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꽃길만 걸으라는 덕담에 대해] ....

뚝섬 2024. 1. 20. 06:54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꽃길만 걸으라는 덕담에 대해]

[행복의 의미] 

[하루 세 번 실천한 ‘작은 친절’, 내 몸을 살린다]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빅데이터에 따르면 50대는 국적 불문, 가장 행복도가 낮다. 중년의 위기가 탈모로 시작돼 탈선으로 끝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행복의 U자형 곡선은 50대에 최저점을 찍는다. 생애 주기상 최정점의 자산과 경험을 축적했음에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미래가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젊은 시절의 낙관 편향은 사라지고, 실직과 퇴직의 쓴 현실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커리어에 정점을 찍고 있는 친구들과 상향식으로 비교하며 느끼는 상대적 초라함이다.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의 저자 ‘조너선 라우시’는 타인의 소득이 증가하면 나의 행복이 훼손된다는 증거로 너의 이익은 나의 고통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소개한다. 현금 지원이 심리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에 대한 연구인데, 반전은 수령자의 늘어난 만족감보다 비수령자의 불만족이 4배 이상이라는 것이다. 결국 행복의 비결은 ‘상향식’ 비교를 버리고 ‘하향식’ 비교를 택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우리의 ‘마음’이 아니라 ‘나이’에 좌우된다는 증거들이다.

 

인간은 비교를 통해서 자기 위치를 확인한다. 누구보다 많거나 적고, 크거나 작은 것이다. 특히 젊은 시절엔 이런 경향이 훨씬 더 강하고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하지만 중년 이후엔 이런 오랜 편향이 고쳐지기 시작한다. 현재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탁월해지는 노년기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나쁜 경험을 나쁘게만 보지 않고, 좋은 경험을 소중히 하는 능력이 좋아진다. 그것이 50대에 바닥을 찍은 행복 곡선이 70대에 정점을 찍는 이유다.

 

모든 경험에는 평균값이 있으므로 완전한 만족 순간은 늘 지연된다. 목표한 봉우리에 도달하는 순간 여기가 아닌 저기, 더 높은 봉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핵심은 정복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다. 행복의 목적지는 봉우리가 아니라 봉우리에 이르는 여정 그 자체다.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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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걸으라는 덕담에 대해

 

‘내 새끼’ 행여 힘들까 노심초사하는 부모들
‘애써보자’는 말 대신 ‘애쓰지 마’ 권하는 사회
꽃길 아닌 다른 길에 있는 행복 놓치지 않길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이 하나 있다. 이제 막 세 돌을 맞은 어린 딸과 진돗개 두 마리, 그리고 엄마, 아빠가 주인공인 채널이다. 네덜란드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이 운영하는데, 대구에 살던 이들은 작년에 네덜란드로 이민을 갔고 그 후론 그곳의 일상을 찍어 올린다. 세 살 아기가 얼마나 영특하고 귀여운지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애교 많고 흥 많던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며 슬피 울었다. 말도 안 통하고 환경도 낯서니 어린 아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힘들고 무섭다는 말을 할 때는 나도 찔끔 눈물이 났다.

아기에게도 시간이 약이었을까. 이젠 얼추 적응된 것 같은데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기의 팔꿈치가 까져 있었다. 넘어져 다친 거였는데 이때 이 엄마의 말이 압권이었다. “괜찮아. 살다 보면 넘어져.” 대개 부모들은 ‘내 새끼’가 조금이라도 힘들까 노심초사한다. 나는 고생했어도 너는 행복하게 살라며 꽃길만 걷게 해주려 한다. 하지만 나는 궁금하다. 꽃길만 걸으면 행복할까? 마른 땅만 밟다 가는 인생이 행복일까?

언젠가 사주를 본 적이 있다. 긴장한 얼굴로 풀이를 기다리던 나는 맥 빠지는 소리를 들었다. 내 팔자가 좋지 않다는 거다. 어째서 그런지 이유를 물으니, 늘 노력해야 하는 팔자라 그렇다고 했다. 팔자가 좋으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뭐가 생기고 되는데, 나는 마른 땅이 물을 찾듯 계속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럼 나는 노력해도 안 되느냐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안 되지는 않으나 항시 노력하고 수고해야 이루는 팔자라는 말이었다. 그 얘기를 듣던 나는 한껏 방자한 심정이 되어 속으로 ‘흥!’ 했다. 노력해도 안 된다면 모를까 애써서 성취하는 게 왜 나쁜 팔자냐고 들이대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그건 그분의 세계관, 아니 옛사람들의 세계관이 그런 거니까.

