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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위 쿠데타’ 실패로 ‘윤건희 정권’은 끝났다] [자폭성 소극(笑劇).. ]

뚝섬 2024. 12. 6. 14:41

[‘친위 쿠데타’ 실패로 ‘윤건희 정권’은 끝났다]

[자폭성 소극(笑劇)으로 이재명 살리고 자기 정치 생명 끊은 윤석열]

[차라리 '임기 단축 개헌' 카드를 썼더라면]

 

 

 

 

‘친위 쿠데타’ 실패로 ‘윤건희 정권’은 끝났다

 

[김순덕의 도발]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입구를 계엄군이 통제하고 있다. 뉴시스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국회와 정당, 언론사 앞엔 계엄군이 진을 치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밤 계엄군에게 체포됐다. “어디로 끌려갔다더라” 소리는 반국가세력의 체제 전복 행위라거나, 가짜뉴스·여론조작·허위선동으로 간주돼 계엄법 14조에 의해 처단된다(한동훈이 6일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과천 수감장에 감금돼 있을 터다).

계엄사령관의 포고령 1호는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사태 직후 계엄령에도 없던 대목이다.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 요구결의안을 채택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계엄 철폐를 요구하는 집회, 시위도 금지됐다.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 될 판이다. 당연히 이 따위 글도 못 쓴다. 언론 출판은 계엄사 통제 대상이다(그간 써온 글 때문에 벌써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 당했을지 모른다).

만일 3일 밤 계엄군이 의원들보다 먼저 국회에 진입했다면, 용감한 시민 수천 명이 국회로 달려가 무장군인들과 맞서며 국회가 표결할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은 벌써 현실이 돼 있을 것이다.

비상계엄이 야당 경고성이었다고?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은 ‘야당의 폭거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거다. 통탄할 일이다. 친위 쿠데타가 실패했으니 하는 엉뚱한 소리지, 아파트 전체를 불태워놓고 아랫집에서 층간소음 내는 걸 알리려 불 질렀다는 소리보다 비정상이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의 5일 한 인터뷰에 따르면, 윤석열은 어떻게 군이 투입됐는데 국회 하나 점령을 못 하느냐고 크게 질책했다고 한다. 4일 오전 1시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이 의결됐음에도 4시 27분까지 계엄 해제 담화를 발표하지 않은 것도 일말의 미련을 버리지 않아서가 아닌가 싶다. 육사도 아니고 서울법대를 나온 검찰총장 출신이, 박정희-전두환을 능가하는, 어떤 독재자도 감히 하지 못했던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도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고?

윤석열이 긴급 담화에서 밝힌 대로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탄핵과 특검, 야당 대표의 방탄으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있는 점도 부인할 순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대국민 호소문을 내놓았어야 할 일이다. 아니면 총선 패배 뒤 밀사를 보내 야당 대표와 ‘딜’을 시도했던 것처럼 총리나 내각 절반을 내놓을 테니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대화와 타협을 했어야 했다. 지난번 같은 기자회견 말고 진솔한 회견으로 국민 앞에 털어놓고 협조를 구했어도 국민은 대통령 편은 이 돼 줄 수 있었다. 대통령실과 내각 개편은 진작했어야 할 일이다.

● “위반 시 처단한다”고 전공의 복귀하겠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다. 나 같은 사람을 비롯해 주류 언론에선 입과 팔이 아프도록 말하고 또 썼다. 계엄 선포 담화대로, 아니 극우 유튜브 말마따나 국회에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 ‘체제전복을 노리는 반국가세력’이 있다면, 윤석열은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민주당에서 경찰의 대공 수사에 쓰일 특활비 특경비까지 삭감했기 때문에 윤석열이 ‘종북세력’이라며 격분해 계엄을 결심했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북에서 오물풍선 날리고 그 전날 밤엔 “모든 공격 수단을 준비 태세에 놓겠다”고 경고까지 했던 10월 12일도 골프나 쳤던 윤석열은 체제수호자란 말인가. 야당에서 내년 예산안 677조4000억 원 중 1%도 안 되는 감액을 했다고, 줄줄이 탄핵한다고 계엄령을 선포하는 대통령을 그대로 둘 수 있는지, 대한민국 체제가 더 불안하고 불쌍하다.

