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탕카멘]
[투탕카멘에서 슈퍼리치로, 이어지는 영생의 꿈]
[65m 위로 옮긴 신전]
투탕카멘
병약했던 소년 왕… 무덤서 10㎏짜리 황금 가면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장례용 황금 가면. 투탕카멘의 머리를 보호하려고 미라에 씌워져 있었어요. /위키피디아
올해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Pharaoh· 최고 통치자) 투탕카멘(재위 기원전 1333 ~기원전 1323년 추정)의 무덤이 발견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의 무덤은 도굴되지 않은 채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굴됐고, 그로 인해 무덤에서는 유물 수천 점이 발견됐는데요. 그래서 투탕카멘의 무덤을 두고 '20세기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사실 투탕카멘은 왕으로서 업적보다 무덤과 부장품 덕분에 이름이 알려졌는데요.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요?
9세에 즉위해 업적 없이 요절해
이집트 제18왕조(기원전 1570~기원전 1293년)의 12대 파라오인 투탕카멘은 생전에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던 지배자는 아니었어요. 재위 기간이 짧아 업적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죠. 그는 선왕인 아케나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9세에 즉위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오늘날에도 투탕카멘을 '소년 왕'이라고 부른답니다. 당시 대재상이었던 아이(Ay)와 장군 호렘헤브(Horemheb)가 투탕카멘의 고문 역할을 하며 이집트의 실권을 장악했죠.
투탕카멘은 이집트 왕실의 근친혼에서 비롯된 유전병으로 인해 병약했을 것이라고 추측돼요. 투탕카멘의 부인이었던 안케세나멘 역시 그와 이복 남매였는데, 이 때문인지 그의 두 딸도 사산됐거나 몸이 약해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두 딸의 시신도 투탕카멘과 함께 무덤에 묻혔다가 발굴됐죠.
결국 투탕카멘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19세 무렵에 사망했는데요. 정확한 사인은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의 무덤에서는 지팡이가 약 130개 발견됐는데요. 이로 미루어 봤을 때 투탕카멘은 생전에 관절이 좋지 않았고 거동이 불편했을 것으로 추측돼요. 과학자들은 그의 사인을 말라리아로 추측하기도 하는데, 투탕카멘의 미라에서 말라리아 기생충의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지요.
투탕카멘이 죽은 뒤에는 이집트 실권을 쥐고 있던 아이와 호렘헤브가 연달아 왕위에 오르는데요. 호렘헤브는 여러 기념물과 기록에서 투탕카멘의 이름을 지웠습니다. 투탕카멘의 무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데에 일조한 거예요.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발견
잠들어 있던 투탕카멘의 무덤은 영국 출신 하워드 카터(1874~1939)가 발견했습니다. 그는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고고학 기초 지식을 배운 다음 17세인 1891년 이집트로 향하는데요. 처음에는 이집트에서 벽화 등을 옮겨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다가 1902년 파라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에서 발굴 작업을 시작했어요.


왕가의 계곡은 이집트 나일강 중류 룩소르의 서쪽 교외에 있는 좁고 긴 골짜기인데요. 왕릉이 집중적으로 발견돼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됐답니다. 왕가의 계곡에 있는 파라오들의 묘는 눈에 잘 띄는 피라미드 형태가 아닌 바위나 산 속에 방을 만드는 형식의 '암굴 묘'였어요. 왕실의 부장품이 도굴되는 것을 방지하려 이렇게 만든 것으로 추측됩니다. 카터는 이곳에서 제18왕조의 2대 파라오인 아멘호테프 1세와 제18왕조의 8대 파라오인 투트모세 4세 등의 무덤을 발견하지요.
그러다 카터는 1922년 영국 부호인 카나번 경(卿)의 후원으로 투탕카멘의 묘지 입구를 찾아냅니다. 카터는 처음 투탕카멘의 무덤을 마주했던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온 사방이 황금빛으로 반짝였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이 무덤에서 카터는 엄청난 양의 제사용 도구와 장신구, 조각상, 가구 등을 발견했어요. 그의 발굴은 영국의 이집트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투탕카멘은 다른 신하를 위해 짓고 있던 무덤에 매장됐어요. 그래서 파라오의 무덤이지만 규모가 매우 작은 편이래요. 하지만 덕분에 오히려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죠. 왕가의 계곡에는 제18·19·20왕조의 거의 모든 왕이 묻혀 있는데요. 그중 투탕카멘 무덤을 제외한 나머지 무덤은 전부 도굴됐다고 합니다.
