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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이제 경찰까지 .. 집단 시위.. ] ....

뚝섬 2022. 9. 2. 07:06

[경찰청장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이제 경찰까지 노조처럼 집단 시위 벌이는 나라 됐나]

[경찰국 신설은 왜 퇴행인가]

 

 

 

경찰청장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폴리스 라인은 경고 라인이면서 동시에 징벌 라인이다. “넘으면 안 돼.” “앗, 넘었군. 이번은 봐주지만 또 넘으면 안 돼.” “오늘은 눈감아주겠는데, 다음 집회 때는 어림없어.” 이쯤 되면 이미 금지선이 아니고 조롱선이다. 소음 피해도 마찬가지다. 사후 처벌 으름장은 말짱 꽝이다. 시민이 고통 받기 이전에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징벌 라인은 엄격해야 한다. 그래야 징벌이고, 공권력이다. 차별을 두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공권력의 본질은 “무차별적”이다. 공권력, 그중에서 거리·광장·사업장 안전을 담당하는 공권력은 개입을 망설이는 경우가 극도로 제한적이어야 한다.

 

폴리스 라인을 넘으면 경찰봉으로 즉각 제압하고, 땅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케이블 타이로 두 손을 묶어둬야 하고, 호송차가 도착하면 태워서 현장 연행을 해야 한다. 그게 공권력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해야 한다. 국회의원이든 스타 연예인이든 집회 취지에 동조하러 시위 현장에 갔다가 폴리스 라인을 넘으면 그대로 땅바닥에 제압당하고 허리 뒤로 두 손목이 묶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런 장면이 언론에 자꾸 보도돼야 한다.

 

공장 점거, 사장실 점거, 출입구 봉쇄 같은 산업 시설 불법 점거는 즉각적으로 공권력이 작동되어야 한다. “사태 추이를 두고 보겠다” “노사 협상을 기다려 보겠다” 이런 식이면 이미 존재 이유가 상당 부분 와해된 공권력이다. 우리 사회를 작동시키는 기제는 물렁물렁하고 유연한 협상력이 우선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시멘트 벽처럼 딱딱한 엄격함이 지키고 있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회사 경영진과 노조의 협상, 정부 차원의 노사정 협의회가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면, 공권력은 한없이 삼엄해야 한다. 나중에 정상을 참작하고 아량을 베푸는 곳은 재판정이어야 하지 경찰 공권력이 그걸 폼 잡으면 안 된다.

 

경찰은 “중립과 독립 보장”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에 걸맞게 그 누구의 눈치도 봐서는 안 된다. 경찰청장의 개인 휴대폰은 꺼져 있어야 한다. 그가 지닌 내부 통신 장비는 엄격한 계선에 따른 지휘와 보고를 위해서만 통화가 이뤄져야 한다. 여의도 정치인과 전화는 절대 안 된다.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의 전화도 받지 말아야 한다. 아니 “시스템적으로” 받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경찰청장의 휴대폰 통화 내역은 정규적으로 공개돼야 한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최근 이렇게 말했다. “사실 공권력을 언제 투입해야 할지 명문화된 기준이 없다. 그래서 불법 집회나 시설 점거 등 상황별로 어느 정도 단계가 되었을 때 공권력 개입이 필요하다는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공권력이 언제 개입할지 시스템화하는 것이다.” 일부는 옳은 얘기다. 그러나 매뉴얼이 너무 정교하고 복잡하면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된다. 무슨 전자제품 사용 설명서처럼 수십 쪽이 넘어가면 안 된다. 애매모호해도 안 된다. 시위·집회 현장에서 경찰 병력을 지휘하는 수사·경비 과장과 일선 경찰서장이 헷갈리면 그건 맹탕 매뉴얼이다. 공권력 매뉴얼은 간단 명료해야 한다. 한 문장이면 족하다. 불법이면 개입한다.”

 

상황별로 어느 정도 단계가 되었을 때’라고 한 그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불법적 상황은 그것이 발생한 즉시 이미 심각한 것이다. 이미 피해가 커지고 있고, 공권력의 절대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간을 보는 쪽은 ‘불법 시위꾼’이어야 하지, 공권력이 ‘상황별로 단계를 판단’하려 하면 그것은 이미 눈감은 공권력이다. 공권력은 윤 청장이 말한 것처럼 사태를 해결하는 ‘마지막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불법적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발동되는 ‘첫 번째 조치’이어야 한다. 그동안 폴리스 라인은 경찰만 지키고 시위꾼은 무시해왔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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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경찰까지 노조처럼 집단 시위 벌이는 나라 됐나

 

류삼영 총경이 26일 오후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을 위한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개정안은 8월 2일 공포와 동시에 시행된다. 류 총경은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며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했다가 대기발령 조치됐다. /뉴스1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을 위한 시행령안이 26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시행령은 다음 달 2일 공포·시행된다. 하지만 이에 반발해 30일 경감·경위급 현장팀장회의 개최를 예고했던 경찰관은 이날 14만 전체 경찰회의로 변경하겠다고 했다. 전날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더는 집단 의사 표시 행위가 있어선 안 된다”고 했는데 이를 무시한 것이다.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은 상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집행관인 경찰관이 법을 어기겠다고 한다.

 

경찰의 기본 책무는 치안과 범죄 예방이다. 이를 위해 경찰에 합법적 무장을 허용한 것이고 그런 만큼 복무 규정 준수가 어느 조직보다 중요하다. 그런데도 정부 정책에 불만이 있다고 경찰이 통제를 벗어나 행동하면 어떤 혼란이 올지 알 수 없다. 경찰이 숫자의 힘으로 위력을 과시하며 노조처럼 움직이면 앞으로 다른 집단들의 불법 집회나 시위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나.

