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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은 '소셜 믹스'에 기초해 강남을 계획했다] ....

뚝섬 2024. 9. 1. 05:49

[박정희 정권은 '소셜 믹스'에 기초해 강남을 계획했다]

['리버뷰'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박정희 정권은 '소셜 믹스'에 기초해 강남을 계획했다

 

[김경민의 부트캠프]

 

주택가격 안정화가 부른 강남 高價 아파트들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8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18로 2021년 10월(125) 이후 최고치다. 이 지수가 100을 상회하면 집값 상승을 예상하는 소비자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뉴시스

 

이번 주에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한다. 하나는 경기도에 거주하는 독자가 본인의 주택 가격이 오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었고, 다른 하나는 인구 감소와 젊은 층의 가처분 소득 부족 상황에서 ‘퍼펙트 스톰(막을 수 없는 집값 상승)’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먼저 글로벌 경제와 도시 경제(특히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에 대한 거시적 통찰이 필요하다. 서울은 글로벌 도시들의 일반적 움직임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리처드 플로리다의 책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를 일독하기를 권한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 국가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의 소득은 같은 직종의 평균 수입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고, 그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소득 불균형이 같은 직종에서도 심화된다. 예컨대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연예인들이 선호하는 거주 지역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이들이 선호하는 ‘수퍼스타 도시’가 나타나는데, 그런 곳의 부동산 가격은 매우 빨리 오른다.

 

이 책은 팬데믹 전인 2017년에 나왔다. 즉, 2010년대 세계에서 부동산 가격이 미칠 듯 상승하는 수퍼스타 도시들이 이미 등장했고, 그 안에서도 초고가 지역들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이 경향은 팬데믹을 거치며 더 심화되고 있다. 팬데믹 기간에 엄청난 유동성이 시장에 풀렸으나, 일부 플랫폼 기업들만 큰 성장을 이뤘을 뿐 서민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인플레이션과 함께 나타난 소득 불균형, 자산 불균형이 부동산 시장에도 반영되고 있다.

 

한국을 보면 수요가 몰리는 서울(과 인근 중산층 신도시)과 그렇지 않은 비서울의 문제다. 우리 부동산 시장 또한 모든 지역이 동시에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서울, 인천, 경기 사이에 가격 흐름이 달라졌다. 2016년부터 2019년 말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은 급상승했으나, 인천·경기는 정체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이미 수도권 내에서 시장 분화가 일어난 것이다. 다만 2020~2022년에 역대급 초저금리 상황이 유지되며 유동성이 넘쳐나자, 팬데믹 기간에는 동반 상승하고 동반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파트 가격지수 /김경민 제공

 

그러나 2023년 엔데믹 이후, 수도권 시장은 다시 차별적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과 분당, 과천, 평촌 등 일부 중산층 지역은 가격 상승이 가파르나 다른 지역은 정체 상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수요의 차이다. 두 번째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이전 연재에서 언급했듯이, 수요는 인구와 더불어 소득에 의해 결정된다. 서울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인구가 줄기 시작해 1000만 명이 무너진 지 오래됐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은 폭등했다. 서울시민의 소득 증가와 함께 서울로 진입하려는 대기 수요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필자가 언급한 ‘퍼펙트 스톰’의 가능성은 지방이 아니라 서울과 근교의 신도시를 지칭한 것이다.

 

오늘은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독자의 지적처럼, 현재 우리 젊은 세대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모든 세대 중 경제적으로 가장 어렵다. AI 시대에 직업들이 자동화됨에 따라, 이들의 소득이 앞으로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자산을 어른 세대가 독식한 채 “너희는 소득이 낮으니 임대주택에 살라”는 식으로 무대책이라면 제대로 된 사회나 국가라 할 수 없다.

 

소득이 낮은 계층이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금융·정주 환경을 만들어야 좋은 국가다. 이 맥락에서 미국 부동산 시장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 나라에서는 소방관, 경찰관, 군인, 교사 등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으나 지역 커뮤니티에 중요한 공헌을 하는 필수 인력들이 적정한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 서울 강남구에서 근무하는 소방관·경찰관·교사가 그 커뮤니티에 기여하고 헌신함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가격에 비해 소득이 낮아 부동산 진입이 힘들다면 국가는 그 그룹에 더 강한 금융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필자는 1980년대 초반, 역삼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당시 친구들 중에는 부모님이 하급 경찰관, 군인, 교사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1978년 서울 강남종합버스터미널 주변 전경. 1세대 강남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서울시

 

그 연장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1970년대 강남이라는 거대한 신도시를 개발할 당시의 도시계획 철학이다. 박정희 정권은, 의식했든 안 했든, 역대 정권 중 가장 소셜 믹스(social mix)에 기초해 신도시를 기획했다. 1970년대 계획한 아파트 단지들, 현재 도곡렉슬 아파트는 당시 5층짜리 도곡아파트(시영아파트)였다. 현재 역삼동 일대 역삼래미안을 비롯한 아파트들은 5층짜리 서민 아파트들이었다. 송파구 엘리트(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1만5000가구의 전 모습은 서민들이 거주하던 5층짜리 주공아파트였다. 한때 최고가 아파트였던 반포자이 역시 서민아파트 지역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강남도시계획은 압구정동 일대의 고가 아파트(20~30평대가 다수 존재한다)와 더불어, 역삼동 일대의 고가와 중저가 아파트, 개포동 일대의 주공아파트, 잠실 일대의 주공아파트, 반포 일대의 주공아파트들이 적절히 혼합된 소셜 믹스 타운이었다.

