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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 수사와 ‘채 상병’ 회견, 만시지탄이다] ....

뚝섬 2024. 5. 6. 06:28

[김 여사 수사와 ‘채 상병’ 회견, 만시지탄이다]

[공개 행사 재개 李 대표 부부, ‘법카’ 면죄부 받았다는 건가]

[김건희 여사 엄정한 사법처리만이 尹정권 살길이다]

[뉴욕 메트 총감독 겔브의 사과]

 

 

 

김 여사 수사와 ‘채 상병’ 회견, 만시지탄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원석 검찰총장이 2020년 1월 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신년 다짐회에서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인 5월 9일쯤 기자회견을 갖고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며, 이 총장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장련성 기자

 

이원석 검찰총장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 “전담 수사팀을 꾸려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진상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인 9일쯤 기자회견을 열어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검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둘 다 국민 관심이 높고 민주당이 집중 공격하는 사안들이다.

 

검찰은 명품백 사건 고발장이 접수된 지 5개월이 되도록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그러다 야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에 명품백을 더한 특검법을 발의하고 강행 처리하려 하자 뒤늦게 수사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이 사건은 특검까지 할 만큼 복잡한 사안이 아니다. 친북 목사와 친야 유튜브가 기획한 ‘함정 몰카 공작’ 성격이 짙다. 대통령 직무와 관련한 청탁이 오간 정황이 없고 대통령이 가방 수수를 인지했다는 증거도 없다. 김 여사는 공직자가 아니여서 청탁금지법상 혐의 구성이나 처벌도 힘들다.

 

그런데 검찰이 수사를 미루면서 봐주기라는 의심을 자초했다. 야당의 특검 공세가 본격화한 뒤 뒤늦게 수사한다고 하니 “특검을 피하려 수사 시늉만 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이 ‘특검 피하기 꼼수’라는 의심을 벗으려면 김 여사 사건을 공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몰카 당사자뿐 아니라 김 여사도 소환해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검찰이 1년 반 넘게 수사하고도 혐의점을 찾지 못했던 주가 조작 사건도 이번에 함께 조사해 결론을 내야 한다. 그래도 야당이 특검을 고집한다면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민주당이 여야 합의 원칙을 무시한 채 ‘채 상병 특검법’을 강행 처리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특검 추천권을 민주당이 행사하고 언론 브리핑을 통해 정치적으로 악용할 여지를 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애초에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해 출국시킨 대통령실의 대처가 논란을 키웠다. 만일 윤 대통령이 회견에서 사건 경위를 소상히 밝히지 않은 채 무조건 거부권 행사의 당위성만 강조한다면 국민 의구심은 커질 것이다. 특검 회피용 회견이라는 비난을 자초할 수 있다.

 

이번 대통령 회견은 채 상병 의혹 수사 막기가 아니라 사건 진상을 밝히고 국민에게 설명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1일 의료 파행 사태 관련 담화에서 의대 증원의 당위성을 강조하다 되레 의료계의 반발을 키웠다. 이번엔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을 펴기보단 국민이 가진 의문을 해소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 회견과 검찰 수사가 조금이라도 ‘특검 물타기용’으로 비친다면 국민이 바로 알 것이다.

 

-조선일보(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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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행사 재개 李 대표 부부, ‘법카’ 면죄부 받았다는 건가

 

개표 방송 지켜보는 이재명 대표와 아내 김혜경씨.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아내 김혜경 여사와 함께 4일 지역구가 있는 인천 지역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김씨가 공개 행사에 등장한 것은 지난 대선 때 경기도 법인 카드 불법 사용 의혹이 불거진 뒤 2년여 만이다. 두 사람은 활짝 웃는 얼굴로 사진도 찍고 유튜브도 찍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물론 법인 카드 사건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김씨는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경기도청 법인 카드로 민주당 관계자 등에게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동안 이 비용이 7만8000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부각해 온 이 대표는 총선 전인 지난 3월 “(이를 기소한) 불공정과 무도함을 이번 총선에서 심판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총선에서 승리하자 김씨의 사법 리스크에 면죄부라도 받은 양 부부 동반으로 행사에 참석한 것이다.

