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3’ 반격에 길 잃은 ‘이재명의 민주당’]
[지구의 종말이 와도 한 정당만 지지한다니]
‘넘버3’ 반격에 길 잃은 ‘이재명의 민주당’
[오늘과 내일]
유동규 입 열면서 대장동 수사 급물살
野, 대여 투쟁하면서 쇄신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해 “측근이라면 정진상, 김용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대장동 게이트에 주변 인사들이 계속 거론되자 선을 긋는 차원이었다. 대장동 사업을 실무적으로 총괄했던 유동규에 대해선 “측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장동 일당이 “유동규 말로는 정진상이 넘버1, 김용이 넘버2, 자기가 넘버3라고 했다”고 말했는데 넘버3는 측근급에도 못 들어간 셈이다. 정진상과 김용 정도가 검경 수사 선상에 오르지 않으면 대장동을 포함한 비리 의혹 수사가 자신을 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일종의 방어선이 아니었나 싶다.
이 대표는 이런 ‘측근’ 기준에 맞지 않으면 단호하게 정리했다. 유동규에 대해선 “민간 개발업자들 만나는 걸 알았다면 해임했을 것”이라고 했고, 대장동 사업 실무라인에 있던 김문기는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외국 출장을 나가서 함께 다닌 사진이 나왔는데도 그랬다. 그 발언의 진위를 가리는 일은 재판에 넘겨졌으니 지켜봐야겠지만 정진상, 김용은 이 대표와 각별한 사이임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넘버3 유동규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넘버2 김용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넘버1 정진상도 출국 금지됐다. 김용은 이재명 캠프의 전국 조직을 챙겨왔고, 정진상은 대선 패배 후에도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대응을 전담해왔던 ‘그림자’ 실세로 불렸다. 이 대표의 진정한 측근들이 수사 선상에 올랐으니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그동안 자신과 관련된 수사 대응에 거리를 뒀던 이 대표가 “정치가 아니고 야당 탄압”이라며 대여 투쟁에 나선 것도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본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의 민주당’을 역설했다. 대선 패배 후 3개월 만에 국회의원, 5개월 만에 제1야당의 당권까지 거머쥐었다. 속도전으로 몇 겹의 방탄막을 두른 것이다. ‘개딸’이라는 강경 지지 세력에, 내후년 총선 공천권은 당분간 민주당을 이 대표를 지키자는 단일대오로 뭉치게 하는 핵심 기제다.
2002년 대선 당시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의 직격탄을 맞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초토화됐다. 참회하는 차원에서 중앙당사를 매각해 천막당사로 옮겨야 했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자금 수수 의혹이 제기된 의원 2명을 노무현 정권 검찰에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야당이 검찰에 자당 의원을 수사 의뢰하는 이례적인 결단이었다. 보수 우파의 쇄신을 내건 ‘뉴 라이트’ 운동도 벌였다. 이런 지난한 작업은 2007년 대선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2002년 대선에서 진 이회창은 정계를 은퇴했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불법 대선자금으로 얼룩진 이회창 시대와 과감히 절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재명의 민주당은 사정이 180도 다르다. 이 대표가 검찰 수사를 포함한 지루한 법정 공방의 전면에 서 있기 때문이다. ‘야당 탄압’을 외치는 여론전은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민심에 얼마나 부응할지는 의문이다. 민주당은 싸우면서 쇄신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떠안게 됐다.