 

평생 말과 글을 재료 삼아 일하고 살아온 나는 우리가 즐겨 쓰는 말을 붙잡고 골똘히 들여다볼 때가 있다. 힘들다는 말도 그중 하나인데, 사전을 찾아보면 어렵거나 곤란한 상태를 뜻한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힘든 건 나쁜 것이니 피해야 하는 걸까? 편한 게 좋은 것이니 다 편한 걸 추구해야 하나? 이 생각이 합리적이라면, 의도적으로 근육에 상처를 내며 하고 나면 여기저기가 결리고 힘든 운동은 왜 하는가? 어려운 수학 공부는 왜 하며, 뜻도 이해하기 어렵고 재미도 그다지 없는 고전은 왜 읽는 걸까? 낯선 나라로 유학은 왜 가며 성공 확률이 지극히 낮은 창업은 왜 하는가? 아니, 거창한 얘기를 할 것도 없다. 당장 집 나가면 고생인데 ‘여행 따위’는 대체 왜 좋아하는 것인가? 도전은 왜 하며 혁신은 왜 하는가?

2017년에 출간된 김승섭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 온당한가를 말하기 위해 쓴 문장이지만 나는 다른 뜻도 읽었다. 매일 그 사회의 공기를 호흡하며 사는 사람들에겐 또한, 그때 그 사회를 지배하는 세계관과 관점이 스며들어 영향을 주기 마련이라는.

요사이 우리 사회엔 ‘뭔가를 잘해 보자, 애써 보자, 도전해 보자’ 같은 말들은 잘 들리지 않고 ‘애쓰지 마. 힘든데 뭐 하러 해’ 같은 말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좀 안타깝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이 괜찮은가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진다. 행복은 언제 어떻게 오는가? 나는 이 질문에 답할 능력이 없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행복이 꼭 힘들지 않은 편안한 상태나 꽃길만 뜻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토스의 이승건 대표는 작년 봄에 출간된 나의 책에 추천사를 써주었는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창업을 준비하던 시절, 미래는 계속 불확실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는데 행복한 몰입이었다고. 이 문장을 읽으며 행복이란 꽃길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굳혔다. 어떤 사람들은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먼바다로 나가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경험을 하고 풍광을 마음에 담으며 살아 있다는 짜릿함, 행복을 맛본다. 그러니 당신도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 힘들다는 건 꼭 피해야 하는 나쁜 일인가에 대해. 그리고 정말 행복하고 싶다면 꽃길 외에 다른 길도 찾아보면 좋겠다. 지금껏 생각해 보지도 못한 방식으로 행복을 만날지도 모르니.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동아일보(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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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싣고 첫 새벽을 여는 서울 8146번 버스에는 고달파도 희망이…. 삶이 권태롭다면 첫차 한번 타보시길.

 

-팔면봉, 조선일보(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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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의미

 

왜 사냐고 물으면 행복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이 뭐냐고 물으면 건강에서 경제적 자유까지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답이 나온다. 이럴 때 유용한 건 대조군, 즉 행복의 반대인 불행과 후회가 무엇이냐를 살펴보는 것이다. 어둠을 알기 위해 빛을 연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장 대중적인 건 ‘죽기 전 사람들이 제일 후회하는 것’의 리스트다. 리스트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이렇다. 첫째, 삶의 많은 부분을 너무 일만 한 것. 둘째, 가족,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 셋째, 걱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쓴 것.

 

