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쇼펜하우어 “100세까지 살 이유와 방법을 터득하라”]
[“40세까지의 삶은 본문, 그 이후 인생은 주석”]
쇼펜하우어 “100세까지 살 이유와 방법을 터득하라”
매년 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올해 강사로 초대받은 필자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가 사실 장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는 점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은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요소다. 쇼펜하우어는 자신만의 경험을 쌓는 데 40년이 걸리며 그것에 대한 해석을 다는 데 30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선 70년은 무조건 살아 보라는 것이다. 70년을 채우지 못한 인생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70세를 넘기면 이제 더이상 사는 데 의미가 없는지 묻는 분들이 있다.
쇼펜하우어는 인도의 ‘우파니샤드’의 견해에 따라 자연스러운 인간의 수명을 백 살로 보았다. 그 이유는 아흔 살을 넘겨야 사람이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뇌졸중과 같은 큰 병에 걸리지 않고 경련도 없이, 숨이 가빠 힘들어하거나 얼굴이 창백해지는 일도 없이 식사를 마친 후 앉은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좋은 예다.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다만 살기를 멈추는 죽음”이다. 따라서 100세 이전에 세상을 떠나는 것은 때가 이른 죽음이다. 또한 ‘구약성서’에서는 인간의 수명을 70세로 정하는데, 건강하다면 80세가 인생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짧고 긴 인간의 수명은 숫자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충분히 늙어서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젊을 때 죽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다. 많은 죽음의 원인이 되는 질병도 비정상적인 것이며 또한 자살도 더욱 자연스러운 방법이 아니다. 인간은 70∼100세 사이에 언제나 죽을 수 있지만 사투를 벌이지 않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늘 해야 한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 늙어갈수록 젊을 때보다 인생의 지혜를 더 알게 된다. 행복이 쾌락의 증가보다는 고통의 감소나 부재에 있다는 점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노년에는 돈이나 명성, 권력을 더 얻으려고 애쓰지 말고 큰 고통 없이 숨을 거두는 죽음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겨야 한다. 건강을 더 얻으려고만 하지 말고 적당히 잃는 법도 알아야 한다. 더 이상 젊어지려 애쓰지 말고 잘 늙어가는 과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필연적인 일이자 동시에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죽음의 준비 작업으로 볼 수 있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죽음이 너무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00세까지 잘 늙어서 몸의 힘이 서서히 빠져야 마지막에 살려고 발버둥치는(사투를 벌이는) 일이 없게 된다. 이러한 쇼펜하우어의 생각은 우리가 흔히 호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100세의 장수를 누리기 위한 비법을 쇼펜하우어는 다음 두 가지 예를 들어 말한다. 등불에 비유하자면 “기름은 얼마 없지만 심지가 매우 얇아서 오래 타는 경우와 심지가 무척 굵지만 기름도 많아서 오래 타는 경우가 있다”. 기름이 생명력이라면 심지는 생명력을 소모하는 방식이다. 서른여섯까지는 ‘원금에 붙는 이자’처럼 오늘 생명력이 다 떨어져도 내일이면 다시 생긴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원금을 갉아 먹는 손실처럼 적자가 커져 쉽게 원상복구가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손실에 속도가 붙기 때문에 건강뿐만 아니라 돈(자본)도 아껴 써야 한다. 청춘이 행복했던 시간이고 노년은 슬픈 시간이라고 한탄하지 말고 우리는 “청춘의 힘을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이든 신체든 젊을 때 너무 혹사해서 소진해서는 안 된다. 쇼펜하우어가 예로 들 듯이 어릴 때 천재라고 소문이 났던 조숙한 사람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느라 정신력을 소모하면 나중에 늙어 평범한 두뇌의 소유자가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생명력을 소진하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 중요해지는 재산(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동아일보(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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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까지의 삶은 본문, 그 이후 인생은 주석”
요즘 세대 갈등을 고려하면 오래 사는 것은 추천할 만하지 않다. 결혼해 아이를 낳는 젊은이는 줄어드는 반면 노년 인구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화사회가 더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오래 살려는 욕심은 젊은 세대들에게 경제적인 부담만 주는 부끄러운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세대 갈등은 혐오주의로 번지기도 하는데, 이 문제는 어른에 대한 예의를 강조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청춘을 예찬한 글은 많아도 늙음을 찬미한 글은 드물다. 플라톤의 ‘국가’ 앞부분에서는 노년의 장점에 대화가 나온다. 소크라테스와 나눈 대화에서 케팔로스는 늙으면 ‘욕정’(성적 쾌락)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와 평화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노화는 많은 욕망을 내려놓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플라톤의 논의에 공감하면서 인간이 노년에 겪게 되는 긍정적인 변화를 몇 가지 덧붙이며 나이에 따라 인생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유년기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앎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으며, 내일이 늘 희망으로 가득 찬 행복한 시기다.
그러나 청년기에는 욕망과 기대가 커지면서 세상을 주관적으로 바라보고 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불행을 세상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인생에서 의욕이 가장 앞선 젊은 시절이 가장 불행한 시기다. 성욕을 포함해 여러 가지 욕망의 노예로 살기 때문에 주체적인 삶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노년기는 이러한 욕망에서 점차 벗어나는 시기다. 포기할 것은 접고 자신의 그릇에 맞는 일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마흔부터 이러한 자기 성찰이 시작된다. 청년기에는 바깥에 대한 관찰에 의존하지만 노년기에는 내면의 사고에 의해 의미를 만들어 낸다. 나이가 들수록 젊을 때보다 사물을 훨씬 더 개념적으로 생각하고 연관성을 파악하면서 인생의 전체 맥락을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50대가 되어서 과거에 얻은 소재를 바탕으로 훌륭한 문필가나 철학자가 되는 일이 생겨난다.
쇼펜하우어의 글귀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려면 오래 살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 짧게 살면 인생의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논리다. 젊은 나이에 인생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경고이기도 하다. 너무 일찍 죽으면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도 모르지만 인생 뒷면에 가려졌던 인생의 무상함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적어도 몇 살까지 살아야 할까? ‘우리 인생의 첫 40년은 본문을 제공하고, 그 다음 30년은 그것에 대한 주석의 성격을 지닌다’(쇼펜하우어)고 한다. 인생 본문에 들어 있는 참된 의미는 전체 맥락 속에서 제대로 깊이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친 충분한 인생 경험과 그것에 대한 의미 부여가 뒤따라야 한다.
노년은 자신의 행복한 죽음을 준비하는 시기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늙어야 한다. 마치 충분히 늙어 힘이 빠져야 죽음에 대한 저항이 없듯이 삶에 대한 애착도 점점 줄여 나가야 고통도 사라진다. 젊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삶에 대한 질긴 애착과 죽음에 대한 강한 반발 때문에 자연사보다 훨씬 고통스럽다. 고통은 삶의 욕망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50대가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은 견뎌야 한다고 깨닫는 40세부터 시작해 70세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쇼펜하우어 자신도 70세 넘게 살아보고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동아일보(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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