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사상 감별'이라는 야만]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부르면.. ]

뚝섬 2024. 8. 19. 06:03

['사상 감별'이라는 야만 ]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부르면 친일파라는 황당한 기준]

[끝나지 않는 역사전쟁… 내년 광복절이 더 걱정이다]

[국민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반쪽 광복절' 소동] 

[우리 역사에는 긍정과 대화, 협치와 창조가 보이지 않는다]

 

 

 

'사상 감별'이라는 야만 

 

중세 마녀 감별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목된 여인을 돌덩이에 매달아 호수에 던졌다. 가라앉으면 무죄, 떠오르면 마녀였다. 마녀면 화형이다. 뜨겁게 달군 쇠판 위를 걷게 해서 쓰러지면 무죄, 견뎌내면 마녀였다. 한번 지목되면 어차피 죽었다.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라는 15세기 책에 나와 있다.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라는 뜻인데 지침서 역할을 했다. 일본 에도 시대에 기독교를 탄압하면서 신자를 색출하는 방법도 기가 막혔다. 십자가 상이 새겨진 금속판 위를 밟고 지나가게 했다. 밟으면 집으로 갔고, 거부하면 망나니에게 붙들려 갔다.

 

▶중국 문화혁명 때 베이징의 어떤 여교사는 학생들에게 “지진이 나면 최대한 빨리 대피하라”고 했다. 학생들이 “모택동 초상화를 들고 나갈까요?” 물었다. 교사는 얼른 대답을 못하고 “최대한 빨리 피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 50세 여교사는 반모택동주의자로 몰려 홍위병 여학생들에게 맞아 죽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 때는 손에 굳은 살이 없거나, 안경을 썼으면 학살 대상인 지식인이었다.

 

▶한국에서도 인간의 속생각까지 가려내는 ‘감별 DNA’가 정치판을 흔들곤 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진박 감별사’ 파동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 즉 ‘진짜 박심’을 얻은 후보를 감별한다는 사람들이 여당 공천을 좌우했다. 특정 지역의 일부 후보들은 마치 암수 판정을 기다리는 병아리라도 된 신세였다. 이것이 탄핵으로 이어진 보수 몰락의 시발점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야당에 횡행하는 ‘수박’ 감별은 원래는 간첩 잡는 데 쓰던 말이었다. 겉으론 선량한 시민이지만 속으로 빨강 사상을 가졌다는 뜻이다. 근년에 야당 개딸들에 의해 완전히 의미가 뒤집힌 수박 감별은 비명계 색출용으로 쓰인다. 작년 가을 인터넷에 퍼졌던 ‘수박 감별기’가 섬뜩하다. 모두 6가지 기준으로 채점을 했다. 1) 검사탄핵 발의 2)불체포특권 포기 3)대의원 1인1표제 같은 쟁점에 어떤 입장인가를 물었다. 당도(糖度)를 0~5점으로 매겼는데, 5점이면 축출 대상이 됐다.

 

며칠 전 독립유공자의 자손들이 주축이 된 광복회에서 누군가의 속생각을 들여다본다는 감별법을 제시했다. 이른바 ‘뉴라이트 판별법 9가지’인데,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는 자’ ‘1948년(8·15)을 건국절이라고 하는 자’를 우선 찍어냈다. ‘건국’ ‘건국절’을 입에 올리면 ‘친일 매국’이 된다는 식이다. 한 발자국 삐끗하면 사상 검증 종교 재판소가 될 판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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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부르면 친일파라는 황당한 기준

사진은 윤동주 시인(왼쪽부터), 이승만, 이회영, 조소앙의 색채사진 복원 전과 후 모습. (국가보훈처 제공)

 

광복회는 일본 주장대로 식민 지배 합법화를 꾀하는 지식인이나 단체’를 ‘뉴라이트’로 규정하면서 ‘뉴라이트 판별법’ 9가지를 제시했다. ‘뉴라이트’를 ‘친일파’로 몰아가기 위한 것이다. 9가지가 모두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특히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한다’는 판별 기준은 황당하기까지 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주장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친일파’가 되는 셈이다.

 

광복회와 이종찬 회장은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건국 시점을 1919년으로 보든, 1948년으로 보든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보면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이기 앞서 이승만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건국 대통령’인지 답부터 내놔야 한다.

 

광복회는 임시정부를 폄훼하면 뉴라이트라고 주장하는데, 그 대표적 세력은 다름 아닌 북한이다. 북은 김일성 중심의 독립운동을 주장하기 위해 임정에 대해 ‘사대주의적 매국배족행위’라고 역사책에서 규정했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친일파 이승만’ 주장도 왜곡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초대 내각에 친일파를 대거 등용했다고 주장하지만, 부통령 이시영, 국무총리 이범석, 농림장관 조봉암 등 대부분이 항일·독립운동가였다.

