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이 노치원으로 ]
[엑스포 유치 실패보다 치명적인 부산의 미래]
[1000만 실버 시대… 유치원 자리에 ‘노치원’]
[“군대? 환경보호? 후배들아, 험한 일은 우리가 할게”]
유치원이 노치원으로
문득 아이가 어릴 적 자주 다닌 키즈 카페가 생각나서 찾아보니 ‘노치원’으로 바뀌어 있어서 씁쓸했다는 글을 보았다. ‘노치원’은 ‘노인 유치원’을 줄인 말이다. 어르신들이 낮 동안 머물며 돌봄을 받는 주간보호센터(데이케어센터)다. 경로당엔 가서 할 일이 마땅치 않고 요양원은 집을 떠나야 하는데, 노치원은 여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집에서 통원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장기 요양 인정 등급을 받고 이용할 수 있다.
▶저출생·고령화 여파로 유치원 등 육아 시설은 크게 줄고 노치원 등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교육·보육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전국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3만7000여 곳으로, 10년 전인 2013년(5만2000여 곳)보다 28%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노치원 등 노인 시설은 7만2000여 곳에서 9만3000여 곳으로 27% 늘어났다. 8일 국감 자료를 보면 지난 10년간 어린이집·유치원이 곧바로 노치원 등 어르신 시설로 바뀐 사례가 283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폐교를 실버타운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해 서울에서도 학교가 실버타운으로 변신하는 일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유치원과 노치원은 대상은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낮 동안 돌봐주는 것이 같고 정부 지원을 받아 이용하는 것도 같다. 노치원도 유치원처럼 셔틀버스로 데려오고 데려다준다.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색칠 놀이와 노래·율동 등으로 비슷하다. 심지어 유치원장은 노치원 설립 자격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유치원에서 노치원으로 전환이 수월한 편이라고 한다.
▶인구 감소 여파에 교육 업체들도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어린이 학습지 ‘눈높이’로 유명한 대교는 사업이 침체 국면에 접어들자 노치원 등 시니어 사업을 전담할 자회사를 설립해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역시 학습지로 알려진 구몬도 시니어를 대상으로 학습지를 배달하고 주 1회 교사가 방문해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등 시니어 분야를 키우고 있다.
▶노치원 설립이 순항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여의도 등 일부 아파트 재건축 단지에서 서울시가 기부 채납 시설로 노치원을 제시하자 아파트 소유주들이 반대해 진통을 겪고 있다. 65세 이상 1000만 시대에 접어들어 노치원 수요는 앞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노치원이 보호자 부담을 덜고 어르신 삶의 질을 높이는 순기능을 하는 것도 분명하다. 일본과 독일 등 선진국에선 보편적 복지 시설이기도 하다. 서울시 등이 행정 역량을 잘 발휘해 도심에도 공급을 늘려가야 한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4-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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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유치 실패보다 치명적인 부산의 미래
[강경희 칼럼]
65세 이상 인구 22.5% 초고령화 1着 도시… 10년간 10만명 청년 유출
베이비부머 유치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실버 수도’ 되는 건 어떤가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선정 투표가 실시된 29일 새벽 부산 동구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2030부산세계박람회 성공 유치 시민응원전에서 투표 결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되자 시민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2023.11.29/뉴스1
2030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로 부산이 가라앉았다. 2025년 엑스포가 아시아(일본)에서 열리는 데다, ‘비전 2030′ 에 총력전을 펴는 사우디아라비아 빈 살만 왕세자와의 경쟁이어서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래도 대통령이 뛰고 대기업 총수들이 가세해 기대치가 부풀었는데 저조한 득표에 실망감이 컸을 것이다.
부산이 2030 엑스포 유치나 가덕도 신공항 건설 같은 ‘이벤트’에 사활을 거는 것은 경제 상황이 심각한데도 딱히 이를 타개할 생존 전략이 없다는 방증이다. 대한민국 2위 도시라는 위상에 걸맞지 앉게 경제 활력이 계속 떨어져 왔다.
