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은 치욕 견디며 역사 기록했던 사마천 "지나간 일 쓰며 다가올 일 생각했다"]
[기록을 '조작'하는 국가기록원]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
갖은 치욕 견디며 역사 기록했던 사마천 "지나간 일 쓰며 다가올 일 생각했다"
사기 열전(총 4권)
사마천 지음 l 김원중 옮김 l 출판사 민음사

옛날 중국 한나라 때 살았던 사마천(기원전 145~86년)은 ‘사기(史記)’라는 역사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어요. 왕들의 이야기인 본기, 제후들의 기록인 세가, 특별한 인물들의 이야기인 열전, 주제별로 역사를 기록한 서, 연표인 표입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기본적인 틀을 만든 사람이 바로 사마천이지요.
그중에서도 인물 중심 이야기인 열전은 옛사람들의 삶에 담긴 교훈을 배울 수 있어 따로 책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총 70장으로 이뤄졌는데, 큰 재산을 쌓은 사람이나 엄하게 법을 집행한 관리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요.
열전에 실린 이야기들을 조금 살펴볼까요? 첫 장은 백이와 숙제 이야기입니다. 백이는 고죽이라는 작은 나라의 왕위를 이어받을 사람이었지만, 동생 숙제와 서로 왕 자리를 양보하다가 어느 쪽도 왕이 되지 못하고 나라를 떠나게 됩니다. 그들은 당시 힘이 커지고 있던 주나라로 가지요. 그런데 주나라의 왕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다른 나라를 정벌하려고 군대를 일으킵니다. 이것을 본 형제는 “아버지 장례도 끝내지 않았는데 전쟁을 하다니, 이것은 불효다”라고 비판합니다. 그러고는 주나라의 곡식조차 먹지 않고 산에서 나물을 캐 먹으며 살았습니다. 사마천이 보기에 정의롭게 산 백이와 숙제는 결국 굶어 죽었고, 정의롭지 않은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차지하며 잘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마천은 이런 질문을 던졌죠. “이런 것이 하늘의 도리라면, 이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이번엔 ‘화식열전’이라는 장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화식(貨殖)은 재물을 늘린다는 뜻입니다. 이 장에는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요.
여러 세대 동안 부유했던 임씨 가문은 부유한 이들이 사치할 때 검소하게 살며 농사와 목축에 힘썼습니다. 밭과 가축을 살 때도 미래를 내다보고 값이 비싸도 질 좋은 것을 고르며 부를 축적했다고 합니다. 또 조간이라는 사람은 노예를 귀하게 대했습니다. 사납고 교활한 성격의 노예에게도 기회를 주어 생선과 소금 장사를 시켰고, 사람들을 잘 관리하며 큰 부를 쌓았다고 합니다.
보통 고대의 역사책은 왕이나 전쟁, 나라의 흥망성쇠 같은 큰 정치사만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은 돈을 벌고 재산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역사로 기록했지요. ‘화식열전’은 그냥 ‘부자 자랑’이 아니라, 어떤 태도와 선택이 부를 만들고 지켰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마천은 백성들의 삶과 현실적인 문제에도 깊이 관심을 가진 역사학자였던 것이지요.
사마천은 한무제에게 미움을 사 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인 궁형에 처해졌던 인물입니다. 그는 온갖 고통과 치욕을 당하면서도 ‘사기’ 저술에 몰두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현인과 성인은 모두 마음속에 맺힌 울분을 발산할 길이 없어서, 지나간 일을 서술하며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조선일보(2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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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조작'하는 국가기록원

왼쪽은 국가기록원이 조작한 사진. 오른쪽 위는 1945년 8월 16일 좌익 집회, 오른쪽 아래는 1945년 9월 9일 미군 및 석방 영국군 포로 환영 집회사진이다. /국사편찬위, 국가기록원
지난달 31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가기록원이 열었던 ‘광복 80년 국가기록특별전: 빛으로 이어진 80년의 기록’ 야외 전시회는 국가기록원이 역사와 기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45년 8월 좌익의 소련군 환영 집회 사진과 9월 미군 환영 집회 사진을 합성해 같은 날 촬영한 사진인 것처럼 전시했다. 별도로 열린 미소 두 연합군 환영 사진을 광복을 자축하는 군중 사진으로 조작한 것이다(2025년 9월 2일 조선닷컴: 연합군 환영 사진 2장 합성… ‘광복의 환호’로 조작한 국가기록원).
국가기록원에서 전시한 사진은 얼핏 보면 뭉클하다. 광장에 몰려와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 시민들 표정이 마치 연출이라도 한 것처럼 촬영돼 있다. 뒤쪽에는 태극기가 게양된 건물 옥상까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광복을 기뻐한다.
