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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의 푸틴 사랑] [바이든의 ‘자학 개그’]

뚝섬 2024. 3. 20. 06:16

[러시아인의 푸틴 사랑]

[바이든의 ‘자학 개그’]

 

 

 

러시아인의 푸틴 사랑 

 

한국에 사는 프랑스인과 러시아인이 유튜브에 나와 자국의 국민성을 화제 삼아 대화를 나눴다. 러시아인 출연자는 “러시아인은 자유를 싫어한다”고 했다. 자유롭게 살기보다 강력한 지도자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는 얘기였다. 역사적인 근거가 있다. 13세기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 세웠던 여러 한국(汗國)은 한 세기 뒤에 모두 멸망했지만 오직 러시아에 들어선 킵차크 한국만 두 세기 넘게 존속하며 러시아를 지배했다. 러시아인 특유의 굴종적 태도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스탈린은 러시아인의 이런 민족성을 꿰뚫고 있었다. 그가 1937년 대숙청을 일으켜 최대 120만명의 목숨을 빼앗는 동안 러시아인은 저항하지 않았다. 투하쳅스키 원수 등 전쟁 영웅들이 잇달아 처형될 때 군부도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2차 대전이 터지자 겁먹고 달아났던 스탈린을 찾아가 “다시 우리를 지휘해 달라”고 했다. 스탈린은 “독일군의 공격을 몸으로 버틴 뒤 그들의 전력이 고갈되면 후방의 예비 병력으로 반격하자”며 자국민을 총알받이로 쓰는 작전을 제안한 주코프 사령관을 좋아했다.

 

러시아인들은 서방세계에 뿌리 깊은 피해의식과 열등의식을 갖고 있다. 2차 대전에서 소련의 인명 피해가 컸던 이유도 연합군이 소련인을 더 많이 희생시키려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고의로 늦췄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온화해야 할 6월에 날씨가 쌀쌀해진 기상이변을 ‘미국 CIA 음모’라고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러시아의 크리스마스가 1월 7일인 것도 서유럽에 대한 반감이 한 원인이라 한다.

 

▶푸틴이 다섯 번째 집권에 성공하며 30년 장기 집권 문을 열었다. 그의 승리를 두고 “부정선거여서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투명 투표함을 쓰고 기표 용지를 접지도 않으니 투표라고 하기도 힘들다. 한 독립 언론은 열을 가하면 잉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감온(感溫) 잉크를 내장한 기표 용구가 쓰였다며 기표 부위가 라이터 불에 지워지는 장면도 공개했다.

 

▶그러나 압도적 다수의 러시아 국민이 푸틴을 택한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 강한 사람이 질서를 잡아주고 민중은 그냥 따르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러시아인들은 러시아를 유럽 강국으로 발돋움시킨 표트르 대제를 숭배한다. 그런 지도자가 또 나와 서유럽에 대한 열등감을 풀어주길 바란다. 그 마음을 읽은 푸틴은 ‘표트르 대제는 내 롤 모델’이라고 했다. 러시아인들도 러시아의 영광을 실추시킨 고르바초프보다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나발니를 죽인 푸틴을 좋아한다. 이 ‘러시아인 의식’은 계속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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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자학 개그’

 

16일 오후 10시 미국 워싱턴 그랜드하이엇호텔에서 열린 만찬 무대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올라섰다. 바이든은 시계를 힐끔 보며 말문을 열었다. “내 취침 시간보다 6시간이나 지났네요(Six hours past my bedtime).”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82세인 그의 재선 도전에 고령 논란이 커지자 ‘자학 개그’로 받아친 것이었다. 바이든은 이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8)을 겨냥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후보가 정해졌는데 한 명은 너무 늙은 데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다. 다른 한 명이 바로 나다.”

▷이날 행사는 미국 중견 언론인들이 대통령 등 권력자들을 초청해 격의 없이 소통하는 ‘그리드아이언(Gridiron)’ 만찬이다. 1885년 시작된 이후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초청됐다. 세계 초강대국 지도자인 미국 대통령도 이때만큼은 ‘최고 폭소 책임자(CFO·Chief Fun Officer)’로서 면모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잘만 하면 야당과 국민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전세를 반전시킬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오늘밤, 사상 최초로 저의 출생 비디오를 공개합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1년 이 만찬에서 중대 발표를 했다. 당시 트럼프 등 보수 인사들이 오바마 출생지 의혹을 제기하며 오바마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나 선거법상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던 때였다. 오바마의 엄중한 표정에 만찬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곧 대형 화면에 영상이 재생됐다. 아프리카 평원에서 새끼 사자가 태어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한 장면이었다. 배꼽을 잡는 참석자들 사이에서 트럼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후 7년 뒤인 2018년 트럼프 역시 같은 무대에 섰다. 행사 며칠 전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당시 백악관 선임고문이 족벌정치 논란 끝에 기밀 접근권을 박탈당했는데 트럼프는 이를 빗대 인사말을 했다.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사위가 보안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오래 걸렸네요.” 트럼프는 당시 참모들의 연이은 사퇴에 대해 “요즘 백악관을 떠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다음은 누굴까. 멜라니아(영부인)일까”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마이크만 들고 서서 말로 관객을 웃기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미국에서 웬만한 가수 콘서트 못지않은 인기 공연이다. 이런 문화가 정치에도 투영돼 유머감각은 정치인의 자질 중 하나로 평가된다. 미 대선에서도 “내가 낙선하면 피바다가 될 것(트럼프)” “트럼프는 히틀러 앵무새(바이든)” 같은 험한 말들이 오가지만 가끔 등장하는 자학 개그는 격해진 긴장을 풀어주는 순기능이 있다. 상대의 정곡을 찌르고 유권자의 공감을 얻는 데도 촌철살인이 담긴 유머는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 정치에도 다 같이 빵 터지는 순간들이 많아지면 막말과 혐오의 언어가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 동아일보(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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