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생 없으면 대형 병원 마비, 이런 나라 또 있나]
[중재 자청한 의대 교수들, 우선 대화 테이블부터 열어야]
[의대에 ‘매년 2000명 대신 5년 1만명 할당’이 어떤가]
[의대 정원 늘린다고 파업하는 유일한 나라, 한국]
[환자 떠나는 의사 무책임하지만 이것 막는 것도 정부 일]
[환자 건강 생명 지키는 의사가 노조원 같을 수는 없다]
[빅5 병원 전공醫 “전원 사직”… 응급-수술 대란 막아야]
[이공계 엑소더스 1세대의 항변]
수련생 없으면 대형 병원 마비, 이런 나라 또 있나
정부 의대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하는 전공의 단체행동이 일주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26일 서울시내 한 대형 종합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사직서를 낸 전공의가 주요 수련 병원 100곳에서 1만명을 넘어섰다. 해당 병원 전공의의 80%다. 현장 이탈자도 9000명을 넘어섰다. 인턴, 전임의(전문의 자격 딴 뒤 수련하는 의사)도 이탈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29일까지 복귀하라고 했다. 거부할 경우 면허정지 처분과 위법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20일부터 전공의 집단 사직이 일주일째 이어지면서 서울 주요 대형 병원이 수술을 절반까지 줄이고 응급실조차 의사가 없어서 환자를 돌려보내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전공의는 전체 의사의 11%에 불과하다. 전공의는 아직 배우는 피교육생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업무를 거부하면 바로 대형 병원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휘청거리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 현실이다. 2000년 의약 분업 사태 이후 벌써 네 번째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니 의사들이 집단행동이 필요하면 항상 수련의들을 앞세우고 있다. 현재 대형 병원들 상황은 기업으로 치면 수습 사원들이 일을 안 하면 회사가 마비된다는 것과 같다. 이런 기업이 있다면 심각한 비정상일 것이다.
이런 일은 대형 병원들이 낮은 임금에 장시간 근무를 시킬 수 있는 전공의 의존도를 지나치게 높였기 때문이다. 특히 ‘빅5′라고 하는 서울 상급 종합병원 의사의 30~40%가 전공의일 정도다. 서울대 병원은 이 비율이 무려 46%에 이른다. 이들이 주당 80시간 가까이 일하며 병원 업무량의 70% 정도를 처리한다고 한다.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일본 도쿄대 부속 병원은 전공의 비율이 10%, 미국 메이요클리닉도 레지던트 비율이 10%라고 한다.
의사 수를 늘리면 대형 병원의 이 잘못된 구조도 고쳐야 한다. 전공의 숫자와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전문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수련생들이 집단행동으로 병원 전체 진료를 흔드는 기형적 구조는 이번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
-조선일보(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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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 자청한 의대 교수들, 우선 대화 테이블부터 열어야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전공의 업무 중단이 이어지고 있는 23일 서울시내 한 공공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4.02.23.
전공의 집단 사직이 확산되는 가운데 방관적 태도를 보였던 의대 교수들이 중재를 자처하며 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밝히고 정부와 의사·간호사 등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다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도 복지부 관계자와 만나 신속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의료 마비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의대 교수들이 현장을 지키면서 중재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국 10개 거점 국립대의 교수회연합회도 “과도한 의대 증원을 요청한 일부 대학은 사과하고, 정부도 2000명 의대 증원 원칙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정부가 40개 의대의 희망 정원을 조사하자 대학들은 2151~2847명을 늘릴 수 있다고 응답했다. 그래 놓고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집단 반발하자 의대 학장들은 “적정 증원 규모는 350명”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런 상황에 대해 대학 책임자들이 먼저 사과하고, 정부도 현실을 고려한 증원 정책을 세워달라는 것이다. 사태 해결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의대 정원의 대폭 증원은 불가피하다. 의사가 부족한 현실은 누구보다 현장 의사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증원 규모가 자신들 생각보다 과도하다고 현장을 떠나 환자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 의사 윤리 측면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 생명 지키라는 의사의 존재 목적을 부인한 것이고, 이는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무엇보다 전공의들이 먼저 집단행동을 중단해야 한다.
