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천국’ 된 이스라엘… 시작은 소련 붕괴였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군 경력이 우선하는 나라]
[사막의 이스라엘이 세계적 창업국가로]
‘스타트업 천국’ 된 이스라엘… 시작은 소련 붕괴였다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사막의 이스라엘이 세계적 창업국가로

“이스라엘에 온 걸 환영합니다” 소련 이민자 맞는 라빈 당시 총리-소련 붕괴 뒤 이스라엘 이주를 결심한 러시아 유대인들을 태우고 1994년 4월 러시아에서 이스라엘로 향하는 여객기에 동승한 이츠하크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승객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환영 인사를 하고 있다. 1991년 12월 소련이 붕괴한 뒤 수년간 100만명의 고학력 러시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당시 이스라엘 인구의 5분의 1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기술·창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위키피디아
1973년 10월 6일, ‘욤 키푸르’ 전쟁이라 부르는 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날은 유대인의 ‘속죄일’로 모든 국민이 온종일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 단식하며 그동안 지은 죄를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용서를 청하는 날이었다. 방송국 등 나라 전체가 고요히 쉬는 날로 거리에는 차 한 대 다니지 않았다. 속죄일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병영을 떠나있어 기습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날이었다. 이를 이용해 이집트와 시리아가 아래위에서 동시에 기습했다. 이집트는 75만 명의 병력과 탱크 3만2000대, 소련제 미사일까지 총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기습당한 이스라엘의 피해는 막심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시나이 전선의 모래언덕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골란고원이 점령당했다. 특히 지난 전쟁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 주었던 이스라엘 전차부대와 전투기는 이집트군이 쏘아대는 성능 좋은 소련제 미사일 공격에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개전 48시간 만에 이스라엘은 17개 여단이 전멸하다시피 했다.
이스라엘은 결국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게 된다. 다급해진 건 미국이었다. 어떻게든 핵전쟁은 막아야 했다. 미국은 사방으로 포위된 이스라엘에 무기 등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무려 5566번의 비행 수송 작전을 펼쳤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무기 지원으로 개전 6일 만에 시리아군에 대한 총반격을 개시하여 골란고원을 되찾았다. 그 뒤 시나이반도로 이동해 수에즈시를 점령했다. 10월 25일 유엔군 긴급 파견이 결정되어 4차 중동전쟁은 마무리되었다.
4차 중동전쟁서 ‘소련제 미사일 쇼크’
이스라엘은 패배 직전까지 갔던 4차 전쟁에 큰 충격을 받았다. 보병과 전차는 미사일 공격 앞에 무용지물임을 깨달았다. 이후 이스라엘은 방위산업 전략을 180도 바꾸어 전차 등 재래식 무기 개발이 아닌, 적의 공격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바꾸어 갔다. 이를 위해 제일 먼저 1952년 창설된 첩보부대를 ‘8200′ 인터넷보안부대로 바꾸고 엘리트 과학기술 전문 장교 집단 ‘탈피오트’를 창설했다. 방위산업도 이들을 중심으로 군사용 정보통신기술 위주로 발전시켰다. 곧 인터넷 첩보활동이 강화되었으며, 방위산업도 IT 정보산업과 인공위성, 그리고 인터넷을 활용한 ‘레이더, 미사일, 미사일 방어망 아이언돔, 무인비행기, 드론’ 등이 주력이 되었다.
이러한 첨단 방위산업 기술이 전역 후 이들의 창업 아이템이 되었다. 8200부대와 탈피오트는 이후 국가 스타트업 육성 정책의 핵심이 되었다. 8200 출신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이 1000개가 넘으며 그중 사이버보안 기업만 400개에 이른다. 인터넷 방화벽 시장 세계 점유율 1위인 `체크포인트` 설립자 길 슈웨드 역시 8200부대 출신이다. 이러한 추세는 탈피오트도 마찬가지다. 미사일 방어 시스템 ‘아이언돔’도 탈피오트 사관후보생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어 병기개발청 라파엘이 생산에 성공했고, 라파엘은 우리나라 연평도에 배치된 4세대 스파이크 미사일도 개발했다.

