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난 대비에 人波 사고 대책이 빠져 있다]
[비극적인 참사마저 정쟁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건가]
[지금은 함께 눈물 흘리고 기도할 때입니다]
[변질된 핼러윈]
한국 재난 대비에 人波 사고 대책이 빠져 있다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의료진과 소방대원들이 압사 사고 사망자들을 이송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이번 사고로 현재까지 120명이 숨지고 100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2022.10.30/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앞두고 최소 수만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150여 명이 깔려 숨지고 130여 명이 다치는 대형 압사 참사가 일어났다. 이태원동 중심의 해밀톤호텔 옆에 있는 폭 3.2m, 길이 40m 정도의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몰리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벌어졌다. 3년 만에 사회적 거리 두기 없는 핼러윈을 맞아 이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대거 이태원으로 몰린 탓이 컸다. 사망자 상당수도 20대였다. 부상자 중에 상태가 위중한 사람도 있어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사고 경위를 떠나 너무나 참담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 애도 기간을 지정했다. 이번 사고는 단일 사고 인명 피해로는 304명이 사망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최대 참사다. 1960년 서울역에서 설 귀성객들이 계단에서 밀려 30여 명이 사망한 사고와 1965년 광주 전국체전 개막식 때 입장객들이 좁은 문으로 한꺼번에 몰려 12명이 사망했던 일보다 훨씬 끔찍한 압사 사고다.
사고 발생 장소는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뒤편인 세계음식거리에서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있는 대로로 내려오는 좁은 골목길이다. 번화가와 대로변을 잇는 경사진 골목이다 보니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이태원역에서 나와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때 누군가 넘어지면서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사람들이 깔렸다는 것이다. 골목길 한쪽은 호텔 벽으로 완전히 막혀 있고, 다른 한쪽은 영업을 하지 않거나 문이 닫혀 있는 가게들이어서 사람들이 피할 틈이 없었던 것도 화를 키웠다.
사고 직후 현장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당시 동영상을 보면 인파에 사람들이 겹겹이 깔려 움직이지도 못했다.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맨 아래에 깔린 피해자를 빼내려 했으나 위에 뒤엉킨 사람들의 무게 때문에 포기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심정지 상태의 환자를 구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은 4분가량이라고 말한다. 인근 소방서와 사고 현장은 100m 거리로 멀지 않았지만 워낙 인파와 차량이 몰려 있어 구급대원들이 도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제대로 구조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심정지와 호흡곤란 환자가 300명 가까이 나오면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구급대원도 턱없이 부족해 시민들까지 가세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고 초반 피해자들이 길가 곳곳에 방치된 채 놓여 있기도 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번 사고는 역부족이었던 측면이 있지만 대비가 부족했었던 것 아니냐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이태원 일대엔 사고 전날인 28일에도 수만 명이 몰렸다. 토요일이자 사고 당일인 29일엔 인파가 더 몰릴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찰이나 담당 구청은 이런 상황에 대비한 안전 관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경찰 137명을 이태원에 배치해 안전·질서 유지를 하겠다고 했지만 대부분은 절도·마약 범죄 등 강력 사건 예방에 집중돼 있었다. 용산구도 코로나 방역 대비책에만 집중했다. 사람이 갑자기 몰리면 지하철역 무정차도 검토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8일 열린 여의도 불꽃축제 때는 여의나루역 등 승강장에 인파가 몰리자 해당 역을 무정차 통과하도록 했었다. 아예 토요일 저녁부터 왕복 4차로인 이태원로 차량 통행을 막아 사람들이 모일 공간을 확보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압사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후진국에서만 일어나는 사고도 아니다. 2003년 2월 미국 일리노이주 나이트클럽에선 계단 출구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21명이 숨졌고, 독일에선 2010년 한 음악 축제에서 터널을 지나던 관객들이 서로 밀고 밀리다가 19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미리 사고 가능성을 예측해 대비하는 것만이 유일한 예방법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재난 대비 시스템에 대규모 인원이 몰릴 때를 상정한 인파 대책이 미흡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고 우려 지역에 CCTV를 설치해 영상 분석 기술로 인구밀도, 통행 방향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일정 수준을 넘을 경우 안전 관리 인원 투입, 출입 통제 같은 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송년 행사 때 경찰 통제선 바깥에 인파가 몰리면 해산시키겠다는 경고를 발표하는 등 이와 유사한 조치를 취한다. 이런 비극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대규모 인파를 관리하는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
-조선일보(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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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참사마저 정쟁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건가

