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공포의 중국 입국 심사] [모두를 감시하는 나라, ‘여행 기피국’]

뚝섬 2024. 1. 27. 06:28

[공포의 중국 입국 심사]

[모두를 감시하는 나라, ‘여행 기피국’ 된 중국]

[꼭두각시 연극]

[개방한다면서 ‘죽의 장막’ 다시 치는 중국]

[11달 만의 한중 고위회담… ]

[남 일 아닌 중국의 反간첩법] 

[코에 걸면 코걸이 중국 ‘反간첩법’, 여행객·기업들 주의해야]

 

 

 

공포의 중국 입국 심사

 

올 초 20대 한국 남성이 서울을 출발, 베이징에 들렀다가 유럽으로 갈 때다. 베이징 국제공항에 비행기가 착륙, 다른 여행객 속에 섞여서 나오는데 중국 세관원이 그를 지목해 따라오라고 했다. ‘환승(transit)’ 피켓을 든 안내원에게 다가가기 전이었다. 몇 시간 공항 밖을 나갔다 출국하는데도 열 손가락 지문을 찍고, 안면인식기에 얼굴을 대야 했다. 중국 세관원이 어떤 시스템에 의해 그를 지목했는지 알 수 없었다. 세관원은 이미 그의 얼굴과 여행지를 알고 있는 듯했다.

 

▶40대 회사원 K씨는 지난해 중국 출장용 비자 신청서를 쓰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총 6페이지 신청서에 군 복무 관련 6개 항이 있었다. 병과·주특기·계급·복무기간 등을 모두 써야 했다. 최종 학력 및 전공도 적었다. 부모와 배우자, 자녀의 생년월일 및 출생지 항목도 있었다. 직장 항목에선 상사 두 명의 이름, 직위, 전화번호를 채워야 했다. “나는 물론 우리 가족과 직장 및 윗사람의 모든 정보가 털린 느낌”이라고 했다. 모두 중국이 지난해 7월 반(反)간첩법을 강화한 후 생긴 일들이다.

 

▶중국을 오가는 한국인들은 최근 입국 심사 관련 경험을 나누며 “별일 없었냐”는 인사를 주고받는 게 유행이다. 2020년 이후 코로나 시기에는 중국 입국이 물리적으로 힘들었는데, 이제는 정신적으로 피곤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중국에 근무했던 전직 외교관은 최근 “절대 중국에 가지 말라”고 말하고 다닌다. “반간첩법 시범 케이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70대 한국인 사업가가 다이어리(업무용 노트)에 부착된 작은 세계지도 때문에 중국 선양 공항에 억류된 사건이 발생했다. 대만이 ‘타이완’으로 한국·일본 등과 똑같은 국가로 표시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30년간 중국에서 사업을 해 온 그는 “지도가 부착된 줄도 몰랐다”고 했다. 세관원들은 한 시간 후에 지도를 뜯어내고서야 그를 풀어줬다. 중국 공산당이 평소 그의 중국 내 행적을 5G 감시 시스템으로 지켜보다 핑계를 만들어 심리적 위협을 가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미국 퓨 리서치센터가 24국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한 결과 중국에 부정적인 응답자가 67%였다. 한국 국민은 77%가 중국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중문과가 영문과를 제치고 어문계열 1위’ 기사가 많이 나왔지만 최근 중국어 인기는 온데간데없어졌다. 그 이유를 중국 공산당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하원 논설위원, 조선일보(24-01-27)-

_______________

 

 

모두를 감시하는 나라, ‘여행 기피국’ 된 중국

 

