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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17% 찍은 日 기시다]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교훈]

뚝섬 2023. 12. 16. 07:33

[지지율 17% 찍은 日 기시다]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교훈]

[기시다 최악 지지율과 ‘아오키 법칙’] 

[끝 모를 지지율 하락, 기로에 선 기시다 日총리]

 

 

 

지지율 17% 찍은 日 기시다

 

일본인이 뽑은 올해의 한자는 ‘세(稅)’였다. 증세와 감세가 뒤섞인 정책이 일본인 마음을 흔들었다는 뜻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방위비 증액과 저출산 대책을 위해 세금 인상을 공언해 왔다. 인기 없는 정책이었다. 그러다가 10월 들어 “더 걷은 세금을 돌려 준다”며 난데없이 감세 정책을 꺼냈다. 이게 역풍을 맞았다. 총리가 내년에 있을지 모를 총선을 앞두고 “인기에 영합한다”는 이유였다. 5월만 해도 50% 선이던 지지율은 어제 공개된 지지(時事)통신 조사에선 17.1%까지 추락했다. 이 숫자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결정타는 총리 취임 2년을 넘기며 터진 자민당 파벌 비자금 사건이었다. 아베파(派)는 후원금 모금을 위해 기업이나 단체에 파는 행사 티켓(20만 엔·180만 원)을 의원 1인당 50장씩 할당했다. 할당량보다 더 팔면 의원들이 갖도록 했는데, 이렇게 챙겨둔 돈 45억 원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게 도쿄지검 특수부가 보는 혐의다. 여론이 나빠지자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등 장관 4명을 경질했고, 부대신 5명도 교체를 예고했다. 9명 모두 아베파 소속이다.

▷기시다 총리가 아베 파벌 색깔 지우기에 나섰지만 결국은 제 발등 찍기에 가깝다. 이들 도움 없이는 총리직 지탱이 어렵다. 당내 역학관계가 그렇다. 기시다파는 아베파(의원 99명)에 비해 한참 모자란 4번째 파벌(45명 전후)이다. ‘아베시다 정권’이란 별칭에서 보듯 총리 이름이 오히려 뒤에 붙었다. 총리가 주도자가 아니란 뜻이다. 그가 내세운 ‘한국과 중국에는 엄격히’ 구호도 강경한 아베파를 의식한 것이었다.

 

자민당은 1955년 출범한 뒤로 64년 가까이 통치했고, 4년만 야당이었다. 민주국가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정권교체란 파벌끼리 권력 넘겨주기와 동의어가 됐다. 그만큼 쉽다 보니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단명(短命) 총리가 속출했다. 아베(1년), 후쿠다(11개월), 아소(1년), 하토야마(8개월), 간 나오토(15개월), 노다(16개월), 2번째 아베(7년 8개월), 스가(1년)…. 거대 계파의 확실한 리더(작고한 아베 전 총리)만 예외였다.

소수파 리더인 기시다 총리는 스캔들을 견뎌낼까. 당내 경쟁자는 용퇴론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당 기반도 약한데, 지지율은 바닥이다. 기시다 총리가 출산율 제고, 반도체 등 첨단산업 회생, 방위력 증강처럼 장기간 뒷심이 필요한 정책을 주도해 내기란 기대 난망이다. 신냉전시대를 맞은 지금 한미일 3각 협력은 더없이 중요해졌다. 3국 지도자의 위상과 협력 고리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고령의 바이든이 치를 내년 대선도 변수고, 자민당 내 온건파인 기시다도 휘청이고 있다. 우리만 고비를 맞은 게 아니다.

 

-김승련 논설위원, 동아일보(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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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교훈

 

[특파원칼럼]

기시다 日 총리도 자유롭지 못한 비자금 의혹
견제와 균형 사라진 정치 현실, 피해자는 국민

 

불과 3주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지난달 25일 동아일보 ‘글로벌 포커스’ 지면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지지율 하락을 분석하는 기사를 썼을 때다. 당시 만난 일본 정치학자와 주요 신문 정치부 기자들은 “집권 자민당 파벌 정치자금 문제가 심상찮다.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 며칠 전 도쿄지검 특수부가 자민당 관계자를 소환해 참고인 조사를 한다는 기사가 주요 언론에 등장했다.

물론 당시 취재원이나 기자 모두 비자금 의혹을 기시다 총리에게 닥친 악재 중 하나로 봤다. 하지만 파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일본 정치권의 모든 현안과 내정, 그리고 외교 논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일본 정치의 비자금 역사는 길다. 금권(金權)정치의 상징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는 1976년 뇌물 5억 엔을 받은 ‘록히드 사건’으로 체포됐다. 최대 정보산업 기업 리크루트가 계열사 주식을 상장 직전 정·관계 유력 인사들에게 뿌린 1988년 ‘리크루트 사건’은 내각 붕괴를 불렀다. 1955년 창당 이래 이어진 자민당 1당 독주 체제가 무너진 것도, 일본 특유의 중선거구제가 폐지되고 정치자금 관련법이 엄격해진 것도 이때부터다.