 

이 대통령은 뼛속부터 반일(反日)이었다. 2차 대전의 마무리를 위해 미국 등 연합국과 일본이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일본이 반환해야 할 땅에 독도가 누락되자 이승만은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라인으로 불리는 ‘평화선’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그때 ‘평화선’ 선포와 의용수비대 독도 파견이 없었으면 울릉도에서 50해리 정도 떨어진 ‘독도’의 실효적 지배는 불가능했다. 한미 동맹의 기초를 닦은 이 대통령이지만 1954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요구하자 회담장에서 퇴장해버렸다.

 

광복회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이유로 정부를 ‘친일’로 몰아가고 여기에 더불어민주당과 야당들이 ‘친일 몰이’에 나서면서 정부의 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광복회와 야당들이 불참하기로 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려는 세력의 ‘이승만=친일파’ 주장에 광복회가 왜 동조하고 나섰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조선일보(2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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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장 親日’ 논란에 쪼개지는 광복절 행사. 광복 79주년인데 해방 정국보다 분열 더 심해지나.

 

-팔면봉, 조선일보(2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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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역사전쟁… 내년 광복절이 더 걱정이다

 

[김순덕 칼럼]

‘끝나야 할 역사전쟁’ 저자 독립기념관장
광복회-야당은 해임 요구하며 역사전쟁
“친일세력이 나라 지배” DJ사관 언제까지


1935년생인 유종호 전 연세대 교수는 1945년 8월 16일 거리 여기저기에서 흰 바지저고리 차림의 아저씨들이 떼 지어 “좋다! 좋아!” 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행진하는 것을 보았다고 ‘나의 해방 전후’(2004년)에 썼다. 충주남산초등학교 5학년 때다. 다음 날 운동장 조회에서 교장이 전쟁 끝났으니 이제 방공호 파기 같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기억은 분명한데 일본 말이었는지 우리말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다음 날은 대오를 지어 교사들이 준비한 종이 태극기를 흔들며 우리말로 만세를 불렀다. 동네 사람들도 거리를 행진하며 만세를 불렀는데 일본 말로 만세 부르다 처음 우리말로 불러보니 낯선 진정성 같은 것이 느껴지더라고 했다.

기억은 선택적으로 선명하다. 개인의 기억뿐 아니라 국가의 기억도 그렇다. 보통 사람은 각자에게 닿는 의미에 따라 기억하거나 잊어버리지만 국가의 집단기억은 다르다. 권력 의지에 따라 역사가 선별돼 민족 정체성을 굳히고 특정 감정을 키울 수 있다.

 

분단사관을 가진 진영에선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나라’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남북 분단을 불러온 매국노로 기억하고 가르치려 들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대한민국 역사를 오욕의 역사처럼 서술한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에 맞서 뉴라이트 지식인 모임 ‘교과서 포럼’이 대안 교과서를 내놓기도 했다.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은 뉴라이트에 속하지 않았다. 2022년 저서 ‘끝나야 할 역사전쟁’에서 이념을 매개로 국민을 편 가르는 그간의 건국 논쟁을 극복하고 국민 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역사학자다. 부제가 ‘건국과 친일 논쟁에 관한 오해와 진실’인 책을 쓴 그가 뉴라이트라며 역사전쟁 한가운데로 소환됐다. ‘수박’ 멸칭을 만들어낸 더불어민주당 정봉주 최고위원 후보가 개딸들에게 수박으로 몰린 것만큼이나 극단적이고 황당하다.

광복회에선 김형석이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임시정부 수립 연도인 1919년이 아니라 1948년이라고 했다며 임시정부 역사를 폄훼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다. 건국 시점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해, 1919년의 3·1독립선언에서 1948년의 정부 수립까지의 과정으로 이해했다”고 썼을 뿐이다.

김형석도, 윤석열 정부도 ‘건국절’을 추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종찬 광복회장이 김 관장 임명이 건국절을 추진하는 의도 때문이라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독립기념관장 면접 과정에선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이 어디냐고도 물었다고 한다. 기이한 질문이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손자인 1936년생 이종찬은 일제강점기 중국에 살았기에 이 땅의 삶을 모를 수 있다. 유종호는 운동장 조회 때마다 제일 먼저 황국신민(臣民)의 맹세를 외쳐야 했다고 기억한다. 김형석이 “일본”이라고 답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국권을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냐”고 했는데도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다고 매도당한다면, 나라도 억울할 듯하다.