올 크리스마스 시즌, 여행 가성비만 보면 일본보다 중국이 훨씬 낫다. 도쿄 최고급 제국호텔의 1박 숙박비는 230만원에 달하는 반면 상하이 최고급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의 스위트룸은 100만원 수준이다. 상하이 5성 호텔의 평균 숙박비는 50만원 정도로 도쿄의 절반도 안 된다. 황금 시간대 서울~도쿄 왕복 항공료는 100만원에 달하지만 서울~상하이는 50만원 선이다. 상하이가 가성비 여행지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외국인들이 발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중 중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47만명에 불과했다. 일본 방문객(1071만명)의 4% 수준이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상반기(856만명)에 비하면 95% 격감했다. 요즘 자금성, 만리장성에선 서양인 관광객들이 누구나 셀럽(유명인)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중국 현지인들이 앞다퉈 “같이 사진 찍자”고 달려들기 때문이다. 중국이 여행 기피국이 된 데는 7월부터 시행한 반간첩법 영향이 크다. 간첩 행위를 ‘국가 안보 및 이익에 위배되는 활동’이라고 맘대로 규정하면서, 외국인 체포·억류가 빈발하자 많은 서방 국가가 중국 출장, 중국 여행 자제령을 발동했다.

 

▶국내 기업들도 중국 출장자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있다. 중요 정보가 저장된 기존 스마트폰은 국내에 두고, ‘서브 폰’을 갖고 가게 한다. 삼성전자는 중국 출장자에게 중국 비판 기사를 검색하지 말 것,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로 파일을 전송하지 말 것, 군사·방산시설, 시위 현장 방문이나 사진 촬영을 하지 말 것 등 금기 사항을 사전 교육하고 있다.

 

AI(인공지능) 안면 인식 기술에 바탕한 중국의 국가 감시망은 중국 내 탈북민 신변 안전에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호텔, 기차역, 주요 거리 곳곳에 설치된 ‘안면 인식기’로 탈북자를 색출해 내는 통에, 탈북 지원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고 한다. 한 탈북민 지원단체 관계자는 “개인 민박만 이용했는데도 중국 경찰이 동선을 모조리 다 파악하고 있어 모골이 송연했다”고 말했다.

 

▶모두를 감시하는 나라가 된 중국은 세계 3대 금융 허브였던 홍콩에 직격탄이 됐다. 2020년 반중국 활동가를 종신형에 처하는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이후,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대거 철수하자, 홍콩 금융인들은 홍콩을 ‘금융 허브 유적지(遺址)’라고 자조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직원은 “세계 3대 금융 허브를 건설하는 데 100년이 걸렸는데 폐허로 변하는 덴 5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공산당 숭배자 시진핑이 만든 새 중국이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3-12-22)-

_____________

 

 

꼭두각시 연극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한 마당 잘 놀아보세”라고 외치는 옛 재인들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봉장작희(逢場作戲)라는 중국 성어 말이다. 흥겨운 자리를 만나[逢場] 제대로 놀아보자[作戲]는 엮음이다. ‘때나 상황에 원활히 맞춰 나가다’라는 속뜻이 있다.

 

이 ‘장(場)’은 평탄하게 펼쳐진 장소를 우선 가리킨다. 그러나 위의 성어 쓰임에서와 같이 놀이판이 벌어지는 ‘마당’의 뜻도 강하다. 그러니까 일부러 설치한 무대라고도 볼 수 있다. ‘작장(作場)’이라는 단어가 그래서 나왔다. 옛 중국 연희(演戲)의 역사에서 자주 쓰인 말이다. 공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놀이마당[場]을 짓는[作] 일이다. 이 맥락에서 ‘장’이라는 글자는 곧 ‘무대’라는 새김을 굳힌다. 중국에서는 이 새김으로 글자 쓰임이 풍성하다.

 

무대에 오르는 일이 우선 등장(登場)이다. 중국은 달리 상장(上場)으로도 적는다. 그 반대는 하장(下場)이나 퇴장(退場)이다. 그렇게 무대 등에서 벌어지는 모습이 장면(場面)이자 장경(場景)이다. 연극의 시작과 끝은 개장(開場)과 종장(終場)으로도 적는다.

 

인생은 연극 같다(人生如戱)”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는 중국인들이다. 그래서 제 삶을 연극이 펼쳐지는 무대와 배우의 행위에 곧잘 견준다. 원(元)나라 이후 줄곧 발전해 온 민간 희극의 역사에서 큰 영향을 받았을 법하다.