30일 오후 '2022 대구 핼러윈 축제'가 예정됐던 대구 남구 대명동 앞산카페거리 공영주차장 입구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전날 핼러윈을 앞두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한복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151명이 사망하자 대구지역 핼러윈 축제도 전격 취소됐다. /뉴스1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29일 “이태원 참사는 청와대 이전 때문에 일어난 인재”라며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의 사퇴를 요구했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의 싱크탱크다. 용산 대통령실 경호 탓에 엄청난 인파를 예상하고도 제대로 안전요원을 배치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본인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곧 해당 글을 삭제했다. MBC PD수첩 제작진은 30일 소셜미디어에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정부 대응을 고발할 ‘제보’를 기다린다는 공지를 냈다. 기다렸다는 듯 정부 공격의 소재로 삼으려는 태도라는 비판이 일자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이런 사례 말고도 벌써부터 유언비어에 가까운 주장이나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무리한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등 대형 참사가 있을 때면 괴담 등 혹세무민을 통해 정파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다. 그 때문에 우리 사회가 치른 비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비극적인 참사마저 정쟁의 도구로 삼는 이런 행태는 공동체 일원으로서 용납될 수 없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희생자들의 명복과 그 가족들에 대한 위로에 온 국민이 마음을 모을 때다.
-조선일보(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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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함께 눈물 흘리고 기도할 때입니다
이태원 사고 소식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에게는 그런 청천벽력이 없습니다. 참척(慘慽)의 고통이라고 하잖아요. 겪어보진 않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슬픔일 겁니다.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이해 인파가 몰리면서 사고가 발생, 시민들이 119 구조대원들과 함께 환자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금은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라디오 ‘여성시대’를 오래 진행하면서 자식 잃은 부모의 사연을 여럿 접해보았습니다. 세월호 사고를 겪고 비통해 하는 어머니들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당장은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 슬픔을 바라봐주고 들어주고 손잡아주고 함께 기도해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뿐이지만 배우는 무대에서 수없이 많은 삶과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며칠 전 국립극장에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라는 모노드라마(1인극)를 올렸어요. 박완서 선생님이 1988년 아들을 잃고 나서 쓴 단편소설을 무대로 옮긴 것입니다. 그 공연을 준비하면서, 또 이태원 사고 소식을 접하고 그 어머니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참척이 어떤 것인지 제 간접 경험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1988년 그해에 박완서 선생님은 남편을 암으로 잃고 석 달 만에 아들을 또 떠나 보냈어요. 다섯 자녀 중에 유일한 아들인 막내가 갑자기 그렇게 된 겁니다. 선생님은 몇 년을 방황하셨대요. 수도원에 가 계시고 이해인 수녀를 만나고 한동안 신을 원망했다고도 합니다. “너희는 왜 이렇게 멀쩡하냐”고 딸들을 미워할 정도였어요. 글을 쓸 수도 없었고 온 세상이 다 꼴보기 싫었을 거예요.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 배우로서 저도 너무 아팠습니다.
88 서울 올림픽 직전이었어요. 박완서 선생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들이 죽었는데 기차는 달리고 계절이 바뀌었다고. 아들이 죽었는데 88 올림픽이 예정대로 열린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생때 같은 내 자식이 죽었는데 성화가 도착했다며 잔치를 벌이고 춤을 추는 걸 견딜 수 없었다고. 내가 만일 독재자라면 1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그런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이태원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 심정은 지금 이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귀한 아들딸이 하루아침에 주검으로 돌아왔는데 오늘도 어제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해가 뜨는 것부터 납득할 수 없을 겁니다. 당장은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함께 눈과 귀를 열어 그들의 슬픔을 목격하고 들어주는 것밖에 없어요. 대책 없이 무력한 말이지만 결국은 시간이 약입니다. 위로의 말은 그제야 들릴 겁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공연할 때 저는 반신불수로라도 살아 있는 자식을 둔 엄마를 보고 무너집니다. 자식이 그렇게라도 살아 있다는 것,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먹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부러운지. 박완서 선생님도 참척의 고통을 당하고 세월이 몇 년 지나고 나서야 그 경험을 소설로, 문학으로 옮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정부는 1주일간 국가적 애도 기간을 정했습니다. 지금은 국민들이 묵묵히 들어주고 봐주고 가능하면 손잡아주고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제가 오랫동안 공연한 연극 ‘어머니’에서 주인공인 어머니는 6·25 때 아들이 굶어 죽었어요. 그래도 어쩝니까.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산 사람은 살아야 돼요. 살 수밖에 없고 그렇게 살다 보면 슬픔이 달라져요. 엷어지고 진정됩니다. 그렇다고 그 슬픔이 어디로 사라지진 않겠지만요.
