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비전 사라진 ‘저질’ 총선]
[하책과 상책]
[100년의 역사가 병들고 있다]
미래에 대한 비전 사라진 ‘저질’ 총선
[전성철의 글로벌 인사이트]
선거는 정당의 ‘영혼’ 보여주는 정책 있어야
국민 ‘배고프지 않게’ 하겠다는 보수 이념도
‘배 아프지 않게’ 하겠다는 진보 이념도 증발
상대 비난과 표 구걸만 난무하는 저급 선거
보수·진보 두 바퀴 크기 비슷해야 역사 전진
서로 인정하고 선의의 경쟁 하는 선진 정치를
4·10 총선 사전 투표가 5일부터 시작된다.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선거는 열정 면에서는 역대급으로 대단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역대급으로 저질인 것 같다.
선진국을 포함,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선거 때는 항상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명예롭고도 고상한’ 요소가 반드시 있다. 바로 그 정당의 ‘영혼’이 대거 노출된다. 정당의 영혼이 무엇인가? 바로 ‘이념’이라는 것이다. 그 정당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보수’의 이념과 ‘진보’의 이념이다. 이 영혼이 선거의 중심에 있지 않는 한, 그 선거는 거리의 ‘부랑 집단들’ 간의 경쟁과 별반 차이가 없다. 궁극적으로 ‘땅 따먹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념이란 대표적으로 경제 정책으로 나타난다. 경제에서 무엇을 더 중요시할까라는 것이다. 경제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어떻게 하면 국민을 ‘배고프지 않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바로 ‘풍요’의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하면 그들을 ‘배 아프지 않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바로 ’평등’의 문제이다.
이 중 배고프지 않게 하는 문제, 즉 풍요를 중시하는 집단을 우리는 언필칭 보수라 부른다. 풍요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국민에게 자유를 줘야 한다. 자유가 있어야 새로운 도전, 혁신 등이 많이 일어나 ‘떡’이 더 많이, 빨리 커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의 심각한 문제가 뒤따른다. 바로 ‘배 아픈’ 문제이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불평등’이 생기는 것이다. 이 불평등 문제를 중시하는 자들을 우리는 소위 진보라 부른다. 한 마디로,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커진 떡’을 최대한 골고루 나눠 가지게 함으로써, 배 아픈 사람의 수를 최대한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약자를 돕기 위해 세금을 올리고 여러 가지 규제를 새로 만들고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다. 시민이 누리고 있는 자유를 축소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즉, ‘떡을 키운다’는 목표와 ‘떡을 나눈다’는 목표를 동시에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자유를 확대하는 것과 축소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종류의 정당이 생기는 것이다. 자유를 더 중시하는 정당을 보수, 평등을 더 중시하는 정당을 진보라 부르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이 두 정당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래야 국민이 궁극적으로 배고프지도 않고, 배 아프지도 않는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 두 정당은 ‘역사라는 수레의 두 바퀴’이다.
그 두 바퀴의 사이즈가 비슷하면 그 나라의 역사는 전진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그 마차는 제 자리에서 빙빙 돌게 된다. 대부분의 독재국가, 특히 공산주의 국가들의 발전이 민주국가에 비해 대단히 느린 이유는 바로 두 바퀴 중 한쪽 바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의 선거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국민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지금이 떡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한가, 떡을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한가”를 묻는 것이다. 다수가 전자가 더 시급하다고 생각하면 보수에 힘을 주고, 후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진보에 힘을 주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국가의 기본적 작동 원리이다.
이번 선거를 역대급 ‘저질 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진짜 중요한 과제가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오로지 상대방 ‘헐뜯기’와 ‘무엇을 만들어 주겠다’는 선심 정책 뿌리기에만 집중했다. ‘비난’과 ‘표 구걸’만이 난무했다. 그래서 저질인 것이다.
정당은 선거에서 ‘눈앞의 떡고물’을 넘어 반드시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은 보통 캐치프레이즈의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보수 정당 경우에는 ‘골라잡을 것이 많은 나라’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국민에게 자유가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국민이 선택할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가 골라잡을 것이 많을 때 아닌가? 그렇다면 진보에는 어떤 캐치프레이즈가 가능할까? 예를 들면 ‘배 아픈 사람이 적은 나라’ 같은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빈부의 격차가 줄어들수록 배 아픈 사람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래 비전을 향한 다양한 정책 구상들을 내놓을 때 국민은 그 정당을 신뢰하게 된다. 그들의 호소가 단순히 ‘표 구걸’이 아님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바로 선진국형의 ‘품격 있는’ 선거이다.
보수와 진보의 두 바퀴는 꼭 필요하고 둘 다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 그 수레가 앞으로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선진 정치의 본질이고 핵심이다. 그런 선진 정치를 통해 국민을 행복하게 했을 뿐 아니라, 전 세계를 호령하는 나라로 비상했던 대표적인 두 나라가 바로 미국과 영국이다. 정치가 그런 식으로 건강하게 작동하면 그 나라는 자원이 많든 적든,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든 낮든 강력하고도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들이다.
