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시계’ 구한 이민자… 중요한 건 혈통인가 정신인가]
[손목시계와 七星]
[남자의 시계]
‘스위스 시계’ 구한 이민자… 중요한 건 혈통인가 정신인가
스위스 시계 산업
올해 4월 스위스 앙시의 시계 공장에서 제롬을 만났다. 매년 제네바에서 고급 시계 박람회가 열린다. 제롬은 때맞춰 잡힌 시계 공장 견학 응대 담당자였다. 제롬은 위블로라는 회사에서 일했다. 그는 얼굴이 까만 아시아인이었지만 동양계 서양인에게 대뜸 출신을 묻는 건 예의가 아니다. 제롬에게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에 둘 다 완벽한 최고의 안내자였다. 그의 존재 자체가 스위스 시계 전통의 계승이기도 했다. 그 전통이란 이민자의 활약이다.
제롬이 일하는 위블로 역시 이민자가 발전시켰다. 위블로는 스위스 고급 시계 중 역사가 짧은 편이다. 이 역사 짧은 브랜드가 유명해진 결정적 계기는 위블로 전 CEO 장 클로드 비버다. 비버는 21세기 최고의 시계 마케터로 손꼽혀 비버의 마케팅이 경영대학원 사례로도 쓰였다. 위블로는 그의 마케팅 역량 덕에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비버 역시 위블로의 대성공에 힘입어 모그룹인 LVMH의 시계 부문 총괄까지 갔다. 그는 룩셈부르크계 이민자다.
장 클로드 비버 마케팅의 또 다른 대표 사례가 오메가다. 007은 1995년작 ‘골든 아이’부터 최신작 ‘노 타임 투 다이’까지 계속 오메가를 차고 나온다. ‘골든 아이’에서 피어스 브로스넌이 찬 푸른색 다이얼 손목시계가 비버가 총괄한 오메가와 007의 계약 결과물이다. 그 시계가 엄청나게 많이 팔리며 오메가가 한번 더 유명해진다. 그 오메가를 재건한 사람 역시 이민자다. 니컬러스 하이에크, 스와치그룹의 창시자다. 그는 레바논계 이민자다.
이런 사실이 스위스 시계 산업을 흥미롭게 만든다. 스위스 시계는 초콜릿, 치즈, 정밀 기계, 금융 등과 함께 스위스를 대표하는 산업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위스 시계 산업의 스타 플레이어 중에는 이민자가 많다. 스위스 시계 산업은 폐쇄성이 강한 동시에 인재에 대해서는 상당히 열려 있다. 그래서인지 스위스 시계 공장 현장에 가 보면 비백인이나 여성 시계공도 많다.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길게 돌아보면 스위스 시계 자체가 이민자 산업이다. 시계공이라는 직군은 마을의 교회 종탑 시계를 손보는 설비 관리인 개념으로 출발했다. 시계공 중에는 프랑스의 개신교도인 위그노가 많았다. 1685년 프랑스 내 종교 자유를 용인하는 낭트 칙령이 폐지되어 위그노들은 마을을 떠나야 했다. 위그노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던 스위스로 들어와 제네바에서도 멀리 떨어진 유라 산맥 골짜기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스위스 시계 클러스터의 시초다. 주요 스위스 시계 공장들이 여전히 여기 있다.
평온해보이는 모습과 달리 스위스 시계 업계는 계속 위기였다. 그 위기를 구한 사람도 이민자였다. 1970년대 이후 스위스 시계 산업은 ‘쿼츠 혁명’의 직격타를 맞는다. 일본이 더 싸고 정확한 쿼츠 무브먼트 손목시계를 보급하며 스위스 시계 제조업은 전체 근로자의 70%가 해고될 정도로 궤멸한다. 이때 선진 경영 모델과 마케팅 개념을 도입해 업계를 되살린 사람이 니컬러스 하이에크다. 스위스 시계가 가진 마케팅적 잠재력에 인생을 걸어 성공시킨 사람이 장 클로드 비버다.
이민자가 스위스 대표 산업을 지켰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질문을 남긴다. 국가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국가다움은 누가 지켜야 하나? 국가의 ‘혈통’을 가진 사람인가? 혈통의 정의는 무엇인가? 국가다움은 혈통의 문제인가 정신의 문제인가? 21세기는 이런 질문이 점차 복잡해지는 시대다. 이에 대해 수준 높은 합의가 이루어져야 가장 귀한 재화인 인재가 모인다. 인재의 근간인 출산이 줄어드는 현대 한국 역시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왔다.
