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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의 직접신문] [이재명의 ‘존명(存命) 정치’, 그 끝은] ....

뚝섬 2024. 3. 26. 09:04

[피고인의 직접신문]

[이재명의 ‘존명(存命) 정치’, 그 끝은]

[황운하 판례’ 때문에 꼭 필요해진 ‘이성윤 출마 금지법’]

[패권 원조 친문이 맛본 ‘이재명의 맛’]

[독일에서 본 한국의 명암]

 

 

 

피고인의 직접신문

 

일주일에 두세 번씩 형사재판을 받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서는 다른 거물급 피고인들에게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중 하나가 지난 19일 대장동 재판에서 있었던 ‘무단 불출석’이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반드시 출석해야 하고 불출석하려면 미리 재판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재판부는 이미 선거운동을 이유로 한 불출석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전날 불출석 사유서만 제출한 채 강원도 유세현장에 갔다. 그러자 재판부가 ‘강제소환까지 고려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 대표는 12일 재판에도 민주당 선대위 출범식에 참석한다며 오전에 불출석했다가 오후에만 나왔었다.

 

이런 식의 ‘무단 불출석’은 매우 드물다. 정치인 사건을 다수 경험한 한 변호사는 “불출석 사유서나 일정 변경을 요청해 허락을 못 받으면 당연히 재판 출석이 우선”이라고 했다. 불출석하면 자칫 구속될 수도 있고, 유무죄를 결정하는 재판부에 나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변호사 출신인 이 대표가 이 점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총선 유세를 위해 불출석을 감행했다.

 

전직 대통령이나 재벌 회장들도 보통은 피고인석에 앉으면 재판은 변호인에게 맡기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한다. 그런데 이 대표는 거의 매번 재판마다 변호인의 증인신문에 이어 본인이 직접 증인을 신문한다.

 

피고인의 증인신문은 불법은 아니지만 적절히 제한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감정이 개입하는 데다 흉악범죄의 경우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직접신문은 그 자체가 2차 가해다. 이 대표의 혐의가 흉악범죄는 아니지만 증인들은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직접 신문은 백현동 4단계 용도변경이 국토부 협박 때문이라는 발언이 허위라며 기소된 사건에서 증인인 성남시 공무원들에게 ‘중앙정부(국토부)에서 부지매각에 협조해 달라며 오는 공문이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았느냐’고 거듭 묻는 식이다. 공무원들은 제1 야당 대표이자 유력 대선주자인 이 대표의 ‘압박 신문’에 시선을 피하면서 우물쭈물 압박을 느꼈겠죠’라고 답한다. 지난 18일 이 대표가 시켜서 위증했다고 자백한 김진성씨를 상대로 변호인과 번갈아가며 6시간에 걸쳐 녹취록 표현 하나하나를 따지고 들었다. 김씨는 이 대표와의 대면이 두렵다며 법정에 차단막 설치도 요구한 상태였다.

 

이런 이 대표의 모습에서는 어떻게든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겠다는 ‘생존 본능’이 느껴진다. 총선에서 이겨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해 법정 대신 유세현장을 택한다. 출석한 재판에서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증언을 얻기 위해 증인을 상대로 압박 신문을 한다. 그 과정에서 법정 절차나 증인이 느끼는 압박감은 무시되고 제1 야당 대표의 생존 본능만 남게 됐다. 사법부가 이런 강한 생존 본능 앞에서 법과 원칙에 따른 재판을 할 수 있을지, 앞으로 지켜볼 부분이다.

