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당신이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입니까?]

뚝섬 2024. 5. 19. 05:36

당신이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입니까?

 

몽파르나스 묘지의 베케트 “알았더라면 작품에 썼을 것” 

 

임영웅이 연출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 자기 삶조차 통제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 갇힌 현대인을 그렸다. /극단 산울림

 

파리의 마지막 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침대에서 나와 방 안을 서성이길 몇 시간째. 창밖으로 눈을 돌리니 새벽 빛을 등지고 개선문의 웅장한 실루엣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투둑투둑, 밤새 내린 비가 그칠 줄 모르고 창문을 두드립니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까지 남은 세 시간, 호텔에서 몽파르나스까지 천천히 걸어가면 30분 남짓이니 시간은 넉넉하네요. 우산을 챙겨 들고 거리로 나섰어요.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지하철역으로 사라지는 중년의 남자, 물 묻은 낙엽을 무겁게 쓸어내는 청소부. 관광객으로 붐비는 한낮의 파리와는 다른 풍경 속을 걷고 있자니 마치 이 골목 어딘가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처럼 모든 것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저기 두꺼운 철문이 보이네요.

 

도착한 곳은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1824년에 만들어진 이 오래된 묘지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가, 배우, 음악가들의 안식처이자, 예술가들의 삶을 담은 독특한 묘비와 조각상으로 꾸며져 있어 마치 공원처럼 파리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죠. 입구로 들어섰습니다. 안내소 유리창 너머에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있던 할아버지가 나와 지도 한 장을 건네며 빙긋이 미소를 짓습니다. “이곳은 죽은 자를 찾기 위한 살아 있는 자들의 미로이지요.” 보들레르, 모파상, 사르트르, 보부아르, 세르주 갱스부르…. 책으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만났던 그들의 육신이 긴 영면에 들어간 이 땅 위에 서 있자니 위대한 예술가 대신 흙으로 돌아간 한 인간을 마주하는 뭉클함이 밀려왔습니다.

 

두꺼운 잿빛 구름 아래, 비에 젖은 묘비들은 주인의 이름을 가리려는 듯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죠. 비 내리는 공동묘지. 으스스할 법하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아, 드디어 찾았습니다. 밤새 떨어진 낙엽이 온통 이름을 가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어요. 사뮈엘 베케트(1906~1989). 파리로 혼자 긴 여행을 떠나면서 준비한 계획표에 베케트의 이름은 가장 마지막에 넣어 두었습니다. 30대 초반 무렵, 언제나 자신만만했던 패기도 사라지고 세상에 뜻대로 되는 건 없다는 쓴맛을 맛보던 그때,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를 만났습니다.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의 베케트 무덤. 부인과 함께 묻혀 있다. /최여정 제공

 

한국에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처음 소개가 된 건 1969년 한국일보 다목적홀 개관 공연작으로 선보인 무대였어요. 공연 직전 사뮈엘 베케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생소한 연극을 보기 위해 관객들이 밀려들었고, 티켓은 일찌감치 동이 나서 연장 공연까지 이어집니다. 이후 지난 50여 년 동안 ‘고도를 기다리며’는 1500회 넘게 공연되면서 22만명이 관람했습니다. 정동환·이호성·송영창·박용수·안석환·한명구 등 연기력을 자랑하는 중년 배우들이 거쳐 가는 우리 시대의 클래식이 됐죠. 홍대 앞 지하에 있는 100석도 채 안 되는 작은 극장에서 만든 놀라운 기록입니다. 그 무대 뒤에는 초연부터 이 작품과 씨름한 연출가 임영웅이 있었습니다.

 

사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보기 쉬운 연극은 아닙니다. 대단한 사건이나 흥미로운 인물도 없이 나타나지도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3시간여의 여정에 동참해야 하기 때문이죠. 20대에는 ‘고도’가 지루함과 인내심의 상징이었다면 30대가 되자 비로소 ‘고도’의 정체가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홍대 앞 산울림 소극장의 작은 객석에 옆 사람과 어깨를 비비고 앉아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고도를 기다리며 끝없이 주고받는 의미 없는 대사들을 듣다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와 마주하며 조바심 치던 저에게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라고, 그저 오늘도 내일도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릴 수도 있는 거라고, 그게 인생이라고 연극이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는 베케트의 말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 기다려야 하는 고도가 있죠.

 

그렇게 제 인생의 곱이곱이를 위로했던 ‘고도를 기다리며’의 임영웅 연출이 지난 5월 4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부고 소식을 듣고는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해졌죠. 임영웅 연출이 사재를 털어 지은 산울림 소극장, 지하로 향하는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그 작은 무대에 들어서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임영웅 연출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고도를 기다릴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던 고도는 오지 않고, 인간은 생을 다하고 사라집니다. 이제 임영웅 연출을 대신하여 다른 연출가들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이어가겠지만, “임영웅 연출님의 고도가 가장 좋았어”라고 그리움을 담아 떠올릴 것입니다. 당신이 있어 연극이라는 세상이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임영웅은 “표 팔고 스폰서 구할 걱정을 하는 나는 불행한 연출가”라며 “에너지를 연극에만 쏟아도 되는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조선일보DB

 

-최여정 작가, 조선일보(2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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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의 줄거리는 단어로 설명할 있는데, 바로 '기다림'이다. 작품은 희곡의 거의 모든 관습적인 기대를 깨버린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이 등장해 이해할 없는 허튼소리를 내뱉는 것이 전부이다. 심지어 주인공끼리 나누는 대화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쪽에서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면 다른 쪽은 술이 싫다고 동문서답하는 식이다.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국도의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라는 이름의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은 고도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고도에게 원하는지도 모른 고도를 기다린다. 심지어 고도가 실존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둘은 이야기를 하지만 상호적인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 마치 서로 벽에 외치는 것과 같이 피상적이 되어간다. 그러던 그들은 포조와 그의 짐꾼 럭키를 만나 대화를 나누지만, 역시 두서없고 무의미한 대화뿐이다. 밤이 되자 심부름을 하는 양치기 소년 나타나 그들에게 '고도 씨는 내일 온다' 사실을 알려준다.

 

2(다음 ) 비슷한 내용이 그대로 반복되는데, 등장인물들의 변화로 괴이한 느낌을 준다. 마지막엔 역시 양치기 소년이 등장하는데, 디디와 양치기 소년은 각자 하고 싶은 말만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결국 블라디미르는 양치기 소년에게 화를 내며 쫓아버리고, 잠을 자다 에스트라공이 고도가 왔었는지 묻는다. 그는 차라리 멀리 떠나자고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내일 고도를 만나러 여기 와야 한다고 상기시켜준다. 둘은 나무를 쳐다보며 목이나 맬까 하지만 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일 끈을 챙겨와 고도가 오면 매자고 다짐한다. 말로는 떠나자고 하는 사람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위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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