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史-文化]

[미묘한 표정 78호, 미소 또렷한 83호.. '부처님의 미덕'] ....

뚝섬 2025. 8. 31. 05:50

[미묘한 표정 78호, 미소 또렷한 83호... 반가사유상은 '부처님의 미덕']

[‘사유의 방’에서 생각했다]

[삼국시대 걸작 '반가사유상']

[일 반가사유상]

 

 

 

미묘한 표정 78호, 미소 또렷한 83호... 반가사유상은 '부처님의 미덕' 

 

국보 반가사유상(옛 지정 번호 78호). 화려하게 차려입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근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시실로 꼽히는 ‘사유의 방’은 2021년 11월 개관한 이래 현재 누적 관람객 수가 230만명을 넘었다. 주목을 많이 받는 만큼 전시품 관리, 민원 대응 등 고민하고 신경 쓸 일이 많아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사유의 방이 아니라 ‘고뇌의 방’이라고 얘기할 때도 있다. 그러나 사유의 방에 관심을 갖고 찾아주는 관람객을 볼 때면 박물관 일원으로 뿌듯하고 흐뭇하다.

 

사유의 방의 주인공은 두 국보 반가사유상이다. ‘반가사유상’이라는 명칭은 20세기 전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불상의 독특한 자세를 묘사한다. ‘반가’는 한쪽 다리를 내리고 다른 쪽 다리를 올린 자세다. ‘사유’는 생각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으로, 머리를 약간 숙이고 한쪽 손을 올려 뺨이나 턱을 받치고 있는 자세로 표현된다. 이러한 모습의 불상은 인도 문화권에서 처음 나타났으며 동아시아 6~7세기에 독립 예배상으로 크게 유행했다. 두 반가사유상은 청동으로 주조하고 그 위에 금을 입힌 예로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조형적으로도 탁월하다. 등신대보다는 약간 작은 크기로, 옛 지정 번호로 78호로 불리는 상은 높이가 81.5㎝, 83호로 불리는 상은 높이가 90.8㎝다. 제작 시기는 78호가 6세기 후반, 83호가 7세기 전반이다.

 

78호는 복장과 장신구가 화려하며 신체·옷자락은 평면적으로 처리한 부분이 많다. 83호는 복장과 장신구가 간결하고 신체·옷자락·의자 등이 실감 나게 표현돼 있다. 이러한 외형의 차이가 단순한 시기적 차이 때문인지, 동일한 형식의 변주인지, 아니면 표현하고자 한 대상의 차이인지는 아직 분명하게 결론 내리기 어렵다. 

반가사유상 78호 뮷즈. /반가사유상 83호 뮷즈(박물관 굿즈). /국립박물관문화재단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78호 반가사유상에 대해 이런 글을 썼다. “슬픈 얼굴인가 보면 그리 슬픈 것 같지 않고, 미소 짓고 있는가 하면 준엄한 기운이 누르고 있어서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을 뼈저리게 해 주는 것이 이 부처님의 미덕이다.” 미묘한 표정의 78호와 비교하면 83호는 한층 또렷한 미소를 짓고 있다. 요새 유행하는 MBTI로 하면 83호는 외향이고, 78호는 내향이랄까. 78호는 세속의 무게를 느끼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라면, 83호는 삶의 진리를 좀 더 분명히 알게 된 모습 같다.

 

이들 반가사유상을 대략 6분의 1 크기로 재현한 미니어처도 인기가 많아 현재까지 4만여 점이 판매됐다. 판매량은 83호가 78호보다 많아 그 비율이 8대2 정도라고 한다. 83호만 봐도 좋지만, 78호와 함께 볼 때 또 다른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특별한 경험을 위해 사유의 방을 방문해보시길 제안해 본다.

 

-김혜원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 조선일보(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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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방’에서 생각했다 

 

'사유의 방'에 나란히 앉은 두 국보 금동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국박)에 있는 ‘사유의 방’ 누적 관람객이 최근 53만명을 돌파했다. 사유의 방에는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으니 1년 사이에 우리 국민 100명 중 1명이 다녀간 셈이다. 53만명이라는 숫자는 평소 박물관과 담쌓고 지낸 사람들까지 잡아당겼다는 뜻이다. 무료 상설전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2006~2007년 ‘루브르박물관전’을 뛰어넘은 국박 최고 흥행 기록이다.

