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무솔리니’]
[책 읽는 어린 키케로]
[베네치아 가장 화려한 궁전에 펼친 회색빛 폐허]
‘여자 무솔리니’

2019년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이오 소노 조르자(Io Sono Giorgia)’라는 제목의 리믹스 곡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극우 성향 정치인인 조르자 멜로니가 한 집회에서 높은 톤으로 외쳐댄 발언에 디스코풍의 리듬을 입힌 곡이었다. 진보적 디제이들이 그를 조롱하려고 만든 이 음악 동영상은 아이러니하게도 12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킨다. 군소정당을 이끌던 고졸 출신의 40대 미혼모 정치인이 일약 스타로 도약하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 사상 첫 여성 총리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FdI)’ 대표는 ‘여자 무솔리니’로 불리는 극우파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에 대해 “그가 했던 모든 일은 조국을 위한 것이었다”고 추켜올렸다. “50년 동안 그런 정치인은 나온 적이 없었다”고도 했다. 음악으로 각색된 3년 전 연설도 ‘무솔리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내용이다. “나는 조르자, 어머니이고 이탈리아인이며 기독교”로 시작되는 당시 발언은 무솔리니 정권의 슬로건이었던 ‘신, 조국, 가족’과 유사하다.
▷무솔리니는 언론과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며 21년간 장기 집권의 흑역사를 썼다. 아돌프 히틀러와 함께 유럽의 양대 미치광이 독재자로 꼽힌다. 전위 민병대 ‘검은 셔츠단’을 앞세워 나라를 파시즘의 광기 속에 몰아넣었던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런 무솔리니와 비교되는 것에 대해 멜로니는 “웃기는 일”이라고 일축해 왔다. 파시즘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받아들인다면서도 자신은 ‘네오 파시스트’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논란이 된 파시스트 슬로건에 대해서는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선언일 뿐”이라고 했다.
▷반대파들은 그를 향해 ‘위험한 극단주의자’, ‘이탈리아의 히틀러’라는 독설을 쏟아내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화살이 날아드는 형국이다. 탈(脫)유럽연합(EU)을 외쳐온 그가 EU의 단결을 흔드는 뇌관이 될 것이라는 경계심이 상당하다. 그가 이끄는 우파연합의 친러 성향으로 볼 때 향후 러시아에 맞선 서방의 대동단결 전선에 구멍을 낼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이라는 딱지가 붙은 이유다.
▷이탈리아는 지난 20년간 정권이 11번 바뀔 정도로 정치적 리더십이 불안정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난과 인플레이션, 치솟는 국가부채 등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러시아 제재와 나토(NATO), EU 통합 같은 대외 현안들도 쌓여 있다. 이탈리아의 선택이 주변국에 미칠 연쇄적 파급 효과는 적잖을 것이다. 새 총리가 어떤 본색을 드러내느냐에 유럽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이정은 논설위원, 동아일보(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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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어린 키케로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빈첸초 포파, 책 읽는 어린 키케로, 1464년경, 프레스코, 101×144㎝, 런던 월리스 컬렉션 소장.
아무리 봐도 미취학 아동인데 편안한 얼굴로 책에 빠져들어 있으니 보통 인물은 아닌 게 틀림없다. 그는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뛰어난 웅변가로서 어린 시절부터 수재로 이름을 날렸던 키케로다. 이 그림은 현재 미술관에 있지만 원래는 1459년경 완성된 메디치 은행의 밀라노 본사 건물 중정(中庭)을 장식하던 벽화였다. 1455년 당시 밀라노 군주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메디치 은행에 기존 건물을 기부했고, 피렌체의 코지모 데 메디치는 이를 위대한 밀라노의 국격에 맞는 건물로 개축하라고 명했다.
벽화를 맡은 화가 빈첸초 포파(Vincenzo Foppa·1427~1515)는 나중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밀라노로 이주하기 전까지 이 지역 최고의 화가였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치면서 원근법이 어색한 애매한 공간이 되기는 했지만, 키케로의 얼굴로 자연스레 시선을 모으는 풍경의 안정된 구성, 어리지만 기품 있는 키케로의 자세 등은 대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메디치 은행의 밀라노 진출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스포르차가 등극하기 전까지 밀라노 공국을 창립해 북부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비스콘티가(家)는 피사, 볼로냐, 시에나 등 중부 이탈리아를 차례로 점령하며 피렌체를 포위하고 위협하던 주적이었다. 그러다 코지모 데 메디치가 비스콘티가의 사위로서 권좌에 오르려는 스포르차를 지원했고 마침내 그가 공작이 되면서 밀라노와 피렌체의 오랜 적대 관계는 막을 내렸던 것. 그러니 키케로가 괜히 여기서 책을 읽는 게 아니다. 그는 정의로운 법의 지배 아래 모든 국민이 평화와 안전을 누리는 이상적 공화국을 주장했다. 최소한 피렌체-밀라노 동맹이 유지되던 기간 동안 이탈리아는 평화로웠고 메디치 은행은 번영을 누렸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조선일보(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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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가장 화려한 궁전에 펼친 회색빛 폐허
[영감 한 스푼]
인간의 불완전함 고찰한 안젤른 키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관문과도 같은 산마르코 광장에 가면 1340년 지어져 베네치아 총독 관저로 쓰였던 두칼레 궁전이 있습니다. 여행자의 도시 베네치아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유명한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건넜다는 ‘탄식의 다리’가 여기에 있죠. 가장 베네치아다운 건축물이라고 불리는 이 궁전에는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세 같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거장들의 작품이 있습니다. 이곳에 처음으로 현대미술가가 대규모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 미술가 안젤름 키퍼(77)입니다. 키퍼는 이 궁전에서 두 번째로 큰 ‘스크루티니오의 방’에 무엇을 펼쳐 보였을까요?