 

자민당 비자금 의혹은 후원금 모금 행사에서 할당액 이상을 모은 의원들에게 초과분을 돌려줘 비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 핵심이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 간부를 내각에서 손절(損切)하는 정도로 이 사태를 해결하려 하지만 자신이 회장을 맡았던 기시다파도 비자금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와 수사는 생물(生物)’이라는 격언은 국경을 초월한다. 자민당에서는 총리 퇴진 이후를 상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계(視界) 제로(0) 상황이다.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을 보면서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강경 보수가 절대 1강(强) 자리에서 20년 넘게 사회 우경화를 이끌면서 민주주의 핵심 원칙인 견제와 균형은 약해진 지 오래다. 아베 전 총리가 자기 입맛에 맞는 인물을 검찰총장에 임명하기 위해 검찰 정년을 연장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려다 해당 인물의 도박 스캔들로 실패한 것이 3년 전이다. 30년 만의 대표 온건파 출신으로 취임 초 기대를 모았던 기시다 총리는 정책은 물론 인사에서조차 강경파 눈치를 보며 ‘적재적소’ 대신 ‘파벌 배분’으로 일관했다.

한국 사회에 이른바 국민정서법이 있다면 일본에는 ‘구키(공기·空氣)를 읽는다’는 특유의 사회 분위기가 있다. 자민당 장기 독주 체제에서 보수 강경파에 쓴소리하며 맞선다는 건 눈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 폐단이 쌓여 제2의 록히드 사건, 21세기판 리크루트 사건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 정치가 일본 정치보다 낫다며 자평해 왔다. 민주화 이후 5년 또는 10년 주기로 정권이 교체되며 일부 부조리를 털어낸 이제까지 역사는 그런 평가에 합당하다. 하지만 정권 안팎의 경고음에도 민심과 동떨어진 집권 여당, 당 대표가 위증 교사 및 개발 특혜 의혹 피고인인데도 반성의 기미가 없는 야당은 최악의 신뢰도와 형편없는 정치력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는 무조건 박살내야 하는 대상이며 내 편만 옳다고 응원하는 팬덤 정치 앞에서 견제와 균형은 길을 잃었다. 1명당 1억 원 안팎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바람 앞 등불 신세가 된 일본 정치를 운동 경기 보듯 관전하기에는 한국 정치 현실이 위태롭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짊어질 수밖에 없어서 더 그렇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동아일보(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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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최악 지지율과 ‘아오키 법칙’

 

일본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지지율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의 11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각 지지율은 21%, 지지하지 않는다는 74%였다. 자민당 지지율도 24%에 그쳤다. 아사히와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서도 내각 지지율이 25% 이하로 나왔다. 모두 2012년 자민당이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은 이후 최악의 수치라고 한다. 그러자 여론조사 결과로 일본 정권의 붕괴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는 ‘아오키 법칙’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아오키 법칙은 자민당 간사장과 관방장관을 지낸 아오키 미키오 전 의원이 제시한 것으로 3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내각 지지율과 정당 지지율의 합계가 50을 밑돌 때이다. 두 번째는 30 대 50 대 20 법칙으로 자민당 지지율 30%, 무당파 50%, 야당 지지율 20%의 비율이 무너질 때이다. 세 번째는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 비율이 내각 지지율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을 때이다. 마이니치 조사를 보면 내각과 정당 지지율 합계가 50을 밑돌고, 자민당 지지율은 30% 미만이며, 정권 지지율과 비지지율 차이가 50%포인트를 웃돈다. 아오키 법칙이 모두 들어맞는 상황이다.

▷올 5월만 해도 50% 안팎의 지지율로 “선진국 중 가장 안정적 기반을 갖고 있다”고 자랑했던 기시다 정권의 인기가 급락한 이유는 뭘까. 우선 일종의 디지털 주민증인 ‘마이 넘버 카드’를 서둘러 도입했다가 수많은 행정오류가 발생한 게 영향을 줬다고 한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사안에서 불편을 초래한 것이다. 장남 비리 등 가족 문제와 자민당 소속 차관급 인사 3명이 스캔들로 낙마하는 인사 실패도 있었다. 집권 이후 증세를 부르짖다가 지지율이 떨어지자 1인당 4만 엔(약 35만 원)의 감세안을 내놓은 것도 역풍을 맞았다.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니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불만은 엔저 등으로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는 것이다. 수출 위주의 대기업 실적은 좋아지고, 증시도 활황이지만 국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일본 물가상승률은 거의 매달 전년 대비 3%에 달하고, 실질임금은 18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30년 넘는 장기 저성장으로 물가 상승을 체감하지 못했던 일본인에겐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요즘 여론은 ‘감기가 걸려도 기시다 총리 탓’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고물가를 비롯해 잇단 정책 실패, 가족 비리, 인사 실패 등이 ‘종합세트’처럼 동시에 벌어졌으니 지지율이 바닥을 길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신뢰의 위기다. 여론조사에서 정부 경제정책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0∼70%대를 오간다. 정책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비전 없고, 권력 연장만 노리는’ 기시다 총리가 싫다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정권이 몰락하는 과정은 어느 나라든 비슷한 것 같다.

