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은 모든 걸 걸었다]
[‘미래 위한 연금개혁’ 정치생명 걸고 추진하는 마크롱]
마크롱은 모든 걸 걸었다
서울에선 한강을 기준 삼아 강남·강북이라 하지만, 파리는 센강 동쪽에서 서쪽을 보고 서서 ‘강 왼편(리브 고슈), 강 오른편’으로 나눈다. ‘리브 고슈’에 주불 한국 대사관이 있다. 이곳에서 로댕 미술관과 총리 공관을 등지고 북쪽으로 눈길을 두면 하원(下院), 콩코르드 광장, 엘리제궁이 차례로 펼쳐진다. 모두 걸어서 10분 이내다. 이 도심이 주말 시위로 불길에 휩싸였다. 마크롱 정부가 연금 개혁을 밀어붙이자 벌어진 일이다.
▶전날 프랑스 의회는 연금 받는 나이를 지금의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늦추는 법안 표결을 하게 돼 있었다. 앞서 상·하원 합동위원회가 8시간 마라톤 회의까지 거쳤다. 오전에 상원을 통과했고, 오후에 하원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점심 무렵 ‘하원 부결 가능성’ 낌새를 눈치 챈 마크롱이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했다. 엘리제궁에 엘리자베트 총리와 장관들이 속속 모여들자 마크롱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특단의 조치를 발동했다.

▶프랑스 헌법 49조3항은 ‘정부 단독 입법’이란 출구를 열어놓고 있다. 의회가 기능 마비에 빠지면 총리가 대신 나설 수 있다. 정부의 법안 상정을 앞둔 총리가 먼저 의회에게 ‘내각 불신임 여부’를 묻는다. 이게 부결되면 법안 통과로 간주하고, 대신 가결되면 법안 폐기는 물론 내각까지 총사퇴한다. 다소 복잡하고 우악스러워 보이는 절차다. 의회가 정부를 믿는다면 법안 통과, 못 믿겠다면 다 관두자는 것이다.
▶총리는 원래 사회당 출신이었는데 중도 자유파인 마크롱의 르네상스당으로 옮겼다. 그는 의회 연단에서 “불확실한 몇 표 때문에 175시간에 걸친 의회 토론의 결과가 무너지면 안 된다” “연금제도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할 순 없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이 야유를 퍼붓고 피켓을 흔들며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다 퇴장하기도 했다. 광장 시위 군중은 대통령을 ‘폭군’ ‘독재자’라고 부르며 마크롱 인형을 불길 속에 던졌다.
▶1968년 학생혁명 때 슬로건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희극배우 잔 얀(Yanne)이 처음 말해서 널리 퍼졌다. 그만큼 모든 자유를 중시한다는 이 나라의 경찰이 엊그제 콩코르드·샹젤리제 주변에 집회를 일절 금지한다고 밝혔다.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은 연금개혁이 화염병과 폭죽으로 멈출 순 없기 때문이다. 마크롱-엘리자베트 정권은 정치생명을 걸었다. 사실상 5년 임기는 선택과 결단의 연속인데 아차 하면 벼랑이다. 그러나 버리는 게 없다면 선택도 아닐 것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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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위한 연금개혁’ 정치생명 걸고 추진하는 마크롱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연금 수령 시점을 2년 늦추는 연금개혁안을 하원 표결 없이 입법하는 초강수를 뒀다. 헌법으로 보장된 정부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지만, 야당이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고 노동계가 대규모 반대 시위에 나서는 등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자칫 레임덕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정치생명을 걸고 미래를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16일 프랑스 정부는 연금 수급을 시작하는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고, 연금을 100% 수령하기 위한 노동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1년 늘리는 개혁안을 하원 표결 없이 통과시키기로 했다. 정부가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때 의회 표결을 생략하고 정부가 입법할 수 있도록 한 헌법 49조 3항에 근거했다. 앞서 법안이 상원의 문턱을 넘었지만 하원에서는 통과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 2030년 연금 적자가 135억 유로(약 19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재정 파국을 막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여론 악화와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 연금개혁을 밀어붙이는 프랑스 정부의 뚝심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와 정치권은 연금개혁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로 외치면서도 정작 책임은 서로에게 미루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4월까지 연금개혁안을 발표하겠다는 입장을 철회하고 보험료율 조정 등 ‘모수(母數)개혁’을 정부로 떠넘겼다. 정부는 연금개혁이 시급하다면서도 정부 개혁안은 10월, 최종안은 2027년에나 발표하겠다며 시간을 끌고 있다.
연금개혁이 미뤄질수록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은 급속도로 늘어난다. 정부가 1월 내놓은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고갈 시점은 2055년으로, 5년 전 추계보다 2년 앞당겨졌다. 저출산·고령화 가속화로 고갈 시점은 해마다 점점 빨라질 것이다. 예고된 재앙에도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주판알만 튀기며 누구도 총대를 메지 않으려는 상황이 개탄스럽다. 연금개혁의 동력이 사라지기 전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할 순 없다. 이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마크롱 정부의 결기 어린 호소를 우리도 새겨들어야 한다.
-동아일보(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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