가자지구 인근에 배치된 아이언돔 발사대-이스라엘 첨단 방위산업의 상징인 미사일방어시스템 ‘아이언돔’ 발사대가 가자지구와 인접한 항구도시 아슈켈론에 베치된 모습. /이스라엘군 플리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의 성격과 경제 방향을 바꾼 나라이다. 사회주의 국가로 출발했던 이스라엘은 1980년대 후반에야 자본주의를 접목하여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했다. 이런 신생 자본주의 국가에 1991년 12월 26일 소련의 붕괴로 국경 봉쇄가 풀리면서 약 100만 명의 고학력 러시아 유대인들이 물밀듯이 이스라엘로 이주해왔다.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500만 명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실업률이 높은 시절이라 이는 국가의 운명을 가를 정도의 중차대한 일이었다. 이들 중 약 23%가 과학자로 대부분 소련 국립 연구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자들이었다. 이스라엘 수석과학관실은 이들의 높은 과학 수준과 기술력을 상업화시키기로 하고, 미국 유대인 단체의 협조를 받아 이스라엘 전역에 24개의 기술 인큐베이터를 설립하고 기술창업보육사업을 전개했다. 될성부른 아이디어에 최소 2년간 80만달러까지 지원했다.
그리고 이들을 본격 지원하기 위해 1993년에 ‘요즈마 펀드’를 설립해 해외 벤처캐피털과 글로벌 기업의 R&D센터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투자 수익에 대한 비과세, 투자 후 5년 내 요즈마 지분을 싼값에 되살 수 있도록 하는 획기적 인센티브로 대성공을 거뒀다. 초기 스타트업들이 매년 20개 이상씩 성공을 거두자 전 세계 벤처캐피털들이 이스라엘로 몰려들었다. 1억달러로 시작한 요즈마 펀드는 크게 성장해 5년 후 민영화되었으며 10년 후에는 규모가 40억달러로 커졌다.
세계 약품 매출 25%가 이스라엘 기술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또 다른 배출구는 대학과 연구소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30여 년 전에 설립한 대학들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방위산업을 육성해왔으며 또 이를 토대로 기술 혁신과 하이테크 산업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들 연구소와 대학들은 그들이 보유한 기술을 민간기업에 접목시키기 위한 기술 이전 조직을 별도로 만들었다. 바이츠만 연구소의 ‘예다’, 테크니온 공대의 ‘T-3′, 히브리대학의 ‘이슘’, 텔아비브대학의 ‘라못’ 등이 그것들이다. 이들의 기술사업화 실적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59년에 설립된 바이츠만 연구소의 기술 이전 조직인 ‘예다’에 따르면, 세계 약품 시장 매출액 중 약 4분의 1은 이스라엘 과학자들의 기술을 이용해 개발되었다고 한다. 학생 수가 1380명인 바이츠만 연구소의 기술사업화 성과가 200여 미국 대학 성과의 절반에 필적한다. 1964년에 설립된 히브리대학 ‘이슘’의 경우도 기술 이전을 통해 연 매출 20억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이들의 설립 연도만 보아도 이스라엘 연구소와 대학이 일찍부터 연구 결과의 실용화를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창업 길 찾는 이스라엘 대학생들-이스라엘과 미국에 캠퍼스를 둔 유대계 예시바대학교 학부생들이 지난 2018년 이스라엘의 창업진흥기관 ‘아워크라우드’를 찾아서 스타트업 육성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스라엘 대학생들은 졸업전부터 스타트업에 관한 다양한 현장 실습 기회를 갖는다. /예시바대 플리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4차례 중동전쟁과 100만 명의 러시아 유대인 유입으로 특이한 구조를 갖게 된다. 스타트업의 요람이 군대와 산업계와 대학의 연합 전선인 ‘군·산·학’ 복합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로부터 매년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탄생해, 한 해에 창업하는 스타트업 수가 유럽 전체의 스타트업 수를 능가한다. 현재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수는 7000개가 넘다 보니 이들의 젊은 피를 수혈받기 위해 이스라엘에 세워진 다국적 기업들의 R&D센터가 무려 400개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형태로 연구소를 시작했고 관련 하이테크 연구와 병행해 지금도 유망한 스타트업을 사냥하고 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의 매각과 합병이 잦은 이유이자 이들이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돕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세계가 탐내는 스타트업들이 넘쳐나고 있어 전 세계가 투자를 줄이는 팬데믹 기간에도 이스라엘 기업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급증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변변한 글로벌 대기업 하나 없이 스타트업들과 방산 기업들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난 10월 발표한 IMF 자료에 의하면, 2022년 이스라엘 1인당 GDP가 5만5358달러에 달한다. 이는 팬데믹 상황에서 프랑스와 영국은 물론 독일조차 뛰어넘은 수치로 2020년 4만4181달러, 2021년 5만1449달러를 훌쩍 뛰어넘어 2년 만에 25.3%가 껑충 뛴 비약을 보여주고 있다. 스타트업이 이룬 경제 기적이다.