정부도 2000명 증원이란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의사들을 설득해야 한다. 2000명이 무슨 절대적인 기준도 아닌 만큼 애초 대학들의 증원 요구에 과장이 있었는지 다시 따져볼 필요도 있다. 대화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정부와 의사들이 서로 강대강으로 치달으면 국민 피해만 키울 뿐이다.
-조선일보(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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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에 ‘매년 2000명 대신 5년 1만명 할당’이 어떤가
정부 수요 조사에 의대들 ‘눈치작전’.. 매년 2000명보다 5년 뒤 1만명이 중요
의대별로 5년간 늘릴 총원 정해주고 매년 증원 규모는 각 의대에 맡기자
지금 ‘의료 파행’의 쟁점은 결국 숫자다.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보건사회연구원·서울대 연구 등을 바탕으로 2035년까지 ‘의사 1만명 부족’이라며 올해부터 2000명씩 더 뽑아야 한다고 했다. 의대 6년을 감안할 때 2000명 증원을 5년 유지해야 2035년에 1만명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의사 단체들은 “의사 자체가 부족하지 않다”고 했다. 정부의 의료 정책이 잘못돼 필수·지역 의료 분야로 의사들이 가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국민 80%는 ‘의사 충분’이란 의사단체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서울 ‘빅5′로 불리는 대형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서울삼성·서울성모)에 한 번이라도 가봤거나, 군(郡) 단위에 살고 있으면 의사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전국 16개 시·도 의사들이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해 마무리 집회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2.25/뉴스1
그러자 전국 의대학장모임은 “350명 가능”이란 숫자를 제시했다. 2000년 의약 분업이 부른 의료 파업 당시 정부가 의료계에 ‘당근’으로 제시한 것이 ‘의대 정원 351명 감원’이었다. 지난 24년간 우리 인구가 4700만명에서 5100만명으로 늘었는데, 의대 증원은 24년 전 숫자 복구 정도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대통령실은 “서울대 의대의 경우 의대 정원이 1980년대 260명에서 지금 135명으로 절반 감소하는 동안 기초 교수는 2.5배, 임상 교수는 3배 증가했다”고 했다. 작년 말 전국 의대 40곳이 정부에 ‘당장 증원할 수 있다’고 적어낸 규모가 최소 2000명이었다.
현재 의대 정원이 3058명이다. 올해 한꺼번에 5058명으로 늘린다면 무리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 의대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확 늘리지 않으면 다른 의대와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에 (숫자를) 적극적으로 적어 냈다”고 했다. 지금 의대가 있는 대학들은 ‘눈치작전’이 한창이라고 한다. 의대생이나 전공의 눈치를 살피면 작년처럼 2000명을 그대로 적어내기는 어려운데, 그렇다고 줄여 써냈다가는 자기 학교만 바보가 될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 병원장은 “2000명과 350명의 중간쯤 적어 내자는 분위기가 있는데 전국 40곳 의대가 ‘담합’하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했다. 수도권과 지방, 대규모와 소규모 의대 간 입장 차도 크다. 수도권 의대들은 의사 확보에 어려움이 없는 만큼 증원을 최소화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지방 의대는 “지역엔 의사 자체가 부족하다”며 “지역 인재를 중심으로 최대한 많이 뽑고 싶다”고 한다. 의대 40곳 중 17곳은 정원이 50명 미만이다. 국내 최대 병원으로 꼽히는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이 연계한 의대도 신입생 정원이 40명에 불과하다. 의대생 1명에 교수(전임 교원) 2명이 붙는 상황이다. 늘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의사 증원은 필요하다. 의대가 당장 2000명을 더 가르칠 능력이 있는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각 의대에 ‘선발 자율권’을 넓혀주는 것은 어떤가. 40명 뽑는 미니 의대 정원을 3년간 120명 늘려준다고 하고 해당 의대는 2025년에 30명, 2026년에 40명, 2027년 50명으로 순차적으로 증원하는 방식이다. 정부도 “2000명 곱하기 5년은 1만명”이라며 “5년 뒤엔 숫자를 재검토한다”고 했다. ‘매년 2000명’ 보다는 ‘5년 뒤 1만명’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각 의대에 3년 또는 5년간 늘릴 정원을 쿼터처럼 할당하고 어떻게 증원할지는 각 의대에 맡기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의사들이 숫자에 집착하는 동안 죽어나는 건 국민들이다.
