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290만 명 신용사면”… 이러다 금융 질서 근간 흔들릴 것]
[거의 매일 쏟아지는 선심 정책, 뒷감당되나]
[‘30년 이상’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투기 불씨 경계해야]
[‘비호감 정치’의 대가, 결국 국민이 치른다]
당정 “290만 명 신용사면”… 이러다 금융 질서 근간 흔들릴 것
정부와 국민의힘이 어제 당정협의회를 열어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대출 연체 기록을 삭제하는 ‘신용사면’을 추진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영업이 어려워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을 제때 못 갚아 신용도가 떨어진 자영업자들이 대출 등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290만 명이나 되는 수혜자들의 연체 기록이 지워질 경우 금융회사들이 우량 대출자와 부실 대출자를 구분할 기준이 없어진다는 게 문제다.
당정이 합의한 신용사면의 대상은 2021년 9월부터 이달까지 2000만 원 이하의 연체를 했던 사람 중 올해 5월 말까지 빚을 모두 갚는 자영업자와 취약계층이다. 3개월 이상 연체한 기록이 남아 있는 290만 명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2021년 10월에도 코로나19 충격으로 연체한 개인사업자 230만 명의 기록을 삭제해준 적이 있다. 당시엔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2000만 원 이하를 연체한 채무자 중 2021년 말까지 빚을 갚은 이들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팬데믹이란 재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연체 기록을 지워주는 일이 반복되면 금융산업의 근간인 신용 질서가 흔들리고,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빚 잘 갚는 채무자와 자주 연체한 채무자를 구별할 수 없으면 금융회사는 전체 대출금리를 높이고, 한도는 줄이게 된다. 힘들어도 꼬박꼬박 빚 갚은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연체 기록이 삭제된 자영업자들이 다시 대출을 받으려고 몰릴 경우 1052조6000억 원까지 불어난 자영업자 대출 규모가 급증할 우려도 있다. 전체 금융권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율은 재작년 말 0.69%에서 지난해 9월 말엔 1.24%로 높아지는 등 빚의 질도 계속 악화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 관리의 고삐를 풀 게 아니라 오히려 단단히 조여야 할 때다.
이번 신용사면은 4·10총선을 두 달 앞둔 2월 설 연휴 직전에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의 ‘은행권 종노릇’ 비판과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은행들이 자영업자 187만 명을 대상으로 2조 원 규모의 지원방안을 내놓은 게 불과 3주 전이다. 550만 자영업자들에게 초점을 맞춘 잇따른 조치는 결국 총선을 겨냥한 정부 여당의 선심 공세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동아일보(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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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쏟아지는 선심 정책, 뒷감당되나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민생 토론회’를 주재하면서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확 풀겠다. 30년 이상 노후 주택은 안전 진단 없이 바로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상향하는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해 임기 내 (신도시 재건축이) 착공되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모두 부동산 시장에 큰 영향을 줄 정책들인데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대통령을 통해 ‘깜짝’ 발표됐다. 지난 2일에도 윤 대통령은 증시 개장식에 가서 금융 투자 소득세 폐지 방침을 발표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환호했지만 자본 세제의 변화 흐름과 다른 것이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재개발·재건축 억제 정책 탓에 집값이 폭등한 점을 감안하면,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는 필요한 정책이다. 특히 불량 노후 단독주택 밀집 지역 재개발은 시급하다. 하지만 지은 지 30년밖에 안 된 아파트를 부수고 재건축한다는 것은 세계에 없을 국가적 낭비다. 이마저 안전 진단도 없이 한다니 상식에 맞지 않는다. 아파트를 주거가 아니라 돈 버는 투기 수단으로 여기는 세태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발표와 함께 국토부는 신축 소형 주택, 미분양 주택을 사면 세금 부과 때 주택 수 산정에서 제외해 준다는 대책도 내놨다. 건설사 PF(프로젝트 대출) 부실, 주택 거래 부진 등에 따른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막으려는 정부 입장은 이해되지만 지금은 지난 수년간 누적된 ‘미친 집값’의 거품을 빼야 하는 시기다. 정부가 투기 수요를 부추기면 2030세대의 ‘영끌 빚투’가 재현될 수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머무른 상황에서 총선이 다가오자 근본적인 국민 신임 회복 조치는 없이 뒷감당 힘든 선심 정책만 난사하듯 던지고 있다. 한전이 47조원 적자를 냈는데도 가정용 전기료를 동결하고, 공매도 금지, 대주주 주식 양도세 완화, 금융 투자 소득세 폐지 추진 등 개미 투자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책을 쏟아냈다. 자영업자 코로나 지원금 8000억원 상환을 면제하고, 은행 팔을 비틀어 2조원대 대출이자 반환 정책도 내놨다. 시종일관 눈앞의 인기에만 연연했던 문재인 정권이 이랬다.
-조선일보(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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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이상’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투기 불씨 경계해야
아파트가 지어진 지 30년이 지나면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게 하겠다고 어제 정부가 밝혔다. 이렇게 되면 사업기간이 지금보다 최대 6년 단축되고 2027년까지 전국에서 95만 채의 재건축·재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정부는 추산했다. 소형 빌라와 오피스텔,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사면 세금을 깎아주고,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도 폐지하겠다고 했다.