 

-양은경 기자, 조선일보(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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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존명(存命) 정치’, 그 끝은

 

[정용관 칼럼]

李 “결코 죽지 않는다” 노골적 비명 쳐내기
배타적 ‘운동권 성곽’ 쌓았던 친문 자업자득
70
년 전통 민주당, 개딸과 종북 세력 ‘숙주’로
이재명黨 완성한다고 방탄-대권 뜻대로 될까

 

1월 초 흉기 습격을 당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복귀 일성은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래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고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였다. 검찰과 언론을 살인미수 혐의자와 같은 선상으로 취급할 수 있느냐는 비판도 나왔지만, 이 대표 의식 저변에 깔린 “죽지 않는다”는 강한 생존 의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존명(存命)이란 말이 있다. 살아서 목숨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여러 소설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숱한 개인들의 존명 스토리가 등장한다. 사선(死線)을 넘고 고난을 딛고 살아남아 가족, 또 사회를 일으켜 세운 이들의 삶은 감동적이다. 존명에는 자기희생도 따른다. 그러나 이웃이나 조직, 사회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의 존명은 대의나 명분이 결여된 생존 처세술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정치인들과는 많이 달라 보이는 이 대표의 정치 행보나 스타일을 하나의 단어로 꿸 수 있다면 그런 의미의 ‘존명’, 즉 끈질긴 생명력이 아닐까 한다. 여기엔 언제든 내쳐질 수도 있다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만의 설움과 두려움이 깔려 있다. 대장동 의혹 등에 대해 이 대표가 “검찰 주장대로라면 징역 50년을 받을 것”이라고 했던 게 단적인 예다. 수십 년 감방 살 일을 왜 했겠느냐는 항변이었겠지만, “검찰 주장이 법원에서 먹히면…” 하는 불안감도 잠복해 있다고 본다. 그러니 어떻게든 정치적 방어벽을 쌓아야 하는데, 성곽 안에 반란 세력이 도사리고 있으니 우환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을 보며 더 뼈저리게 절감했을 듯하다.

 

대선 패배 직후 당 일각에서 이재명 축출 움직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당 대표 도전으로 정면 돌파했지만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한 건 아니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비명 반명 쳐내기는 이 대표로선 ‘합리적’ 선택이다. 면전에서 “피칠갑” 비난을 퍼부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공천 탈락 중진들의 반발과 탈당에도 “입당도 탈당도 자유”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한 태도다. 사활적 이익(利)이 걸려 있는데, 아무리 포용과 통합 등 명분(理)을 외쳐본들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친문 등 비명 진영은 속절없이 당하고 있지만 억울할 것도 없다. 자업자득이다. 대부분 수십 년간 86 운동권 엘리트로서 기득권을 누려왔다. 중도 진보의 울타리를 굳건히 세우고 전문가 그룹을 당의 중심 세력으로 키우기는커녕 각자 계파에 안주하고 친노 친문 등으로 말을 갈아타며 국회의원 배지 달기에 급급해 왔던 것 아닌가. 반면 이 대표는 더 절박하고 집요했다. 2월 초 문재인 전 대통령을 찾아가 포옹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명문 정당’ 운운한 것은 친문 진영의 집단행동과 원심력을 적시에 차단시킨, 돌이켜보면 탁월한 기만전술이었다. 그 결과는 지금껏 본 대로다. 용광로 공천을 기대했던 임종석을 비롯한 친문 핵심들의 처지만 서글프게 됐다.

이 대표는 내심 1996년 DJ의 모델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당시 야당인 통합민주당 내에서 DJ의 정계 복귀, 대권 4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DJ는 야권 분열 비난에도 아예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79석밖에 얻지 못했지만 확실한 자기 당을 만들고 이듬해 DJP 연대로 대권까지 거머쥔다. 이 대표는 DJ가 아니고 그때와 지금은 정치 상황도 다르지만, 1당이든 2당이든 뚜렷한 적수 없이 사실상 대선 후보 자리가 보장된 정당을 갖는다는 것은 이 대표로선 절체절명의 과제일 수 있다.

문제는 당장 이재명의 민주당에 총선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공천 내전은 곧 일단락될 것이고 본선(本選)의 시간이 오면 정권심판론이 다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서울을 중심으로 심상찮은 지지율 하락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야당 지지층도 느끼고 있다.