따지고 보면 역사전쟁을 시작한 사람은 야당 지도자 시절의 김대중(DJ)이었다. 1993년 동아일보 광복 48주년 특별기고에서 애국지사들이 귀국해 박대받고 후손들이 가난에 시달린 것은 “미군정 이승만 박사 통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까지 결국 친일파 세력이 중심이 되어 이 나라를 지배해 왔기 때문”이라고 썼다.

DJ는 그러면서도 “(국내에서) 교육 문화 종교 사회사업을 하며 실력을 양성하게 했던 분들의 공로를 잊어선 안 된다”며 “그중에서 대표적인 분이 (인촌) 김성수 선생”이라고 적었다. “일부에서 사소한 행적을 들어 친일 운운하는데 이런 자세는 재고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김형석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잘못된 기술로 매도되는 분들이 있어서도 안 되겠다”고 했다. 그런 김형석을 친일파라고 비판한다면 DJ도 친일파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건국절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최근 윤 대통령은 맞는 말을 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에 입각할 때 통일 시점이 건국일이 된다”는 대통령실의 설명까지 말이 된다는 건 아니다. 통일이 되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미완의 국가라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도 통일이 광복의 완성이라고 강조하긴 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방향성이 담긴 통일을 강조할 예정이라고 한다. 윤 정부 들어 자유도, 민주주의도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대로 간다면 내년 8·15 경축식이 온전히 열릴지 우려하는 국민을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은 지금, 여기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정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동아일보(2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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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반쪽 광복절' 소동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12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열린 독립기념관 광복절 경축식 취소 및 뉴라이트 성향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8.12/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광복회에 이어 민주당 등이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발해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김 관장을 ‘뉴라이트 극우’ ‘친일파’로 규정하고 임명을 철회하라는 것이다. 별도 광복절 행사를 열 수 있다고도 했다. 독립기념관은 논란이 커지자 개관 후 처음으로 자체 경축식을 취소하고 문화 행사만 열기로 했다. 국민 통합과 경축의 장이어야 할 광복절이 분열 소동으로 얼룩지고 있다.

 

광복회는 김 관장이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 아니라 1948년이라고 했는데 이는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역사를 폄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정부가 ‘1948년 건국절’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으면 광복절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건국절 제정’을 추진한 적이 없다. 김 관장도 “건국절 제정을 비판해왔고 반대한다”고 했다. 윤 정부도, 김 관장도 주장한 적이 없는 ‘건국절 제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그러지 않으면 광복절 행사에 불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등은 김 관장이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 회복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며 ‘친일파’라고 했다. 그런데 김 관장의 발언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사실상 오류들이 있다” “잘못된 기술로 매도되는 분들이 있어서도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 친일인명사전은 2009년 출간 때부터 불공정·편파 시비에 휘말렸다. 좌파 인사들은 구체적 친일 행적이 확인되는데도 명단에서 빠진 반면, 우파 인사들은 특정 조직·부대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 낙인이 찍힌 경우가 많았다.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에게 ‘친일파’ 딱지를 붙인 것이 대표적이다. 김 관장은 “백 장군은 친일파라는 불명예를 썼다”고 했다. 백선엽 장군을 옹호하면 친일파인가.

 

김형석 관장이 독립기념관을 대표하고 운영할 만한 적임자이냐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학자라기보다는 대북 인도적 지원 등 사회운동가로 분류되는 사람에게 굳이 그 자리를 맡겨야 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명백한 결격 사유를 지적하기 힘든 인사 결정을 문제 삼아 국가적 기념일을 반쪽으로 만들겠다는 움직임에 적잖은 국민은 어리둥절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조선일보(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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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없는 ‘건국절 추진’ 시비에 민주당도 “광복절 행사 불참” 가세. 政爭에 정치 두 쪽 나더니 광복절까지….

 

-팔면봉, 조선일보(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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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는 긍정과 대화, 협치와 창조가 보이지 않는다

 

[김형석 칼럼]

조선 기울게 한 흑백논리와 보복의 악순환
100여 년 지난 지금까지도 병폐 극복 못해
대화-희생으로 국민 섬기는 자기혁신 시급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조선왕조를 사회악으로 이끌어 비운을 유발한 두 가지 사상이 있었다. 중간적 현실을 배제하는 흑백논리였고, 그 뒤를 따르는 윤리적 병폐를 만들어준 보복 관념이다. 원수는 갚아야 정의가 되고 은혜는 보답할 수 있어야 선한 사회가 된다는 가치관이다. 완전한 백색도 없으나 100%의 흑색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재하는 것은 그 중간의 회색뿐이다. 짙은 회색에서 밝은 회색을 찾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지속적으로 악에서 선을 찾아가야 한다. 자신도 갖추지 못한 백(白)의 이론으로 회색의 현실 가치를 거부한다면 인간적 삶은 유지되지 못한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원수를 갚기 위해 대립과 폭력을 반복하면 양편 모두가 공멸한다. 악을 선으로 극복하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은혜는 보답해야 한다. 그러나 선을 더 높은 선으로 도와야 공존의 수준을 높여갈 수 있다. 은혜를 갚기 위해 편 가르기와 집단이기주의에 빠지면 부분적 집단이 사회 전체를 파괴한다.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공존 질서를 육성시키는 정신이다.

