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구 유령 할아버지를 영영 떠나보내며]
[‘셀프 우상화’ 나선 김정은… 고강도 대남 도발 대비해야]
우리 친구 유령 할아버지를 영영 떠나보내며
[양상훈 칼럼]
1968년 김일성 대도박.. 거대한 역풍 불러
첫 타자가 F-4 팬텀 도입.. 이제 공군력 북 압도
‘노인 학대’ 소리 들으며 55년간 우리 지켜준 팬텀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6월 퇴역하는 F-4E 팬텀(Phantom)이 지난 4월 18일 AGM-142 팝아이(Popeye) 공대지미사일을 실사격 훈련을 위해 임무 공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공군 제공
다음 달에 우리 공군만이 아니라 국방 역사에 기록될 만한 기념식이 열린다. 새 전투기 도입식이 아닌 노후 전투기 퇴역식이다. 비행기가 낡아 폐기하는 것이 역사적인 일이 될 만큼 이 전투기는 특별했다. 필자의 어린 시절 로망이기도 했던 이 전투기는 F-4 팬텀(유령)이다. 팬텀기의 도입 역사는 그 자체가 대한민국의 생존 분투기다.
지금 50대 이하에겐 생소한 얘기겠지만 1968년도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해였다. 북한은 그해 1월 21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위한 대규모 특공대를 청와대 앞까지 진출시켜 총격전을 벌였다. 불과 이틀 뒤 북한은 동해에서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납치했다. 김일성의 대도박이었다. 그런데 두 사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판이했다. 미국은 북한 특공대의 청와대 기습이란 엄청난 사건에 대해선 ‘냉정 대처’만을 강조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푸에블로호가 납치되자 항공모함을 급파했다. 미국의 이중성을 본 우리 사회의 분노가 커졌다.
당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한국 방위’가 아니라 ‘한반도 전쟁 방지’가 최우선 순위였다. 둘은 같은 것 같지만 강조점이 다르다. 한국군의 북진을 우려한 미국은 국군 전력 증강을 바라지 않았다. 한국군 전력을 북한보다 열세에 두고 그 부족분을 미군이 메꿔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미국 입장에서 안전하다는 생각이었다.
미국의 이 계산에 따라 가장 피해를 본 것이 우리 공군이었다. 미국은 공군이 약한 한국군은 전쟁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북한 공군은 수적으로 우리 공군을 2배 이상 압도했으며 질적으로도 최신예기 미그-21은 우리 F-5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우수했다. 해외 전략 전문가들은 이 시기 남북한 전력 격차를 2~3배로 보고 있었다. 6·25 후 다시 찾아온 대한민국의 위기였다.
한국군 현대화가 절실했지만 돈이 없었다. 이때 베트남 전쟁이 격화됐다. 미국이 한국군 참전을 원했다. 박 대통령은 고민 끝에 이를 경제 부흥과 국군 현대화의 기회로 삼기로 결심했다. 실제 베트남 파병은 우리 경제와 안보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 와중에 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피랍이 벌어지고 우리 사회의 분노가 커지자 미국은 1억달러 추가 군사원조로 한국 민심을 달래려 했다. 육해공군이 이 1억달러 중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려 경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생각은 이미 결정돼 있었다. ‘1억달러 중 6400만달러로 F-4 팬텀 1개 대대(18대)를 구입한다.’ 박 대통령이 남긴 메모다.
당시의 팬텀기는 지금의 F-35와 비견될 수 있는 미국 첨단 항공 기술의 집약체였다. 2차 대전 때 독일을 공습한 미군 중(重)폭격기 B-17의 두 배 가까운 폭탄을 장착하고 음속의 2배로 날았다. 레이더로 적기를 포착해 미사일로 제압했다. 모두 다 놀라운 성능이었다. 미국은 한국군에 팬텀기는 필요 없고 가져도 안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한국군 베트남 파병과 1·21 사태에 따른 상황 변화로 고심하다 결국 생각을 바꿨다. 팬텀기 도입이 한국 사회의 불안 심리를 잠재울 가장 확실한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팬텀기를 운영할 첫 부대로 공군 151대대가 창설됐다. 1개 대대 창설식인데도 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마침내 1969년 8월 29일 F-4 팬텀 6대가 대구 비행장 상공에 나타났다. 한국 공군 조종사들이 모는 우리 팬텀이었다. 우리 군 역사에 남을 순간이었다. 이후 북은 더 이상 공중 도발을 하지 못했다. 당시 팬텀기 보유국은 미국 영국 이란뿐이었다. 미, 영은 동일체와 같았고 팔레비 왕조 이란은 미국 최고 우호국이었다. 그런데 4번째 보유국이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일본, 독일, 이스라엘보다 앞섰다. 팬텀으로 인해 짧은 기간이지만 한때 우리 공군이 아시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앞으로도 힘들 일이다.
