제안’으로 나름 명맥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대통령과의 직접 소통이 어쨌든 필요하다고 느끼는 저변의 국민 정서에는 별로 변화가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피지배자의 목소리가 최고 권력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전통은 조선시대 신문고(申聞鼓)에서 비롯되었다. 청와대 국민소통 게시판이 ‘현대판 신문고’로 불린 것도 그런 연유다. 신문고는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가령 중국의 자금성이나 일본의 에도성 앞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제도였다.

 

문제는 이런 ‘직소(直訴) 정치’의 의미와 역기능이다. ‘국뽕’ 역사학자들은 이를 두고 민의상달(民意上達)이라 미화하지만, 1401년 태종이 창덕궁 앞에 큰 북을 내걸 때는 역성혁명과 왕자의 난이라는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반란 음모를 포착하려는 목적이 중요했다. 또한 세조가 “부모나 수령이 괴롭히는 일이 있으면 즉시 와서 나에게 고하라”고 말했을 때, 신문고는 ‘자애로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영·정조대에는 신문고가 장소나 형식, 신분을 불문하고 만백성이 국왕 면전에 탄원할 수 있던 또 다른 소통 장치, 곧 ‘상언(上言)’ 및 ‘격쟁’(擊錚)’과 병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 조선의 정치는 지극히 사소화(些少化)되었다. 나라 전체를 위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국정이 민원(民怨)과 민정(民情)에 매몰된 탓이다. 직접 참여의 일상화에 따른 ‘정치 과잉’ 사회의 도래 또한 예고된 결말이었다. 좋은 정치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요순(堯舜)시대의 미담이 최소한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전통사회의 유산이 현대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모든 사회적 갈등과 정쟁이 오직 최고 권력자를 중심으로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고질적 정치 문화다. ‘제왕적 대통령’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윤석열 시대가 ‘일하는 유능한 정부’를 지향하려면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 대한 지나친 부담과 강박에서 벗어나길 권한다. 국민 소통 방식의 개선은 물론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민의(民意)나 민원과 관련된 창구를 대통령실에서 계속 따로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국민 ’고충’, 국민 ’권익’, 국민 ’참여’ 담당 조직은 정부 내에 이미 차고 넘친다. 맞상대가 대통령인 직접 소통의 남용과 과열은 자칫 민심을 괴물로 만들기 쉽다. 그리고 그 괴물은 나라를 망치기도 한다. 신문고 스타일의 전근대적 직소 정치가 유일한 혹은 최상의 국민 소통은 아닐 것이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조선일보(2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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