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물 통제’ 해제 소동이 의미하는 것]
[중국의 남 탓 DNA]
[올리가르히 잇단 의문사]
‘성인물 통제’ 해제 소동이 의미하는 것
前 정부 때 도입된 중국식 인터넷 통제
자유 강조하는 尹 정부… 바로잡을 의지 있나
윤석열 대통령 취임 다음 날인 지난 5월 11일 온라인에선 작은 소동이 있었다. 지난 정부 때 접속이 차단됐던 해외 성인물 웹사이트 접속이 갑자기 가능해진 것이다. 젊은 남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정권이 바뀌니까 드디어 자유가 찾아왔다”며 환호성이 나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은 시스템 오류로 인한 ‘사고’로 결론 났고, 해외 사이트 접속은 다시 차단됐다.
한국에서 해외 성인 사이트 접속이 봉쇄된 것은 2019년 2월 문재인 정부가 ‘HTTPS 차단 정책’이라고도 불리는 SNI(Server Name Indication)’ 차단 방식을 도입하면서다. 기존에는 DNS(Domain Name System) 방식으로 ‘유해 사이트’ 접근을 막아왔는데, 이 방식이 HTTPS 보안을 사용하는 사이트에는 먹히지 않자 강화된 차단 방식을 들고 나온 것이다. 기존 DNS 차단 방식은 특정 사이트 주소 접속을 일괄 봉쇄하기 때문에 누가 사이트에 접속하려 했는지 특정하기 어렵지만, SNI 차단 방식은 국가 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사용자를 식별할 수 있다.
비유컨대 종전에는 특정 지역으로 발송되는 편지를 봉투에 적힌 주소를 보고 죄다 차단했다면, 이제는 편지 수·발신자가 암호로 봉투를 적는 바람에 주소 식별이 어려워지자 편지 봉투를 일일이 빛에 비춰보고 어디로 보내는지 확인하는 식이다. 감청과 검열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방식이라 중국 정도를 제외하고는 정부 차원에서 사용하는 나라가 없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이 규제를 도입했을 때 일주일도 안 돼서 20만명 넘게 “인터넷 통제 강화에 반대한다”는 청원에 서명했지만,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불법 도박과 불법 촬영물은 삭제되고 차단돼야 한다”고 일축했다.
몰래 카메라 같은 불법 성인물 제작·유포를 막아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HTTPS 차단은 밤에 돌아다니는 도둑을 막겠다고 전 국민에게 통행금지를 내린 격이다. 마음만 먹으면 VPN 우회 방식으로 얼마든 해외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 콘텐츠를 완벽하게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별로 얻는 건 없이 ‘중국 수준의 인터넷 검열 국가’라는 비웃음만 살 뿐이다.
인증을 통해 미성년자는 성인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게 막고, 불법 성인물 제작·유포에 가담한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합리적이다. 윤 대통령도 이른바 ‘n번방 방지법’에 대해 후보자 시절 “디지털 성범죄와 같은 흉악한 범죄는 반드시 원천 차단하고 강도 높게 처벌해야 하지만, 절대 다수의 선량한 시민에게 ‘검열의 공포’를 안겨줘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처럼 윤 대통령은 자유의 가치를 유독 강조해 왔다. HTTPS 차단 해제 해프닝을 많은 사람들이 ‘사고’가 아니라 ‘정권 교체 효과’로 오인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꼽았고, 취임사에서는 ‘자유’를 35번 언급했다.
사실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도 야당 시절에는 자유의 수호자를 자처했었다. 2012년 문 후보는 “이명박 정부 동안 우리나라는 ‘인터넷 검열 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반드시 대한민국을 인터넷 자유국가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정작 집권 후에는 더 심한 인터넷 검열을 폈다. 민주당 의원들은 야당 시절 눈물을 흘리며 테러방지법에 반대했지만, 여당이 된 후엔 법을 개정하겠다던 약속을 모른 체했다. 누구보다 간섭과 통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입으로만 외친 자유였던 셈이다. ‘윤석열의 자유’는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최규민 기자, 조선일보(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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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남 탓 DNA
버스나 지하철에서 실수로 발을 밟거나 어깨를 치면 “미안하다”고 하는 게 상식이고 에티켓이다. 중국에선 그렇지 않다. 중국 생활이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이 흔히 당하는 일이다. 버스, 지하철뿐이 아니다. 중국어 회화 책엔 분명히 ‘두이부치’(對不起·미안합니다)가 나오지만 정작 중국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다. “두이부치는 사어(死語)”라는 말도 있다. 사과는 고사하고 눈을 부라리는 고약한 상황만 피해도 다행이다.