[헤세드 정신]
“보상 안받고 도와준다” 실리콘밸리 선배들이 이스라엘 벤처들 발굴
이스라엘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교육과 기술 개발,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스타트업 진흥에 나라의 운명을 걸었다. 그 결과 군·산·학 복합체로부터 스타트업이 쏟아져 나와 인구 1400명당 스타트업이 하나씩 탄생해 스타트업 강국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내는 일은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유대인 기업가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될성부른 새싹을 조기에 발굴하여 투자했을 뿐 아니라 ‘정보 제공, 인맥 연결, 글로벌 마케팅 지원과 상장(IPO) 지원’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헌신적인 도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를 ‘헤세드 정신’이라 한다. 히브리어로 ‘긍휼’, ‘자비’라는 말로, ‘보상을 바라지 않고 헌신적으로 돕는다’는 뜻이다. 이는 유대인 공동체가 지향하는 최고 단계의 체다카(돌봄, 나눔) 정신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스타트업 수는 100여 개로 미국, 중국에 이어 3위이다.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조선일보(22-11-29)-
__________________
하버드 졸업장보다 군 경력이 우선하는 나라
“공군 장교로 8년간 아파치 헬리콥터를 조종했습니다.”
지난달 이스라엘 출장에서 만난 4조원 규모 벤처펀드 빈티지(Vintage)의 아사프 호레시 대표는 자신을 소개하며 군 경력부터 꺼냈다. 그는 “군에서 배운 기술 지식이 투자 대상 기업 이해에 도움이 됐다”며 “이스라엘 군 특유의 다른 의견을 인정하는 탈권위 문화(후츠파)는 투자 결정 회의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시모네 메타임’ ‘탈피오트’ 같은 엘리트 부대를 통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한 학생들을 최정예 요원으로 길러내고 있다. 군대에서 수년간 창의력과 유연성, 문제 해결력을 키운 이들은 실전에서 신속하게 문제점을 파악하고 최선의 해결 방안을 찾아낸다. 또 제대 후에도 끊임없이 신기술을 개발하며 이스라엘 벤처 산업을 이끈다. 군대가 ‘창업 인큐베이터’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사진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전투 훈련을 하는 모습. /이스라엘방위군(IDF) 홈페이지
이스라엘에서 군은 기업·학교·정부와 함께 ‘스타트업 네이션(창업국가)’을 만들어가는 주체다. 하버드·스탠퍼드 등 글로벌 명문대 졸업장보다 군 경력을 기업에서 더 높이 쳐주는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호레시 대표도 미국 명문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음을 나중에서야 밝혔다.
척박한 자원에 인구 940만명으로 내수시장이 비좁은 이스라엘은 국방 기술을 상용화해 글로벌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F16 전투기 첨단 헬멧의 90% 이상을 점유한 엘빗시스템스는 최근 이 기술을 적용해 세계 최경량 오토바이·자전거용 스마트 고글을 개발했다. 미사일 탄두 광학기술을 알약에 장착한 캡슐내시경(필캠)을 개발한 기븐이미징은 2001년 나스닥에 상장됐다가, 2014년 글로벌 제약사 코비디엔에 8억6000만달러에 인수됐다. 테러리스트 금융 거래 추적 기술로 온라인 결제 사기 적발 시스템을 개발한 프로드사이언시스는 세계 최대 간편결제 기업 페이팔이 2008년 1억6900만달러에 샀다. 모사드(이스라엘 대외첩보부)에서 25년간 근무하고 퇴직해 2015년 사이버 보안 회사를 세운 노암 에레즈 대표는 “중동 국가, 바다로 둘러싸여 지정학적으로 섬과 같은 역경에 놓였지만 이를 기회로 바꾸려고 노력한 결과다”고 말했다.