3·9대선은 끝났지만 대선의 포연(砲煙)은 아직도 걷히지 않았다. 대선 연장전은 2024년 4월 총선이 끝나야 승부가 가려질 것이다. 제1야당 대표 측근들이 연루된 사정정국이 시작된 이상 서로가 물러설 수 없는 치킨 게임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이 블랙홀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정연욱 논설위원, 동아일보(2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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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종말이 와도 한 정당만 지지한다니
진영·신념이 위협받는다며 의혹 불거져도 무조건 지지
경제성장 단물 누린 586들 미래세대 위해 이젠 내려놓길
2019년 하반기 이른바 ‘조국 사태’가 벌어졌을 때다. 이 상황이 마치 영화 ‘매트릭스’ 속 빨간 알약 같다고 누군가 말했을 때 매우 공감했다. 영화 주인공 네오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계속 살게 될’ 파란 알약 대신 ‘그간 살아왔던 세상의 거짓을 꿰뚫어 보게 될’ 빨간 알약을 선택한다. 당시 내 오랜 지인들은 조국 전 장관 부부가 자식들을 의전원과 로스쿨에 보내려고 저지른 입시 서류 조작에 대해 “표창장 하나로 한 가족을 도륙하는 검찰”이라며 조국 부부를 옹호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여태껏 내가 알던 그들이 맞나? 어찌나 충격이었는지 마치 영화 속 빨간 알약이라도 삼킨 것 같았다.
198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녔다. 수감이나 퇴학 같은 불이익이 무서워 ‘운동권’이 되진 못했다. 그러나 서슬 푸르른 군사독재에 항거했던 이들의 용기와 헌신에 항상 감탄하고 감사해왔다. 그 운동권 출신들이 사법고시나 박사 학위, 정계 진출 등을 거쳐, 학생 시절에 몸이나 사렸던 나는 되지 못한 엘리트가 된 후에도 내 존경심은 변함없었다. 그들이 주축이 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역사의 사필귀정을 당대에 목격한 것 같아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내가 존경하고 감사했던 586 운동권 출신 엘리트들의 주장처럼 검찰 개혁이 목표였다면 조국 전 민정수석은 잠시 물러나 사법 대응을 하고 다른 인물이 장관을 맡아 개혁을 추진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어제의 용사’들은 조국 개인 엄호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며 서초동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조국 부부가 무엇을 했는지 사실을 밝히는 일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진영과 오래전 신념이 모욕당하고 위협받는다며 분노하고 있었다. 정의연 사건 때 대표 개인의 배임·횡령 혐의를 제기했을 뿐인데 여성 및 시민 단체 관계자들이 ‘우리의 역사 바로 세우기 노력을 폄훼하지 말라’며 뛰쳐나온 것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인들이 권력을 갖고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그가 우리 편인지 아닌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 모습은 올해 3월 대통령 선거에서 정점을 찍었다. 내 지인들은 “일생 동안 민주당만 찍었으니 미워도 다시 한번 찍겠다”고 했고 “실수 좀 했다고 버린다면 그게 신뢰인가. 계속 밀어줄 것”이라고 했다. 내가 “백현동, 대장동 비리, 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등 사법 의혹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어떻게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느냐”고 묻자 한 친구는 “난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보수 정당 지지할 일은 없어”라고 대답했다. 지구의 종말이 온대도 한 정당만 지지한다면 그건 정치가 아니라 신앙이다.
586세대는 앞으로 다시 오기 힘든 경제 호황 성장기의 단물을 누렸다. 대학 졸업장 하나로 골라서 취업했고, 신도시 개발 시기에 내 집을 마련했다. 단군 이래 최대 혜택을 누렸으니 정치적 결정은 자식 세대를 위해 내려놔도 좋으련만 소싯적 신념에서 고장 난 시계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 서민과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서민과 약자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 되었다. 지난 정부는 소주성, 탈원전, 부동산법 개악으로 나라 살림을 거덜 내고 젊은이들의 계층 상승 의지를 작살낸 끝에 정권을 교체당했다. 국민 생명 보호라는 기본 중 기본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통치를 잘못한 정권을 심판해 절치부심, 환골탈태할 기회를 주는 것이 국민의 역할이다. 자랑스러운 과거의 영광은 그만 추억으로 남기고 이제는 다음 세대가 살아갈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정치를 선택해야 한다.
-오진영 작가·'새엄마 육아일기' 저자, 조선일보(2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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