 

어떤 시기에 어느 예술 작품이 새로 인기를 얻었는지 살펴보면 그 시대의 특수한 불균형을 이해할 수 있다. 영화든 소설이든 미술이든 대형 베스트셀러는 이 사회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2014~2015년 미술 시장에서 한국 단색화(單色畵)의 몸값이 갑자기 치솟을 때 컬렉터들은 “싸우지 않는 그림이라는 게 매력”이라며 “벽에 걸었을 때 다른 그림과 충돌하지 않고 동양의 여백과 너그러움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당대의 결핍이자 요구였던 것이다.

 

사유의 방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반가사유상들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번갈아 전시하는 바람에 한 점은 늘 수장고에 있었을 뿐이다. 국박은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하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면서 처음으로 건축가, 미디어 아티스트와 함께 그 상설 공간을 소극장처럼 디자인했다. 입구에는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고 적었다. 그러자 반가사유상들이 마치 특별한 경험처럼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예술품을 재발견한 셈이다.

 

'사유의 방' 입구에 적힌 문구

 

사유의 방은 국박 전시실 중 유일하게 경사(1도)가 있는 공간이다. 시야의 소실점에 반가사유상이 자리 잡고 있다. 관람객들은 극적인 오르막을 느끼며 두 주인공에게 다가가고 사진을 찍는다. 반가사유상들은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가볍게 얹고 오른손을 살짝 뺨에 기댄 채,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단순한 호기심부터 근심이나 불안, 또는 희망을 끌어안고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이 반가사유상 주변에 둥글게 모여 눈과 귀를 활짝 연다. K팝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다.

수녀들도 다녀갈 만큼, 반가사유상은 종교를 초월한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감상들을 보면 “1400년을 견딘 반가사유상의 온화한 미소를 보고 위안을 받았고 평온을 찾았다”는 후기가 많다. 언짢은 일을 겪고 사유의 방에 갔는데 ‘두 분’을 뵙고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는 글도 읽었다. 관람객들은 반가사유상에 이렇게 인격을 부여한다. 큰 수술을 마친 아내와 함께 보고 왔다는 관람객은 “아내가 좋아해 오래 머물렀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사람도 하나하나가 보물”이라고 썼다.

 

한국은 경제적 풍요를 이뤘지만 정신적으로는 건강하지 않다. 굶주려서 자살하는 사람은 없다. 세상은 사람을 연봉과 직업, 즉 ‘명함’으로 평가하고 다수를 루저(패배자)로 만든다. 그런데 사유의 방은 행복의 실마리를 건넨다. 반가사유상이 머금은 천년의 미소는 오늘 당신이 겪는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다. 괜찮다 위로하는 같다. 관람객과 공명을 일으키고 삶에 쓸모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명작이다.

 

보고 또 봐도 물리지 않는다. 불멍, 물멍보다 나은 게 ‘반가사유상멍’이라는 말도 들린다. 사유의 방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인기가 많아 늘 붐빈다는 점이다. 국민 100명 중 99명은 아직 두 반가사유상을 만나지 못했다. 요령을 전한다면 평일 오전이나 야간 개장(수요일과 토요일)을 이용하는 게 좋다. 몇 번 경험해 보니 수요일 밤이 한산하다. 운이 좋을 경우 그 국보들을 독대하며 천천히 음미할 수도 있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수요일 밤의 사치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2층에 있는 사유의 방 /박돈규 기자

 

-박돈규 기자, 조선일보(2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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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걸작 '반가사유상' 

 

지난 12일부터 삼국시대 유물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의 한 공간에 나란히 전시되고 있어요. 지금까지 두 불상이 함께 전시된 경우는 단 두 번뿐이고, 워낙 귀중한 보물이라 하나씩 번갈아 전시됐었는데,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거예요.

'반가사유상'은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걸치고[반가·半跏], 깊은 생각[사유·思惟]에 잠긴 모습을 한 불상을 말해요. 금동으로 만든 반가사유상은 70점 정도가 남아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번에 나란히 전시된 국보 78호와 83호는 최고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두 불상의 신비롭고 오묘한 미소는 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안을 받는 기분이 들어요. 둘은 얼핏 보면 닮았지만 다른 점도 많답니다.