 

-서정보 논설위원, 동아일보(2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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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모를 지지율 하락, 기로에 선 기시다 日총리

 

감세 역풍, 차관 3명 낙마, 물가상승… 3연타에 지지율 ‘퇴진 수준’

출범 때 지지율 45%→20%대 추락… 외교로 올린 지지율, 내정으로 반토막…

“언제 물러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30년 만의 고물가에 국민부담 가중…

돈 들어갈 곳 많은데 재원 대책 모호… “기시다 고유 색깔 안 보여” 지적도

 

 

올해 5월 17일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인근의 한 특급 호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이틀 앞두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수장을 맡은 집권 자민당의 ‘기시다파’ 파벌인 고치카이(宏池会)가 대규모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했다.

자민당 내 4위 파벌이지만 총리가 몸 담고 있는 파벌답게 행사는 화려하게 진행됐다. 기시다 총리의 라이벌이자 자민당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간사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는) 선거에 강하다. 지금 일본은 선진국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권 기반을 갖고 있다.” 인사말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G7 정상회의 개최로 지지율이 반등한 기시다 총리에 대한 덕담이자 집권 여당의 지위는 영원할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6개월이 지난 이달 21일, 자민당 당사 기자회견장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당 회의를 마친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총무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굉장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비리나 실언 등이 있으면 국민 실망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력을 모아 총리를 지지하고 신뢰 회복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선진국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권’이라고 자부했던 일본에서 총리 퇴진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언제 물러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기시다 비판이 유행이 됐다” 야당에 정권을 내준 2009년과 닮아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최근 일본 언론 조사 결과 지지율은 21%까지 곤두박질쳤다. 대체 반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기시다 총리는 퇴진 위기에 몰릴 정도로 지지율이 추락했을까. 올 상반기처럼 기시다 총리는 다시 한번 지지율 반등을 노릴 수 있을까.

 

● 외교로 끌어올린 지지율, 내정으로 하락

 

2021년 10월 취임 당시 45% 안팎의 지지율로 시작한 기시다 정권은 지난해 7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피살되고 곧바로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지지율이 정점에 올랐다.

탄탄대로일 것 같던 기시다 정권은 지난해 가을 자민당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의 유착 의혹이 불거지면서 꺾이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별다른 여론 수렴 없이 아베 전 총리 국장(國葬) 실시를 전격 결정하면서 국민 반발도 커졌다. 각종 스캔들까지 겹쳐 각료 4명이 낙마하면서 기시다 총리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하락세를 보이던 기시다 정권의 지지율은 올 상반기에 반등했다. 한국 정부가 3월 대법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결책을 발표해 한일 관계가 개선된 것도 그 요인 중 하나였다. 우크라이나 방문, G7 정상회의 개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방일 등이 이어지며 ‘외교의 기시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G7 정상회의 때 세계 정상들을 불러모아 글로벌 외교를 이끌어가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 게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외교로 끌어올린 지지율은 내정(內政)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디지털 전환 핵심 과제로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유사한 ‘마이넘버 카드’ 보급을 추진해 왔는데 동명이인에게 엉뚱한 카드가 발급되거나 자신의 카드에 다른 사람 개인정보가 입력된 사례가 속속 나왔다. 50%를 넘겼던 지지율은 1개월 만에 30%대로 추락했다. 종이로 된 건강보험증을 내년 가을까지 폐지하고 마이넘버 카드에 통합하겠다고 하자 국민 불만은 더욱 커졌다.

한번 시작된 지지율 하락에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이달 초 국민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소득세 4만 엔(약 35만 원) 감세, 저소득층 7만 엔(약 61만 원) 지급을 발표했지만 되레 역풍이 불었다. 보궐선거를 불과 이틀 앞두고 전격 발표된 감세 정책에 야당은 격렬하게 반발했고 국민도 어리둥절했다.

당내에서조차 “지금 감세를 생각하고 내년에 방위비 증세를 한다는 것은 국민이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1년 한정으로 세금을 국민에게 환원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상하다”(자민당 전직 장관) 등의 말이 나왔다. 아사히신문의 이달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6%는 감세 보조금 정책에 대해 “정권 인기 부양용”이라고 응답했다.