만에 하나, 계엄군의 국회 진입이 성공해 비상계엄이 살아있다 해도 윤석열이 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포고령대로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이 본업에 복귀’할 리 없다. 이미 군에 입대하거나 다른 업종에 취업한 의사는 어쩌란 말인가.

● ‘윤석열 유신’이라도 감행할 능력 있나

민생을 위한 통치를 하려 해도 국회가 민생법안을 통과시켜야 가능하다. ‘윤석열 유신헌법’과 ‘윤석열 정당’을 만들고 관제선거를 해서라도 다수당이 돼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비상계엄 아니라 계엄 할아버지에 성공한대도 박정희는커녕 전두환도 못 되는 윤석열 능력과 그릇으로 ‘윤석열 유신’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유신이라니!! 아무리 글로벌 민주주의 쇠퇴와 함께 스트롱맨이 활개 치는 세상이 됐다 해도 우리나라가 52년 전 같은 유신독재로 돌아갈 순 없다. 대통령 탄핵에 못내 주저하던 한동훈도 “윤석열이 계속 대통령직을 수행하면 또 비상계엄 같은 극단적 행동을 저지를 우려가 있다”며 조속한 대통령 직무정지의 필요성을 밝혔다.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친윤(친윤석열)은 물론 한때 윤석열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심경이 복잡할 터다. 어떻게 교체한 보수정권인데 2년 반 만에 망한단 말인가. 이대로 탄핵이 진행될 경우, 내년 초 대선에서 필시 ‘이재명 대통령’에게 정권 상납할 게 분명하다는 근심이 자자하다.

● ‘윤건희 정권’ 사죄하고 윤석열 스스로 사임하라

그러나 설령 윤석열이 탄핵되지 않는다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다수 국민은 이미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든 못 있든, 윤석열이 할 수 있는 게 없는 형국이다. V 제로 김건희 여사가 국정에 관여해 온 ‘윤건희 정권’이긴 해도 김건희가 전면에 나설 수도 없다. 결국 탄핵되든 안 되든 그들 부부가 설 자리는 없는 꼴이다.

‘탄핵 트라우마’로 인해 대통령 탄핵만은 피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탄핵만 하면 자유민주주의가 절로 살아나는 것도 아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뒤 문재인 정권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로 몰고 갔다. 이대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 ‘죽어도 경험하기 싫은 나라’로 끌고 갈까 두려운 거다.

윤석열은 국민 앞에 절절히 사죄하는 것으로 마지막 소임을 다하기 바란다. 지난 2년 반, 절대 변하지 않는 윤석열을 죽도록 보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희망을 갖고 싶다. 또 한 번 탄핵당하는 불행한 보수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보다 국민 앞에 사죄하고 스스로 사임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 낫다. 물론 김건희와 함께 사법적 책임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탄핵보다는 사퇴가 덜 수치스럽다. 그리하여 다음 대선까지 ‘거국내각’이 들어서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국민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고 본다.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동아닷컴(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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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폭성 소극(笑劇)으로 이재명 살리고 자기 정치 생명 끊은 윤석열

 

[이기홍 칼럼]

민주주의를 꽃피울 열린 귀도
독재라도 해낼 냉철한 피(血)도
여우를 잡을 치밀하고 간교한 머리도, 없었다…

다만 흥분과 격노, 고집뿐

 

“패악질을 일삼아 온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한밤중 용산 대통령실에서 중계된 소극(笑劇·Farce·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는 상황을 연출하는 짤막한 희극) 같은 장면들을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를 3년 반 전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아파트 실내로 옮겨 보자.

“선배님, 이제 그만 가져오셔도 됩니다.”

 

문재인 정권의 불의에 맞서 사표를 던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아직 선거 출마를 선언하기 전의 시기였다. 윤 전 총장의 자택에 60대 초반 남성이 초인종을 눌렀다.

초청하지 않아도 거의 매일 찾아오는 그의 손에는 여의도 정가 동향을 정리한 문서가 들려 있었다. 충암고 1년 선배인 남자는 윤 전 총장을 “아우님”이라 호칭했다. 문서 내용은 허술했다. 하지만 그 정성이 지극해 윤 전 총장은 “힘드실 텐데 그만 가져오셔도 된다”고 조심스레 사양하기도 했다.