화려함과 단순한 아름다움

국보 78호는 높이 83.2㎝, 무게 37.6㎏으로 6세기 후반에 제작됐어요. 머리 위에 있는 화려한 보관(寶冠)이 큰 특징이에요. '보관'은 보석으로 꾸민 관이에요. 태양과 초승달이 결합한 이런 모양을 '일월식(日月飾)'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3~7세기 페르시아를 지배한 사산조시대 왕관에서 유래했어요.

약간 각진 얼굴의 부처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어요. 눈은 가늘게 뜨고 코는 오뚝하게 솟았으며 살며시 다문 입에는 엷은 미소를 띠고 있지요. 양쪽 팔에 흘러내린 천의(天衣) 자락, 허리띠의 율동적인 흐름 등은 세련된 조각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천의'는 선녀나 천인(天人)이 입는 옷을 말해요.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높이 93.5㎝, 무게 112.2㎏으로 7세기 전반에 제작됐어요. 무게가 78호의 약 3배에 이를 정도로 무겁죠. 머리엔 반원 세 개를 이어 붙인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있는데, 화려한 78호의 보관과 달리 매우 단순합니다.

83호 부처는 78호와 달리 상반신에는 옷을 전혀 걸치지 않고 목걸이만 하고 있어요. 통통한 볼살에 어린아이의 천진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요. 단순하지만 균형 잡힌 신체,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표현된 옷 주름 등이 78호보다 간결하고 우아한 인상을 줘 한 차원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답니다.

어디서 제작됐을까

두 불상은 안타깝게도 모두 '출토지 불명'이에요. 78호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인에게 4000원을 주고 사서 총독부박물관에 기증했어요. 당시 국보급 고려청자 한 점이 100원 하던 시절이니 엄청난 거금을 들인 거죠. 처음엔 신라에서 불교가 가장 먼저 전래된 경북 영주나 안동 일대 사찰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돼 신라에서 만든 것으로 여겨졌어요. 하지만 이후 78호의 옷자락 표현 양식이 6세기 고구려 불상에서 유행한 양식이라며 고구려 제작설이 제기됐고, 최근엔 머리 보관 형식이나 장신구가 백제 불상에서 보인다며 백제 제작설도 나옵니다.

83호는 1912년 순종이 서울의 고미술상에게 2600원을 주고 구입했는데, 역시 출토지는 확인이 안 됐어요. 하지만 삼산관을 쓴 불상이 경주 지역에서 종종 발견됐기 때문에 신라 제작설이 우세해요.

과학기술로 1400년 만에 밝혀낸 비밀

지난 2015년 국립중앙박물관은 비파괴 성분 분석, 감마선 필름 등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해 두 불상을 자세히 들여다봤어요. 그랬더니, 78호의 뒷면 양 어깨 사이 중앙에 20cm 넓이 구멍이 있고, 이를 얇은 동판으로 덧댄 흔적을 발견했어요.

왜 동판을 덧댔을까요? 두 반가사유상은 '밀랍주조법'으로 만들었어요. 먼저 쇠틀을 만들어 점토로 부처 형상을 빚은 다음 그 위에 밀랍을 발라 조각해요. 그 위에 또 점토를 바른 다음 열을 가해 안쪽 밀랍을 녹이죠. 그리고 밀랍이 녹은 공간에 청동 쇳물을 부어 조각상을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78호는 밀랍 두께가 4㎜ 정도로 얇아서 녹인 다음 빈 공간이 좁아 청동 쇳물을 부었을 때 제대로 흘러들어 가지 않은 부분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그 부분에 추가로 쇳물을 부어 수리한 거죠. 그런데 얼마나 감쪽같이 수리했는지 그동안 맨눈으로는 알 수 없었어요.

83호 불상은 이런 78호 제작 당시 어려움을 잘 알고 제작된 듯해요. 몸체 두께가 평균 10㎜ 정도로, 78호보다 훨씬 두꺼워요. 밀랍을 그만큼 두껍게 발라서 나중에 밀랍을 녹인 다음 빈 공간에 많은 양의 청동 쇳물을 주입한 것이지요. 그 결과 83호는 78호보다 훨씬 무거워졌어요.

