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世界-人文地理]

[죽은 여왕이 가르쳐준 것] [‘불변의 존재’ 여왕을 배웅하며] ....

뚝섬 2022. 9. 23. 07:59

[죽은 여왕이 가르쳐준 것]

[‘불변의 존재’ 여왕을 배웅하며]

[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公의 숨겨진 비밀]

 

 

 

죽은 여왕이 가르쳐준 것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이 엄수된 19일(현지 시각) 여왕의 관이 해군 장병들이 이끄는 포차에 실려 런던 버킹엄궁 인근 거리를 지나고 있다. 영국 국교(國敎) 성공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여왕은 1953년 대관식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맹세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영국 언론 매체들은 전 세계 약 40억명이 이날 여왕의 장례식을 지켜본 것으로 추정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생전에 다시는 못 볼 대단한 규모의 장례식을 TV로 지켜보며, 여왕은 죽어서도 열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전대미문의 애도 행렬을 통해 영국을 하나로 통합하고, 전 세계 200여 나라 지도자들을 런던으로 불러모았다. 40억 명이 시청한 장례 미사에서 캔터베리 대주교는 여왕을 ‘살아서는 봉사, 죽어서는 희망(Service in life, Hope in death)’의 상징으로 칭송했다. 누구보다 많은 이의 사랑과 작별 인사를 받고 영면한 엘리자베스 2세는 비록 먼 나라 여왕이지만 과거 영국과 오늘날의 세계를 어떤 세계사 교과서보다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영국인이 그렇게 줄서기 달인인 줄 이전에는 몰랐다. 7.5㎞까지 늘어선 줄은 시간당 0.5마일 속도로 천천히 움직이고, 줄 선 사람에게 목을 축일 수 있는 급수대와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물론, 가져올 것과 가져오면 안 되는 물건의 목록도 사전에 공지되었다고 한다. 런던으로 모여든 사람은 줄잡아 75만명 정도. 직장인은 휴가를 내고, 학생들은 결석계를 내고 그 줄에 합류했다. 그들은 영국인의 특기인 ‘잡담(small talk)’을 하며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보낼 줄도 안다. 기온이 떨어져도 불평하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조지 오웰은 일찍이 이런 영국인의 성향을 ‘줄서기 참을성(queue-tolerant)’이라고 불렀다.

 

9월의 런던이 그렇게 쾌청하고, 단풍이 들락 말락 한 공원과 가로수가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도 알게 되었다. 호두까기 인형에서 본듯한 장난감 병정 같은 말쑥한 병사들이 유니언 잭으로 장식된 거리를 배경으로 장중한 음악과 플롯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장엄한 장례 행렬을 완성했다. 이를 본 CNN의 아만포어 기자는 “ 국민이 배우로 출연한 편의 영화를 보는 같다”고 표현했다. 여왕의 장례식은 1960년대 초에 이미 모든 계획이 수립되었고, 매년 두세 차례씩 실제 점검을 했다고 한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 여왕의 장례식도 수십년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

 

유럽의 여러 왕조가 쇠락을 거듭할 영국의 왕실은 건재했던 비결도 짐작할 있었다. 영국의 입헌군주는 자신의 존재 기반이 ‘국민의 사랑’임을 알고 일찍부터 그들과 소통하며 근대화와 민주주의에 적응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미디어를 매우 적절하고 탁월하게 이용했다. 1969년에 왕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해 국민에게 친숙하게 다가갔고,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메시지로 국민에게 용기를 주었다. 이번 장례식 역시 왕실 최초로 생중계를 결정해 전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왕실의 위엄을 과시했다.