이 대표는 의미 있는 총선 성과를 내고, 방탄의 성곽을 더 튼튼히 하고, 대권까지 갈 수 있을까. 과반이나 1당은커녕 참패 성적표를 받아들면 어찌 될까. 차기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2년 전과 같은 득표율을 올릴 수 있을까. 손가락혁명군에 이은 개딸, ‘종북’ 통진당 후신의 진보당…. 이들이 이 대표를 끝까지 호위할 방탄 세력일 수는 있겠다. 문제는 극성 팬덤의 정치 놀이터, 우리 사회 맨 왼쪽 세력의 숙주 노릇을 하려는 민주당에 대한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이다. 이재명의 존명의 길이 민주당의 존망(存亡)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것 또한 이번 총선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정용관 논설실장, 동아일보(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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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하 판례’ 때문에 꼭 필요해진 ‘이성윤 출마 금지법’

 

지난 2월 23일 이성윤(오른쪽)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인재영입 환영식에서 이재명 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스1

 

현직 검사 신분으로 조국 전 법무장관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윤석열 사단은 전두환 하나회”라고 비판했던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에게 해임 처분이 내려졌다. 법무부 검사 징계 위원회는 이 연구위원에 대해 견책, 감봉, 정직, 면직, 해임 등 5단계로 돼 있는 징계 처분 중 가장 수위가 높은 해임을 의결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학 후배로서 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과 서울고검장을 지낸 이 연구위원은 지난해 1월~11월 총 8차례에 걸쳐 검찰 업무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발언을 하는 등 검사 윤리강령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 1월 사표를 제출했으나 징계 절차를 이유로 그동안 수리되지 않았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재로 발탁돼 전북 전주을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경쟁 후보들은 민주당이 이 연구위원 같은 고검장급 신인에게 부여하는 20% 가산점이 특혜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이 민주당 텃밭인 전주에서 공천을 받으면 사실상 당선이 확정적이다.

 

현직 검사에서 곧장 이번 총선에 뛰어들었던 나머지 여야 예비후보들은 모두 공천이 배제됐다. ‘한동훈 녹취록’에 없는 내용을 KBS에 전달해 오보를 내게 만든 신성식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전남 순천 지역구 민주당 공천을 노렸으나 컷 오프됐다. 국민의 힘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김상민 전 대전고검 검사와 박용호 전 부산고검 검사도 공천을 받지 못했다.

 

4년 전 총선 때 민주당 후보로 대전 중구에서 당선된 황운하 의원은 선거 직후 경쟁 후보에게 피소당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으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어 사표 수리가 안 됐던 황 의원이 현직 경찰 신분으로 선거에 당선된 것은 무효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공직선거법상 사퇴 시한인 90일 전에 사표를 냈다면 그 수리 여부와 상관없이 접수 시점에 그만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과거엔 공직자가 기소만 돼도 옷을 벗는 게 관례였고 하물며 선거에 뛰어드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권에선 검찰 및 경찰 고위 관계자들이 노골적인 정치 개입으로 받게 된 징계를 훈장 삼아 여야 유력 정당으로부터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이 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게 됐다. ‘황운하 판례’를 악용하는 이런 뻔뻔한 공직자들의 정치권 진입을 막는 입법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

 

-조선일보(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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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 원조 친문이 맛본 ‘이재명의 맛’

 

[박정훈 칼럼]

친문 패권이 저물자 친명 패권이 등장했다…
계파 싸움엔 도가 튼 패권 원조 친문에게도
이재명의 거친 폭주는 한 번도 경험 못 한 독한 맛일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피트니스에서 가진 직장인 간담회에서 운동 기구에 오르자 TV 화면에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공천 반발 회견 모습이 보이고 있다. /뉴스1

 

차은우보다 이재명을 외친 민주당 안귀령 부대변인의 이른바 ‘아부 공천’엔 원조가 있다. 문재인 정권 3년 차이던 2019년, 박경미 당시 민주당 의원이 ‘박경미가 문재인 대통령께’란 유튜브 영상을 올렸다. 그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피아노 연주하며 “호수에 비치는 달빛의 은은함” 어쩌고 하더니 달빛 소나타가 문 대통령의 성정(性情)을 닮았다고 했다. 문 정부의 피날레는 월광 소나타의 화려한 3악장처럼 뜨거운 감동을 남길 것”이라고도 했다. 보는 사람 손발이 오그라들게 했다.

