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야 아는 것들]
[우리는 모두 청년이 될 것이다]
[자기 파괴에 대하여]
[아일랜드의 사랑 이야기]
나이 들어야 아는 것들
로버트 벤턴의 ‘노스바스의 추억’
뉴욕 북부의 작은 동네 노스바스. 폭설이 맘껏 내리는 곳. 예순이 넘은 설리는 중학교 은사인 베릴의 집에 세 들어 산다. 평생을 일용직 노동자로 부초처럼 살아왔다. 젊은 시절 결혼도 했으나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가족을 버렸다. 그렇다고 멀리 가지도 않았다. 도보 30분 거리에서 요령껏 마주치지 않고 지낸다. 친구들도 변변치 않다. 세간의 눈으로 보자면 낙오자들이다. 설리는 이런 동네 사람들과 다투고, 마시고, 일한다. 살아온 날에 대한 후회도, 살아갈 날에 대한 포부도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살며 옆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게 가족이 아닐 뿐이다. 집주인 베릴 선생은 그가 방탕해지지 않게 엄마처럼 잔소리를 한다. 60대 남성과 80대 여성이 끌어가는 극인데도 힘겹거나 느릿하지 않다. 오히려 두 배우의 관록이 뿜어내는 매력이 대단하다.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작년 설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해가 바뀌었다. 세월의 체감 속도는 길을 걷는 것과 같다. 낯선 길은 긴 것 같고, 익숙해질수록 짧게 느껴진다. 초행길은 큼지막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낯익게 되면 무심코 지나친 것들이 눈에 밟힌다. 소소한 것들의 의미를 읽고 세상사와 연결 짓는 혜안도 생긴다. 예전엔 나이 들수록 대접을 받았다. 의사, 학자, 영화감독 등등의 직함 앞에 ‘노’자가 붙을수록 실력이 좋았고 존경받았다. 요즘은 노인들의 지혜보다는 디지털 지식이 존중받는다. 그것이 돈으로 귀결되고, 돈이 최고가 되었다. 젊음이 우선권을 갖고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나이 먹는 걸 두려워하며 창피해한다.
우리 동네에는 40년 된 밥집이 있다. 혼자라는 느낌이 드는 날이면 이곳에 간다. 밥을 먹으며 주인과 하루의 인사를 나누고, 한 달의 안부를 묻고, 그렇게 또다시 새해 인사를 나누는 곳. 반백수인 내가 그나마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확인받으며 마음을 놓는 곳이다. 이럴 수 있는 이유는 이곳이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주인과 일하는 분들 모두 여든을 바라본다. 이들이 뿜어내는 기운은 젊고 세련된 식당이 따라 할 수 없는, 귀한 문화재급이다.
영화 내내 변두리 동네의 일상이 혼잣말하듯 소소하게 펼쳐진다. 남루해 보이지만 그 삶의 틀에 눈높이를 맞춰보면 그들이 만든 소박한 동심원에 마음이 일렁인다. 원제 ‘Nobody’s fool’처럼 아무도 바보가 아니다. 다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고 있다. 내 삶은 특별할 것이 없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다. 일상의 구석구석을 채워주는 것들, 생색내지 않아 특별하게 여겨본 적이 없는 것일수록 소중하다는 걸, 나이 들어가면서 알게 된다. 나이가 들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정향 영화감독, 동아일보(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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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청년이 될 것이다
올해도 나이를 먹었다. 일반적으로 따지자면 나는 중년이다. 머릿속으로는 청년인데 노년이 어서 오라고 손 흔드는 나이라는 의미다. 2020년 기준 한국 기대 수명 83.6년의 절반 이상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인간은 사실 철들지 않는다. 우리 정신세계는 30대 초반 어디쯤 머무는데 몸만 고장 나기 시작한다. 중년은 청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느라 세월을 낭비한 사람들이 노년에 들어서기 전 잠시 머무르는 단계다.