 

몇십년도 안 되는 현대사를 두고도 국민적 합의가 어려운 우리에 비해 이번 장례식이 보여준 국가의 영속성과 안정감은 경이에 가깝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하고, 결혼하고, 장례식을 치른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역사를 700년 동안 지켜본 곳이다. 57년 전 처칠 수상 서거 후 처음 열리는 이번 국장은 국가의 정점이 무엇이며 수호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웅변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두 손주며느리는 여왕이 물려준 귀고리를 착용했고, 증손녀 샬럿 공주도 증조할머니에게 받은 다이아몬드 브로치를 가슴에 달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장에서 성가대는 그동안 왕실의 대관식과 결혼식 때 부른 노래의 악보를 다시 꺼내 목청껏 부른다.

 

아무리 여왕이라도 이렇게 세계가 애도하는 것은 여왕이 뭔가 잘했기 때문이다. 역사 평론가들은 이유를 여왕이 정치보다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정치적으로 어느 한편에 서지 않고, 영국의 정신적 지주로 봉사하는 데 중심을 두었기에 전 세계 나라들이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적통은 과거에서 나온다 믿음으로 입헌군주의 힘과 위엄을 정치가 아닌 국격에 쏟은 결과다. 역사가 켜켜이 쌓인 장례식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치 죽은 자와 산 자가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흰 건반처럼 서로 어우러져 연주하는 웅장한 교향악을 듣는 느낌이었다.

 

죽은 자와 자를 극명하게 대비시킨 명연설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빼놓을 없다. 남북전쟁 당시 전몰 용사가 묻힌 게티즈버그 묘지에서 링컨은 전사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살아있는 사람들은 자유의 씨앗을 소중하게 키워나갈 것을, 그리고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국가의 영속성이란 이렇게 죽은 자의 희생 위에 자의 헌신이 보태져야 가능한 것이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과거에 집착하는지 있다. 그들은 나라를 세우거나 부수는데 죽은 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없던 사실도 만들어내고, 있던 사실도 부정한다. 역사 교과서를 맘대로 기술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 과거가 불리하면 왜곡하고, 과거가 이득이 된다면 부모도 바꿔치기할 사람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의 효용가치를 아는 그들이니 문화전선에서 빼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실론자들은 이미 흘러간 과거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지 모른다. 오히려 미래가 더 중요하지 않으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죽은 위인을 산 자들이 부활시키지 않는 한 국가의 영속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비루한 산 자들만 우글거리고, 그들끼리 싸우고 헐뜯는 모습에 신물이 난 참에, 먼 땅에서 거행된 오랜 왕실의 장례식은 이런 역사의 지혜를 한 가닥 전해주는 것 같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조선일보(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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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의 존재’ 여왕을 배웅하며

 

[폴 카버 한국 블로그]

 

한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마도 수백 명의 한국 분을 만났던 것 같다. 내가 영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중 많은 분들은 친절하게 영국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해 주신다. 그 질문들은 대부분 다음의 내용 중 하나이다. 날씨, 음식, 축구, 혹은 영국 왕실에 관해서이다. 최근에 ‘더 크라운(The Crown)’이라는 영국 드라마를 통해 특히 영국 왕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도 같다. 아마도 한국의 조선왕조를 경험하신 산증인들이 거의 살아 계시지 않아서 한국 분들은 영국에 아직도 왕실이 존재한다는 것에 다소 놀라움과 비슷한 종류의 관심을 갖고 계시는 것 같기도 하다.

시의적절한 때에, 나도 이번 칼럼에서는 평범한 영국 시민으로서 영국 여왕이 내 인생에서 알게 모르게 끼친 영향에 대해 한번 써보고자 한다. 그러나 운을 떼기에 앞서, 여기서 읽으실 내용은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에 근거한 글이며, 따라서 이 글을 영국 여왕이나 영국 왕실에 대한 모든 영국인을 대변하는 견해로 생각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정말 아이러니한 말일 수 있겠지만 영국 여왕은 영국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여왕의 얼굴은 모든 영국의 지폐, 동전 그리고 우표의 디자인이 되었고, 여왕의 봉인은 모든 우체통에 장식이 되어 있었다. 왕실에 물건이나 서비스를 납품하는 업체는 여왕의 봉인을 자신들의 상품에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데, 만약 영국의 대형마트에 가실 기회가 되시면 상품의 포장을 유심히 보시라. 아마도 여왕의 봉인이 찍혀 있는 물건들을 간혹 보실 수 있을 텐데 이는 마치 어느 유명인사가 허락한 상품 홍보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된다. 또한 영국은 여왕의 생일이 공휴일로 지정되고 여왕의 대관식을 기려 10년에 한 번 정도 또 한 번의 특별 공휴일이 지정된다.