황금 가면과 운석으로 만든 단검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장례용으로 제작된 황금 가면입니다. 무덤의 보존을 위해 발굴 작업은 천천히 진행됐고, 1925년이 돼서야 3중으로 만들어진 투탕카멘의 관을 모두 열 수 있었는데요. 이때 황금 가면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무게는 약 10㎏이었고, 높이 약 54㎝, 너비 약 40㎝였어요.
이 가면은 투탕카멘의 머리를 보호하려 미라에 씌워져 있었는데요. 미라의 어깨를 덮은 깃 부분은 루비·흑요석 등 호화로운 재료로 꾸며져 있었어요. 이집트의 뛰어난 보석 세공 기술을 잘 보여줍니다.
투탕카멘 미라와 함께 매장됐던 단검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녹이 슬지 않은 상태로 발견돼 주목받았어요. 조사 결과, 이 단검은 철이 아닌 운석을 녹여 만든 것이었죠. 1960년대 이전까지 이집트는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을 이집트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는데요. 이후 해외에 전시용으로 대여해 주기 시작했답니다.
[투탕카멘의 저주]
현재는 거의 믿는 사람이 없지만, 파라오 무덤 발굴 작업이 한창이던 시절 한때 "파라오의 무덤에 침입한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진 적이 있어요. 투탕카멘 무덤이 발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굴 작업을 후원했던 카나번 경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56세로 사망하고, 카이로 곳곳에서 전기가 나가는 사태가 일어나자 떠돌기 시작한 이야기인데요. 이 외에도 발굴 팀원이나 무덤 가이드가 급사해 저주설을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카터는 이런 저주설에 화를 내며 "바보 같은 소리"라고 일축했죠.

(좌로 부터)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한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의 관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나무 상자. 투탕카멘의 이름 일부가 이집트 상형 문자로 새겨져 있다고 추정돼요. /위키피디아
윤서원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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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멘에서 슈퍼리치로, 이어지는 영생의 꿈
[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인류는 영생을 꿈꾸며 망자의 육신을 미라로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왼쪽 사진). 최근 엑스레이 촬영(오른쪽 사진) 결과 뒷머리에서 구멍이 발견돼 살해설이 불거졌으나 이는 미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로 알려졌다. 사진 출처 동아일보DB·위키피디아
《영생을 꿈꾸는 것은 부질없다지만 인류가 그 부질없는 꿈을 잊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리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그 꿈을 실제로 옮기려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생겼다. 대표적인 예가 이집트의 미라일 것이다. 사실 미라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한랭한 북극해에서부터 남아메리카의 잉카까지,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흔하게 발견된다. 하지만 이집트의 미라는 특별하다. 다른 미라들이 대부분 장례 과정이나 지리 환경에서 우연히 생겨난 것이지만, 이집트의 미라는 사람의 시신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한 바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집트인의 바람은 5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로장생의 꿈과 미라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을 보자.》
투탕카멘 살해설 진실은
미라의 원조라고 하면 우리는 아마포로 감싸고 온몸을 황금으로 치장한 이집트의 미라를 떠올린다. 사실 이집트는 굳이 미라를 만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신이 보존되는 자연환경이다. 실크로드의 타클라마칸 사막이나 이집트 같은 사막 지역은 그냥 밖에 두면 자연스럽게 건조된다. 여기에서 영생불사의 사상을 착안하고 무덤에 미라를 넣고자 했다. 하지만 막상 관 속에 들어가면 사막과 다른 조건이기 때문에 제대로 미라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뇌수와 내장을 꺼내고 소다에 담그는 등 여러 처리를 거치게 되었다. 그 결과 이집트 미라는 사실 뇌와 장기가 없고 피부와 뼈대만 남은 마치 박제와 같은 것이 되었다. 즉, 우리가 보는 화려한 황금 마스크를 씌운 이집트 미라는 자연적인 현상을 불로장생의 욕심과 연결시키려는 이집트인의 믿음과 깊게 결합된 산물이다.