 

하지만 총선 민심이 법카 불법 사용에 면죄부를 주었다고 해석한다면 착각이다. 이 대표는 ‘7만8000원’만 부각해 “고작 몇 만 원 갖고 이러느냐”는 인상을 주려 하지만 그것은 선거법 공소시효가 임박해 검찰이 급하게 먼저 기소한 것일 뿐이다. 이 대표 부부가 2018년 7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한우·초밥·샌드위치 시켜 먹고 경기도청 법인 카드로 결제했다는 핵심 의혹은 아직도 검찰이 수사 중이다. 관련 증언은 물론 증거 자료들도 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아닌 듯 행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논란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여 의혹에 대해 특검을 추진하는 등 총공세를 펴고 있다. 김 여사는 명품 백 수수 논란이 불거진 뒤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방문 이후 다섯 달째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만약 김 여사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공개 행보를 했다면 민주당과 이 대표는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 대표는 아내의 법인 카드 부정 사용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김건희씨 수사부터 제대로 하라”고 했다. 그런데 자신들은 수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면죄부를 받은 양 행동한다. 그동안 숱하게 보여온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조선일보(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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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표 연임 가능성, 민주당에선 DJ 이후 처음. 다음 지방선거 공천도 좌우할 수 있다니 ‘재명 天下’!

 

-팔면봉, 조선일보(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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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엄정한 사법처리만이 尹정권 살길이다

 

[이기홍 칼럼]

尹 참패 원인은 부인 문제로 공정 이미지 상실
검찰, 金여사 공개 소환해 철저히 수사해야
봐주기식 시간 끌면 신뢰만 더 잃고 결국 특검행
“내 팔 잘라낸다” 춘풍추상 보여야 신뢰 회복


총선 며칠 후, 총선 결과보다 더 놀라운 얘기를 여권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전언이었다. 김건희 여사가 머지않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덧붙여졌다. ‘수많은 보수 지지자들이 울분과 절망감을 겪고 있는데 정작 대통령 부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건가?…’ 귀를 의심하면서, 그들이 잘못 관측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들의 관측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일들이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별로 변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 16일 국무회의 발언에 이어, 17일 새벽엔 박영선 총리, 양정철 비서실장설 파동이 비선라인의 활동재개를 다시 확인시켜줬다. 총리·실장설은 공식 인사·정무·홍보 라인이 아니라 대통령 부부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총선 참패의 원인이 한동훈 대표와 당의 잘못 때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공천 개입을 자제하는 등 당을 위해 “그렇게 해줬는데도” 선거를 망쳤다는 것. 부정확한 인식이다. 참패의 원인은 99% 대통령이 제공했다. 최고 지도자가 모든 허물을 안고 가야 한다는 도의적·정무적 차원에서의 표현이 아니다. 객관적·실질적으로 분석할 때 거의 전적으로 대통령이 패배요인을 제공한 선거였다. 물론 윤 대통령 이외에도 패배 원인은 100가지도 넘게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백개를 다 합쳐도 총량에서 전체 원인의 1%가 안된다.

윤 대통령이 국민 과반수의 미움을 사게 된 근본 원인은 자신의 최대  장점이고 경쟁력인 공정 이미지와 정반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부인을 감싸고 돌며 사과마저 거부하고, 오만과 불통 이미지를 끊임없이 각인시켜준 결과다. 조국 추미애가 대통령 윤석열 탄생의 1등 공신이었듯, 이젠 품앗이하듯 윤 대통령이 조국 추미애 부활의 1등 공신 역할을 해준 셈이다.

대통령이 힘과 권위 신뢰를 되찾으려면 공정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 유일한 방법은 김 여사 문제를 국민 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수준으로 처리해 매듭짓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 다수는 이념적·당파적 스펙트럼을 좌 극단 1, 우 극단 10으로 가정할 때 4~8사이의 중도 온건진보 온건보수 성향 사람들을 뜻한다.

