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법꾸라지’들에 기름 발라준 판결]
[法理 따랐다지만 “50억 뇌물 아니다” 판결, 누가 납득하겠나]
[31세 아들 ‘화천대유 퇴직금’ 50억, 곽상도 수뢰 1심 무죄… ]
대장동 ‘법꾸라지’들에 기름 발라준 판결
[박정훈 칼럼]
뇌물이 아니라면 김만배씨는 왜 일개 대리급에게 거액을 주었단 말인가
‘50억 무죄’ 판결은 이 당연한 의문에 답을 주지 못한다

곽상도 전 의원이 8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외풍에 휘둘리지 말고 오로지 법리와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게 판사의 임무다. 법리는 법적 상식에 기반한다. 그래서 법은 ‘최소한의 상식’이라고 일컫는다. 지나치게 법리에 치우쳐 상식의 한계를 일탈한다면 그것은 사법 정의라 할 수 없다.
이른바 ‘50억원 클럽’의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뇌물 혐의 무죄판결은 충격적이다.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지낸 현직 국회의원의 아들이 단 6년 일하고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았다. 아버지는 돈을 준 대장동 주범과 절친한 대학 동문 사이였다. 누가 봐도 아버지를 보고 준 것이 명백했다. 그런데도 법적으로 문제없다니 상식의 허용 범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판결대로라면 앞으로 자녀를 통해 검은돈을 주고받는 신종 뇌물 루트가 유행할 법하다. 따로 사는 자녀에게 돈을 주면 아무리 액수가 많아도 뇌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불거진 것은 2021년 9월이었다. 대장동 의혹이 쏟아지는 와중에 당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이던 곽 전 의원의 아들이 김만배씨가 설립한 화천대유의 1호 사원으로 근무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곽 전 의원 아들은 6년 근무 후 퇴사했다. 그런데 연봉 4000여 만원을 받던 31세 대리 급의 퇴직금이 무려 50억원에 달했다. 기업 경영인들의 역대 퇴직금 기록 사상 랭킹 4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참고로 역대 1위는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이 2018년 퇴임 때 받은 67억원이다. 검찰은 50억원이 곽 전 의원을 보고 준 뇌물이라 보고 기소했다.
재판부도 50억원이 “사회 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함을 인정했다. 곽 전 의원의 직무 관련성도 인정했다. 그가 국민의힘 부동산 투기 특별조사위원으로 활동하던 때여서 대장동 문제가 직무 범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아들이 아버지의 대리인으로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뇌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이유가 상식을 깨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 아들이 결혼해서 따로 사는 ‘독립 생계’이기 때문에 무죄라고 했다. 즉 곽 전 의원이 아들을 부양하지 않기 때문에 아들이 50억원을 받아도 곽 전 의원의 경제적 부담이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곽 전 의원에게 줄 50억원이 대신 아들에게 간 것이 아니라는 이상한 논리였다.
재판부가 제시한 법리는 세상 상식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결혼한 자녀라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심리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 주려 온갖 증여 수법을 고민하는 세상인데 재판부는 ‘따로 사니 뇌물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독립 생계 자녀를 통하면 합법적으로 뇌물을 주고받을 길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인터넷 댓글엔 ‘자식들 주소 따로 만들어 주고 그쪽으로 뇌물 받으세요’라는 등의 야유가 쏟아지고 있다.
당장 조국 전 법무장관의 ‘600만원 유죄’와 형평성 시비가 제기됐다. 조 전 장관은 딸이 장학금 600만원을 받은 것이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곽 전 의원 아들은 독립 생계지만 조 전 장관은 딸을 부양한다는 차이가 유·무죄를 갈랐다. 600만원이 유죄인데 50억원이 무죄라면 누가 납득하겠나.
‘정영학 녹취록’엔 김만배씨가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온다. “병채(곽 전 의원 아들)가 아버지에게 주기로 한 돈을 달라고 해서 머리가 아프다”거나 “병채 아버지는 돈을 달라고 그래. 병채 통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김씨는 실제로 50억원을 아들에게 주었다. 이것 이상 명백한 뇌물의 증거가 어디 있는가. 재판부는 김씨 말이 ‘허언(虛言)’이라고 보았다. 김씨가 말 한 그대로 50억원이 지급됐는데 어떻게 허언일 수 있는가.
판사로선 그 나름대로 고심 끝에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은 ‘50억원 클럽’ 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당연하고도 핵심적인 의문에 해답을 주지 못한다. 김만배씨는 왜 일개 대리급 직원에게 거액을 주었는가. 대가성 없이 주었다면 김씨는 통 큰 자선 사업가인가. 김씨가 화천대유 설립 이후 다른 퇴직 직원들에게 지급한 금액은 총 2억여 원에 불과하다. 천사 같은 김씨가 다른 직원에겐 왜 인색했단 말인가.