1948년 건국 후 채택한 사회주의 체제의 비효율성에 주변국과의 전쟁까지 겹치며 이스라엘 경제는 1970~1980년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다. 1984년 물가가 400% 가까이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시장경제로 전환하고, 1990년부터 스타트업 육성에 과감히 나섰다. 이 과정에서 엘리트 군부대를 적극 활용했다. 이스라엘 국민은 고교 졸업 후 남자는 2년8개월, 여자는 2년씩 군에 의무 복무해야 한다. 탈피오트 부대는 연간 50명을 선발해 이스라엘 최고 명문 히브리대에서 수학·물리학 등을 3년간 가르치고 6년간 군에서 혁신 무기를 연구하게 한다. 유명한 미사일 방어시스템 ‘아이언돔’은 탈피오트 출신들이 개발했다. 컴퓨터·보안 기술에 특화된 8200 정보부대 출신들이 설립한 스타트업은 1000개가 넘는다.
그 결과 인구 1500명당 스타트업 1개로 세계 1위다. 군소 스타트업들이 포천 500대 기업 20~30%를 고객으로 둔 경우가 수두룩하다. 구글·인텔·마이크로소프트·애플 등 글로벌 대기업들의 R&D 센터 450여 개가 들어와 있다. 1인당 GDP는 1990년 1만3000달러에서 작년 5만2000달러로 4배나 뛰었다. 2015년 일본을, 작년 독일을 제쳤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는 대체로 군 복무가 ‘청년들 인생을 허비하는 시간’ ‘흙수저의 몫’ 등으로 치부된다. 더 이상 자원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작년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현재 2% 초반인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44년 0%대로 떨어져 38개 회원국 중 가장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도 성장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군대까지 활용해 창업 경제를 주도하는 이스라엘을 언제까지 부러운 눈으로 쳐다만 보고 있을 것인가.
-최형석 기자, 조선일보(22-11-28)-
_________________
사막의 이스라엘이 세계적 창업국가로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방위산업에 國運 걸려” 軍에서 대학보다 먼저 컴퓨터 가르쳤다

방산업체 찾아 첨단무기 들여다보는 이스라엘 대통령-2014년 9월 당시 이스라엘 국가원수였던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이 이스라엘군수산업체(IMI)에서 운영하는 한 공장을 시찰하며 현장에서 제조한 첨단 군사 장비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1948년 건국 직후부터 주변 국가들의 공세에 직면했던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 방위산업 육성에 전력을 다했고, 국방 분야는 향후 이스라엘이 첨단 산업과 창업 분야에서 선도국이 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됐다. /이스라엘정부 공보국
1881년 3월 러시아 황제가 암살되었는데, 암살자들에게 유대인 처녀가 자기 집을 모임 장소로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러시아는 이듬해 반유대법을 공포해, 수십만 명의 유대인을 일정 지역과 게토에 갇혀 살게 했다. 우크라이나와 남부 러시아에서 반유대주의 폭동이 일어나 약 4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이를 ‘포그롬(Pogrom)’이라 불렀다. 당시 유대인들이 서유럽과 미국으로 많이 탈출했다. 런던에 15만, 빈에 7만 명 등의 유대인들이 몰려들면서 서유럽에서도 반유대주의가 거세게 일어났다. ‘자유, 평등, 박애’의 혁명 본고장 프랑스에서조차 무고한 유대인 장교를 간첩으로 모는 드레퓌스 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취재하던 테오도어 헤르츨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오니즘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모여들면서 프랑스의 에드몽 로스차일드는 1887년 팔레스타인 땅을 비밀리에 사들여 유대인들이 농사지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이주민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의 80%를 마련해주었다고 한다.