여기에 차관급 인사 3명의 낙마는 지지율 하락에 기름을 부었다. 교육을 담당하는 문부과학성 정무관이 불륜으로, 법 집행을 담당하는 법무성 부대신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재무성 부대신은 세금 체납으로 3주 새 차례로 사임했다. 특히 이들 차관이 직무와 관련된 문제로 퇴진하면서 기시다 총리가 말해온 ‘적재적소 인사’는 공수표가 됐다. 또한 자민당 주요 5개 파벌이 정치자금 보고서에 정치자금을 축소 신고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도쿄지검 특수부가 수사에 나서면서 추가 악재로 부상했다.

 

● 물가 인상 등 경제난에 비판 확산


기시다 정권의 인기 하락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경제 문제가 가장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지마 야스히데(矢嶋康次)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상무)는 이렇게 말한다.

성장률이 높아졌고 경기는 좋다지만 30년 만에 물가 상승을 체험하면서 이제까지 겪어 보지 못한 어려움이 커졌다. 특히 중소기업과 고령자, 저소득층의 생활이 힘들어졌다. 그 와중에 소득세 감세를 하겠다면서 방위비 증세, 연금보험료 인상도 함께 실시한다니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이냐’ ‘나라가 어디로 가는 것이냐’는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민주당 정권 때 총리를 지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의원은 최근 국회에서 기시다 정권의 ‘오락가락 경제정책’을 이렇게 혹평했다. “기시다 가게라는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메뉴판을 보니 가격은 없고 전부 ‘시가(時價)’라고만 쓰여 있다. 저출산 지원, 방위비 증액 등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재원 대책이 없으니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기시다 정권의 고유한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크다. 마쓰다 교헤이(松田京平) 아사히신문 정치부장은 “기시다 총리의 속내, 본심에 대해 국민들이 의문을 갖고 있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아베 전 총리는 우파의 강한 지지를 받으면서 관료를 강하게 통제했다. 이것이 개혁 이미지로 연결됐다. 북방영토 반환 추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골프 등도 비판은 있었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무슨 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인지, 어떤 개혁을 지향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러시아, 중국, 북한에 대해 무엇을 할지, 기시다 총리가 중심이 돼 할 수 있는지가 안 보인다. 총리에 재선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계속 생각하는 것 같은데 국민들은 (그런 속내를) 꿰뚫어 보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몸담고 있는 고치카이는 자민당 내 ‘보수 본류’로 전통적으로 평화헌법 유지, 대미 협력외교, 경제 성장 중시 등을 추구한다. 기시다 총리 취임 당시 아베 전 총리가 중심이 된 보수 강경 일변의 정책 노선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소수 파벌의 한계로 이렇다 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보수층의 염원인 헌법 개정 등을 강하게 추진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다가 최근 지지율이 떨어지자 기시다 총리는 개헌, 왕위 계승 방안 검토 등의 카드를 꺼냈다. 경제, 정치 모두 이런 뒷북 대응들이 누적되면서 ‘신념은 없고 권력 연장만 바라보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 “다음 총리 누구냐” 백가쟁명 논쟁


기시다 총리 지지율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고 있지만 정권 교체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입헌민주당, 일본유신회 등 일본 야당들의 지지율은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옛 민주당 정권 인사들이 주축인 입헌민주당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의 부실 대응으로 수권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인식이 지금도 강하다. 오사카를 기반으로 한 일본유신회는 극우적 색깔과 오사카 지역정당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가와 국민들의 시선은 자민당 내에서 다음 총리가 누가 될지에 쏠리고 있다. 하지만 뚜렷한 후보군은 떠오르지 않고 있다. 주요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전 환경상,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경제안보담당상, 고노 다로(河野太郎) 디지털상,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등이 후보군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들은 뚜렷한 파벌 지지를 못 받고 있는 비주류이거나 지나치게 극단적인 노선으로 총리를 맡기에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최근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로 누가 좋겠느냐는 질문에 36%가 ‘없다’고 응답했다. 기시다 총리가 낮은 지지율로 정권을 이어가는 이른바 ‘저공 비행’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눈에 띄는 주자는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외상이다. 국민적 지명도가 아직 낮고 당내에서도 ‘실무형’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인기가 떨어진 자민당이 ‘일본 첫 여성 총리’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지지율을 부양하는 간판으로 삼을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도쿄대-하버드대 출신의 학력, 당내에 적이 없는 원만한 인품, 법무상 시절 옴진리교 교주 사형 집행 결정을 내린 강단 등이 최근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다만 권력 투쟁 경험이 부족한 가미카와 외상이 치열한 당내 정치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 자민당 최대 파벌로 보수 강경인 아베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동아일보(2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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