 

경찰국 신설은 윤석열 정부가 그동안 경찰을 통제하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폐지하면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다. 경찰은 “경찰 독립 훼손”이라며 반발하지만 그동안 경찰은 청와대 지시를 받으면서 권력이 시키는 대로 경찰력을 행사해왔다. 문재인 정부 때 대선 여론을 조작한 ‘드루킹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통령 측근이 개입한 증거가 나오자 수사를 뭉갠 것이 경찰이다. 대통령 친구를 울산시장에 당선시키려는 민정수석실 지시에 따라 야당 후보에 대한 하명 수사를 한 것도 경찰이다. 그렇게 경찰이 불법에 동원될 때 ‘독립’을 말한 경찰관은 없었다.

 

-조선일보(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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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국 신설은 왜 퇴행인가

 

[송평인 칼럼]

일본은 국가공안위원회가 경찰 관리, 미국 영국은 주민이 경찰청장 뽑아
대통령-행안부 지휘에 따른 경찰 통제, 프랑스식 국가주의 경찰로의 퇴행

 

일본에서 경찰을 관리·감독하는 국가공안위원회는 총리 직속이지만 총리에게 위원회에 대한 지휘 권한은 없다. 그래서 위원회를 총리의 간카쓰(管轄·관할)라 하지 않고 총리의 쇼카쓰(所轄·소할)라 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행정용어에는 이런 구별이 없다.

국가공안위원장은 국무대신(우리나라의 장관)이며 5명의 위원은 민간인 중에서 중·참의원 양원의 동의를 얻어 총리가 임명한다. 위원회도 경찰의 사안 하나하나에 대한 사전적 지휘권은 없다. 대강의 방침을 정해 관리하면서 사후적 감찰 등 감독을 주로 한다. 총리의 승인을 받아 고위직 경찰 인사도 한다.

우리나라 국가경찰위원회는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위원장은 장관도 아니고 심지어 상임조차도 아니다. 다만 위원회는 경찰청장 동의권 등이 있어 실질적으로 운영한다면 합의체의 기능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위원장을 포함해 7명의 위원 모두 행안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정부의 거수기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현 위원회도 위원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 변호사이고 위원 대부분이 중립과 거리가 멀다.

 

역대 정부는 보수건 진보건 대통령이 청와대 치안비서관의 도움을 받아 경찰청장을 임명한 뒤 경찰청장의 추천을 받아 행안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총경 이상 경찰관에 대한 광범위한 인사를 했다. 현 정부가 행안부 내에 경찰국을 신설키로 한 것은 누가 없애라고 한 적도 없는 치안비서관 자리를 스스로 없앤 데 따른 조치이기도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경찰을 더 철저히 장악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측에서는 국가가 경찰을 통제하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의 뉴욕경찰청장 LA경찰청장 등은 주민이 선출한다. 영국의 런던경찰청장 등도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각 경찰청에 민간인으로 구성된 경찰위원회(police panel)를 두고 경찰을 관리·감독한다. 군대처럼 총을 가진 무장조직인데도 그렇다.

그것은 자치경찰에나 해당하고 국가경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일본은 국가공안위원회가 자치경찰과 국가경찰을 모두 관리·감독한다. 미국에서 연방수사국(FBI) 등 연방경찰기관의 장(長)은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을 얻어 임명하지만 거기까지다. FBI는 법무부 소속이지만 예산 관리 지원만 받을 뿐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영국은 자치경찰인 런던경찰청이 국가경찰 임무까지 수행하는 나라인데 런던경찰청장은 선출되면 중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지방경찰청장과는 달리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 커미셔너(commissioner)라고 불리는 민간인 신분이 된다.

 

경찰의 중립성을 보장할 제도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면 경찰국을 둔다고 누가 뭐라 하겠는가. 영국은 내무부에 경찰을 지원하는 경찰국을 두고 있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경찰청장을 주민이 선출하지도 않고 경찰위원회는 거수기 역할밖에 못하고 대통령이 총경 이상 경찰관을 죄다 임명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경찰국 신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경찰국 신설이 왜 문제인지는 5년 후에 정권이 바뀐다고 생각해보면 분명하지 않은가. 문재인의 더불어민주당 정부는 경찰국 없이도 경찰을 장악해 경찰을 피폐화시켰다. 경찰국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그렇지 않아도 방대하지만 앞으로 더 방대해질 경찰도 속속들이 장악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부의 경찰국 신설은 검찰과 경찰이라는 두 마리 사냥개를 몰아 이 정부가 당장 원하는 걸 얻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는 큰 후과를 초래할 수 있는 제도적 퇴행이다.

정부는 경찰국 신설을 밀어붙이기 전에 경찰위원회를 실질화하는 법 개정을 제안했어야 한다. 민주당이 응하지 않았다면 경찰국 신설을 추진할 명분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 경찰의 본질에 대한 성찰도, 경찰의 선진화를 위한 그림도 없었고 나랏일은 밀어붙일 게 아니라 정당성에 호소해야 한다는 기본도 몰랐다.

우리나라 경찰위원회는 민주화 과정의 특수한 경험에서 나온 산물이다. 그것은 우리 경찰이 프랑스 등의 국가주의 경찰과 차별화해서 국민에게 보다 밀착한 영미식 경찰에 접근할 씨앗을 제공했다. 역사를 더 전진시키지는 못할망정 후퇴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라.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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