‘1·10 공급 대책’의 핵심은 정비사업을 활성화해 도심 내 신규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이던 안전진단은 사업시행인가 전까지로 미뤄져 정비사업의 초기 속도가 빨라지게 됐다. 재개발 추진의 기준인 노후도 요건(준공 30년 이상 건축물 비율)도 완화한다.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은 현 정부 임기 내 착공해 2030년 첫 입주를 할 수 있도록 공급 시간표를 앞당겼다.
주택 공급에 속도를 높여 향후 수급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공사비 인상, 고금리 등으로 멈춰진 사업장이 많은 상황에서 당장 공급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그렇다고 추가로 규제를 풀었다간 향후 과잉 공급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국회의 협조도 관건이다. 안전진단 시점을 늦추고 조합 설립 시기를 앞당기는 등 재건축 절차를 조정하려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쏟아내면서 투기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어제 윤석열 대통령은 “재개발·재건축에 관한 규제를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 “주민들이 집합적인 자기 재산권을 행사하겠다는데 그것을 가로막는다면 정부도 한심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다분히 총선을 의식한 발언으로 읽힌다.
부동산 시장의 왜곡을 막기 위해 불합리한 규제는 합리화해야겠지만 그렇다고 규제를 한꺼번에 마구 풀었다가 자칫 집값 불안의 불씨를 키울까 우려스럽다. 여러 지역에서 재건축 사업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순차적인 공급 전략을 준비하고 비아파트 규제 완화에 따른 난개발에도 대비해야 한다. 당장의 선거가 아니라 전체 시장의 안정을 고려한 거시적이고 합리적인 부동산 정책의 마련이 시급하다.
-동아일보(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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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호감 정치’의 대가, 결국 국민이 치른다
낮은 지지율 벌충 위한 선심카드 봇물
고통분담 요구할 ‘호감 정치인’ 어디에
역대 정부 청와대, 대통령실에 있었던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선거를 앞두고 정부, 여당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너무나 많다”는 거다. 22대 총선을 석 달 앞두고 윤석열 정부는 이런 말을 확인시켜 주려는 듯 연일 대형 정책 카드를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윤 대통령은 2일 한국거래소 개장식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하겠다”면서 1400만 주식투자자를 겨냥해 깜짝 카드를 꺼냈다. 며칠 뒤엔 은퇴 노인 등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깎아주기 위해 자동차에 물리는 추가 보험료를 없애고, 집에 물리는 보험료도 경감해 주는 대책을 발표했다. 부가가치세를 적게 내는 간이과세 영세사업자의 범위를 연 매출 8000만 원에서 1억 원 정도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큰 선거를 앞두고 ‘민생 대책’이란 이름으로 정부가 선심성 정책을 내놓는 데에 우리 국민은 이미 익숙하다. 4년 전 문재인 정부는 4·15총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피해가 가시화하지도 않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며 초유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했다. 4인 가족 기준 100만 원씩 나눠준 돈으로 “오랜만에 한우를 사먹었다”는 이들이 속출했다. ‘고무신 선거’의 재현이란 비판이 나왔지만 여당의 압도적 대승에 끼친 효과는 확실했다.
문 정부의 재난지원금과 윤 정부 민생 대책 시리즈는 현금을 직접 쏘느냐, 세금 등의 부담을 줄여주느냐 차이가 있다. 경제논리로 따지자면 나랏빚을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현금 살포보다 재정을 보수적으로 운영하면서 세금을 깎아주는 게 낫다. 그렇다고 급조한 정책에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대선 공약에 없던 금투세 폐지, 간이과세 대상자 확대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세정(稅政)의 기본 원칙을 흔들어 장기적으로 나라 살림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역가입자 건보료 인하는 향후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 압력을 높일 것이다.
30%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빼고는 해당 부처 장관들조차 논리적 설명이 어려워 말이 꼬이는 정책을 안면몰수하고 추진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로 불렸던 지난 대선의 후유증이 이번 총선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사이 대통령이 착실히 호감도를 높여 지지율 50%를 넘겨 놨다면 지금처럼 부작용이 예상되는 벼락치기 정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겠나. 최소 몇 %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김건희 리스크’도 정부 정책의 부담이 됐다고 봐야 한다.
4년 전 상황도 비슷했다. 문 정부가 임기 초 무리하게 올린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일자리는 급감했다. 선거 전년도부터 집값, 전셋값이 폭등한 데다 코로나19 초기 대응 실패로 정권의 비호감도가 극에 달했다. 결국 재난지원금이 풀렸고, 임기 중 400조 원 넘게 늘어난 나랏빚과 인플레이션이란 부작용이 남았다. 지난 대선의 다른 주역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본소득을 비롯한 과감한 돈 풀기 약속으로 높은 비호감도를 극복해 왔다. 부산 흉기 피습 이후 서울로 이송되는 석연찮은 과정 때문에 부산 지역 호감도가 떨어졌다는데, 이를 넘어서기 위해 또 어떤 카드를 꺼내들까 궁금하다.
큰 개혁을 이룬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정당, 이념을 떠나 높은 개인적 호감도가 강점이었다. 평소 쌓아둔 ‘호감 점수’가 있었기에 정치·경제·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국민에게 인내를 요구할 수 있었다. 당장 입에 단 곶감을 물려주는 대신 개혁의 고통을 분담해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호감 정치인’을 우리 국민은 언제쯤 보게 될까.
-박중현 논설위원, 동아일보(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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