그 후 대선 캠프를 꾸린 윤 전 총장은 그 선배를 외교안보팀에 넣어줬다. 거기서도 보고서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소리가 나왔다. 팀장은 우회적으로 “직접 쓰기 힘드실 텐데 현역 시절 데리고 있던 부하들한테 시켜 보지 그러느냐”고 권했고 보고서 내용이 업그레이드됐다.

고교 후배의 집에 드나든 그 전직 장성은 윤석열 정부 출범과 더불어 대통령 경호처장이 됐고, 2년 4개월 뒤에는 국방장관이 됐다. 그러고는 장관 취임 3개월 만에 황당하고 엉성해서 ‘자학 개그’라고 불러도 좋을 계엄 사태의 ‘조연’을 맡았다.

조연이라고? 김용현 국방장관이 계엄을 건의했으니 주연 아니냐며 갸우뚱할 독자들을 위한 설명은 잠시 후에 하겠다.

게재 요일이 정해져 있는 고정 칼럼은 보통 며칠 전부터 준비한다. 오늘 자에 게재될 칼럼도 이미 지난 화요일 오후쯤 제목과 내용의 골격을 완성해 놓은 상태였다. 제목은 ‘국민은 민주당과 이재명을 탄핵하고 싶다’였다.

공직자 탄핵 남발과 예산 농단 등 민주당의 의회 권력 남용이 건국 이래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여서 곧 민심의 역풍을 맞게 될 것임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사람 됨됨이를 알고 싶으면 권력을 줘보라고 했는데, 현재 민주당의 힘자랑은 이재명 정권에서 펼쳐질 전횡의 예고편이므로 스스로 낙선 운동을 하는 셈이라는 논지였다. 이 대표가 175석 권력에 취해 자기 발등을 찍고 있다는 게 최근 필자가 취재한 중도층과 온건 보수층의 민심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적처럼 수호천사가 다시 나타났다. 지난 총선 때 김일성의 남로당 숙청을 연상케 하는 공천 학살로 참패가 예상됐던 이 대표에게 선거 직전 막판 등장한 윤석열 부부가 대승을 안겨줬듯, 이번에 윤 대통령은 정치사에 남을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이 대표 구원자 역할을 해냈다.

필자 취재에 따르면 계엄은 순전히 윤 대통령 본인의 흥분 격노에 의해 돌발적으로 결정됐다.

윤 대통령을 결정적으로 분노에 휩싸이게 만든 사안은 민주당이 경찰의 대공 수사에 쓰일 특활비 특경비까지 삭감한 대목이었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을 없애더니 이젠 경찰 수사까지 마비시킨다고? 종북주의자들이 정말 국회 깊숙이 침투한 것 아니냐며 격노했다고 한다.

계엄을 선포해 봤자 국회 표결로 무효화된다는 엄연한 현실은, 군이 알아서 조치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에 묻혔는데, 믿었던 국방장관은 고도의 정교함과 치밀한 사전 준비가 요구되는 이런 고난도 작전을 실행할 능력도, 시간 여유도 없었다.

즉흥적, 감정적이며 고집대로 밀어붙이는 윤 대통령의 성정과 예스맨 충성파만 선호하는 인사 스타일이 합쳐져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야당 행태를 보라, 내가 뭘 잘못했냐”며 여전히 억울해한다고 한다. 물론 야당이 상상 초월 수준으로 저급하고 노골적인 의회 독재 행태를 보이는 건 국민도 다 안다. 하지만 야당에 슈퍼 의석을 만들어준 장본인이 자신임을 잊어선 안 된다. 명품백 사건 직후 물도 안마시고 드러누운 아내를 설득해 사과하게 했다면, 선거 직전 의료대란·이종섭 출국 등의 현안에 대해 고집만 조금 꺾었더라면, 총선 결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이 대표는 총선 때 윤 대통령에게서 175석 요술방망이를 선물 받은 데 이어 이번에는 대권행 고속도로를 선사 받았다. 이대로 탄핵을 밀어붙이면 사법 리스크는 사라지고 대권 쟁취는 식은 죽 먹기다.