 

이런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여왕이 영국 개개인들의 삶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영국 시민들은 영국 여왕의 ‘백성’으로서의 통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영국 시민들은 일생에 여왕을 직접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물론 아주 먼 발치였긴 하지만 여왕을 직접 본 적이 있긴 하다. 여왕이 1999년 이화여대에 방문했을 때 나도 그 큰 무리에 끼어 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영국 왕실에 그렇게 관심이 있지 않던 나조차도 한국에 살던 영국인으로서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옆 동네 학교에 가서 여왕을 기다렸다.

무엇보다 여왕은 영국의 국민 할머니 같은 존재로 기억되는 것 같다. 그녀가 여왕으로 즉위한 이후 영국도 지난 70년간 역사적으로 이런저런 격변을 겪는 동안 여왕으로서든 국민 할머니로서든 변함없는 모습으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단 하나의 불변적 존재다. 모든 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영국 여왕은 연속성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많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 말은 영국 여왕이 모든 영국인에게 지지와 인기를 받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특히 이런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왕실에 의한 지배구조가 얼토당토않다고 믿는 많은 분들이 있다. 게다가 왕실에 국한된 몇몇의 특권계층을 위해 국민의 피와 땀이 담긴 세금을 낭비하는 것을 혐오하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죽은 여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2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15km나 되는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많은 영국인들을 보면 아직도 여왕을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내가 만약 지금 영국에 있었더라도 그 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의 인내심은 없었을 테지만, 그의 죽음은 약 15년 전 영국을 떠나온 나에게조차도 확실히 커다란 변화다. 동시에 영국이란 나라 자체에도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임이 분명할 것이다.

영국 여왕의 죽음을 머나먼 이국에서 접하면서 그를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지극히 평범한 한 영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여러 혼란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 감정은 여왕의 장례식을 시청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동아일보(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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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

 

Sex Pistols ‘God Save the Queen’(1977)

 

Sex Pistols ‘God Save the Queen’ (1977)

 

본명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공식 호칭은 ‘영국 연방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가 70년 재위 끝에 눈을 감았다. 20세기 이후의 전 세계 군주 중에서 70년 왕좌를 지킨 국왕은 타이의 푸미폰 국왕과 함께 유이하다. 검증 가능한 역사 기록이 남아 있는 왕 중에선 태양왕 루이 14세의 72년 재위를 첫손에 꼽는다. 기나긴 왕조의 역사를 지닌 중국의 역대 중에서도 60년을 간신히 넘긴 왕은 고작 2명이며 우리 역사에서는 조선 최장수 왕인 영조의 52 재임 기록이 있다.(고구려 장수왕의 79 재위 기록이 역대 최강이다.)

 

여성 왕족 가운데 평민들과 동등한 훈련을 받으며 군 복무를 한 여왕은 엘리자베스 2세가 유일하다. 2차 세계 대전 중 스무 살이 된 당시 공주는 아버지 조지 6세를 설득, 여성 국방군에 입대한다. 전쟁 중의 그의 군번은 230873. 수송보급 장교로 복무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여 영국민들의 무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70년은 그 자신에게나 그의 조국에나 모두 영욕의 70년이었다. 64년을 재위하며 대영 제국의 영광을 맘껏 누린 그의 고조모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제국은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왕은 어떤 위기 국면에서도 강건하게 중심을 잡고 신중한 균형을 고도로 행사하면서 왕실의 권위를 지키는 동시에 영국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제국의 추락까지 막을 수 있는 권능이 그에겐 없었고 즉위 25주년을 한해 앞두고 제임스 켈러헌 노동당 내각은 굴욕적인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당시 실업률이 20%를 기록하면서 영국 젊은이들은 절망과 분노에 빠졌고 공화주의자들은 공공연히 입헌군주제의 폐지를 이슈화하기 시작했다.