군대가 곧 기술 인재 양성의 요람
그러나 유대인 이주자들에게 아랍계의 테러와 공격이 가해졌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1909년 집단농장 키부츠를 창설하고 한 손에는 곡괭이, 다른 한 손에는 총을 들고 농사와 전투를 동시에 수행했다. 키부츠 구성원들은 모든 결정을 전체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키부츠 내 모든 재산과 생산수단은 공동 소유로, 대신 필요한 모든 것이 배급되었다. 공산주의 방식이다. 공동 육아와 공동 교육이 시행되었다. 자녀들은 영유아 때부터 또래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공부한다. 그 무렵 키부츠 구성원들은 이스라엘이 건국되면 스탈린식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1921년에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자녀를 가정에서 양육하는 협동조합 성격의 집단농장 모샤브가 출현했다. 이후 키부츠와 모샤브가 수백 개 규모로 커지면서 이들이 건국 운동의 중심이 되어 이스라엘은 계획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주의 국가로 출범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건국 이전에 대학을 먼저 설립해야 한다고 생각해, 1912년 항구도시 하이파에 테크니온 공대의 초석을, 1917년 예루살렘에 히브리대학의 초석을 놓았다. 당시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인구는 고작 5만6000명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개교 전부터 히브리대학에서 히브리어로 강의했다. 두 대학이 1925년 같은 해에 캠퍼스를 완공하고 개교하자 그는 테크니온 공대의 초대 학장도 맡았다. 이후 테크니온 공대 졸업생들은 건국 후 벌어질 전쟁에 대비해 비밀리에 집과 직장 지하에서 무기를 제작하여 키부츠와 모샤브에 공급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 당시 인구는 80만6000명이었다. 기원전 63년 로마제국에 정복당한 지 2011년 만에 나라를 되찾은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건국 선언한 그날 밤 이집트 전투기들이 이스라엘을 폭격했고 이튿날 아랍 5국이 사방에서 공격해 왔다. 이스라엘군 2만7000명과 예비군 9만 명이 결사 항전으로 맞서 싸웠다. 여자들이라고 예외가 없었다. 20일 넘게 벌어진 전투 끝에 결국 유대인들은 나라를 지켜냈다.

점적 관수 기술로 황무지에 핀 꽃들-물이 작물 뿌리에만 스며들도록 한 점적 관수 기술로 물을 대는 이스라엘의 한 농장에서 다양한 색깔을 한 꽃과 작물이 자라고 있다. 이스라엘은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최첨단 기술을 발전시키며 거친 땅을 비옥한 농토로 바꿔왔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방위산업 육성에 국운을 걸었다. 1952년에 첩보부대부터 설치했다. 그리고 유대인 과학자들을 불러 모아 이스라엘 군수산업체(IMI)를 세웠다. 1953년 이스라엘은 항공산업체(IAI)을 설립하여 6년 만에 비행기를 생산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하이테크 산업은 방위산업과 궤를 같이했다. IMI는 다양한 무기를 생산하며 위성 발사에 성공해 이스라엘 최대 하이테크 산업체가 되었다. 그중 무인 원격조종 소형비행기가 유명하다. 배낭에 넣고 다닐 정도의 초소형 무인비행기는 GPS 시스템을 이용해 원격조종 된다.
이집트와 2차 중동전쟁 뒤 이스라엘은 군을 ‘기술 전문조직’으로 바꾸어 나갔다. 군이 1959년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대학에 컴퓨터학과가 생긴 것은 이로부터 10년 후였다. 그만큼 군이 앞서 나갔다. 1959년 병기개발청 ‘라파엘’은 전투기에서 발사하는 공대공 미사일을 개발했다. 한편 이스라엘은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1963년 민간자본으로 원전을 완공해 핵기술 보유국이 된다.
1960년대 중반부터 민간 컴퓨터 기업들이 라파엘의 미사일 제조 기술을 활용해 세계 최고 수준의 능동형 레이더, 암호화 시스템, 해킹 기술 등을 탄생시켰다. 그 뒤 미사일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었다. 일례로 바이오벤처 갈릴메디컬은 미세 침으로 전립선암 수술을 순식간에 끝내는 의료제품을 개발했다. 그 핵심 기술이 바로 미사일 발사 후 발사대를 급랭시키는 기술에서 온 것이다. 그 뒤 이스라엘은 전쟁의 승패는 제공권 장악에 있다고 보고, 미국이 제공하기를 거부한 관성유도장치, 대용량 컴퓨터, 우주로켓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은 물 때문에 벌어졌다. 사막성 기후의 이스라엘은 물이 턱없이 부족했다. 물 관리가 가장 중요한 국가 전략 목표였다. 그들은 건국 이전인 1937년 수자원 회사부터 설립했다. 이스라엘 최대 수자원인 갈릴리호수와 요르단강은 국민의 목숨 줄인데, 시리아가 갈릴리 호수로 내려오는 물길을 막는 댐을 골란고원에 건설하려 했다. 그렇지 않아도 매년 수심이 얕아지는 갈릴리 호수로 들어오는 물길을 막는 댐 건설은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였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1967년 4월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공격했다. 이에 대해 이집트는 5월 시나이반도를 침공해 인도양으로 나가는 이스라엘의 유일한 해상로 아카바만을 봉쇄했다. 나세르가 전쟁을 시작한 데는 이스라엘이 본격적으로 핵무장을 하기 전에 끝장내야겠다는 강박 심리가 작용했다. 이스라엘 공군은 6월 5일 레이더망을 피해 초저공 비행으로 지중해를 멀리 우회하여 이집트 전투기 410대와 이튿날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전투기 416대를 파괴해 아랍 공군력을 초토화했다. 그 뒤 이스라엘은 기갑부대를 투입해 골란고원 수원지 일대를 정복하고 전쟁을 끝내 이를 ‘6일 전쟁’이라 부른다.
