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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분열 불 지피는 SVB 파산] [ ..‘민간 연준’ 다시 맡은 JP모건]

뚝섬 2023. 3. 20. 09:12

[ 분열 지피는 SVB 파산]

[은행 파산 사태로 ‘민간 연준’ 다시 맡은 JP모건]

[모럴 해저드]

 

 

 

분열 지피는 SVB 파산 

 

[특파원 리포트]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이 은행 줄도산과 금융 패닉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는 일단 잦아든 모양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예금을 전액 보호하기로 하고, 통화긴축 노선을 수정할 것을 시사하는 등 가능한 정책 수단을 발 빠르게 총동원한 덕이다. 그러나 SVB 남긴 불씨는 금융·경제 분야 해프닝을 넘어 2024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사회 갈등으로 옮겨붙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점포에서 고객들이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유는 SVB 사태 해법이 사실상 대규모 구제금융이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납세자의 돈이 들어갈 일은 절대 없다”면서 구제금융이란 말조차 입밖에 꺼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연방예금보험공사를 통해 건전한 은행에서 부실 은행으로 돌려막기 대출을 해주는 것이어서, 착실히 저축한 서민들 돈이 SVB 사태에 물리는 꼴이 된다.

 

현재 미국에서구제금융도덕적 해이먹튀 동의어로 통하는 말이다. 오바마 정부는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은행이 망하면 국가 경제가 망한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논리로, 부실 채권에 투자했다가 망한 민간 은행들을 천문학적 공적 자금을 퍼부어 살려놨다. 서민들이 집과 직장을 잃고 신음할 때, 되살아난 은행들은 성과급 잔치를 벌였고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 데 다시 집중했다. 그 결과 2011년 금융권의 탐욕과 빈부 격차에 분노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일어났다. 아직도 미국에서 대학생 학자금 탕감, 부유세 신설 같은 ()자본주의적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는 것을 월가 시위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버니 샌더스 같은 극좌 포퓰리스트, 도널드 트럼프라는 극우 포퓰리스트도 결국 월가 시위가 낳은 정치 분열의 단면”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한다.

 

이번에 바이든 정부가 예금을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한 은행들은 평범한 서민 금융과는 거리가 멀다. SVB 고객 대부분은 수십억~수백억원을 굴리는 테크 기업들이다. 기후변화와 성소수자 의제에 앞장선 진보 은행으로도 통했다. 이어 파산한 가상 화폐 은행인 시그니처 은행, 다음 타자로 거론되는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도 뉴욕 명품 거리와 샌프란시스코 부촌 등에 지점이 몰려있다. 이런 은행들의 도산을 막아주면 2 금융 위기에선 한숨 돌릴 있지만, 고물가와 고금리에 허덕이는 서민의 박탈감을 자극하고 이념 전쟁을 부추길 있다.

 

정계는 SVB 구제금융 논란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공화당은 “SVB 사태는 바이든의 돈풀기 정책을 믿고 방만한 경영을 하다 연준 금리 인상의 유탄을 맞고 망한, 경제정책 실패의 표본”이라고 맹공하고, 민주당은 “트럼프 정부 때 은행 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한 탓”이라고 맞선다. 15년 전 금융 위기에서 비롯된 미국의 분열이란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조선일보(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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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파산 사태로 ‘민간 연준’ 다시 맡은 JP모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미국이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로 부상하던 시대의 세 부자가 존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J. P. 모건이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록펠러는 전 세계 정유량의 90%를 통제했고, 카네기는 영국보다 많은 철강을 생산했으며, 모건은 미국을 두 번의 파산 위기에서 구했다.”