대통령 주변의 비선 강경파들은 “하나를 내주면 열을 요구할 것”이라고 만류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1~3 좌파는 하나를 받으면 열을 요구하겠지만 그들은 어떤 경우에든 그러는 세력이니 대책을 세울 때 아예 고려의 대상에 넣을 필요가 없다. 오로지 3~8 국민들만 바라보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들이 외면하면 정권은 고립된다. 줄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지, 계속 감싸기만 하면 하나가 아니라 전부를 잃게 된다.

첫걸음은 검찰의 엄정한 사법처리다. 김 여사를 빠른 시일 내에 공개 소환하고, 압수수색을 포함해 적극적 수사의지를 갖고 임해야 한다. “탈탈 털었다”가 대통령의 입이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 저절로 나올 수준이 되어야 한다.

김 여사의 유죄를 예단하는 게 아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동원된 계좌주 91명 가운데 기소된 사람은 1명이고 그나마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법리적으로 따져 결국 김 여사가 무죄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해도 엄정한 사법절차를 거쳐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명품백 사건도 김영란법 조항에 따르면 공직자 배우자의 금품수수는 직무연관성이 있는 경우만 처벌대상이 되므로 김 여사는 법리적으로 무혐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해도 철저한 조사와 사법절차를 거쳐 결론이 나야 한다.

물론 아무리 엄혹한 수사와 재판을 거쳐도 야당은 더 거세게 특검 공세를 퍼부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여론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며 여당 내 이탈도 없을 것이다. 국민도 특검 만능론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와 처가에 대해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다른 선택 대안이 없다. 감싸려 해도 결과적으로 똑같은 코스로 끌려갈 가능성이 크다. 소환 조사조차 안 받은 현 ‘봐주기’ 상태에서 특검법이 상정되면 여당 새 지도부가 사실상 동조해주거나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설령 이번에 특검을 피한다 해도 다음 대선에서 야당은 물론 여당 후보들도 경쟁적으로 여사 문제를 들고나올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느 정권이든 비선 실세로 지목된 인물과 관련한 의혹이 불거진 뒤 그냥 덮고 갈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 전두환 때 전경환이 그랬고. 노태우 때 박철언이 그랬고, 김영삼때 김현철이 그랬고, 김대중때 홍삼트리오가 그랬고, 이명박 때 이상득이 그랬다. 문재인 전 대통령 가족만 예외인 것은 윤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을 건드리는 걸 한사코 마다하기 때문인데, 다음 정권도 그럴까?

만에 하나 김 여사가 구속된다고 가정하자. 여야 모두 으스스 떨고 국민 사이에 동정론이 일 것이다. 판사들도 이재명, 조국 사건에 대해 야당 눈치 보기를 하기 어렵게 된다. 수백 건 쏟아질 선거사범 수사, 경기동부연합 등 종북세력 수사도 힘을 받게 된다.

비리 발생 시점이 재임 중이라면 가족의 구속수감이 정권의 도덕성에 타격이 되지만,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12년도 더 지난 결혼전 얘기다. 부인마저 심판대에 세운 대통령에게서 뿜어 나올 춘풍추상의 기세는 국정 주도권을 확실히 쥐여줄 것이다. 지도자는 스스로에게 엄격할 때 국민에게 말이 먹히고 기강이 잡힌다.

오만·불통과 부인 감싸기는 같은 맥락에서 생기는 문제다. 내가 대통령이니 가족의 바람막이가 되어줄 수 있다는 오만, 법에 규정된 특별감찰관이라도 내가 싫으면 비워둘 수 있다는 생각, ‘내가 뭉개고 가자고 하면 그렇게 되는 거야’라는 권위의식이 진솔한 사과 대신 “아쉽다”고 눙치고 가는 KBS 대담으로 이어졌고, 결국은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을 상황을 자초했다.

권위의식은 윤석열 리더십의 근본적 문제다. 취임 초 주변에서는 “대통령이 ‘컨보이’(convoy·경호차 행렬)를 너무 좋아한다”는 말들이 나왔다. 참모들에게 버럭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실 주변에 ‘오대수’란 은어가 돈다. ‘오늘도 대충 수습하고 간다’는 뜻이다. 이래선 어떻게 소통이 가능하겠는가. ‘50분’이란 별명(회의 내내 본인이 말한다는 비유)이 붙을 정도로 경청보다는 가르치려드는 대화 스타일도 바꿔야 한다.