우리는 대개 성공한 커리어와 풍족한 돈을 행복이라고 믿지만 다양한 행복 연구에서 밝힌 행복의 핵심에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돈 역시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혀졌다. 큰 프로젝트나 일을 끝내면 “이게 다인가?”라는 공허감이 밀려오거나, 가지고자 그토록 노력했던 걸 가지고 보니 자신이 원하던 것이 아닌 경우도 있다. 만약 가족을 위해 일에 집중하고 마침내 고급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일하는 과정 중 생긴 무심한 상처들 때문에 그 큰 집에 나만 홀로 남는다면 행복할까. 함께 눈 맞추고 기뻐할 사람이 없다면 그곳에 행복은 없다. 행복의 관점에서 결과보다 중요한 건 행복에 이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뒤집기나 걸음마, 응가를 할 때, 주먹을 꽉 쥔 채 힘을 주느라 목덜미까지 새빨개지는 아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기의 몸은 또 얼마나 유연한지, 수월하게 물에 뜨고 빠르게 언어를 익힌다. 아기는 언제 힘을 주고, 언제 빼야 하는지 아는 천재처럼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오직 현재에 몰입한다. 이것이 아기가 그토록 충만한 삶을 사는 비밀이다. 피카소가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지만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고 말한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 아기의 인중이 ‘쉿!’ 삶의 비밀을 발설하지 말라는 신의 손가락 자국이라는 말은 내게 늘 행복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처럼 느껴진다.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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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번 실천한 ‘작은 친절’, 내 몸을 살린다

 

친절의 나비효과
스트레스, 질병 유전자 발현에 영향… 남에게 친절 베풀면 긍정적 정서 유발
질병 유전자 활동성 낮춰 염증 감소… “내 삶은 의미 있다” 느껴 행복감 증가
사회적 유대감 높아져 마음도 ‘든든’

 

“달달한 간식 드시면서 2024년에도 힘내세요.”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어린아이 글씨체로 정성껏 꾹꾹 눌러 쓴 메모 사진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자신을 ‘○○○호 어린이’라고 소개한 이 아이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글과 함께 사탕과 초콜릿을 아파트 엘리베이터 내부에 붙여 놓았다. 뜻밖의 선물에 감동한 주민들은 ‘미소가 절로 나오는 아침이네요!’ ‘행복했습니다’라는 답글을 남겼다. 한 주민은 세뱃돈이라며 1만 원짜리를 붙여 놓기도 했다.

연말연시엔 따뜻한 소식이 여기저기서 많이 들려 온다. 쪽방촌에 살며 폐지 주워 모은 돈을 기부한 80대 할머니, 빚 갚기도 빠듯하면서 보육원에 신발 수십 켤레를 보낸 부부 등…. 이렇게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마음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과 선행을 베푸는 소식을 접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꼭 거액을 기부하거나 대단한 사연이 있어야만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사소한 선물이라도 받을 때보다 줄 수 있을 때 더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한다. 심지어 이때 느끼는 따뜻한 감정은 우리 몸에 좋기까지 하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이타적으로 행동하면 암, 치매,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친절과 질병 예방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신기하게도 사실이다. 몸과 마음이 기묘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 스트레스는 몸속 염증과 ‘짝꿍’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몸에 좋다는 것은 그와 반대 상태인 스트레스가 몸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몸에 미치는 악영향은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염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서 불안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과하게 활성화된다. 편도체는 불안과 관련한 신체의 신경망을 자극하고, 그러면 혈관에서는 염증이 생성된다. 몸속 염증 수치가 높다는 것은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스트레스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밝히기 위해 아흐메드 타와콜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 연구팀은 4년간 추적 관찰 연구를 진행했다. 건강한 성인 293명을 모집해 염증 발생 여부와 스트레스 지수를 주기적으로 측정했다. 그 결과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사람들은 염증 발생 빈도가 높았을 뿐 아니라 뇌중풍(뇌졸중), 심근경색 등 심혈관질환 발생 비율이 높았다. 연구진은 “관찰 기간을 더 길게 본다면 스트레스가 암이나 치매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마음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마음챙김’ 명상 앱을 이용하거나 심리 상담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보다 일상에서 좀 더 간편하게 시도해 볼 수 있는 마음 건강 챙기기 활동이 있다. 바로 남들에게 ‘친절하게 행동하기’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돕는 마음은 “내 삶은 꽤 괜찮다”는 긍정적인 정서를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는 든든한 느낌을 준다.

 

● 하루 세 번, 친절 행동 했더니 나타난 효과

 

놀랍게도 이때 스트레스에 의해 활성화됐던 염증 반응이 약해진다. 우리 몸에는 염증을 유발하고 암이나 치매, 심혈관질환 등을 일으키는 유전자 53개가 있다. 이 무리를 통틀어 학술용어로 ‘역경에 대한 보존 전사 반응(CTRA·Conserved Transcriptional Response to Adversity)’을 일으키는 유전자라고 한다.