이집트와 관련해 인기 있는 주제 중 하나는 투탕카멘 살해설이다. 실제 투탕카멘은 아버지인 아케나텐의 개혁이 실패한 후 사제들의 권력이 다시 득세할 때에 어린 나이에 등극한 힘없는 왕이었다. 게다가 18세라는 너무나 창창한 나이에 죽었으니 뒷이야기가 나올 법하다. 실제로 최근에 그의 미라를 재조사하니 뒷머리뼈에 구멍이 뚫렸고 갈비뼈도 부러진 흔적이 나왔다. 물론, 대부분의 학자들은 살해설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실은 간단했다. 투탕카멘의 미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미라를 만들 때에 뇌수를 빼는 과정에서 머리에 상처가 난 것이다. 그리고 갈비뼈와 가슴의 상처는 시신을 아마포 붕대에 감고 좁은 관에 넣을 때에 무리하게 욱여넣는 과정에서 부러뜨린 흔적이라고 본다. 화려한 황금을 맘대로 넓힐 수 없으니 보이지 않게 미라를 훼손해 가면서 관에 넣은 것이다. 아무리 화려한 황금 마스크를 덮었다고 해도 그 속에는 여러 곳에 상처가 나고 심하게 변형이 된 것이 이집트 미라의 실제 모습이다.
고고학 발전에 일조한 레닌

러시아 크렘린궁 앞 붉은광장에 전시된 볼셰비키 혁명 지도자 레닌의 미라.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미라를 만드는 기술을 현대에 계승한 나라는 엉뚱하게 20세기 초반 소련이었다. 소련을 건국한 레닌은 1924년 1월에 사망했다. 뼛속까지 유물론자였던 그가 미라를 원했을 리 없다. 그는 평범하게 어머니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소련 정부는 레닌을 신격화하며 참배하는 수십만 명의 인파를 보고 뒤늦게 사망 후 일주일이 되어서야 미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종교를 부정하고 유물론에 입각한 나라인 소련이 어쩌다 이런 생각을 했을까 참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거론된다. 레닌이 겨울에 죽었기 때문에 그의 시신은 매우 생생했고, 그를 본 사람들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게다가 무한한 과학의 발전을 믿던 시기이니 시신을 보존하면 미래의 과학기술로 되살릴지 모른다고 생각한 학자도 있었다.
그리고 더 현실적인 이유가 숨어있을 수 있다. 그의 시신을 묻어버리고 나면 그를 신처럼 숭앙하던 소련 국민들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소련 인민들을 대상으로 레닌을 사칭하는 수많은 가짜들이 나올 가능성도 있고, 수많은 음모론에 여론이 어떻게 움직일지 걱정했다. 레닌의 혁명 바로 직전에는 황실을 농락한 희대의 괴승 라스푸틴이 활동했던 것이 바로 러시아였다.
결국 급하게 레닌의 미라를 준비하게 되면서 그의 신체는 여러 방부 약품의 실험 대상(?)이 되는 고초를 겪으며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지금도 러시아의 미라 연구소에서는 첨단 기술로 그의 미라를 1년 반 만에 한 번씩 꺼내어 다시 처리를 한다. 겉으로 보이는 평온한 모습과 달리 그의 미라는 매년 엄청난 화학약품 처리로 옷 밖으로 나온 부분만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미라의 풍습은 이후 사회주의권 여러 나라로 확산되어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도 미라가 되어 공개되고 있다. 그리고 그 덕에 고대 무덤에서 발굴되는 미라의 보존 처리 기술은 러시아가 세계적이다. 레닌은 살아서는 사회주의 혁명에 큰 공헌을 했고, 죽어서는 고고학에 일조한 셈이다.