청년과 중년은 누가 정하는가. 정부 기준에 따르면 39세까지가 청년이다. 중년은 40세에서 49세다. 장년은 50세에서 64세다. 그러고 보니 ‘장년’이라는 게 있었다. 사전적 의미는 ‘일생 중 한창 기운이 왕성하고 활발한 나이’다. 누군가는 장년의 의미를 수정해야 마땅하다. 50세에서 64세가 가장 왕성한 나이라면 한국 비아그라 판매율이 왜 매년 올라가겠는가. 이쪽은 그냥 ‘중장년’으로 묶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 기준 중년은 40세에서 64세가 된다.
유엔이 분류했다고 떠도는 기준에 따르면 나는 여전히 청년이다. 18세에서 65세가 청년이란다. ‘더 오래 청년처럼 일하라’는 윽박처럼 들리는 기준이다. 사실 유엔은 이런 발표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청년 기준 나이를 40대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는 지난 몇 년간 계속됐다. 청년 인구가 부족한 지자체와 청년 정치인이 부족한 정당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확실히 인류는 젊어지고 있다. 나는 아버지 세대보다 더 오래 산다. 더 오래 일해야 한다. 더 오래 청년이 되어야 한다. 이준석도 아직 청년 정치인이라고 불리니 나도 각오하고 있다. 다만 청년 기준을 올리려면 중년 기준도 올려야 한다. 나는 팔십이 될 때까지 이런 글을 쓰며 밥을 먹어야 할 텐데 빨리 중년이 되면 곤란하다. 청년들은 싫어하겠지만 청년으로 오래 남는 것이 길어진 수명을 감당할 통장 잔액을 유지하는 데도 유리하다. 청년인 당신이 “이래서 한국은 세대교체가 안 되는 것인가!”라고 한탄하고 있다면, 당신이 옳다. 같은 청년의 위로를 보낸다. 내 나이는 묻지 마시길 부탁드린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일보(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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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파괴에 대하여
태어나서 살아가는 길에 당연히 자신을 사랑해야 하지만 반대로 스스로 해치려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려고 하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살아가면서 두 방향의 삶을 본능적으로 지향합니다. 하나는 살려고 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죽으려고 하는 방향입니다. 살려고 하는 것은 건강하게 행복하게 소망하는 바를 성취하면서 사는 길입니다. ‘리비도, 삶의 본능’이라는 에너지를 씁니다. 죽으려고 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병에 걸리게 만들고 불행에 빠지게 하고 성공보다는 실패의 길로 걸어가는 겁니다. ‘타나토스, 죽음의 본능’이라는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흔히 공격성으로 나타나지만 완벽하게 무력한 상태로 돌아가고자 할 때의 극단적인 자기 파괴는 자살입니다.
극단적인 방식과 달리 스스로 모를 정도로 교묘하게 자기를 파괴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도하게 습관적으로 음주하거나, 절대 안 되는 것을 알지만 마약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가 그러합니다. 취미 생활에서도 위험이 크게 따르는 것들을 선택한다면 죽음을 향한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암벽 등반이나 자동차 경주나 스카이다이빙을 구태여 즐긴다면 죽음의 본능이 힘을 얻은 결과인지를 따져 봐야 합니다. 자긍심을 높인다는 이유로 자신을 불필요하게 위험한 상황에 되풀이해서 노출시키는 성향이 있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사소하더라도 이런저런 사고를 반복해서 낸다면 자기 파괴적 본능의 발동과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해치는 행위는 도움을 받으려고 병원을 찾는 환자에게서도 자주 관찰됩니다. 처방받은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는 행위부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주저하다가 조기 진단과 치료 시기를 놓쳐서 치유가 힘든 말기 암 판정을 받는 경우까지 다양합니다. 심장 질환과 공격성 사이의 연관관계도 밝혀져 있습니다. 우울증도 공격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밤잠도 설치면서 자신을 비난하는 증세를 지속해서 보인다면 공격성이 밖으로 남을 향하지 않고 안으로 자신을 향해 작동돼서 우울증이 생긴 것으로 봅니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는 해로운 행위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자발적으로 저지르기도 합니다. 말을 잘못하여 생기는 실수를 흔히 범하는데, 정신분석에서는 대개 실수가 아니라 본심이 나온 것으로 봅니다. 그 말을 한 사람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적 동기에서 그런 특정 단어나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와서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석합니다.