-안용현 기자, 조선일보(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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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늘린다고 파업하는 유일한 나라, 한국
'빅5' 병원을 도화선으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확산이 예상되는 가운데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반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전날 의협 '의대 정원 증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공의의 자발적 사직을 지지한다면서 정부가 겁박을 지속하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의협 차원의 집단행동과 관련해서는 시작과 종료를 전회원 투표로 정한다는 원칙을 정했지만 언제 시작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연합뉴스
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가운데 대형 병원들이 이에 대비해 수술과 입원 일정 조정에 들어가면서 환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아직 사직서를 수리한 경우는 없지만 16일 오후 기준 23개 병원에서 전공의 7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전공의들은 상급종합병원 의사 인력의 30~40%를 차지하며 교수의 수술과 진료를 보조하는데 이들이 실제 집단행동에 돌입할 경우 수술 등 진료 차질로 환자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각종 통계와 환자들의 체감을 고려할 때 굳이 논의가 필요 없을 만큼 명확한 사실이다. 2021년 우리나라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다. OECD 평균은 3.7명이다. 그런데도 의대 정원은 지난 2006년 이후 3058명 수준으로 동결됐다. 2020년 등 정부가 의대 증원을 시도할 때마다 의사들이 집단행동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집단행동으로 의료 인력 확대를 막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에 대비해 의사 수를 늘리는 추세다. 독일은 공립 의대 정원이 9000명이 넘지만 1만5000명가량으로 늘리기로 했고 영국도 8639명을 뽑지만 2031년까지 1만50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겪은 일본의 경우 지난 10년간 의사 수가 4만3000명가량 늘어났다. 그러나 의사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파업에 나서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도 의사들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하는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의사 증원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하는 경우는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의사가 부족한 현실은 누구보다 현장 의사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지역·필수 의료가 위기에 처했고 전공의들이 주 80시간 이상 일하고 토요일에도 문을 여는 의원들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의사들이 증원에 반대하는 것은 의사 부족으로 인한 환자의 피해를 전제로 돈을 더 벌겠다는 발상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조선일보(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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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떠나는 의사 무책임하지만 이것 막는 것도 정부 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어제 대국민 담화에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삼는 일”이라며 자제를 호소했다. 이어 “의대 정원 확대는 더 늦출 수 없다”며 올해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전공의(레지던트)들의 집단 진료 거부에 ‘무관용 원칙’을 강조해온 정부는 전국 221개 병원에 전공의들의 근무 현황을 매일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다.
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한의사협회는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에 돌입할 것” “돌이킬 수 없는 의료 대재앙을 맞이할 것”이라며 반발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서울 대형병원 5곳의 전공의들이 20일부터 진료를 중단한다고 예고하자 당장 수술실부터 혼란이 시작됐다. 서울 세브란스병원이 수술 일정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고, 삼성서울병원도 환자들에게 수술 연기를 통보하고 있으며, 서울대병원은 폐암 등 수술을 연기했다. 절박한 환자들이 몰려드는 응급실과 수술실을 비우겠다는 건 보건의료노조의 지적대로 “국민생명 내팽개치는 비윤리적 행위” 아닌가.
정부도 의사 파업이 초래할 혼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의대 증원에 따른 의사 파업은 예견된 일이었다. 의사들은 2000년부터 의약분업, 비대면 진료,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세 차례 파업했고, 그때마다 자신들 요구를 관철했다. 대체 인력이 없는 직종의 집단행동에 정부는 매번 속수무책이었다. 이번에도 의사 증원을 지지하는 여론만 믿고 있다가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이다. 가용 행정력을 모두 동원해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막고, 집단행동을 강행하더라도 비상진료체계를 빈틈없이 가동하는 것은 보건의료 행정을 책임진 정부의 일이다.