‘저출생 고령화’는 나라 전체 문제이지만 부산에서 유독 심하다. 8대 특별·광역시 가운데 일착으로 초고령화에 진입했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2.5%에 달한다. 농·산촌이 많은 충북(20.8%)이나 경남(20.5%)보다도 대도시 부산의 고령화율이 더 높다. 광역지자체로는 전남(26%)·경북(24.6%)·전북(24%)·강원(23.9%) 다음이다. 350만명 넘던 인구가 줄어 330만명도 붕괴됐다. 지난 10년간 청년(19~34세) 인구 10만명이 빠져나갔는데 그중 80%가 수도권으로 갔다. 한 여론 조사에서 20대 청년 절반(48.5%)이 부산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대한민국 1위 항만도시이지만 70년대 제조업 기반이 붕괴된 후 뚜렷한 성장 동력이 없다. 서비스업 비중이 경제의 74%를 차지한다. ‘부·울·경’ 광역경제권 얘기가 나오는데 부산 스스로의 성장 전략이나 비전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기도 어렵다. 인구 추계에 기반한 부산의 미래는 더 암울하다. 우리나라는 2020년을 기점으로 인구 감소기에 들어섰다. 수도권 인구가 절반을 넘고 비수도권이 인구를 뺏기는 모양새다. 초·중·고 학령 인구의 수도권 집중이 2020년 무렵 49.4%였는데 2040년 52.8%로 더 높아진다는 추산도 있다. 대치동 학원 찾아 상경하고, ‘인서울’ 대학 진학하고, 일자리 찾아 서울로 오니 수도권이 청년 인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을 막을 묘안은 부산뿐 아니라 어떤 다른 지역도 내기가 쉽지 않다.
부산이 지금보다 부가가치 높은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엑스포 같은 대형 이벤트가 일시적 호재는 될 수 있겠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끌어주지는 못한다. 지금 와서 제조업 비중을 늘리기도 쉽지 않고, 서울이나 수도권과 경쟁하면서 첨단 산업을 유치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대통령이 약속했지만 산업은행이 옮겨간다고 부산이 금융 허브로 발전하기도 요원하다.
그렇다면 일자리 찾아 떠나는 청년 대신 은퇴한 베이비부머 유치로 발상의 전환을 해보는 건 어떤가. ‘인구 쇼크’라는 메가트렌드는 되돌리기 힘든 세계적 추세다. 초고령 사회를 제일 먼저 경험한 부산이 그 메가트렌드에서 기회를 찾는다면 남다른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실버 도시’ 콘셉트로 도시를 재정비하고 대한민국 ‘실버 수도’로 거듭나겠다고 목표를 세운다면 전 세계에 11조달러에 이르는 ‘케어 이코노미(돌봄 경제)’에서 한발 앞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 남프랑스 등은 각각 그 나라에서 은퇴자들이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꼽힌다. 우리도 경제력을 갖춘 베이비부머들이 대거 은퇴자 대열에 들어섰다.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이 서울보다 주거비가 덜 드는 지역으로 옮기려 한다. 길어진 노후를 어떻게 보낼지는 인류가 처음 맞는 도전이다.
부산은 대도시 생활에 익숙한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이 노후를 보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다. 바다를 낀 천혜의 경관에, 서울보다 여름에 덜 덥고 겨울에 덜 춥다.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겨울에 눈도 안 내려 빙판길 낙상 염려도 적다. 서울보다 집값이나 물가가 싸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48명으로, 서울(3.35명)보다는 적지만 인천(1.76명), 경기(1.69명) 등 수도권보다는 의료 경쟁력이 있다. 전국 40곳 의대 가운데 서울에 8개, 부산에 4개가 있다.