 

몇 달 뒤 그는 민주당 공천을 받아 서울 서초을에 출마했다. 선거엔 떨어졌지만 낙선의 아픔은 잠시뿐이었다. 그는 곧 청와대 교육비서관에 발탁됐고, 수석 대변인으로 영전해 정권 임기 말까지 자리를 지켰다. 비슷한 시기 박범계 의원이 대국민 사과를 한 문 대통령을 향해 “아 대통령님!”이라며 안타까워하는 글을 올린 뒤 닷새 만에 법무장관에 임명된 일도 있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그렇듯, 문 정부 시절에도 낯 뜨거운 충성 맹세가 비일비재했다. ‘문(文)비어천가’란 말이 유행할 지경이었다.

 

친명(親明)의 비주류 찍어내기가 논란을 부르고 있지만 이것의 원조도 친문이다. 2020년 총선 당시 금태섭 민주당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공수처 설립에 반대하고 ‘조국 사태’를 비판하면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탓이었다. 친문 행동대원 김남국·정봉주가 금태섭을 잡겠다며 달려들고 ‘문빠’ 홍위병들이 집중포화를 퍼부은 끝에 그는 경선에서 졌다. 금태섭은 당 징계까지 얻어맞고 결국 탈당하고 말았다. 지금 벌어지는 비명(非明)의 연쇄 탈당과 스토리 구조가 다르지 않았다.

 

4년 전 총선 때도 사당화(私黨化) 논란이 있었다. 청와대 참모를 비롯한 친문 인사가 무더기로 공천받아 민주당과 국회를 장악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윤건영, 소통수석 윤영찬, 대변인 고민정 등이 그때 금배지를 단 ‘문재인의 사람’들이다. 염치없게도 울산 선거 개입 사건에 연루된 황운하까지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친문들이 대거 단수 공천되거나 좋은 지역구를 차지하는 바람에 ‘친문 양지, 비문 험지’란 말이 나왔다.

 

당시 친문은 민주당뿐 아니라 국가 권력마저 사유화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정 운영에서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고 소득 주도 성장, 탈원전 같은 정파적 정책을 힘으로 밀어붙였다. 대통령의 30년 지기를 당선시키려 청와대가 선거에 개입하고, 대통령 심복이란 이유로 내로남불 조국을 법무장관에 기용했다. 친명이 독단적 당 운영으로 민주당을 분열시켰다면, 친문은 편 가르기 진영 정치로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 놓았다. 자기 세력, 자기 진영의 이익을 앞세워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갈등을 조장한 점에서 두 파벌은 오십보백보다.

 

‘친문의 황태자’ 임종석이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반발했다. 문 정권 때 그는 권력 사유화를 주도하고 울산 선거 개입의 사령탑으로 지목받은 가해 세력의 핵심이었다. 고민정 의원은 공천 파행에 항의해 최고위원을 사퇴했지만 그 역시 문 정권의 국정 폭주에 앞장서고 박원순 성폭력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우긴 장본인이었다. 공천 탈락 위기에 몰린 윤영찬 의원 또한 비우호적 기사를 올렸다는 이유로 “카카오, 들어오라고 해”라고 호통치며 비판 언론을 억압한 정권의 수비대장이었다.

 

탈당한 이원욱 의원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주인 무는 개”에 비유하며 공격했고, 김종민 의원은 조국의 비리를 방어해주는 호위 무사로 활약했다. 컷오프당한 홍영표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을 밀어붙였고, 설훈 의원은 김의겸의 재개발 투기와 윤미향의 위안부 할머니 돈 편취를 싸고돈 사람이다.