법 조문의 맹점을 활용해 처벌을 피해 가는 법률 기술자를 속칭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라고 한다. 곽 전 의원과 김만배·정진상·김용씨 등 대장동 일당이 바로 그런 전술을 펴고 있다. ‘50억원 무죄’ 판결은 ‘정영학 녹취록’이 허언이라며 증거 능력까지 부정함으로써 대장동 일당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한 탕 크게 해먹고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대장동 ‘법꾸라지’들에게 법원이 기름까지 발라준 셈이 됐다.
-박정훈 논설실장, 조선일보(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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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理 따랐다지만 “50억 뇌물 아니다” 판결, 누가 납득하겠나

대장동 개발사업을 돕고 아들을 통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 관련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대장동 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화천대유 직원이던 곽 전 의원의 아들이 받은 거액의 퇴직금을 곽 전 의원에 대한 뇌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법원은 증거와 법리로 판결해야 한다.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라고 증거가 없고 법리에 맞지 않는데 죄를 물어선 안 된다. 하지만 이 판결에 대해선 법원이 너무 소극적으로 법리를 적용했다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곽 전 의원의 아들은 화천대유에 6년 정도 근무하고 31세이던 2021년 퇴직금과 성과급 명목으로 50억원(실수령액 25억원)을 받았다. 누가 봐도 과한 액수다. 곽 전 의원은 법조인 시절부터 김만배씨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국회의원으로서 김씨의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곽 전 의원의 아들이 아니었거나 국회의원이던 그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다면 50억원을 줬겠는가. 화천대유에 근무하던 일반 직원 중 곽 전 의원 아들 이외에 그런 거액을 받은 사람도 없다.
법원은 그가 받은 금액에 대해 “연령, 경력, 직급과 담당 업무, 성과급 액수의 결정 절차 등에 비추어 볼 때 사회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돈이 곽 전 의원에 대한 대가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권력을 이용해 사업을 도왔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또 “성인으로 결혼을 해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해 온 아들에 대한 법률상 부양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며 아들이 받은 돈을 곽 전 의원이 받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한 금품 제공을 요구했다는 증언이 담긴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 내용도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논리라면 이해 관계자가 권력자 자녀를 취업시켜 금품을 제공해도 구체적인 청탁이나 알선 행위가 없으면 법으로 단죄할 길이 없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혐의 입증을 위해 증거를 보강해야 한다. 법원도 법리를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적용해 사회 정의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게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조선일보(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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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 아들 ‘화천대유 퇴직금’ 50억, 곽상도 수뢰 1심 무죄…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은 대장동 개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로부터 아들에게 지급된 50억 원에 대해 어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법원은 이 돈이 알선의 대가로 보기 어렵다며 뇌물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총선 직전인 2016년 남욱 변호사로부터 받은 5000만 원에 대해서만 불법 정치자금 혐의를 적용해 벌금 800만 원을 선고했다.
곽 전 의원의 아들은 화천대유에 2015년 입사해 2021년 퇴사했다. 재직 기간이 고작 6년에 불과한 31세 회사원이 퇴직금 상여금 등 명목으로 50억 원을 받았다. 정영학 녹취록에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돈을 달라고 해 골치가 아프다’는 취지의 김 씨 발언도 남아 있다. 그러나 청탁이나 알선이 있었음이 입증되지 않아 뇌물 혐의가 부인됐다. 법률적으로는 몰라도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이다.
법원이 그렇게 판결할 수밖에 없었다면 검찰 수사나 기소에 부실함이 있었던 건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50억 클럽’ 명단에 오른 법조계 인사 5명은 권순일 전 대법관을 빼고는 검찰 고위직 출신이다. 검찰이 검사 비리를 제대로 수사할지 처음부터 의문이 있었다. 곽 전 의원 외에 구체적 의혹이 거론된 박영수 전 국정농단 특별검사의 경우도 수사가 지지부진했다. ‘50억 클럽’ 수사나 기소가 일반 권력형 비리 수사나 기소처럼 엄밀했다면 곽 전 의원과 박 전 특검의 자녀가 부동산 개발 업무와 관련 없는 이력에도 불구하고 화천대유에 입사한 과정부터 철저히 따졌어야 한다.
검찰은 곽 전 의원 1심 뇌물 무죄 판결을 계기로 ‘50억 클럽’ 수사진을 전면 쇄신해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다룬다는 자세로 수사해야 한다. 자녀를 통해서든 친인척을 통해서든 김 씨와 ‘50억 클럽’ 인사 사이에 오간 모든 거래를 밝혀야 한다. 김 씨가 당장은 무슨 청탁을 하지 않았더라도 미래에 대비해 50억 원을 주거나 주기로 약속했을 가능성도 들여다봐야 한다. 검찰은 이런 돈의 범죄성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도 고민하고 처벌해야 ‘50억 클럽’ 의혹에 대한 최소한의 납득할 만한 처리가 이뤄진다고 하겠다.
-동아일보(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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