‘실버 수도’라는 비전으로 도시 전체를 개선해 나간다면 엄청나게 선진화된다. 도로, 교통, 주택, 의료 등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서비스 품질도 노약자 친화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도블록은 울퉁불퉁하지 않게 꼼꼼히 정비하고, 운전 매너도 훨씬 더 안전하게 바뀌어야 한다. 재택 의료를 선도적으로 실시하면서 국내 의료 규제 개선에도 앞장서야 한다. 대형 병원을 확충하고 노인 질병에 특화된 진료로 차별화해나가야 한다. 새로 짓는 아파트나 오피스텔은 고령자 친화적 주거 시설을 갖춰야 한다. 은퇴자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의료 휴양도시로 소문나면 일본, 홍콩 등 다른 아시아 국가의 고령자들도 의료 관광객으로 유치할 수 있다. 그러면 일자리도 생겨난다.
청년이 떠나는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고 자조할 게 아니다. 나이 든 사람의 지혜가 있듯, 먼저 늙어본 도시의 경험을 지혜롭게 풀어내면 엑스포 유치와는 비교도 안 될 지속 가능한 발전 기회가 열릴 수 있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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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실버 시대… 유치원 자리에 ‘노치원’
유치원 4년간 459곳 줄어들 때 건보 지원받는 노인 보호센터는 5090곳으로 1800곳 넘게 늘어
21일 오후 서울 강동구 양재대로 노인돌봄센터 '엄마를 부탁해'에서 어르신들이 공놀이를 비롯한 실내체육활동을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인천시 서구에 있는 K요양원은 원래 유치원이었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원생이 줄자 유치원 문을 닫고 지난해 1월부터 고령층을 위한 요양원으로 리모델링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실버 세대 급증이 우리 사회 곳곳의 모습을 바꿔놓고 있다. 어린이들이 뛰어놀던 유치원은 노인 돌봄 시설로 간판을 바꿔 달고 있다. 공식 명칭은 주·야간보호센터로,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고령층이 대상이다. 노인들이 다니는 유치원이라고 해서 흔히 ‘노(老)치원’이라고 불린다. 지난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정부가 비용을 85%까지 지원해 주자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8년만 해도 3211곳이었는데, 작년 말 5090곳으로 급증했다. 노치원 시장이 커지는 5년 동안, 유치원 수는 459곳 줄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어린이집·유치원으로 운영되던 곳이 노인 요양 시설로 변경된 사례는 2017년부터 최근 5년간 82곳에 달했다.
고령층 돌봄 수요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베이비부머의 상징인 ‘58년 개띠’가 65세 대열에 들어서면서 내년 대한민국 고령층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하기 때문이다.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인 ‘1000만 실버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령화율(총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작년 말 17.5%로, 일본(29.9%)보다는 낮다. 하지만 앞으로 12년 뒤인 2045년, 한국의 고령화율이 37%로 높아져서 일본(36.7%)을 추월해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
1000만 실버 시대는 대한민국 경제 지형을 바꾸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흔히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부동산 같은 자산을 빼고 소득만 갖고 계산한 ‘통계 착시’다. 부동산까지 합칠 경우 60세 이상은 국내 순자산의 46%를 보유한 ‘파워 실버’다. 이들이 오래 살 걱정 때문에 지갑을 닫으면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워 실버의 자산을 젊은 층으로 이전해 소비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는 ‘부(富)의 회춘’은 우리 사회의 큰 숙제다.
-이경은/한예나 기자, 조선일보(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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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환경보호? 후배들아, 험한 일은 우리가 할게”
[서영아의 100세 카페]
청년세대 ‘뒷배’ 자처하는 파워 시니어들
저출산에 병역자원 고갈될까… 국가 유사시 징집 자원 서약
“살 만큼 산 우리가 전쟁터에”… “젊은이들은 생산에 종사하게”
모든 비용은 자비 부담 원칙… 손주들 미래 위한 환경운동도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시니어 아미 창립총회가 열렸다. 최영진 공동대표(왼쪽)가 회원들에게 모임의 명칭이 ‘징집자원60’에서 ‘시니어자원병’을 거쳐 ‘시니어 아미’로 변천돼 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시니어 아미(Senior Army)라니? BTS(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의 시니어 분과인가?
