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의 귀환]
[쓰레기통에 나뒹구는 돈]
룰라의 귀환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 오시네요.” 2009년 영국 런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오찬장에 들어서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당시 브라질 대통령을 보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주변의 정상들에게 던진 소개말이다. 집권 2기 후반부, 전례 없는 경제 성과에 힘입어 룰라의 지지율이 80%를 넘어설 때였다.
▷해외 정상들도 부러워한 록스타급 인기 속에 대통령궁을 떠났던 그의 퇴임 후 추락과 재기 과정은 롤러코스터급이다. ‘세차 작전(Operation Carwash)’으로 불린 검찰의 부패 수사에서 수백억 달러의 뇌물과 돈세탁 혐의가 드러난 그는 2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절차적 문제로 2019년 재판 무효 판정을 이끌어낼 때까지 부패 정치인 딱지를 달고 580일간 감옥살이를 했다. 77세 나이에 선거판에 다시 뛰어든 그는 그제 대선에서 브라질의 첫 3선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쓰며 12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했다.
▷브라질의 정권 교체는 라틴 아메리카 ‘핑크 타이드’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아르헨티나, 멕시코, 콜롬비아 등 7개 주요국 중 6개국이 이미 진보 정권으로 교체된 상태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악화한 빈부 격차와 실업이 좌파 물결을 일으킨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브라질의 경우 ‘열대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심판론도 작용했다. 그의 극우 정권을 받쳐온 농업 자본과 보수 기독교, 군부의 이른바 ‘3B(beef, bible, bullet)’는 힘을 쓰지 못했다.
▷룰라가 완성한 중남미 제2의 ‘핑크 타이드’는 2000년대 초반의 첫 번째 물결과는 많이 다를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 ‘핑크 타이드’는 저금리 기조 속 경제 붐으로 정부가 부담 없이 재정 지출을 늘리던 시기였다. 반면 지금은 미국발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으로 정책적 여력이 크게 줄어든 데다 팬데믹 여파도 지속 중이다. 사회적 불안과 양극화 심화도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좌파의 물결이 과거보다 훨씬 짧고 불안정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룰라는 ‘남미 좌파의 대부’로 불리지만 집권기 그의 정책은 실용주의를 앞세운 중도에 가까웠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나는 ‘걸어 다니는 변형 동물’이 되고자 한다. 바뀌는 사실관계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걸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외 상황이 급변하는 시기, ‘룰라노믹스’에 대한 국민의 향수가 미래 기대치까지 한껏 높여 놓은 시점이다. 룰라가 집권 3기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국부를 키웠던 그의 화려한 과거 성과까지 한순간에 흔들릴지 모른다.
-이정은 논설위원, 동아일보(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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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파 代父' 룰라, 브라질 대선서 辛勝. 중남미 주요 6국 모두 좌향좌. ‘레드 타이드’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팔면봉, 조선일보(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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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에 나뒹구는 돈
지금 베네수엘라는 마두로 대통령이 경제를 구렁으로 떨어뜨려 식량 부족 사태까지 빚고 있다. 국민 몸무게가 평균 11kg이나 줄어들었을 정도다. 서구 언론이 이를 '마두로 다이어트'라고 부른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베네수엘라 GDP가 최근 4년 45%나 줄었고, 굶어 죽을지 모를 아이만 30만명이라고 했다.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걸 찾거나 영양실조로 앙상한 아이들 사진이 신문에 하루걸러 실린다.
▶베네수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은 1999년 집권한 대통령 차베스와 좌파 포퓰리즘,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마두로 정부가 실정(失政)한 탓이다. 차베스는 석유를 비롯한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무상 교육, 무상 의료 같은 공짜 복지를 확대했다. 풍부하게 묻혀 있는 석유가 돈줄이었다. 미국을 '악의 축'으로 몰아붙였고, '중남미 좌파 연대'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쳤다. 쿠바와 볼리비아뿐 아니라 미국 빈민에게도 석유를 싼값에 주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그러다 유가가 하락하자 모든 게 허사가 됐다. 작년부터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해외로 떠난 국민이 180만명이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6년 KBS는 차베스를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대안(代案)으로 치켜세웠다. 그때 방영한 다큐멘터리 제목이 '신자유주의를 넘어―차베스의 도전'이었다. 차베스 찬양 일색인 이 프로그램은 "차베스의 실험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고 했다. 마치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처럼 보이게 했다.
▶어제 신문에는 쓰레기통에 나뒹구는 베네수엘라 지폐 뭉치 사진이 실렸다. 올 들어서만 4만6300%가 넘는 초(超)인플레이션 탓에 고액권 지폐마저 종이 공예 재료로 쓰일 만큼 돈 가치가 떨어졌다. 견디다 못한 그곳 정부는 이번 주 화폐 액면가를 10만분의 1로 낮추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1차 대전 패전 직후 독일, 2000년대 후반 짐바브웨의 무가베 정권 때나 있었던 최악의 인플레와 경제 위기를 보는 듯했다.
▶1904년 러일전쟁 취재차 한국에 온 미국 기자가 잡지에 사진을 실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엽전더미 뒤에 양복 차림으로 서 있는 장면이다. 취재비로 쓰려고 150달러를 바꾼 돈이라고 했다. 100년 전 우리 처지가 그랬다. 이제는 다르다. 그러나 쓰레기통 지폐 사진은 좌파 포퓰리즘이 나라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증언한다. 차베스를 '남미의 희망'처럼 치켜세웠던 방송사는 현 정권 수중에 들어가 있다. 또 다른 엉터리 '차베스의 도전'이 등장할 것이다.
-김기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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