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가 지역구를 쇼핑한다]
[野 4선 국회 부의장 與 입당, 요청한 쪽이나 수락한 쪽이나]
후보가 지역구를 쇼핑한다
그곳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현재 살고 있지도 않으며
지면 짐 싸서 떠날 후보들을 우리는 찍도록 강요받고 있다
4·10 총선 공천 작업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거대 양당 대진표가 속속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은 국회의원 배지./뉴스1
후보가 지역구를 쇼핑한다.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후보는 전국 254곳 지역구 중 ‘당선 가능성’이 있거나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곳을 정략에 따라 고른다. 반대로 그곳서 수십 년 살아온 유권자는 어제까지 이름도 성도 몰랐던 뜨내기 후보를 찍도록 강요당한다. 정치적 선택의 자유는 후보가 누린다.
선거법 25조엔 ‘인구, 행정구역, 지리적 여건, 교통, 생활 여건’에 따라 지역구를 획정한다고 돼 있다. 정당별-후보별 지역구 쇼핑은 이런 입법 취지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 총선은 정당도 ‘떴다방’, 후보도 ‘떴다방’이어서 본질적으로 “파장(罷場)하면 좌판(坐板)을 걷는” 장돌뱅이 성격을 띠고 있다. 뜨내기 후보가 낙선 뒤에도 그 지역구에 뿌리내리고 살기 시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뜨내기 후보는 지역구에 낯선 얼굴을 들이밀 때 대개 ‘세대교체’란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일종의 위장 전술이다. ‘사천(私薦)’ 논란에 휩싸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얼마 전 “장강의 물은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고 했다. 세대교체를 한다는 것이다. 중국 격언집 ‘증광현문(增廣賢文)’을 비롯, 여러 곳에 등장하는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란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강압에 의한 축출이 아닌, 양쯔강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교체를 강조한 말이다. 친문·비명이 앞물결이요 친명은 무조건 뒷물결이라면, 굳이 ‘비명횡사’ ‘친문학살’ 같은 무시무시한 말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그건 누가 봐도 억지스럽다. 공천에서 탈락한 동작을 의원 이수진이 “이재명 측근이 (공천 관련) 돈 받았다”며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한이 서린 펀치를 날렸으나 당사자로 지목된 후보검증위원장 동작갑 의원 김병기는 “사실무근”이라며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고 했다. 이수진에게 역공의 피니시 블로를 휘두른 것이다.
이 말은 인도·중동·헝가리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늘 썼던 표현이라는데, 1939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클라크 케이블이 이 대사를 읊조렸다고도 한다. 어찌 됐든 한국 땅에서는 90년대 어떤 대통령부터 이 ‘개짖기달’을 입에 올린 정치인 명단이 즐비하거니와, 사실은 이재명식 ‘앞물결 뒷물결’의 감춰진 속뜻이 김병기의 ‘개짖기달’에 이르러 완전히 해석되었다고도 할 것이다. 기차에 올라탄 사람은 공천을 받은 뒷물결이고, 텅빈 역사(驛舍)에서 떠나버린 기차를 향해 속절없이 짖고 있는 개는 앞물결이라는 뜻이다.
이 대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며 바이블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우리는 금세 알아차렸다. ‘새 부대’는 국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민주당이 ‘재명당(黨)’으로 탈바꿈한 것을 뜻하며, ‘새 술’은 공천에 안착한 친명 충성파 스크럼 동지들을 뜻한다고 할 것이다.
또 이 대표는 “떡잎이 져야 새순이 자란다”며 정체불명의 속담을 들고 나왔는데, 필자가 과문한 탓인가 싶어 여러 속담 사전을 뒤져봤으나 그런 말은 없었고,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가 떡잎과 관련된 10가지 속담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었다. 따라서 “떡잎이 져야 한다”에서 이 대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당권 경쟁자’ 혹은 ‘대권 경쟁자’로서 될성부른 나무의 조짐이 보이는 떡잎은 이참에 꺾어놓겠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은 뒤 지역구 쇼핑을 완료한 후보들이 유권자를 만나러 지역에 내려오고 있다. 그곳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곳서 현재 살고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곳서 생업을 꾸려본 적도 없으며, 선거에 질 경우 남아있을 가능성이 별로인 ‘지역구 쇼핑객’을 우리는 맞이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 상향식 공천은 외국어처럼 낯선 말이 됐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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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4선 국회 부의장 與 입당, 요청한 쪽이나 수락한 쪽이나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영주 국회 부의장이 오늘 국민의힘에 입당한다. 그는 “1일 만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진영 논리에 매몰돼 있는 여의도 정치를 바꾸기 위해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며 입당을 제안했고 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부의장은 지난달 19일 의정활동 하위 20%라는 결과를 통보받자 탈당을 선언했다. 바로 다음 날부터 한 위원장은 그를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분이라고 띄우며 영입전에 나섰다. 자신이 법무부 장관일 때 국회에서 총선 출마 여부를 묻는 안민석 민주당 의원의 질문을 그가 부적절하다며 제지한 일을 좋게 본 모양이다. 민주당 4선 의원인 현직 국회 부의장의 입당이 정치적 호재라고 여기고 서둘렀을 것이다. 여당 비대위원장이 탈당 선언 하루 만에 영입에 나선 것이나 민주당 측을 대표해 국회 부의장을 맡은 사람이 여당으로 옮기는 것이나 부박하기는 마찬가지다.
보수건 진보건 정당이 강령과 정책의 일관성을 허물어뜨리지 않으면서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것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김 부의장은 민주당 내에서 중진답게 처신하려고 했을 뿐 중도의 목소리를 크고 일관성 있게 냈다고 보기 어렵다. 금융노조 출신인 그는 오히려 문재인 정부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재임할 때 최저임금 등에 관해 노동계 입장만 내세우며 청와대가 당황할 정도로 강경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 부의장이 여당에 들어가 어떤 정치를 펼칠지 예상하기 어렵다. 민주당이 잘못 가고 있다고 판단했다면 탈당한 다른 의원들처럼 민주당 밖에서 세력을 모아 민주당의 변화를 견인하는 것이 순서다. 그것이 어렵다면 막연히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에 동조한다고 할 게 아니라 노동 개혁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소신부터 분명히 밝히고 강령과 정책을 달리해 온 정당에 입당해도 입당해야 한다.
올해 69세인 김 부의장은 한 차례 더 의원 자리의 연장을 바라고 옮겨간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를 그의 지역구인 영등포갑에 공천할 것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뛰어온 이들의 반발도 적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철새처럼 당적을 옮긴 정치인에게 유권자들이 순순히 표를 줄지 의문이다.
-동아일보(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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