또 한 가지 우리 민족의 병폐를 유발한 사회악이 있다. 반항 의식이 정의라는 역사 속에서 살아온 불행한 유산이다. 조선왕조 때는 왕실과 사회악에 항거하는 것이 불의에 대한 의무와 권리라고 생각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대한 항거와 투쟁이 생존과 애국심의 기본이 되었기 때문에 반항과 투쟁을 절대 가치로 여겼다. 일본의 선한 정책이 있었다고 해도 일본의 정치에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국민적 의리에 역행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나 같은 시대의 젊은이들은 정의의 표준이 친일인가 항일인가였다. 최근까지도 그랬다. 우리가 가진 친일파 관념이 그 맥을 따른 것이다. 민주당 일부는 항일정신을 강조하는 것이 정권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주장해 왔다. 국제적 고립을 자초했을 정도였다.

 

물론, 자유당의 독재정치와 군사정권의 반민주정치에 대한 항거가 없었다면 오늘의 민주정치는 늦어졌을 것이다. 이런 100여 년에 걸친 의식구조와 가치관을 갖고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동안에 국론과 역사의 정도까지 오도하는 사회 부조리를 수용했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였다.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동질의 가치관과 대면하고 있다. 공산 사회주의가 안겨 준 정신적 유산의 사회악이다. 북한은 그런 모든 사회악 질환에 빠져 세계에 유례(類例)없는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중국이 그 사회 역사 악의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런 역사적 사회악이 냉전 시대와 한국전쟁을 유발했기 때문에 우리는 좌우의 양극 논리를 진보와 보수의 가치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그 길은 주어져 있다. 열린 사회로 가는 길이다. 열린 보수가 현 정부와 국민이 원하는 길이다. 폐쇄된 진보는 다시 좌파로 후퇴하기 때문이다. 열린 보수는 공존의 가치와 방법을 찾아야 하고, 폐쇄적 진보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악을 극복해야 한다.

왜 우리는 100년에 걸친 역사적 사회악의 병폐를 재론하는가. 그 정신적 불행을 극복해야 하는데, 깊어 가는 국가 병을 고칠 지도자와 가치관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열린 보수 가치를 선택해 봤고, 이번 총선은 진정한 협치가 시대 정신임을 국민이 요청한 결과였다. 누가 어떻게 그 책임과 의무를 감당할 수 있는가. 식견과 인격을 갖춘 지도층이 형성되어야 한다. 모두에게 주어진 국민적 과업에 충실함이 필수조건이다. 공직자다운 공무원, 교수다운 교수, 의사다운 의사, 존경받는 법관들 모두가 제자리에서 자기반성과 새로 태어남의 변화를 갖추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

지금 와서 한두 개인을 지목하고 싶지는 않다. 야당 대표의 발언에 따라 국민의 세금에서 25만 원씩 전 국민에게 분배하라는 주장을 입법화하자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들고나오는 야당 세력이 있다. 조국혁신당 사람들은 오늘이라도 윤석열 정권을 탄핵하자고 나선다. 그런 자신만만한 지도자가 열 사람이 있다면 국가 질서는 어떻게 되는가. 법치까지 어기고 선한 질서를 배제하면 그 국가는 존립하지 못한다. 의사를 2000명 증원하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현 정부의 미숙한 행정을 인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사협회 회장의 성명을 접하는 국민의 실망은 크다. 정부가 자신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면, 전공의들이 환자를 버리고 떠나는 행위도 정당할 수 있는가. 의과대학 교수들은 자신들이 존경받는 인격과 사명보다 집단행동을 불사한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었던 의사들의 위상을 의심케 한다.

투쟁이 아닌 대화를, 감정과 이해관계를 떠나 객관적 가치를, 분열이 아닌 협력으로 국민을 섬기는 자기반성과 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가는 길은 간단하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국민이 행복하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가를 찾아 희생정신을 되찾는 일이다. 그 희생의 결과에 따라 존경과 감사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이상인 동시에 의무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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