두 불상은 무슨 생각 할까

대체 두 불상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불상 모델이 누군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보통 중국에선 반가사유상 모델을 불교를 창시한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생각해요. 만약 그렇다면 이 불상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해 고민하며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걸 거예요. 우리나라에선 반가사유상을 미륵(彌勒)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아요. 미륵은 석가모니에 이어 미래에 부처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보살이에요반가사유상이 미륵이라면 나중에 부처가 되어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 중생들을 구제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요.

하지만 불상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거예요. 싯다르타든 미륵이든, 사물의 본질과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요? 바쁘게 쫓기는 일상에서 벗어나 두 반가사유상을 감상하면서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랍니다.

 

[일본 '목조반가사유상']

일본에는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과 쌍둥이처럼 닮은 불상이 있어요. 바로 교토 고류지(廣隆寺)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이에요. 지금은 일본이 국보에 번호를 매기지 않지만 한때 국보 1호였어요. 일본 목조상은 보통 녹나무로 만들지만, 이 반가상은 한반도에만 나는 적송(赤松)으로 만들어졌고, 623년 신라에서 가져온 불상을 고류지에 모셨다는 기록과 이 절을 지은 사람이 신라에서 건너간 진하승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83호와 함께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받아들여져요.

 

-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기획·구성=김연주 기자, 조선일보(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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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반가사유상

 

일본 사람들은 그 불상을 "절대(絶對) 비불(秘佛)"이라고 부른다. 나가노현 젠코지(善光寺)에 있는 40㎝ 조금 넘는 삼존불(三尊佛)이다. 6세기 백제가 일본에 불교를 전할 때 신앙의 상징으로 함께 보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사찰은 6년에 단 한 번 불상을 공개한다. '불상을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믿음 때문에 사람들이 천리 길을 달려온다. 하지만 그들이 만질 수 있는 것은 법당 내 불상을 기다란 실로 이은 마당의 나무 기둥뿐이다. 그래도 수많은 사람이 기둥을 붙잡고 웅얼웅얼 소원을 빈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일본 나라(奈良) 호류지(法隆寺)에 있는 백제관음상도 천년 넘게 보존됐다. 2m가 넘는 팔등신에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이어간 목공의 섬세한 솜씨에 '백제의 미(美)란 이런 것인가' 하는 찬탄이 절로 나온다. 일본은 이 불상을 "구다라칸논(百濟觀音)"이라고 부르면서도 '일본 미학의 정수'로 세계에 자랑한다. 같은 절 금당(金堂)의 삼존불 역시 일본이 자랑하는 국보다. 7세기 작품인데도 작가 이름을 불상 뒷면에 새겼다. '도리(止利)'. 한반도에서 온 장인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는 일본 고대사의 중심이었다. 고대 전반기인 아스카(飛鳥) 시대는 한반도 문명을 받아들여 극적으로 비약했다. 아스카 지역을 걸으면 우리 고대인의 예술혼이 가슴에 와 닿는다. 어떤 유적·유물은 경주나 부여보다 오히려 풍부하다. 동북아 깊숙한 끝에 있어 외세의 분탕질을 피한 덕분일 것이다. 비교적 잘 관리해 온 일본의 공헌도 부정할 수 없다.

 

▶어제 일본 나라의 주구지(中宮寺)가 소장한 반가사유상〈사진 왼쪽〉이 우리 반가사유상〈사진 오른쪽〉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됐다. 역시 아스카 시대 작품이다. 호류지 백제관음상처럼 목조(木造)임에도 천년을 버텼다. 그러다 바다를 건너와 자신의 원류(源流)를 마주했으니 목상(木像)에 깃든 부처님도 미소 짓지 않을까. 일본 문화재라고 하면 흔히 왜구의 노략질이나 일제의 수탈을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이번 전시가 더욱 신선하고 반갑다.

▶일본 고대는 아스카를 거쳐 나라·헤이안(平安) 시대로 이어진다. 나라에서 교토까지 역사 현장을 걸으면 한반도 문명의 흔적이 빠르게 엷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래문화를 소화해 빛나는 독자(獨自) 문화를 만들어가는 경로는 일본 고대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주구지 반가사유상은 일본이 그렇게 자립해 가는 문화사의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가 열린 마음으로 한·일 교류사(史)를 바라보는 긍정적 기회가 됐으면 한다.

 

-선우정, 조선일보(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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