의사단체들에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의사협회는 10년 후 의사 수가 1만5000명 부족하다는 국책연구기관이 내놓은 연구 결과의 구체적인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 의대 정원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갑자기 늘리면 교육과 수련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 필수의료 강화 대책을 이번에도 발표만 하고 흐지부지하는 것 아니냐는 불신을 해소하는 일도 정부가 할 일이다.
-동아일보(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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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건강 생명 지키는 의사가 노조원 같을 수는 없다
16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조선대 병원에서는 전날 전공의 7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뉴스1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이른바 서울 ‘빅5′ 병원 전공의 전원이 19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아침부터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대형 병원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병원을 떠나면 ‘의료 공백’은 불가피할 것이다. 전국 40개 의대 가운데 35개 의대 대표 학생들도 20일 휴학계를 제출하기로 했다고 한다.
빅5 병원은 전국에서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중환자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전공의들이 실제로 집단행동을 벌일 경우 중환자의 입원·수술에 큰 차질이 빚으면서 환자 생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는 즉시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리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면허 취소 등 징계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번에는 사후 구제나 선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현실화할 경우 비대면 진료 전면 확대, 진료 보조(PA) 간호사 역할 확대, 군 병원 등 공공 의료기관 활용 등으로 대처하겠다고 했다. 상당수는 그동안 의사들 눈치를 보느라 시행하지 못한 의료 규제들이다. 환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런 의료 규제들을 없애는 것이 불가피할 수 있다.
여러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상위 1%의 연평균 소득은 2억원 남짓인데, 개업 의사들은 연평균 3억4200만원(2021년 기준)을 벌고 있다. 정부 발표대로 이번 대학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씩 5년간 1만명 늘리더라도 실제 의사가 나오는 10년 후엔 의사 인력이 7~8% 늘어나는 수준이다. 그만큼 늘더라도 개업의 소득은 3억1000만~3억2000만원 정도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여전히 개업의 대부분이 우리 사회 상위 1 %에 속할 수 있는 수준이다. 노조원도 아닌 의사들이 이 정도 수입 감소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환자 생명을 담보로 집단행동에 나서겠다는 것은 지나치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 생각을 물어보니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가 76%, ‘부정적인 점이 더 많다는 16%였다. 지지 정당 간 이견도 거의 없었다. 이 정도면 의대 증원이 국민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뜻을 거슬러 무엇을 얻을 수 있겠나. 설사 이번에 의대 증원을 무산시킨다고 해도 더 큰 역풍이 의사들에게 불어닥칠 것이다.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잃는 것이 가장 큰 상실일 것이다.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의사는 돈 더 받는 것이 최대 목표인 노조원과 같을 수 없다. 의료계가 본분을 지키며 인내하고 희생하면 결국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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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5 병원 전공醫 “전원 사직”… 응급-수술 대란 막아야
서울대병원 등 국내 필수의료의 중추기관인 이른바 ‘빅5’ 병원 전공의(인턴과 레지던트)들이 19일까지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원광대 등 다른 병원 전공의들도 사직서를 내고 있다. 전국 40개 의대 학생들은 20일 일제히 휴학계를 내기로 결의했다.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정부의 결정에 반발하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전공의들의 파업 예고에 치료가 시급한 환자와 가족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온라인에는 ‘어머니가 20일 폐암 수술을 받기로 했는데 수술이 밀렸다’는 등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입원 중단, 검사 생략 등 조치도 잇따르고 있다. 5대 대형병원 의사 중 전공의가 39%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응급실과 수술실에서 휴일·야간 당직, 수술 보조 등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빠지면 응급실과 수술실이 사실상 마비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환자의 생사와 직결될 수 있는 문제다. 