불행히도 우리 국민 중에는 상대방이 자신과 다른 이념을 갖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백안시하거나 때로는 적대시하는 잘못된 습관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선거는 본질적으로 ‘이상과 꿈’의 경쟁이어야 한다. 싸움판이 돼서는 안 된다. 수레는 두 바퀴가 공존할 때만 앞으로 제대로 전진할 수 있다.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은 서로를 인정하고 선의로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선거가 얼마나 치졸하면서도 저급했는가는 구태여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조선일보(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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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책과 상책
정직과 겸손보다 강한 무기는 없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Join or Die)
인간의 모든 결정에는 상책·중책·하책이 있다. 일단 그 순간만 모면하고자 하거나 변명하는 건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전쟁론은 한마디로 적의 의표를 찌르라는 것으로, 손자는 상하 간 일치단결을 강조하며 “이긴 다음에 싸우라”고 설파했다.
선거에선 그 어떤 상책이라도 오만하면 진다. 또한 각종 수상한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민심이 천심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특히 짜릿한 대역전극(트루먼 효과)은 늘 ‘끝내기’에서 벌어진다. 결국 투표(voting)는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 총알이다. “선거란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프랭클린 P. 애덤스의 말이다.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조선일보(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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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역사가 병들고 있다
[김형석 칼럼]
정치 지도자들 ‘이기면 정의’ 주장 노골화
총선 정국, 해방 직후 혼란-후진성과 유사
유권자는 편가르는 싸움 말려들지 말아야
철들면서 25세까지는 ‘내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다. 해방이 되었다. 내가 경험한 북한의 공산 정치는 모든 기대와 희망을 빼앗았다. 진실과 정의는 물론이고 자유와 인간애까지 희생시키면서 살 수 없었다. ‘나라다운 나라’에 살기 위해 탈북민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6·25전쟁을 겪었다. 자유민주국가에서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찾아 누릴 수 있는 조국을 위해 여생을 바치고 싶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세 가지 사명이 있다. 그 첫째는 문맹자가 없고 중등 교육까지는 나라가 책임지는 과제다. 우리는 그 과정을 성공시켰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가는 교육적 책임을 성취했다. 두 번째는 모든 국민이 직장을 찾아 일하고, 일할 수 없는 사람은 나라의 보호를 받는 경제정책이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신생 국가나 후진 사회가 부러워할 정도의 경제성장 가능성을 창출했다. 한강의 기적을 인정받을 정도가 되었다. 셋째로 부과된 책임은 전 국민이 균형된 양질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의 확립이다. 지난 몇 해 동안 그 의무를 달성하기 위해 방법과 과정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시설과 기술이 선진국 수준이 되었다. 정부와 의료계가 지혜롭게 협력하여 성공하기를 바란다. 지금은 나라다운 나라와 인간다운 삶의 기반을 끝내고, 정치적으로도 법치 민주국가의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독재정치의 과정도 있었고 군사정권의 기간도 뒤따랐으나 아시아를 대표하는 중견 국가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겪어야 할 역사적 과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대학을 비롯한 운동권 정치세력이 정계의 주도권을 차지하는 변화가 생겼다. 문재인 정부는 그 세력과 뜻을 같이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밖으로는 국민 통합을 호소하면서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심지어는 ‘촛불 혁명’이라는 구호까지 삼가지 않았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국민 분열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고, 경제정책과 질서는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후퇴시켰다. 권력으로 국민 평등화를 호소하는 정의관으로 ‘내로남불’의 모순을 현실화시켰다. 북한 동포에 대한 홀대와 세계가 염원하는 인권의 희망까지 저버렸다.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의심케 했다.
지금은 휴머니즘의 장래를 위한 자유민주 정신의 위기를 느낄 정도로 이념을 위한 정권욕에 몰입하는 민주당으로 전락하고 있다. 민주당 안에서는 그 잘못된 정책과 방향을 반성하거나 수정하려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당 대표나 그 뒤에서 폭력까지도 삼가지 않는 ‘개딸’들, 사회의 건전한 윤리와 정신적 질서를 역행하면서도 우리가 다시 정권을 쟁취해야 한다는 지도자가 늘어나고 있다. 민주정치의 근본정신인 대화와 협력을 배제하고 투쟁해서 이기면 그것이 정의가 되고 역사의 정도(正道)가 된다는 집념과 주장을 노골화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전개되고 있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평한다면 해방 직후의 정치적 혼란과 후진성을 그대로 연출한다. 대한민국의 장래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퇴락했다. 정치계의 주역을 맡았다고 권력으로 법치 사회를 유린하고, 법조계 출신임을 이용해 선한 민주 질서와 사회윤리까지 훼손시켜도 된다면 그 책임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국민에게 주어진 선택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애국심이 국가의 새로운 장래를 결정지을 수 있다. 국민은 여야를 편 가르는 싸움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인간다운 삶은 정부와 국민의 진실을 위하는 지혜와 정직을 목숨같이 여기는 정신적 가치의 산물이다. 진실을 왜곡하고 범법까지 은폐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진실과 정의의 기반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다. 폐쇄적인 진보는 좌파가 될 수는 있으나 선한 역사의 주인공은 아니다. 국민 모두에게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 달라고 공언할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
정의와 자유는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의무와 가치다. 인간을 수단 삼거나 정치를 위한 제물로 여기는 지배자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 공산주의와 같은 유일 절대의 이념주의자는 인간성 파괴와 인간다운 삶을 제물로 삼는다. 북한의 동포들이 잘못된 정치 이념의 노예가 되지 않았는가. 인간애와 인권을 배제하거나 거부하는 정치는 최악의 범죄가 된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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