소련이 망한 지 30년이 넘은 지금, 3차원(3D) 기술과 수많은 메타버스의 체험이 가능한 시대에도 여전히 러시아 사람들은 레닌의 미라를 계속 보존하고 싶어 한다. 레닌의 미라는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의미를 넘어서 강대국이었던 소련 시절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일종의 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머스크와 베이조스의 영생 실험
서방 세계에서 불로장생의 욕망은 지금도 냉동인간(Cryonics)으로 이어지고 있다. 1960년대 급속 냉동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작된 이 방법은 몸 안의 혈액을 제거하고 영하 200도 정도로 급속 냉동한다. 지금도 알코어(Alcor)재단에서 이 서비스를 제공하며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부활의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본다. 현대의 과학기술로 인체의 세포들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 얼렸다 해동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설사 영생의 의료 기술이 나온다고 해도 해동된 시신에게 적용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첨단과학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레닌 때부터 있어 왔다. 그를 미라로 만들면서 그의 뇌는 따로 꺼내어 뇌 구조를 알 수 있도록 약 1만3000개의 표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미국 필라델피아에는 아인슈타인의 뇌도 비슷한 방법으로 보존되어 있다. 언젠가 과학이 발달하면 그들의 지혜를 복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물론 당시로서는 가장 첨단의 기술이었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은 컴퓨터단층촬영(CT)이 훨씬 능률적이고 정확하니 의미 없는 일이 되었다.
그 밖에도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 같은 슈퍼리치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서 불로장생의 꿈을 실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도 마찬가지로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아무리 첨단 기술을 쓴다고 해도 몇 년 지나면 아마 낡은 기술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백 년 후의 우리 자손들이 본다면 아마 우리가 지금 이집트의 미라를 보면서 부질없는 짓을 했다고 느끼는 것 같은 생각이 들 것 같다.
물론, 이런 인간의 욕심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고대 불로장생의 꿈이 다양한 연금술로 이어졌듯이 지금도 영생에 대한 열망이 인간의 삶을 발달시키는 과학의 밑거름이 되고 실제로 인간의 수명도 연장되고 있다. 또 수많은 미라 덕택에 고고학자들의 연구 자료가 쌓여가니 미래의 고고학자들도 환영할 일이 아닐까. 영생 같은 헛된 꿈을 꾸며 살기엔 인생은 너무나 짧다. 그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우리의 행복을 많이 찾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영원한 것은 황금과 우리의 욕망뿐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동아일보(2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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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m 위로 옮긴 신전
고대 이집트 왕 중 현대인들에게는 투탕카멘이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집트 역사상 제일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인물은 람세스 2세다. 죽은 뒤의 무덤으로 유명한 투탕카멘보다 재위 기간만 66년 이상이었던 람세스 2세는 생전 업적으로 칭송을 얻었다. 강력한 군주였던 그는 숙적 히타이트와 평화조약을 맺어 수십년간의 소모적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남쪽으로는 오늘날 수단 국경에 맞닿은 누비아까지 평정해 부와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람세스 2세의 대사원, 기원전 1264년경, 상(像)의 높이 22m, 이집트 아부 심벨 소재.
기나긴 재위 기간 동안 람세스 2세는 드넓은 국토 구석구석에 놀라운 기념비들을 조성했다. 그중 최남단의 아부 심벨에 세운 대사원은 현대인조차도 압도될 만큼 거대하다. 바위산을 그대로 깎아 만든 신전은 정면의 높이가 32m, 너비는 38m다. 그 입구에 높이 22m에 이르는 왕의 좌상(坐像) 넷이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신과 같은 권세를 누렸던 람세스 2세는 그의 왕국은 물론 그가 세운 건축물도 신들이 보호해 태양처럼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1959년, 그렇게 3000여 년을 굳게 서있던 대신전에 위기가 닥쳐왔다. 나일강의 치수를 위한 아스완 하이댐 건설이 시작됐고, 완공과 함께 아부 심벨은 수몰(水沒)될 운명이었다. 이에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고고학자와 엔지니어들이 모였다. 그들은 신전을 부지까지 조각조각 잘라서 원 위치로부터 65m 위에 옮긴 다음 다시 원래대로 짜맞췄다. 그 결과 대신전은 지금 멀리서 저수지를 내려다보게 됐다. 람세스 2세가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신의 은덕이 아닌 까마득한 후손들의 기술력으로 건재한 그의 신전을 보고 감동할 것이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조선일보(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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