공격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비난, 욕설, 위협, 반항으로 나타나고 전쟁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패를 갈라서 시위하거나 항거하면서 다툽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집단에서 공격적인 행위가 일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를 모으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실제는 다릅니다. 개인 각각에서 죽음의 본능이 점화되어 모이면 더욱더 파괴적으로 움직입니다. 삶의 본능과 균형이 무너지면서 ‘집단자살’이라는 불행한 결과로 이어진 일들이 있었음도 사실입니다.
집단적 공격성 분출은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연관이 있습니다. 지도자의 기만과 현혹에 휩싸이면 숨겨져 있는 의도가 보이지 않거나 알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무시합니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려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능란한 이야기에 넘어가서 가슴이 뭉클해진 구성원들이 열정적으로 충성을 서약하면서 그 집단은 스스로 파괴하는 길로 우르르 몰려가게 됩니다.
자기 보존이 인생의 목표여야 함에도 자신의 신체나 정신에 해를 주는 자기 파괴적 행위가 흔히 일어나는 현실은 역설이자 모순입니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스스로 파괴하는 방법을 습득한 현대인에게 약물 남용이나 자해는 이미 일상적인 현상입니다. 이미 마약중독마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손상하는 자해는 아주 흔합니다. 자해는 대부분 고통스러운 감정을 처리하려고 그렇게 합니다. 자살은 타살보다 훨씬 더 흔합니다. 자해 행위가 강박적으로 반복되면 겉으로 보기엔 그 사람의 팔자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죽음의 본능이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으로 태어나서 현명하게 살려면 공격성은 물론이고 죽음의 본능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삶에 지쳐서 태어난 것 자체를 원망하기도 하지만 우연히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연 수명이 다할 때까지 이런저런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입니다. 생식의학의 관점에서는 확실히 그러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착상되고 자라고 세상의 빛을 보았으니 경이로운 일입니다. 태어나지 못했기에 죽을 수도 없는 잠재 생명체들을 생각하면 태어났기에 스스로 죽을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글을 읽고 깨달은 바입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삶의 본능에서는 생생함을, 죽음의 본능에서는 겸손함을 취하면서 참고 기다리며 묵묵히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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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사랑 이야기
그는 딸이 다섯인 중년 남자다. 석탄배달업자인 그는 일중독이라고 해도 될 만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만 한다. 그런데 그가 수녀원에 장작과 석탄을 배달하러 간 날, 그의 삶에 위기가 닥친다. 젊은 여자와 아이들이 신발도 신지 않고 바닥을 문지르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 미혼모나 윤락여성을 비롯한 소위 “타락한 여자들”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다. 수녀원이 운영하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그들의 노동으로 이뤄진다. 감금당한 그들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더러운 세탁물에서 얼룩을 씻어내며 자신의 죄를 씻어낸다. 그가 목격한 것은 그 현장이다.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도 미혼모였다. 그녀가 일하던 집 주인 윌슨 여사의 호의가 아니었다면 그의 어머니도 타락한 여자로 분류되어 수녀원으로 끌려가 속죄를 강요당했을 것이다. 그가 넉넉지는 않아도 평화로운 유년 시절을 보내고 지금처럼 사는 것도 그 호의 덕이었다. 아내의 말대로 수녀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것이 가족을 위해서는 최선이겠지만, 그는 자신이 받은 호의와 사랑을 누군가에게 베풀고 싶다. 그가 수녀원 석탄광에 갇혀 있는 여자아이를 구해 집으로 데려가는 이유다. 수녀원의 보복이 예상되고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만, 그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실제로 존재했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한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세탁소는 무엇이든 깨끗하게 만들기로 평판이 좋았지만, 그 뒤에는 수녀원에 평생 감금되어 속죄를 강요당한 여성들의 눈물과 한이 있었다. 그런데 작가의 눈길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인권 유린이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이에게 조용히 베풀면서 행복해하는 개인을 향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넉넉하고 따뜻한 작가여서 가능한 일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동아일보(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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