 

요즘 중국이라는 역사 무대에서는 어떤 연극이 펼쳐지나. 강력한 권력자 한 사람이 숱한 당정(黨政) 관료를 이리저리 까부르는 꼭두각시 연극은 아닐지 모르겠다. 아주 많은 대중은 그에 갈채를 보내는 봉장(捧場) 역할이고 말이다.

 

중국인들이 펼치는 이 큰 놀이마당의 끝이 궁금해진다. 11년 전 거창하게 건 ‘중국의 꿈(中國夢)’은 이뤄질까. 자칫 잘못하면 덧없는 봄날의 꿈, 일장춘몽(一場春夢) 신세는 아닐지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유광종 종로문화재단대표, 조선일보(23-12-22)-

_____________

 

 

개방한다면서 ‘죽의 장막’ 다시 치는 중국

 

[특파원칼럼]

해외서 反中시위 참여 독일인 입국 과정서 구금
‘반간첩법’ 등 통제 강화로 외국인까지 옥죄려 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한국에서 열린 반중(反中)시위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해보자. 좀 더 구체적으로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이 서너 달쯤 뒤 중국 여행을 가게 된다면 도착한 공항에서 체포될 수 있다. 중국 공안은 시위에 참여한 당신 사진을 증거라며 들이댈 수도 있다. 공안은 함께 시위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의 신상 정보를 내놓으라고 당신을 압박할 수도 있다. 당신은 곧바로 한국으로 쫓겨날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중국 공안의 불법적인 정보 요구는 계속될 수 있다.

가정형으로 서술했지만 모두 ‘완료형’ 사실이다. 최근 중국계 독일인 ‘알렉스’(가명)가 겪은 일이다.

독일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코렉티프는 8일 알렉스가 지난달 말 중국에 갔다가 공항에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알렉스는 조사를 받고 하루 만에 독일로 추방됐다. 이 사실은 중앙통신사, 쯔유(自由)시보를 비롯한 대만 언론에도 보도됐지만 중국 매체에는 전혀 실리지 않았다. 알렉스는 중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별도 조사실로 불려 갔다. 조사관은 그에게 “(독일에서) 반중 시위에 참여했느냐”고 다그쳤다. 알렉스는 처음에는 부인했다. 하지만 조사관이 시위에 참여한 그의 사진을 꺼내 놓자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관은 알렉스에게 “누가 시위를 조직했는가” “어떤 사람들이 시위에 참가했는가” “시위대는 누가 움직이는가” 등 시위 내용과 배후에 대해 캐물었다.

같은 질문들이 몇 시간 동안 반복되자 두려워진 알렉스는 시위에 참여한 다른 두 명의 이름을 댔다. 소속과 신체적 특징도 말했다. 알렉스는 다음 날 독일로 추방됐다. 하지만 당시 조사관은 독일에 있는 알렉스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해 추가 정보 등을 요구했다.

이 사건에는 무서운 대목이 곳곳에 있다. 중국 공안은 독일에서 벌어진 시위 사진을 어떻게 확보했을까. 누구에게 찍으라고 했을까. 그리고 왜 가지고 있었을까. 사진 속 수많은 시위 참가자 가운데 알렉스를 어떻게 가려냈을까. 시위 참가자 신상정보를 확보해 무엇에 쓰려고 했을까. 해외에서 외국인이 중국을 비판하면 중국에 입국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는 한국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독일 보안 당국은 중국 공안이 독일 시민에게 강제로 정보 제공 압력을 가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심각한 외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조사에 착수했다. 일부 독일 의원은 중국 여행 경보 발령을 정부에 요청했다. 독일 외교부는 중국이 외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인을 상대할 때 국제법에 따른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중국은 ‘반간첩법’ 등을 제정해 사회 분위기를 폐쇄적으로 옥죄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제 시위 현장을 지나다 우연히 사진을 찍어도 간첩으로 몰릴 수 있다. 중국에서 인터넷으로 ‘티베트’나 ‘인권’ 같은 민감한 단어를 검색해도 위험하다. 간첩은 아니지만 외국과 협력하는 많은 중국인은 물론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들마저 두려워하며 행동을 스스로 검열하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틈만 나면 개방을 강조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죽(竹)의 장막’이 갈수록 견고해지고 더 무서워지고 있다. 그 장막에 갇혀 신음했던 과거를 중국은 개혁개방 40년이 지나면서 점점 잊어가고 있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동아일보(23-07-17)-