▶봄·겨울이면 전 국민을 괴롭히는 미세 먼지의 상당 부분이 중국발임은 오래전 과학으로 입증됐다. 중국에서 발생한 미세 먼지가 한반도로 넘어오는 위성사진이 수도 없이 공개됐다. 우리가 쏘아 올린 천리안 위성도 2020년부터 증거 영상을 전송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서울의 미세 먼지는 서울에서 나온다”고 한다. “중국 탓만 하다가는 미세 먼지를 줄일 기회를 놓칠 것”이란 말도 했다.
▶3년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의 시작은 2019년 12월 중국 우한의 집단감염이었다. 박쥐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동물이 사람과 접촉하면서 팬데믹을 유발했다는 게 과학계 중론이다. 처음엔 수긍하던 중국 과학자들이 얼마 전부터 “코로나는 중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인 4만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98%가 “코로나 팬데믹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답했다. 코로나 기원을 조사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엔 비협조와 훼방으로 일관했다.
▶지난 1일 중국 톈진시는 최근 급속 확산 중인 코로나19의 감염원으로 한국산 수입품을 지목했다. 한국에서 수입한 냉동식품 표본에서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올봄에도 다롄시가 한국산 수입 의류를 코로나19 감염원으로 지목해 우리 정부의 항의를 받았는데 다시 한국 탓을 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원래 사과에 인색하고 남 탓만 하진 않았다. 1960~70년대 문화 대혁명의 트라우마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인민재판을 받고 투옥·처형당하는 걸 보면서 ‘잘못을 인정하면 죽는다’는 강박이 생겼다는 것이다. 문화 대혁명보다 더한 걸 70년 넘게 하고 있는 곳이 북한이다. 얼마 전 김여정은 북한 내 코로나 확산을 한국의 전단 탓이라 주장하며 “보복”을 위협했다. 1983년 아웅산 테러, 1987년 KAL기 폭파, 2008년 금강산 관광객 사살,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때도 “특대형 모략극”이라 했다. 이들에겐 우기고 뒤집어씌우는 DNA가 있는 걸까.
-이용수 기자, 조선일보(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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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가르히 잇단 의문사

19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부시장으로 일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중앙 무대로 끌어올려 준 사람은 보리스 베레좁스키였다.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의 상징인 베레좁스키의 후원으로 푸틴은 크렘린에 부국장으로 입성했고 총리를 거쳐 2000년 대권을 잡았다. 하지만 푸틴이 대통령이 된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졌고, 결국 영국 런던으로 망명한 베레좁스키는 2013년 자택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푸틴 시대 올리가르히의 첫 의문사였다.
▷러시아의 최대 민영 석유업체인 루크오일의 라빌 마가노프 회장이 1일 모스크바의 병원에서 추락사했다. 러시아 국영 매체들은 그가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했다면서 극단적 선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다 실족한 것이라는 민간 매체의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서방 언론들은 루크오일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무력 충돌이 최대한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비판적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마가노프의 죽음에 러시아 당국의 개입을 의심하는 분위기다.
▷앞서 4월 러시아 액화천연가스 기업 노바테크 전 부회장이 스페인에서, 국영 천연가스 기업 가스프롬 자회사 가스프롬은행의 전 부회장은 모스크바에서 각각 가족들과 함께 사망했다. 이어 5월에는 가스프롬 소유 리조트의 임원이 절벽에서 추락해 숨졌다. 이처럼 올해 들어 올리가르히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 잇따르고 있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망 배경에 대한 궁금증만 계속 커질 뿐이다.
▷올리가르히는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이들은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경제와 정치에서 영향력을 확대했고 정부와 올리가르히는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푸틴은 “기업인들은 정치판에 기웃거리지 말라”고 견제하면서 독자적으로 권력을 구축해 나갔다. 이후 최대 부호였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전 유코스 회장이 10년간 옥살이를 하고 망명길에 오르는 등 반(反)푸틴 성향의 올리가르히는 축출되고 친푸틴 기업인들만 남았다.
▷푸틴은 KGB와 군대 등 안보·정보를 담당하던 부처 출신의 이른바 ‘실로비키’를 중용해 통치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동안 올리가르히뿐 아니라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 등 푸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암살되거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러시아 선거법상 푸틴은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하다. 푸틴의 철권통치가 계속된다면 러시아에 의문사의 그림자가 사라질 날은 아직 멀어 보인다.
-장택동 논설위원, 동아일보(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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