▷록펠러와 카네기는 자수성가했지만 모건은 그렇지 않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국제금융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금융 거래를 한 사람으로 재력을 가졌다. 그 자신은 독일이 학계의 중심이던 때 괴팅겐대에서 수학을 공부할 정도로 지적이었다. 석유왕 록펠러나 철강왕 카네기가 한 분야에서 기업을 키웠다면 은행가 모건은 금융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기업을 합병하고 이사회를 통해 장악했다. 미국에 연준이 없던 1895년과 1907년에 모건이 ‘1인 연준’ 역할을 한 것은 은행의 파산과 연이은 기업의 파산을 막는 것이 누구보다 자신에게 절실했기 때문이다.

▷모건은 1912년 하원 위원회에 불려나왔다. 그와 동업자들의 금융조합이 112개 기업의 341개 이사직을 차지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그는 이듬해 사망했는데 이유가 하원 위원회에서 공개적인 비방을 당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가 사망한 해 미국에서 연준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에 따라 12개의 연준 은행이 만들어져 모건 같은 민간 은행가가 하던 역할을 맡게 됐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을 전화로 찾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 중소은행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다이먼 회장은 요청을 수락한 뒤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시티 등 다른 은행 CEO와 일일이 연락해 협조 지원을 끌어냈다. 1907년 모건이 월가의 은행가들을 모아 협조 지원을 끌어낸 일을 떠올리게 한다.

은행의 파산을 막는 데 세금이 쓰이는 것은 맞지 않다. 116년 전이나 지금이나 궁극적으로 은행만이 은행을 도울 수 있다. 물론 뱅크런을 막아 은행권 전체에 이익이 될 때의 얘기지만 은행의 민간 소유권이 확고하고 은행이 자율성을 갖는 나라에서는 그렇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보면 정부가 은행장들을 한데 모아놓고 몇 마디 윽박지르는 것만으로 협조 지원 정도는 간단히 될 것 같은 나라다. JP모건의 되살아난 민간 연준 역할은 우리에게는 처음부터 없었던 은행의 한 중요한 측면을 생각해보게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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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 해저드

 

[강헌의 히스토리 팝스]

 

Pink Floyd ‘Money’(1973)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1973년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무려 958주나 머무는 신기원을 이룩하며 대중음악사의 고전이 되었다. 이 앨범의 전편을 가로지르는 즉물적이고 냉담한 사운드는 이 앨범의 주제인 현대사회에 대한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비판과 잘 어울린다.

 

현금인출기에서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로 시작하는 이 곡은 자본주의의 핵심인 돈에 대한 신랄한 사색으로 가득 차 있다. ‘아, 제발이지 돈으로 좋은 일 해라 같은 헛소리 좀 하지 마(Ah, don’t give me that do-goody-good bullsit)’라고 운을 뗀 뒤 이 노래는 다음과 같은 풍자적인 결론에 바로 도달한다.

 

“돈, 그건 범죄야/공평하게 나눠, 그러나 내 몫은 건드리지 마/돈, 그들은 이렇게 말하지/돈은 오늘날 모든 악의 뿌리라고/그러나 네가 월급 좀 올려달라고 요청할 때/그들이 절대로 안 올려준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지

 

(Money, it’s a crime/Share it fairly, but don’t take a slice of my pie/Money, so they say/Is the rootof all evil today/But if you ask for a rise, it’s no surprise/thay they’re giving none away),”

 

앞에서 인간의 도덕은 무장해제된다. 경기의 경착륙을 막기 위한 미국 정부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이 이미 파산했고 크레디스위스(CS)까지 유동성 위기에 몰리며 금융발 불안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 은행의 경영진은 파산이 공식화되기 전에 보유 주식들을 대규모로 처분했음이 드러났다. 다시 돌고 돌아 ‘모럴 해저드’다.

 

영화 ‘원초적 본능’으로 톱스타가 된 샤론 스톤이 재산의 절반을 잃었다는 뉴스로 더 알려진 SVB는 파산 후 압류 직전까지 임직원에게 연간 보너스를 지급했고 돈을 챙긴 베커 회장은 파산 사흘 뒤 하와이 마우이 섬으로 유유히 휴양을 갔다. 딱 오십년 전의 이 노래가 더 생생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강헌 음악평론가, 조선일보(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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