_____________

 

 

11달 만의 한중 고위회담…

 

‘험악한 갈등 진정’ 전환점 삼으라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지난주 아세안(ASEAN)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11개월 만에 만났다. 양국 외교 수장은 북핵 문제와 남중국해 갈등에서 여전한 견해차와는 별개로 양국 간 대화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정상회담을 포함하는 고위급 교류와 차관급 전략대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회담은 다자 외교장관회의에서 빠져나와 45분간 대화하고 복귀하는 형식으로 성사됐다.

이번 한중 고위급 회담은 최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중국 베팅’ 발언이 빚은 험악한 갈등을 진정시키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는다. 싱 대사의 발언은 미국 일본과 밀착하는 한국의 행보에 대한 불만을 고압적으로 표출한 것이었지만 불필요한 외교 참사였다. 박진-왕이 회담에서 성숙한 한중 관계를 위해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이자고 한 만큼 상황 관리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방 대 중-러’의 진영 대결이 뚜렷해지는 신냉전 상황에서 한중 양국이 실질적 관계 개선을 만들어낼지는 미지수다. 일단 상대에 대한 언어의 톤을 낮추자는 ‘봉합’ 수준이 아닌지 싶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묵은 갈등을 비롯해 미중 전략대결 속에서 가치외교를 더 중시하는 한국의 외교적 선택 등 쉽사리 타협점을 찾기엔 사안이 복합적 중층적이다.

 

한중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이웃 나라다. 불필요한 갈등은 최소화하고 생각의 차이를 줄여 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미국도 국무장관 재무장관에 이어 오늘 대통령 기후변화 특사가 베이징을 방문한다. 우리도 한중 고위급 협의 재개와 함께 2019년 이후 중단된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되살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만나서 ‘구동존이(求同存異·다른 점은 인정하되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의 정신을 살려내는 것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동아일보(23-07-17)-

_______________ 

 

 

남 일 아닌 중국의 反간첩법

 

[특파원 리포트]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에서 일본인이 간첩으로 잡혀가는 일이 꽤 잦다. 지난 2월 후난성 창사에서 50대 일본인 남성이 간첩죄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3월엔 일본 제약사 중국법인의 고위직이 베이징에서 간첩 혐의로 구속됐다. 귀국을 앞두고 호텔에 묵던 그가 체크아웃을 하는 순간 공안이 덮쳤다고 한다. 면책 특권을 갖는 외교관도 예외가 아니다. 작년 2월 베이징에서 일본 외교관이 간첩 의심을 받던 중국 언론인과 식사하다 한 호텔 방으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2014 이후 최소 17명의 일본인이 중국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구체적 혐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부분 ‘중국통(中國通)’ 학자나 기업 고위직이다. 중국 관료와 만나 북한 상황을 물어본 일본인 사업가가 체포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동중국해·대만 문제 등으로 중일 관계가 악화된 시기에 체포·처벌이 집중된다. 일본은 중국과의 고위급 회담마다 간첩 혐의로 수감된 자국민의 석방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중·일 간 ‘간첩 분쟁’에 관심이 적었다. 중국이 ‘간첩 카드’로 한국을 압박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2014년 중국 반간첩법 제정 이후 한국인이 이 법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없다”고 했다. 청나라 때부터 일본 간첩에 시달린 중국이 과민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는 시각마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남 일 아니게 됐다. 외국인을 손쉽게 간첩으로 몰아갈 있는 반간첩법 개정안 이달 1일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간첩 행위의 정의를 ‘국가 기밀·정보를 빼돌리는 행위’에서 국가 안보·이익과 관련된 자료 제공’ ‘간첩 조직에 의지[投靠]하는 행위등으로 확대했다. ‘안보와 이익’의 뜻은 모호하고, 간첩 조직에 가입하지 않아도 간첩으로 간주할 수 있다. 죄를 입증 못해도 벌금형 등 행정처분이 가능하게 바뀌었다. 이런 법을 내놓고서 중국 외교부는 법치국가라 외국인도 중국 법을 지켜야 한다 했다.