이탈리아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에서 두 번째로 큰 ‘스크루티니오의 방’을 가득 채운 독일 작가 안젤름 키퍼의 대형 회화 작품. 베네치아에서 가장 화려한 공간에 쓸쓸한 폐허가 열린 듯하다. 키퍼는 이 작품들에 베네치아 철학자 안드레아 에모를 인용해 ‘이 글들은 불에 탄 다음에야 빛을 발할 것이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베네치아시립미술관재단·가고시안 제공
가장 화려한 곳에 가장 덧없는 것을
키퍼는 화려한 금박 장식 천장화로 가득한 스크루티니오의 방 네 벽을 엄청나게 큰 회화로 뒤덮었습니다. 그림들은 불에 그슬린 듯 어두운 톤이 주를 이룹니다. 그 속에는 사람은 없이 텅 빈 옷, 자전거, 마차가 유령처럼 허공을 떠다닙니다. 공허함을 극대화하는 것은 회색 덩굴에 둘러싸인 관입니다. 힘없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빛바랜 금속 관에는 납으로 만든 해바라기가 놓여 있습니다.

베네치아 수호성인 산마르코의 유해를 텅 빈 관 속에 놓인 해바라기로 표현한 작품 일부. 해바라기는 안젤름 키퍼가 즐겨 쓰는 재료인 납으로 만들었다. 베네치아시립미술관재단·가고시안 제공
키퍼는 베네치아의 가장 화려한 공간에 이처럼 쓸쓸한 폐허를 열어 보이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키퍼는 이번 작품이 철학자 안드레아 에모(1901∼1983)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에모는 베네치아 출신 철학자이지만 살아있을 때 단 한 편의 글도 발표하지 않고 무명이었다가 뒤늦게 발견된 인물입니다. 그의 철학은 ‘존재와 무(無)는 원인과 결과가 아니라 동시에 성립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누군가가 태어나 죽는 것은 과정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 자체가 죽음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스크루티니오의 방의 번쩍이는 천장화 옆에 거대한 폐허를 펼쳐 놓음으로써 키퍼는 화려함과 공허함, 그 둘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이 추측은 작품 제목 ‘이 글들은 불에 탄 다음에야 빛을 발할 것이다’로도 입증됩니다. 에모가 자신의 글에 대해 말한 것을 그림에 적용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나치즘 없나?’ 도발하다
키퍼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이기에 베네치아 대표 공간에 이런 과감한 연출을 허락받았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키퍼가 존재감을 알린 계기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키퍼가 나고 자란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의 굴욕감과 죄책감이 여전했고, 특히 나치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됐습니다. 이때 24세 예술가 키퍼가 ‘점령’이라는 제목의 도발적 사진집을 발표합니다. 그는 나치가 점령했던 유럽 곳곳에서 한 팔을 뻗어 앞으로 내미는 나치식(式) 경례를 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분노한 독일 사회는 키퍼가 나치를 옹호한다는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사진 속 나치식 경례는 우스꽝스럽습니다. 키퍼는 건물에서 떨어질 듯, 파도에 휩쓸릴 듯 위태롭습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묻어버리지 말고 정면으로 꺼내 이야기해야 한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실패’ 원인은 복잡한 인간 본성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었죠. 이 같은 작품은 오히려 유대인 컬렉터들의 눈에 띄면서 키퍼는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불완전함을 인정해야 나아갈 수 있다
베네치아에 열어 보인 폐허와 나치식 경례로 독일 사회에 던진 도발을 보면 키퍼의 예술 세계는 ‘인간이란 얼마나 불완전한가’라는 질문을 건네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린 시절 종교(가톨릭)의 깊은 영향으로 한때 교황이 되기를 꿈꿨다는 키퍼는 스스로도 완벽에 집착했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이해하려 종교와 법을 공부하며 모든 것은 인간이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도구임을 깨닫게 됐다고 합니다.
서울 리움미술관에서도 키퍼의 작품 ‘고래자리’를 볼 수 있습니다. 밤하늘에 펼쳐진 별자리를 땅 위에 있는 해바라기 씨로 표현했습니다. 흩뿌려진 별 가운데 과학자들이 붙인 행성 이름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인간이 새로운 믿음 체계로 삼는 과학 역시 불완전함을 보여줍니다. 키퍼는 인터뷰에서 우주를 언급하며 이런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우주에는 수십억 개 은하가 있고, 그 은하 속에는 수십억 개 별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에 당신이 서 있고요. … 그 속 우리는 얼마나 작은가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 에모는 모든 것의 무의미함을 알았고, 단지 불에 탈 때 약간의 빛을 낸다는 것을 알았죠.”
키퍼는 모든 것이 의미 없다고 말하는 비관주의자일까요? 그는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아니다”라며 “폐허는 종말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낙관도 비관도 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현대미술은 개념 비틀기에서 나아가 삶에 관한 통찰과 문학적 차원으로 깊어지고 있습니다.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색을 키퍼의 작품으로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김민 국제부 기자, 동아일보(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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