이름에서 다소 장난기가 느껴지는 이 모임, 진짜 군대(army)를 지향한다. 물론 현역 군인은 아니고 예비 병력, 어쩌면 예비의 예비 병력이다. 저출산 인구 감소로 병역자원 고갈이 우려되는 현실에서 국가적 위기가 닥치면 은퇴 세대들이 앞장서 징집에 응하겠다고 서약하는 운동을 벌인다.
23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열린 창립총회에는 백발은 희끗해도 활기가 넘치는 남녀 50여 명이 참석해 ‘국가가 부르면 우리는 헌신한다’고 다짐했다. 창립발기인의 신분과 면면은 제각각이다. 농부, 자영업자, 전직 언론인, 변호사, 정치인에 일본 영주권자도 있다. 주부를 비롯한 여성도 간간이 눈에 띈다.
시니어 아미 최영진 공동대표(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는 “회원 자격은 남녀 불문, 병역 불문, 국적 불문이다. 대한민국을 지키고 인간 기본권을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가능하다. 다만 유사시 징집을 자원하는 동원 등록 회원은 50∼75세로 한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유사시? 살 만큼 산 사람들이 전장에 나가야죠…”
주최 측에 따르면 발단은 지난해 초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인구 1억5000만 명의 대국 러시아가 예비역 30만 명 동원에 쩔쩔매는 현실을 보며 예비군의 중요성을 되새겼다. 출산율은 줄고 노인 인구는 늘어가는 한국에서 앞으로 군대가 유지되겠냐는 걱정이 만연하던 참이다. 그즈음 최영진 공동대표가 낀 60대 동창 모임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이러다 우리 군대 두 번 가야 하는 거 아냐?”
“까짓, 가면 되지 뭐. 아직 건강하고 시간도 많은데.”
“우리가 지금 등산에 마라톤에 스쿠버다이빙까지 하고 다니는데 경계병 정도야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가볍게 시작된 얘기는 조금씩 커져 갔다. 생각할수록 그럴싸했다. 요즘 군은 자동화가 진행돼 있다. 경계병이나 감시병 정도는 60대 시니어라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군대 경험이 없는 여성들도 도울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동창회, 지인 모임 등 이런저런 단체카톡방에 이런 취지를 올리니 뜨거운 반응이 올라왔다.
“그렇지 않아도 젊은 사람이 부족한데 전쟁터에 보내면 안 되지요. 요즘 시니어들이 건강하고 군사 경험이 있으니 마땅히 나서야죠. 평소 생각하던 바입니다.”(손교명 변호사)
“살 만큼 산 사람들이 전장에 나가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생산에 종사하고.”(선남규 씨·중소기업경영)
“다 같이 위국헌신 정신으로 자유민주 대한민국을 지켜 나갑시다.”(오세윤 씨·농부)
논의가 산으로 가는 일도 적지 않았다. 시니어 아미를 일자리 창출 개념으로 접근한 일부 시각이 그런 예다. 시니어를 아예 장병 수준 급여로 고용하도록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자 금세 “난 돈 주지 않으면 안 하겠다”는 주장이 튀어나왔다. 연회비 3만 원에 대해서도 “목숨 바쳐 전선에 나가겠다는데, 돈까지 내야 하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시니어 아미는 회원들의 자발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철저히 정부 지원 배제, 자비 부담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한다. 조건 없는 헌신, 대가 없는 봉사가 아니라면 시니어로서 자긍심을 얻기 어렵다는 생각에서다.
●정부 지원 배제, 자비 부담 원칙 고수
앞으로 인허가 절차를 거쳐 사단법인으로 발족할 계획인 시니어 아미는 7월 초순 홈페이지를 열어 가입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아직 구상 단계이지만 몇 가지 활동 계획은 굳히고 있다. 1년에 한두 번이라도 단기 동원훈련 정도는 해 보려 한다.