 

미·일과 공조를 강화하는 한국은 개정안의 최우선 타깃이 될 수 있다. 베이징 교민 사회에서는 사드 보복으로 한국 압박 카드를 대부분 써버린 중국이 한국인 간첩 몰이에 나설 있다는 말이 나돈다. 중국에는 25만 교민이 살고 있고, 학자·기자·기업 주재원도 유독 많다. 이미 중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한인들은 ‘중국’을 주제로 한 논문 작성을 제한받고 있고, 한국 대기업 중국 법인들은 ‘종교 활동도 조심하라’는 내부 지침을 내렸다.

 

가까운 이웃이었던 한중의 사이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 중국 내 정보 반출을 막는 ‘데이터 3법’, 타국 제재 근거를 마련한 ‘대외관계법’에 이어 반간첩법 개정안으로 기업과 개인의 중국 진출 리스크가 크게 높아진 탓이다. 중국에 ‘죽(竹)의 장막’에 이어 ‘법(法)의 장막’이 드리워진 듯하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조선일보(23-07-03)-

____________

 

 

코에 걸면 코걸이 중국 ‘反간첩법’, 여행객·기업들 주의해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5일 수도 베이징에서 제2회 유라시아 경제포럼에 화상으로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이 간첩 행위의 범위를 대폭 확대한 ‘반(反)간첩법(방첩법)’ 개정안을 다음 달 시행한다. 법 규정이 모호해 자의적으로 해석·집행할 여지가 크다고 한다. 국가 안보를 앞세워 처벌을 남발할 수도 있다. 25만여 명의 우리 교민과 기업, 여행객들이 예상치 못한 피해를 당할 우려가 높다.

 

이 법은 간첩 행위의 정의를 ‘국가 안보 및 이익에 위배되는 활동’으로 넓혔다. 하지만 안보와 이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비밀 문건으로 분류되지 않은 자료와 물품도 유출 시 처벌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을 비판하는 기사를 검색·저장하는 행위만으로도 수사받을 수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다.

 

북한 관련 인사를 만나거나 북·중 접경 지역을 촬영하는 행위도 처벌될 수 있다. 여행객들이 의도치 않게 군사 시설이나 방산 업체, 보안 구역을 찍거나 시위 현장 방문, 시위대 촬영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업들의 시장 조사와 정보 수집 등도 자칫 제재 받을 위험성이 있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은 최근 잇따라 스파이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기업 실사 업체인 민츠 그룹 직원이 보안 수칙 위반 혐의로 체포됐고, 베인앤컴퍼니가 조사를 받았다. 한 다국적 리서치 업체는 대대적 압수 수색을 당했다. 하지만 어떤 규정을 위반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일부 미국 기업들은 임직원을 중국에 출장 보내는 것도 꺼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 3월에는 일본 제약회사 직원이 반간첩법 혐의로 구속됐고, 2021년엔 캐나다인 2명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됐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축구 국가대표 손준호 선수는 한 달 넘게 구금 중이다.

 

그동안 중국은 정치적으로 외국인을 체포·구금하고 외국 기업을 자기들 뜻대로 수사하곤 했다. 외국에서 처벌받은 자국 인사와 맞바꾸기 위해 ‘인질 외교’를 벌인다는 비판마저 받았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 이런 일은 더 빈번해 질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1차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큰 만큼 경각심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 여행객도 최대한 주의해야 한다. 불필요한 방문은 피하는 것이 좋다.

 

-조선일보(23-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