실제로 2020년 의대 증원에 반대해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섰을 당시 음독 환자와 심정지 환자가 치료할 병원을 찾다가 숨진 사례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의사협회는 조만간 회원 투표를 통해 파업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일반 의사들까지 파업에 가세한다면 국민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각 병원에 전공의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발동한 데 이어 집단연가를 불허하고 필수의료를 유지하라는 명령을 추가로 내렸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정부가 업무개시를 명령하더라도 복귀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자세다.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당장은 군병원 응급실을 민간에 개방하고, 진료보조(PA) 간호사 역할을 확대해 전공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방안 등이 시급하다. 의사들의 불법 행위는 엄정 대응하되 필수의료 보상 강화 방안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의료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것도 필요하다. 아울러 전국의 대학병원 교수들이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전공의와 학생들이 환자와 학교를 떠나고, 의대 증원이 또다시 좌초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동아일보(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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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엑소더스 1세대의 항변
그들은 왜 공대 떠나 의사가 됐나
연봉보다 불확실성과 위험 때문
공대생 유망 기업은 국내 2~3곳
애국심으로만 호소 말아달라
20여 년 전 이맘때 새터(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난 서울대 전기공학부 동창들과 지금도 몇 달에 한 번 저녁을 함께 하며 안부를 묻곤 한다. 이 오래된 친구들의 직업은 변호사, 의사, 컨설턴트, 공기업 직원 등으로 다양하다. 워낙 많은 수가 탈(脫)공대를 선택해서다. 카카오톡 단톡방 멤버 10명 가운데 박사 학위를 딴 이는 두 명밖에 없다. 가끔 연락하는 다른 동창들도 다수가 의사나 변호사다. 신입생 대상 학과 설명회에서 한 교수님이 입학 성적 분포표를 보여주시며 같은 대학 의대와 비교해서도 신입생의 ‘질’이 꿀릴 게 없다고 말한 것을 떠올려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많은 이들이 전기공학부를 떠났던 이유는 결국 공학박사를 따서 무엇을 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대학교수나 기업 연구원이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느냐는 ‘수익’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진로를 고려하던 1990년대 후반에도 이미 의사의 급여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불확실성과 위험이 높다는 데 있었다. 의대 쏠림 현상이 점점 심화되는 원인은 의사라는 직업에만 있지 않다. 이공계 연구 인력의 노동시장 구조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박사 학위를 따고 대학이나 기업체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20~30대를 통째로 바쳐야 한다.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학부 과정 성적과 연구자로서의 성공은 별개다. 운이 아주 나쁘면 박사 과정 중간에 그만둬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몇 해 전 국내 한 대학에 임용된 한 친구의 경우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 학위를 따는 데 7년이 걸렸다. 그리고 미국 대학에서 리서치펠로(연구원)로 5년 넘게 근무하면서 연구 실적을 더 쌓고서야 현지 대학 교수가 됐다.
수익 차이도 크다. 연구·개발(R&D)이나 스타트업 창업 등은 이른바 ‘수퍼스타의 경제학’이 작동하는 분야다. 미국에서도 어느 대학에서 어떤 직위에 있느냐에 따른 보수 차이는 급격히 벌어지고 있다. 폴라 스테판 조지아대 교수는 1975~2006년 미국 남성 정교수 급여의 지니계수(불평등 측정 지표)가 0.314에서 0.424로 늘었다고 지적한다. 경제학에서는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빈부격차가 극히 높다고 본다.
불확실성과 위험을 벌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소득을 제공하는 일자리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 국내 노동시장에서 한국의 이공계 인력들이 갈 만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경우 해당 전공에서 갈 만한 대기업은 2~3곳 정도에 불과하다. 특정 기업에 평생 매여살면서, 기업의 성패에 자신의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IMF 외환 위기 구조조정을 목격한 세대에게 기업은 가급적 피해야 하는 선택지였다. 초거대 선도 기업과 나머지 기업 간의 생산성 격차가 벌어지면서 기업 연구원들도 어디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처우가 벌어지고 있지만, 그 초거대 기업은 대개 미국에 있었다.
다른 선진국처럼 과학기술과 지식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활성화되고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면 이공계 고급 인력의 일자리 여건은 훨씬 나았을 것이다. 또 이공계 인력들의 노동시장도 국내와 해외 간의 장벽이 낮아지면서 선택지가 늘어났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대학을 나온 이들이 영국의 ARM이나 딥마인드를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정부는 2000년대 초부터 이공계 기피 현상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산업과 노동시장 구조에서 이공계 진학이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연구실을 선택하길 원한다면, 그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미래 일자리 선택지를 늘리고 질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어야 한다.
-조귀동 경제칼럼니스트, 조선일보(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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