 

그렇게 세몰이 하며 5년간 권력을 휘두른 친문이 비주류로 전락해 이재명을 만났다. 계파 싸움엔 도가 튼 친문에게도 이 대표의 거친 폭주는 한 번도 경험 못 한 ‘독한 맛’일 것이다. 이 대표는 가는 곳마다 적을 만드는 난세(亂世)형 정치가다. 그는 친형 가족과 싸워 원수가 됐고 수많은 ‘이재명 저격수’를 출현시켰다.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 유동규, 경기지사 비서실 7급 출신 조명현, 성남시장 수행비서 출신 김진성 등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잇따라 등을 돌려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내고 있다. 측근 5명이 연달아 숨을 거둔 것도 예사롭지 않다. 계파 패권주의의 원조인 친문이 상상도 못 한 강적을 만나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친명·친문의 전쟁에서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양쪽 다 파벌 이익에 목숨 건 비정상 집단이니 누굴 동정할 필요도 없다. 친문 패권이 저물자 한층 더 센 친명 패권이 등장했다. 대를 이어 계파 패권주의가 판치는 민주당은 더 이상 고쳐 쓰기 힘든 정당이 됐다.

 

-박정훈 논설실장, 조선일보(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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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명횡사’ 와중에도 누구 사위, 누구 아들은 공천. 학습도 없이 정밀하게 선별해내는 AI급 공천.

 

-팔면봉, 조선일보(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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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본 한국의 명암

 

[특파원 리포트]

 

독일에 처음 도착하고 느낀 것은 달라진 한국의 위상이었다. 10여 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왔을 때만 해도 “일본에서 왔느냐? 중국에서 왔느냐?”는 말이 먼저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쪽인지 북쪽인지를 묻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길거리에서 “한국인이냐?”며 “한국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먼저 물어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요즘은 함부로 한국어 욕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 나쁜 표현은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카페에서 한국 친구와 얘기하면 종업원이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 인사를 하거나, 마트 직원이 한국 사람인 걸 알아보고 “(드라마) 도깨비를 좋아한다”며 한국 배우를 바탕화면으로 한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축구는 잘 안 본다는 프랑스 친구도 “너네 나라에는 ‘손(손흥민)’이 있잖아”라고 하고, 아시아 마트에서 장을 보다 “김치찌개를 하려는데 이 재료가 맞느냐”고 물어오는 학생들도 만났다. BTS, 블랙핑크 등 한국 가수들은 말할 것도 없다. 기자는 미처 몰랐던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의 이름을 줄줄 대는 외국 친구들도 있다. 나는 한 게 없는 데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호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얼떨떨하면서도 기분 좋았다.

 

이와 다르게 독일에서 한국인이기를 포기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이민을 결심한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초등학생 아이 두 명을 둔 40대 부부는 아이들이 입시 경쟁에 찌드는 게 싫어 독일을 택했다. 학교에서 다양한 스포츠와 공연을 즐기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과 같은 삶을 물려주지 않아 기쁘다고 했다. 한 30대 회사원은 합리적인 ‘워라밸’을 찾아 독일로 왔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일을 더하려 하자 “네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상사에 놀랐다. 연차와 병가를 눈치를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것도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고 했다. 노후 안정이 보장되지 않아, 직장 생활의 감정 노동에 지쳐, 비교하는 문화가 싫어 등 각자 한국을 떠나온 이유를 얘기하다 보면 공감대가 쌓여 금방 성토의 장이 됐다. 타향살이가 쉽지 않지만 이곳에 남기로 결정한 이유들이다.

 

모두에게 내가 살 나라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자유롭게 주어진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때 한국은 얼마나 경쟁력 있는 나라일까. 어떤 이들에게 한국은 동경의 대상이지만, 선뜻 지금의 한국 사회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한국을 떠나온 이들이 말하는 이유가 하나하나 공감돼기 때문이다. 합계출산율 ‘0.65명’이라는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이를 해결할 제도와 정책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지금, 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권력 싸움에 몰두한 이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베를린=최아리 특파원, 조선일보(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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