 

펑크록의 신화적인 밴드 섹스 피스톨스가 자신들의 국가(國歌)를 패러디하며 신성불가침이었던 여왕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싱글을 발표한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신은 여왕을 수호하신다/그녀는 인간도 아니야/영국의 꿈 안에서는 미래도 없다.(God save the queen/She ain’t no human being/There is no future/in England’s dream.)”

 

근엄한 여왕은 이 예술적 부랑아들의 노래를 들었을까?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열세 시간이나 줄을 서면서 여왕의 마지막 길에 조문했다는 소식이 막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강헌 음악평론가, 조선일보(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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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公의 숨겨진 비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公)이 입원했다(be admitted to a hospital). 오는 6월 100세가 되는 그는 1947년 결혼해 엘리자베스가 1952년 왕위에 오른(ascend the throne) 이후 69년째 여왕의 남자로 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strictly speaking) 그는 영국 국민(British national)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영국 신사(quintessential English gentleman)로 알려져 있지만, 뿌리는 그리스다. 1921년 코르푸 섬에서 그리스 왕의 조카(nephew of the Greek king)로 태어났다.

 

험난한 어린 시절(turbulent childhood)을 보냈다. 그리스 왕족이 축출되면서(be ousted) 과일 상자에 담겨(be lodged in a fruit crate) 도망쳐야 했다.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live in exile) 동안 아버지는 가족을 버렸고, 누나들은 결혼을 해 집을 떠났다.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정신병을 앓다가(suffer from mental illness) 정신병원에 입원했다(enter a psychiatric hospital).

 

누나들이 결혼한 배우자들은 독일 나치 당원들이었다. 누나 세실이 남편과 함께 1937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을(die in a plane crash) 때는 독일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나치 병사들과 함께 행진을 해야(walk in the procession) 했다. 이후 필립은 제2차 세계대전에 영국 해군 장교로 참전했고, 1947년 결혼식에 누나들 가족은 한 명도 초대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조지 6세는 결혼을 극구 반대했다(disapprove of their marriage). 그리스 출신이어서 여론(public opinion)도 염려됐고, 점잖은 자신에 비해 큰 소리로 웃어대며 나대고(act out with his boisterous laugh) 직설적이고 요란스러운(be blunt and brash) 태도도 못마땅했다. 가난한 망명자 신분에 나치 인척을 가진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딸 이기는 아버지 없다고 했던가. 13세 때 처음 필립을 만나 점차 연정을 품게 된(have a crush on him) 공주의 고집이 결국엔 아버지를 무너뜨렸다(eventually win over her father).

 

여왕의 남자인 필립공에게는 한 맺히는(have deep resentment) 것이 있다. 자식이 그의 성(姓)을 따르지(take his last name) 못한다는 것이다. 왕실 가문의 성을 이어받게 돼있다. 그래서 그는 “이 나라에서 자식들에게 자기의 성을 물려주지 못하는 남자는 내가 유일할 것”이라고 신세를 한탄하곤 한다(lament his misfortune).

 

억눌린 게 많아서일까. 때때로 빈정대는 말(sarcastic remark)을 하거나 실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be well-known for putting his foot in his mouth). “남자가 아내를 위해 차 문을 열어준다면(open a car door for his wife), 그건 차가 새것이거나 새 아내인 경우다.” “내가 환생할(be reincarnated) 수 있다면, 인구 과잉 해결에 기여할 수 있도록(in order to contribute something to solve overpopulation) 치명적인 바이러스(deadly virus)로 태어나고 싶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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