우리 이웃과 사회에 요청합니다. 자식 잃은 부모의 손을 잡아주세요. 묵묵히 바라봐주고 들어주세요. 그들이 울면 같이 울어주세요. 참척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만나 보니 그나마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였습니다. 좀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말로도 위로가 되겠지만 지금은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묵묵히 함께해주는 것, 우리도 아프다고 공감해주는 것 말입니다. 부상자들이 빨리 회복되길 빕니다. 더 이상 고통이 없기를 바랍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연극배우 손숙, 조선일보(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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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野 “사고 수습과 치유에 초당적 협력.” 믿을 수 없는 비극 앞에 政爭은 끼어들 틈도 없어야.
○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빈소마다 나오는 가슴 찢어지는 사연. 우리 사회가 짊어질 또 하나의 트라우마….
-팔면봉, 조선일보(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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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된 핼러윈
핼러윈데이는 원래 종교 축제다. ‘모든 성인의 날’이란 기독교 축일이 아일랜드 전통 축제와 섞이면서 1000년 전부터 유럽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정도에 국한된다. 같은 기독교라도 유럽 대륙의 가톨릭, 동유럽 정교회 나라에선 여전히 낯설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매우 특이하다. 종교적 의미는 사라지고 청춘들의 열기가 분출하는 축제로 변했다.

'핼러윈 데이'(10월 31일)를 앞두고 28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식당 앞에 앞치마를 두른 해골이 전시되어 있다./연합뉴스
▶핼러윈 파티가 우리 유치원, 초등학생에게 생일잔치만큼 중요하게 된 지 10년 가까이 된다. 어린이 영어 교실에서 교육에 핼러윈 축제를 활용하면서 유행했다고 한다. 성인들에겐 젊은 원어민 영어 강사들의 파티가 영향을 미쳤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서울 이태원이 핼러윈 성지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역시 같은 이유로 외국인 클럽이 많은 도쿄 시부야가 핼러윈 성지가 됐다. 그 과정에서 테마파크, 식품업체의 상술이 개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환경적인 위험성도 비슷하다. 4년 전 시부야에서 일명 ‘크레이지 핼러윈 사건’이 일어났다. 한꺼번에 몰린 군중이 폭도로 돌변해 기물을 때려 부수고 패싸움을 벌인 것도 모자라 여성을 성추행하는 난동을 일으켰다. 일본인은 집회, 응원, 축제 때 비교적 질서를 잘 지킨다. 그런데 핼러윈 불상사만은 끝없이 일어난다. 10월 마지막 주가 되면 일본 경찰은 테러 대비에 준하는 경비를 시부야에서 펼친다.

▶젊은 사람이 모이면 열기가 도를 넘을 때가 있다. 술까지 취하면 더 심해진다. ‘복면 심리’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핼러윈 축제 때 많은 사람이 기괴한 가면과 복장으로 분장한다. 한일 핼러윈엔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변신하는 ‘코스프레’ 놀이까지 끼어든다. 영미권처럼 최소한의 종교적 경건함이 있을 리도 없다. 긴장이 풀릴 수밖에 없다. 안전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태원에서 아까운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안전 대비에서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원점에서도 돌아봐야 한다. 외래 문화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 게 과연 정상이었을까. 남의 문화를 잘못 받아들인 것이 사고의 원인은 아닐까. 영미권에서 핼러윈 사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웃을 돌아다니며 사탕을 받아오는 것처럼 그들에게 핼러윈은 공동체의 결속을 확인하는 문화라고 한다. 모든 축제의 본래 의미도 사실 이런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핼러윈 속엔 축제라는 가면을 쓴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말 안타깝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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