당장 나라에 닥칠 상황은 험난하다 경제 환경은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고, 미국 대선, 중동전 등등 악재가 겹겹이 쌓여간다. 이를 헤쳐가며 4대개혁을 하려면 국민 신뢰가 절실하다.

혹여라도 윤 대통령이 ‘여태 103석으로도 꾸려왔고 이제 108석인데 여태 해왔듯 밀고 가면 되지 뭐가 문제냐’, ‘개혁만 꾸준히 해나가면 국민이 평가해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이렇게 불신당하는 상태에서는 개혁이나 정책도 힘을 받을 수 없고, 우파 대통령의 권위주의 일방통행 불통에 5년간 진저리를 친 국민은 다음 대선에서 좌파로 기울 것이다. 지금 근본적 변화를 거부하는 건 앞으로 3년을 까먹는 건 물론이고 보수의 미래,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앞날을 망치는 것이다.

-이기홍 대기자, 동아일보(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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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 총감독 겔브의 사과

 

[특파원 리포트]

 

지난달 22일 맨해튼 링컨센터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의 피터 겔브 총감독은 "관객이 메트에 거는 기대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완벽한 무대를 보이려 한다"고 했다. /로즈 칼라한

 

지난달 20일 오후 7시 30분, 미국 뉴욕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메트) 오페라 콘서트홀, 세계적인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투란도트’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막이 오르지 않은 가운데 검은색 정장을 입은 키 큰 신사가 무대 중앙에 섰다. “여러분께 정말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메트 역사상 처음으로 무대장치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저희는 노력했지만 시간 내 고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평소처럼 완벽한 모습을 보여 드릴 수가 없습니다. 환불을 원하시는 분이 있으면 지금 바로 해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잠시 웅성대던 관객 중 일부는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대부분 관객은 오히려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당신의 사과에 감사하며 그럼에도 우리는 메트의 공연을 즐기겠다’는 표시였다. 이 신사는 세계 최고 수준 오페라하우스로 꼽히는 메트를 이끄는 피터 겔브 총감독이었다. 며칠 뒤 메트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할 때 “원래 무대에 가끔 올라오시느냐”고 묻자 겔브는 미소를 지으며 “나는 사고가 났을 때만 올라간다”고 했다. 다시 한번 “안내 방송을 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니냐.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느냐”고 묻자 겔브는 대답했다. “우리는 메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최고 수준의 공연을 바라고 오는 분들에게 저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것입니다.”

 

사과에도 종류가 있다. 상황을 모면하려는 ‘거짓 사과’는 오래 못 간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당선인은 선거 전에는 ‘편법 대출 의혹’ 등과 관련해 “사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당선된 뒤에는 “조선일보 징벌 법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본지는 이 의혹을 처음 보도했다. 일반적인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이 정말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창피해서라도 이렇게 말하지 못한다. 그런 사과는 ‘거짓 사과’와 다르지 않다.

 

때로는 잘못이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 않아도 사과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너무 소중해 깨지지 않게 그것을 지켜내고 싶다고 느낄 때다. 이 경우엔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는 사과라는 점에서 거짓 사과라고 할 수 없다. 사과를 받는 사람은 마음이 너그러워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하고, 때로는 노력을 해도 결과가 좋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비록 평소의 10%밖에 볼 수 없었던 무대였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킨 기자를 비롯한 관객들은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할 때 목청을 높여 환호하고 손뼉을 쳤다. 그 배경에는 공연 시작 전 있었던 겔브의 사과와 마음으로 응원한 관객들의 진심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와 다른 동선(動線)으로 움직여야 했던 오페라 배우들도 평소보다 더 힘을 내 공연했을 것이다. 리더가 보여주는 사과의 힘은 그렇게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뉴욕=윤주헌 특파원, 조선일보(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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