“정부가 허락하면 평시에도 주특기 훈련이나 경계근무 지원을 2박 3일 정도 할 수 있겠지요. 이런 경우 훈련장은 빌리고 총은 대여받되 밥값은 자비 부담한다는 게 원칙입니다. 동원예비군 훈련 때 몇십 명이라도 시니어들이 함께 훈련받는다면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이 단체가 출범 직전 50∼75세 장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데이터리서치)에서는 ‘은퇴한 장노년층이 동원예비군으로 다시 복무하자’는 주장에 대해 57.3%(적극 찬성 29.4%, 다소 찬성 27.9%)가 찬성했다. 이 같은 취지를 서약하자는 운동이 벌어진다면 참여하겠다는 답변은 61.4%(적극 동참 27.5% 가급적 참여 33.9%)에 이르렀다.
“개인적으로 예비역 장군에게 얘길 꺼내 봤는데 그분도 반색하더군요. 해병전우회 장부상 회원이 100만 명, 한국ROTC중앙회 장부상 회원은 20만 명에 성우회(장군들의 모임)도 있습니다. 이런 모임들이 조직적으로 가입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최영진 공동대표)
“저희 세대 사이에서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일단 100만 회원 가입이 목표입니다. 우리 경쟁 상대는 BTS 팬클럽 아미예요. 하하.”
인원이 늘면 세력화가 진행되고 정치색이 끼어들 수도 있다. 자칫 제2의 태극기부대로 오인받을 가능성은 없을까.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은 권재홍 전 MBC 부사장은 “그런 우려를 저희도 좀 했고 그래서 가장 큰 원칙을 ‘정치적 중립’으로 삼았다”고 잘라 말한다. “국가 안보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지요. 조심조심 경계할 것은 경계하되, 너무 무겁지 않게 운영해 나갈 생각입니다.”
●“노년이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
‘우리가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는 구호를 내걸고 창립발대식을 가진 60+기후행동은 손주들에게 보다 나은 지구 환경을 물려주자는 노년 세대의 활동이다. 60+기후행동 제공
손주 세대의 미래를 걱정하며 행동에 나선 시니어들도 있다. 지난해 1월 출범한 ‘60+기후행동’은 “손주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다”며 시니어가 나서서 행동하는 환경운동을 표방한다. 기성세대가 성장 중심으로 앞만 보고 달려오는 사이 미래 세대가 살아갈 환경을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성찰이 배경에 깔렸다.
스웨덴의 소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당사자로서 일상의 환경운동을 추동해 냈다면 이들은 자손들을 걱정하는 부모 마음을 담아 활동하는 것이다.
시위 방식도 독특하다. 대규모 인원이 주먹을 쥐고 목소리를 높이는 형태가 아니라 시니어 한두 명이 피켓을 들고 문제의 현장을 기웃대는 ‘어슬렁 시위’ 같은 것을 펼친다. 자체 밴드를 만들어 ‘방탄노년단’이라 이름 붙이고 즐기기도 한다.
강남식 60+기후행동 공동대표는 “기후 관련한 모든 숫자들이 다음 세대가 미래를 꿈꾸는 것은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말해준다”며 “우리는 노년이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는 기치 아래 모였고, 미래 세대의 미래와 노년 세대의 여생을 위해 ‘녹색 전환’을 추구하는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 초고령사회의 새로운 노인들
이처럼 현역이 아니어도,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해도 미력이나마 세상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시니어들의 활동은 연간 100만 명 전후씩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머릿수 힘까지 더해 강점이 되고 있다.
2000년대 초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미래포럼’은 베이비붐 세대가 앞장서 초고령사회의 체인지메이커가 되겠다고 표방하며 ‘우리가 디자인한다’는 뜻의 ‘우디클럽’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과거의 노인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대라고 규정하고 새로운 노인들이 사회에도 도움이 되고 스스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이 같은 활동 배경에는 자식 세대의 빈 곳을 보완하겠다는 의지에 더해 세상에 대한 작은 참여로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확인하고 싶은 은퇴 세대의 바람이 담겨 있다. “난 아직 죽지 않았다”고 외치는, 또 실제 그럴 능력이 충분한 이들이 바꿔놓을 미래가 다가온다.
-서영아 기자, 동아일보(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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