스위스는 이민이 어려운 나라라고 알려졌으나 자격이 증명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통 스위스 영주권 취득에 5년 정도 걸리는데, 어느 일본 시계 제조자는 능력을 인정받아 3개월 만에 영주권이 나왔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해준 제롬과도 취재 막판엔 친해져서 사담을 나눴다. 그는 아버지 때 건너온 필리핀계 스위스인 2세라고 했다. 제네바의 맛있는 식당에 다니는 게 삶의 낙이고, 최근 귀여운 아기가 태어났다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스위스스러움’이 이어지는 풍경을 본 것 같았다.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조선일보(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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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시계와 七星
공직자의 스위스 고가 시계 사진을 보면서 시계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였다. 하늘의 북두칠성을 손목 위에다가 올려놓은 것이 손목시계이다. 왜냐하면 북두칠성은 하늘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시계이기 때문이다. 북두칠성은 가만히 있지 않고 매일 돌아간다. 시곗바늘처럼 돌아가는 것이다. 국자 모양의 별 7개 가운데 국자 제일 앞에 있는 별이 추성(樞星)이다. 추기경(樞機卿)이라고 할 때의 '추' 자와 같다. 이 추성을 중심으로 해서 북두칠성이 원을 그리면서 돈다. 특히 국자의 손잡이 부분인 6번째와 7번째 별이 시곗바늘에 해당한다. 시침(時針)이라고 부른다.
시계가 없던 시절에는 이 칠성의 시침 방향을 보고 시간을 짐작했었다. 예를 들어 이 시침이 저녁 9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면 술시(戌時)라고 보았다. 밤이 더 깊어지면 이 시침이 12시 방향 쪽으로 움직인다. 새벽이 되면 이 시침이 또 이동하는 것이다. 고대의 유목민들은 밤하늘의 칠성을 보고 시간을 짐작하였다. 특히 밤에 이동하는 사막 문명권에서는 이 칠성의 중요성이 더 컸다고 여겨진다. '사막의 대상(隊商)들이 밤에 별을 보고 이동했던 때가 행복했었다'는 루카치의 말은 별 중에서도 북두칠성이 가장 핵심이었다고 본다.
시간에는 우주시(宇宙時), 역사시(歷史時), 인생시(人生時)가 있다. 우주가 지금 몇 시인가가 우주시이다. 역사가 지금 몇 시인가가 역사시이다. 내 인생이 지금 몇 시인가가 인생시이다. 시간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몇 시인지를 모르면 철부지(不知) 아니던가! 우주시는 온난화에 접어들었고, 한국의 역사시는 남북관계시(時)에 접어들었다. 내 인생시는 앞으로 나가야 하는 고(go)인가, 아니면 스톱(stop)인가.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板)에 얹어 놓는다. 시간을 다 썼으니까 시간의 신인 북두칠성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간을 충전해서 오라는 의미이다. '돌아가셨다'는 말은 칠성으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그 시간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신을 손목에 묶어서 휴대하고 다니는 것이 손목시계라고 본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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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시계
자동차·카메라·오디오가 남자의 3대 장난감이라면, 구두·벨트·시계는 남자의 3대 액세서리다. 한때 최고급 시계는 남자의 재력을 드러내는 물건이었다. 1980년대 기계식 시계 대신 배터리로 가는 시계가 인기를 끌자 판도 변화가 생겼다. 카시오와 스와치 시계가 남자 손목을 점령했다.
▶스마트폰이 시계를 대신하자 시계의 시대는 끝난 듯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몇 천만원짜리 고가 시계 시장이 굉장하다고 한다. 시간을 알려고 시계를 차는 것이 아니라 멋 부리려고 시계를 차는 남자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소매 속에 있다가 슬쩍 드러나는 멋을 좋아하는 좀 수줍은 사람들이 시계를 좋아한다"고 했다. "과시하려는 사람들은 대개 자동차에 돈을 쓴다"고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초고가 스위스 시계를 찼다고 해서 입길에 올랐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6000만원짜리 모델 '패트리모니'로 보였다. 정작 본인은 "2007년 캄보디아 길거리에서 산 30달러짜리 짝퉁"이라고 해명했다. 시중 반응은 다양하다. "가짜 시계까지 차면서 멋을 부려야 하나"는 말도 나왔다. 짝퉁을 줄까지 바꿔가면서 11년간 찼다는 게 정말이냐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있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2000만원짜리 금장 롤렉스를 차고 다녔다. 좌파에서 '블링블링(반짝반짝) 대통령'이라고 비꼬았다. 그의 친구가 TV에 나와 "남자 나이 쉰에 롤렉스 하나 못 차면 실패한 인생 아니냐"고 말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사르코지가 가죽 밴드에 모양이 얌전한 시계로 바꿔 차니 조용해졌다. 사실은 훨씬 비싼 7000만원짜리 파텍 필립이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스포티하고 젊어 보이는 태그 호이어를 차고 다녔다. 달라이 라마도 시계 마니아다. 시계를 분해했다가 재조립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선물받은 롤렉스와 파텍 필립을 포함해 15개쯤 갖고 있다고 했다.
▶1932년 4월 29일 아침 윤봉길과 김구는 의거를 앞두고 조찬을 함께했다. 상을 물린 뒤 윤봉길이 김구에게 시계를 건넸다. "조금 있으면 필요 없게 될 물건입니다. 이게 6원짜리이고 선생님 시계가 2원짜리이니 바꾸시지요." '월샘'이라는 상표의 미국 시계였다. 윤봉길은 김구의 회중시계를 품고 폭탄을 던졌다. 두 사람은 숨질 때까지 서로의 시계를 간직했다. 두 시계는 유족들이 각각 보관하고 있다가 2006년 함께 전시되면서 76년 만에 '해후'했다. 진정한 남자들의 시계였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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