3차 중동전쟁도 물 때문에 발발
이스라엘은 1965년 전국 수도망을 완성했다. 그러나 농업용수는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였다. 한 키부츠가 같은 해 ‘네타핌’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히브리어로 ‘물방울’이란 의미의 이 회사는 ‘점적 관수(Drip irrigation)’ 기술을 개발해 황무지를 옥토로 바꿔 나갔다. 호스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물방울이 조금씩 나오도록 컴퓨터로 제어해 물이 작물 뿌리에만 스며들게 했다. 이를 개발한 사람은 이스라엘 수자원공사 엔지니어였던 ‘심카 블라스’다. 그는 어느 날 이웃집 수도 파이프가 새는 걸 보고 이를 알려주려고 방문했다가 그 집 마당의 나무들이 물을 주지 않는데도 잘 자라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에 힌트를 얻어 이 기술을 개발했다. 물에 대한 집념은 이후 바닷물을 민물로 만드는 기술의 경제성도 확보했다. ㎥당 평균 1~1.3달러였던 해수 담수화 비용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50센트로 낮추어 모자라는 물 문제를 해결했다. 또 하수도 물을 농업용수로 바꾸는 폐수 재활용률도 75%에 달해 광야를 옥토로 바꾸는 녹색혁명도 이루어 식량 자급률이 무려 95%다. 이스라엘에는 7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있다. 이 중 700여 개가 수자원 이용의 효율 개선 방안을 찾고 있다. 물에 관한 한 세계 최강이다.
[세파라디·아슈케나지]
같은 유럽 유대인이라도 스페인·독일계로 나뉘어… 피부색도 중동인과 달라

복장도 다른 세파라디·아슈케나지 랍비-2014년 5월 전몰장병추모행사에 참석한 세파라디 랍비(왼쪽)와 아슈케나지 랍비. 세파라디와 아슈케나지는 상이한 역사·전통만큼 복장도 다르다. /이스라엘정부 공보국
유대인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세파라디이며 또 다른 하나는 아슈케나지이다. 중세에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살았던 지역은 이베리아반도이다. 이들을 세파라디라고 불렀다. ‘스페인계 유대인’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당시 유럽 대륙 내 물류의 수송 경로였던 라인강 변에 상업과 유통에 종사하는 유대인들이 몰려 살았다. 이들을 아슈케나지라 불렀다. ‘독일계 유대인’이라는 뜻이다.
12세기 십자군 전쟁 때 십자군들이 라인강 변을 타고 진군하면서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하자 아슈케나지들이 대부분 동구와 러시아로 피난 가서 슬라브 민족과 같이 살았다. 이들은 오랫동안 슬라브 민족과 함께 살면서 피가 섞여 피부색이 검붉은 중동인에서 하얀 피부로 변해 세파라디와 쉽게 구별된다. 19세기 말 무렵 세계 유대인 인구 1127만 명 중 러시아에 가장 많은 390만 명이 살았고, 다음으로 폴란드에 131만 명, 헝가리에 85만 명이 거주했다.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조선일보(22-11-15)-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世界-人文地理]'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러시아의 겨울 전쟁] [역사 잔재 청산] (0) | 2022.12.01 |
|---|---|
| [한국, 포르투갈 반드시 이겨야 실낱 희망... 16강 경우의 수 보니] [월드컵, 대화가 필요해] [정도전 진법과 축구의 진화] .... (0) | 2022.11.29 |
| [정상회담할 땐 토브, 기업인 만날 땐 재킷… 그는 패션으로 통치한다] (0) | 2022.11.27 |
| [팀워크는 스타보다 강하다] [카타르 월드컵 관전 일본 팬들에 쏟아진 칭찬] (0) | 2022.11.24 |
| [미국 간판 박물관] [사람은 얼굴을 보고, 나무는 껍질을 보며, 사업 성패는 간판을 보라] (0) | 2022.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