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도, 설득도 없이 느닷없이 내놓은 ‘만 5세 입학’]
[76년만의 학제 변경 논의, 공급자 아닌 수요자가 중심 돼야]
논의도, 설득도 없이 느닷없이 내놓은 ‘만 5세 입학’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박순애 교육부 장관에게 업무 보고를 받고 있다. 박 장관은 이날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2025년부터 만 5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 뉴스1
교육부 장관이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걸 추진하겠다고 보고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대선 공약으로 제시된 적도, 국정 과제로 논의된 일도 없는 사안을 느닷없이 꺼내 든 것에 국민은 당혹스럽다. 교육 분야 경력이 전무한 신임 교육부 장관이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충분한 준비 끝에 내놨다고 믿기 힘들다.
입학 연령을 낮추는 이점은 있다. 중·고교와 대학 입학·졸업까지 연쇄적으로 1년씩 당겨지면서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출 시점도 1년 빨라진다.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군 입대 때문에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 남자들에게 도움 될 수 있다. 정부의 보육 재정 지출과 가정의 양육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가정 형편, 지역 여건에 따라 유아 교육의 질적 격차가 작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공평한 교육 기회 구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만 5세 어린이들은 집중력이 약해 집단 놀이 형태가 아닌 정규 학교 교육 대상으론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교육계 지적이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4년간 단계적으로 3개월씩 취학 연령을 낮출 경우 해당 학년 동급생 수 증가 폭을 25% 이내로 제한할 수 있어 교사·교실 조건은 넉넉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급생 수가 25% 증가하면 해당 연령대의 대학, 취직 경쟁은 그만큼 치열해진다. 학부모들이 제도 변경을 흔쾌히 수용할지 의문이다.
유아 교육계는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취학 연령을 낮추면 유치원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도 ‘만 5세 입학’을 추진했지만 1만곳 가까운 유치원 반대에 부딪혀 성사시키지 못했다. 제도 변경을 시도할 때 피해 집단을 설득할 치밀한 대책을 준비해가면서 추진하지 않으면 관철하기 어렵다. 여소야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부가 응집력 있는 반대 집단이 뚜렷한 이 사안에 대해 준비를 충분히 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논의 절차와 사전 설득 과정 없이 발표부터 해놓고 이제부터 태스크 포스를 꾸려 추진하겠다고 한다. 혼란만 초래해 정부 신뢰를 또 한번 떨어뜨리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부터 든다.
-조선일보(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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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만의 학제 변경 논의, 공급자 아닌 수요자가 중심 돼야

서울시 강남구 포이초등학교에서 첫 등교를 한 1학년 학생들이 담임교사와 함께 입학식을 하고 있다. 2021.03.02 사진공동취재단
정부가 2025년부터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겨 만 5세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제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방안을 보고했다. 박 부총리는 그 배경으로 “출발선상 교육 격차를 조기에 국가가 책임지고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교사와 교실 확충이 어렵고 입시·취업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만 5세를 매년 일정 비율(25%)로 나눠 단계적으로 취학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그동안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와 산업 발달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에 맞춘 학제 개편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요구가 있었다. 사회 진출이 빨라지면 결혼과 출산 시기도 앞당길 수 있다. 생애노동시간이 길어져 생산가능인구도 늘어난다. 이런 기대효과에도 1949년 교육법에서 초등학교 입학 연령이 만 6세로 정해진 뒤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다. 초중고교뿐 아니라 대학, 기업, 군대 등 사회 전체의 시간표를 바꾸는 일이라 이에 따른 저항과 비용이 컸기 때문이다.
이렇듯 오래된 난제임을 모를 리 없는 교육부가 ‘깜짝’ 학제 개편을 발표한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학제 개편은 대선공약에도,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육을 담당한 시도 교육청과 사전 협의도 없었다고 한다. 학제 개편은 언제, 무엇을 가르치나 하는 교육과정 개편과도 직결되는데 이는 언급조차 없었다.
예고 없는 졸속 정책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온다. 당장 만 6세 형들과의 경쟁을 우려하는 학부모, 하교 시간이 이른 초등학교 조기 입학에 보육 부담이 늘어나는 맞벌이 부모, 발달단계가 다른 만 5세 아이를 가르치게 될 교사 등은 학제 개편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교육단체들도 사전 의견 수렴이나 정책 연구 없이 정책을 내놨다며 일제히 반발했다.
교육부는 올해 안에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정책 연구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미 대통령에게 보고한 정책이라고 결론이 정해진 의견 수렴이나 정책 연구가 되어선 안 된다. 학생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효과와 역효과를 잘 따져보고 추진하더라도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 노동력 확보 같은 논리로만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교육계도 시대에 맞는 학제 개편에 대한 기대가 있는 만큼 열린 마음으로 정책 숙의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동아일보(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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