 

그런데 국가 정책 목표 자체가 반(反)자본주의적인 ‘주택가격 안정화’로 바뀌면서, 박정희 정권의 소셜 믹스 전통은 사라졌다. 주택가격을 잡아야 하니, 고가 아파트 단지들로 강남이 채워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커뮤니티에 기여하지만 소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들어설 턱이 없다.

 

자유시장경제의 원칙과 주거권 사이에 균형을 잡으면서, 제대로 된 주택정책 목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을 믿어야 한다. 동시에 주거권과 소셜 믹스의 원칙을 국가가 어떻게 증진할지 모색해야 한다.

 

-김경민 서울대 교수·도시계획전공, 조선일보(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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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뷰'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김두규의 國運風水]

 

풍수의 원리로 본 서울 아파트 재건축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1970년대에 지어진 강남 1세대 아파트의 상징이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1980년대 초, 그러니까 약 40년 전 이야기다. 서울 여의도에 모 신문사 문화센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함석헌 선생이 노자 강독을 하셨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필자는 그 강의를 들었다. 함 선생님 노자 강의는 원전 강독이었지만, 그 스승 유영모 선생의 순우리말 번역본도 함께 했다. 지금도 필자의 서재에 낡은 필사본이 있어 기억이 뚜렷하다.

 

우연히도 함 선생님 강의실 앞에 ‘풍수지리’ 강의실이 있었다. 호기심에 그 수업도 함께 들었다. 수강생들은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었다. 필자는 ‘새파랗게 어린’ 편이었다. 2년 넘게 수강했다. 이후 독일 유학을 떠났다. 그때 풍수 선생의 이야기 중에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시골에서 쌀 200석 나오는 명당이 한양(서울)에서 쌀 1석 나오는 명당만 못합니다.” 그때는 몰랐다. 아니, 풍수 선생을 비웃었다. 당시 필자의 시골 부모 전답을 팔면 서울의 아파트 몇 채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것 다 팔아도 서울 변두리 아파트 한 채도 못 산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한양(서울)은 절대 명당이었는가? 고려 숙종 이전까지 한양은 우리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 이전까지 고려 왕실의 주 관심은 서경(평양)이었다. 고려의 공식적 평가는 ‘1서경(평양), 2개경’이었다. 이는 태조 왕건의 발언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짐은 산천의 보이지 않은 도움으로 대업을 이루었다. 서경(평양)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워서 우리나라 지맥의 뿌리가 되고 대업을 만대에 전할 땅이다.” 고려 왕조에서 ‘서경천도론’이 등장한 이유이다.

 

이후 고려 숙종 때부터 남경(한양)으로 관심이 전환된다. 당시 남경은 한양·용산·노원·해촌(현재 도봉산역 일대)을 지칭하였기에 지금의 서울에 해당한다. 이후 간헐적으로 ‘남경천도론’이 등장하다가 조선 개국과 더불어 한양이 도읍지가 된다. 이어서 1433년 당시 임금인 세종과 조정 대신 그리고 풍수 관리가 모인 자리에서 역대 도읍지 순위를 “1한양, 2개경, 3평양”으로 공식화한다. 흥미로운 것은 한때 1순위였던 평양과 한양이 지금 남북의 수도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풍수지리가 주관이 아닌 객관이란 방증이다.

 

최근에 40년 된 아파트들의 재건축 바람이 불고 있다. 40년 전인 1980년대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이었다. 지금은 세계 경제·군사·문화·스포츠 강국이 되었다. 내용이 다르면 형식도 달라져야 한다. 개발도상국 아파트 건축과 선진국 아파트 건축은 내용과 형식이 달라져야 한다. 최근 ‘신도시 모델’로 등장하는 ‘압축도시(compact city: 주거·직장·서비스 공간을 입체화·밀집화하고 주변 자연환경을 복원하는 도시)’ 개념이 ‘지구단위계획’에 반영된다면,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의 산과 물길이 살아날 수 있다. 난(亂)재건축을 막는 풍수 관념에 부합한다. ‘융(Jung)학파 분석가’인 이부영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의 말씀에 이제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

 

“집과 터는 한국 풍수지리 관념에 의하면 우주적 에너지 체계, 즉 하늘의 기, 땅의 에너지인 지기(地氣)와 조화로운 관계여야 한다. 조화로운 토대와 구조는 한 가족의 현재 삶과 관계를 가질 뿐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거듭하면서 면면히 이어지는 수많은 가족의 삶과 관계한다.”(‘한국의 샤머니즘과 분석심리학’)

 

인용문은 풍수 고전 ‘황제택경’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사람은 집 덕분으로 인해 입신하고, 집은 사람으로 인해 존재한다. 사람과 집이 서로 도우면 천지를 감통(感通)시킨다. 운명에 맡길 일이 아니다.” 이제 재건축은 땅과 사람을 함께 살리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산은 인물을 키우고 물은 재물을 늘려준다(山主人 水主財)’는 풍수 격언이 있다. 이른바 ‘리버뷰’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흘러 들어오는 물을 바라보는 전망이어야지, 흘러 나가는 물을 바라보는 곳은 재물 손실과 우울증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혹 독자들께서 반문하실지 모르겠다. “그대는 좋은 터에 살고 있는가?” “예! 서재가 있는 뒤쪽으로 서달산 숲이 그윽하여 밤에 소쩍새 울고, 거실 남쪽으로 모 대학 운동장이 탁 트여 멀리 관악산 3봉이 훤히 보이는 배산임수의 터입니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조선일보(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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