일종의 ‘악당 유전자’라고 이해하면 쉽다. 악당이 설치면 지구의 평화가 위협받듯, 악당 유전자가 활성화되면 몸에 염증은 늘어나고, 항바이러스 기능은 떨어진다. 이와 반대로 남들에게 친절하게 행동할 때는 긍정적 정서가 일어나고, 이는 악당 유전자의 활동을 감소시켜 건강을 지켜낸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캐서린 넬슨코피 미 애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성인 159명을 모집해 4주간 실험했다. 이들을 4개 그룹으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는 다른 사람에게 하루 세 번 크고 작은 친절을 베풀라는 미션을 줬다. 지인을 초대해 음식 대접하기, 감사 편지 쓰기, 안 친한 사람에게 커피 사주기 등 본인이 원할 때, 원하는 행동을 하라고 했다.

나머지는 △자기에게만 좋은 행동하기(마사지 받기 등) △불특정 다수를 위해 좋은 일 하기(길가에 떨어진 쓰레기 줍기 등) △평소대로 살기(대조 그룹)로 나눴다. 대조 그룹을 제외하고는 마찬가지로 하루 3번, 4주 동안 이 같은 행동을 하라고 했다.

실험 전후로 혈액을 채취해 악당 유전자의 활성화 정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4주 동안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푼 그룹만 악당 유전자의 활성화 정도가 유일하게 감소했다. 다른 그룹은 전후 수치가 그대로이거나 아주 미세하게 증가했다.

 

●“나만 좋으면 된다” 생각 버려야

 

그렇다면 나 자신에게 베푸는 친절과 관대함도 비슷한 효과를 낼까? 듣기 싫은 수업을 땡땡이치거나 열량 폭탄인 달콤한 디저트를 먹거나 망설임 없이 쇼핑하기 등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기분이 좋아져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앞서 소개한 실험에서 마사지 받기 등 4주 동안 하루에 3번 자기만 즐거운 일을 한 그룹은 악당 유전자의 활동 정도가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 게다가 쾌락적 즐거움을 추구할수록 행복감의 지속 시간은 짧다고 한다. 죄책감이 동시에 일어나 즐거움을 상쇄해 버리는 탓이다.

반면, 남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들의 행복감은 꽤 오래간다. 앞서 소개한 넬슨코피 교수 연구진의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남에게 친절을 베푼 그룹은 실험이 끝나고 2주 후까지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났다. 다른 이들이 친절에 보답하는 선순환이 일어난 결과다. ‘수업 땡땡이’ 같은 쾌락을 추구한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행복감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연구진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남에게 친절을 베풀 때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 대상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에서 성인 152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쾌락적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보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삶의 의미를 찾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악당 유전자의 발현 정도가 낮았다. 연구에 참여한 이성하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연구원은 “이런 경향은 젊은 층보다 노년층에서 더 두드러졌다”며 “삶의 의미를 찾고,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노년기 심신 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 ‘삶의 의미’ 느끼는 게 핵심

 

행복감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인은 친절 자체라기보단 친절을 베푼 뒤 따라오는 “내 삶은 꽤 괜찮다”는 느낌이다. 또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고 느낌으로써 삶에 더 만족하게 된다. 다만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바로 자발성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선한 영향력을 끼칠 때 이 공식이 통한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비즈니스 친절’이나 형식적 봉사는 오히려 정신노동에 가깝다.

실제로 자발적 봉사활동에 나선 사람들은 심신에 좋은 영향을 받았다. 스티븐 콜 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의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9개월간 초등학교 1∼3학년 문제아의 학습 멘토링 봉사를 한 성인들은 시간이 갈수록 악당 유전자 활동이 저하됐다. 아이들의 학교 적응을 도우면서 자기 삶이 ‘의미 있다’고 느꼈을 뿐 아니라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긍정적 영향을 받은 덕이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친절과 선행을 베풀면 행복감이 생겨나고, 스트레스에 의해 활성화됐던 질병 유발 유전자들의 활동이 약해진다. 꼭 거창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앞서 소개한 친절 베풀기 실험에 참여한 이들이 한 일은 뒤에 오는 사람 위해 문 잡아 주기, 버스에서 자리 양보하기, 직장 동료에게 감사 메모 남기기 같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이런 작은 친절이 척박한 심리 상태를 회복시키고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니 놀랍지 않은가. 새해 다짐 목록에 ‘하루 세 번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기’를 추가해 보는 건 어떨까. 몸과 마음의 건강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최고야 기자, 동아일보(2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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