그런데 이 사진은 조작이다. 1945년 9월 9일 미군 진주와 함께 용산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영국군을 환영하는 사진과 해방 다음 날인 1945년 8월 16일 소련군이 진주한다는 소문에 서울역으로 몰려든 좌익 계열 집회 사진을 교묘하게 이어 붙였다.
성격도 날짜도 전혀 다른 두 사진을 국가기록원은 포토샵으로 합성한 뒤 ‘광복의 환희’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 도록에는 영국군과 미군을 환영하는 장면을 푸른 하늘과 합성해 싣고서 또 ‘그날의 환희’라고 제목을 붙여 놓았다. 국가 기록을 목숨 걸고 지키고 정리해야 할 국가기록원이 역사를 합성했다. 해방에 연합군이 끼친 영향은 삭제되고 환호하는 허깨비만 남았다.
그뿐인가. 좌익 계열이 들고 있던 플래카드에서 ‘붉은 군대 만세’ ‘C.C.C.P’(소비에트연방공화국)라는 글자를 삭제하고 전시했다. 사진 합성에 사용했던 서울역 좌익 집회 원본 사진 또한 도록에 싣고 역시 ‘광복을 환호하는 사람들’이라고 붙여 놓았다.
왜 이런 짓을 했을까. 국가기록원은 “환호하는 군중 사진이 부족해서 두 사진을 이어 붙였을 뿐, 역사 왜곡 의도는 없다”고 했다. 글자가 지워진 사진에 대해서는 “기록원에 있는 사진에 그 글자가 없다”고 해명했다.
한심하다. 기록원 공무원이 할 말인가. 게다가 저 서울역 좌익집회 사진에 대해서는 이게 어떤 집회인지 알지도 못했고, 러시아 글자가 지워지지 않은 사진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무지한 채, 자기네 아카이브에 있는 사진들을 대충 끄집어내서 대충 오려 붙여서 대충 전시회를 열어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역사라고 가르치려 한 이 작태를 어떻게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정치권에서는 근현대사를 두고 역사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자기네 주장과 다른 주장은 ‘역사 내란’이고 ‘매국노’라고 극언을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역사를 기록하는 국가기록원이 이 정치 전쟁에 개입해 버렸다.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역사가 탄생했다. 이런 거짓 역사가 쌓이면 언젠가 팩트와 진실을 몰아내고 거짓이 진짜 행세를 할 날이 온다.
‘팩트는 신성하다’는 말이 있다. 팩트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팩트에는 신성한 힘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거짓은 폭로되고, 거짓을 만들고 퍼뜨리는 세력은 팩트에 의해 단죄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안 무서운가.
-박종인 기자, 조선일보(2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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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보다 무거운 죽음
[내가 만난 名문장]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습니다. 하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습니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의 ‘보임안서’ 중에서
기원전 97년 사형수 신분의 마흔아홉 한 남자가 자신의 성기를 자르는 궁형을 자청했다. 사형보다 더 치욕스럽다는 궁형을 자청한 까닭은 미처 못다 한 말, 즉 평생을 준비해 온 역사서를 다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을 확률 20%에 도전한 무모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하늘조차 그를 데려가지 못했다. 그의 의지가 하늘을 감동시켰다.
이듬해 지천명 오십의 사내는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런데 그에게 씌워졌던 반역죄가 무고였음이 밝혀졌다. 세상에 이런 억울함도 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억울함과 울분을 마지막 남은 일, 역사서를 쓰는 일에 쏟았다. 기원전 90년, 그의 나이 55세 무렵 역사서는 마침내 완성되었다.
그는 지나온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오래전에 부쳐온 입사 동기 임안이 보낸 편지에 답장을 썼다. 역사서에다가는 밝힐 수 없었던 궁형을 전후로 한 자신의 심경, 역사서를 끝내야만 했던 까닭,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격정적으로 밝혔다. 이 글이 중국 10대 문장의 하나로 꼽는 ‘보임안서’이고, 그가 죽음과 바꾸면서까지 완성하고자 했던 역사서가 바로 ‘사기(史記)’다. 그리고 그 사내의 이름은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년∼기원전 90년)이었다.
사마천은 지독한 고통, 고독, 고뇌 속에서 위대한 생사관을 터득했다. ‘사기’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서 ‘고귀한 만큼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사마천의 이 위대한 생사관을 통해 탄생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지도층에 던지는 귀중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려면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달라야 한다!’
-김영수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 동아일보(2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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