팬텀기 선두 조종사 강신구 중령은 배우 강신성일씨의 친형이었다. 국민의 환영이 얼마나 컸는지 초등생이었던 필자도 당시 장면이 어렴풋이 기억날 정도다. 팬텀기는 육중하고 남성적인 외형과 강력한 성능으로 ‘미그 잡는 도깨비’로 불리며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 국민은 팬텀기를 국방의 보루로 여겼다. 1975년에는 국민들이 방위 성금을 모아 팬텀기 5대를 사서 공군에 헌납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지켜졌다.
대한민국을 흔들려던 김일성의 1968년 대도박은 거대한 역풍을 불렀다. 그 첫 타자가 F-4 팬텀이었다. 이때 역전된 남북 공군력은 그 후 격차가 계속 벌어져 이제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다음 타자는 1974년 시작된 방위력 증강 율곡 사업이었다. 지금 우리 군 중추를 이루는 K-1 전차, KF-16 전투기, 해군 호위함, 유도탄 등이 모두 이때 개발 도입됐다. 이제 한국은 세계 6위 군사력의 일류 방위산업 국가다. 팬텀은 200대 이상 도입돼 나중엔 ‘노인 학대’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무려 55년간 우리 하늘을 지켰다. 친근했던 유령 할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난다. 국가 차원에서 예를 표해도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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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우상화’ 나선 김정은… 고강도 대남 도발 대비해야
2011년 12월. 27세 청년 김정은은 아버지인 김정일의 운구차를 뒤따랐다. 긴장한 얼굴로 눈물만 흘리던 김정은에 대해 당시 우리 당국은 “재빠르게 원로들을 휘어잡고 전권을 휘두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10년이 흘러 2021년,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을 ‘위대한 수령’이라 불렀다. ‘수령’은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에게 붙는, 사실상 고유명사다.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을 넘어 김일성 반열까지 올랐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인식됐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북한에선 ‘김정은주의’를 새로운 독자 사상체계로 정립하는 시도가 있다”고 했다. 선대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김정은의 행적을 종합해 이렇게 판단한 것이다.
다만 이후 김정은의 발언, 행보에서 선대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진 건 아니었다. 특히 후계자 지목 당시부터 김일성의 체형이나 헤어스타일까지 모방한 김정은은 최근까지도 ‘김일성 따라 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또 흘러 2024년. 김정은은 조용히, 하지만 과감히 한 발을 더 내디뎠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대놓고 김정은을 ‘태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태양은 김일성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도 ‘태양의 성지’ 대신 ‘애국, 혁명의 성지’ 등으로 매체들은 바꿔 불렀다. 김정은은 지난달 김일성 생일 땐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도 참배하지 않았다. 최근 만난 정부 고위 당국자는 “김정은이 이제 할아버지보다 내가 앞자리에 있다고 외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2021년 ‘김정은주의’란 표현이 처음 등장했을 땐 김정은이 경제난 타개를 위해 전략적으로 자신을 우상화한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식량난이 가중되자 주민들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김정은이 고육지책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최근 일련의 기류는 그때와 좀 다르다.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는 더 대범해졌고, 선대에 대한 신격화는 더 과감하게 차단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김정은의 자신감이다. 정부 당국자도 “최근 거침없는 김정은의 홀로서기 행보는 몇 년 전 모습과 확실히 다르다”고 했다. 이 자신감은 코로나19 봉쇄가 풀리면서 나아진 식량 사정 때문일 수도, 북-러 관계 밀착의 부산물인 푸틴의 화끈한 지원 덕분일 수도 있다.
김정은의 ‘셀프 우상화’는 대남 관계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태양을 자처하는 김정은은 대남 공세적 카드를 쏟아낼 것이다. 남한을 그래도 ‘동족 관계’로 봤던 선대와 차별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김정은은 이미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사실상 선전포고까지 했다. 이를 명분으로 강도 높은 대남 도발에 나서는 동시에 내부적으론 대한민국을 적대국으로 간주하는 정책·교육 마련에 집중할 것이다. 마침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신냉전 기류는 김정은의 마음을 더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북한의 노골적인 대남 노선 변화에 대응하는 건 결국 정부의 과제다. 일단 차분하고 냉정하게 김정은의 새로운 담론부터 분석해야 한다. 이후 대응은 단호하고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북한 체제·정책 변화 흐름의 도입부에서 정면승부 대신 방관할 때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신진우 정치부 차장, 동아일보(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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