보수는 딜레마다. 국민의힘이 최고 지도자로서의 신뢰 자본을 잃은 윤 대통령을 감싸고 돌면 공멸이 불문가지다. 하지만 탄핵이 된다면 대선은 해보나 마나다. 계엄 선포는 자폭 테러나 마찬가지였는데 폭탄을 터뜨린 곳이 상대 진영이 아니라 자기집 건물 한복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친윤계는 윤 대통령의 탈당 출당조차 반대하고 있다. 정말 민심을 전혀 모르는 안이한 집단이거나, 정권이 좌파에 넘어가는 게 TK 등 보수 아성에서 의원직을 오래 하는 데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이기적 계산의 발로다. 윤 대통령의 정치 생명은 회생 불가능하다는 엄중한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책이 모아진다.

보수가 궤멸을 피하려면 지지층 재결집을 호소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명분을 쌓아야 한다. 보수 몰락의 최대 요인이었던 김건희 여사 문제가 특검법 통과로 엄정한 사법 처리 절차 궤도에 올라서고, 계엄 주도 세력이 처벌 받고, 윤석열이라는 이름이 쥐 죽은 듯 눈과 귀에서 멀어져야만 등 돌린 온건 보수 시민들이 “그래도 헌정 중단은 안 된다. 좌파 너네들은 더 큰 허물이 있지 않느냐”며 재결집할 마음이 생길 것이다.

야당이 강성 좌파와 손잡고 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사회를 더 극심한 혼란의 도가니로 밀어넣으면 국민의 냉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계엄령 사태의 책임은 냉정하게 법에 따라 엄히 물으면 된다. 계엄령 사태에 국민이 분노한다고 해서 야당의 의회 독재와 이 대표의 범죄 혐의에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님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

-이기홍 대기자, 동아일보(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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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임기 단축 개헌' 카드를 썼더라면

 

[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가스파르 노에 감독의 ‘돌이킬 수 없는’이 던진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메시지는 영화만큼이나 강렬하다. ‘돌이킬 수 없는’은 칸 영화제에서 상영될 당시 끔찍한 폭력과 충격적 강간 장면으로 큰 논란에 휩싸였다. 한 평론가가 가스파르 노에에 대해 “아마도 현존하는 모든 감독 중 가장 악마적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일 것이다”라고 평했을 정도다.

 

이 영화는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역순으로 보여준다. 처음의 끔찍한 현실에서부터 마지막 장면의 행복했던 과거로 가면서 이젠 그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에 좌절한다. 미셀 투르니에는 ‘외면일기’에서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그러나 시간은 또한 우리가 싫어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 우리를 증오하는 모든 사람, 그리고 또 고통, 심지어 죽음까지도 파괴하는 장점이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시간은 우리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고통의 원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라고 썼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비상계엄은 모든 것을 파괴했다. 우리가 피 흘려 만들어 온 자랑스러운 민주주의를. 우리 국민의 자부심을. 자신을 찍어준 모든 사람의 기대를 완벽한 배신으로 돌려줬다. 결국 윤 대통령은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고통의 원천에 종지부를 찍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자살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윤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칠 가능성보다 ‘조기 퇴진’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여론은 폭등할 것이고 지지율은 폭락할 것이다. 사방 어디에도 우군은 없다. “포위당한 대통령처럼 행동했다”는 BBC의 표현은 적절했다.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꾸준히 고립을 자초했다. 결국 혼자 남았다.

 

지금 이 순간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대 리스크다.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더니 이제는 보수 진영과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데 책임은 가장 큰데 책임감은 전혀 없다. 윤 대통령은 4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한덕수 국무총리, 주호영·권영세·김기현·나경원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의 폭거 탓이다. 폭거를 알리기 위해 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나는 잘못이 없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이 해임을 요구한 김용현 국방부장관도 ‘자진 사임’으로 정리할 뜻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비상계엄설’을 제기했던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6개월 안에 승부를 내자”며 노골적으로 선동했다. 이미 야권은 지난 총선 때 “3년은 너무 길다”며 윤 대통령 조기 퇴진을 전략적 목표로 분명히 했다. 11월 15일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재판에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의 중형이 선고된 이후 ‘시간에 쫓기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다. ‘채상병 특검’이나 ‘김건희 특검’의 우회로가 아니라 탄핵으로 가는 직진 코스로 진입했다.

 

하야’를 거부한 윤 대통령의 운명은 이제 한동훈 대표 손에 달렸다. 한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요건도 맞지 않는 위법한,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라며 “반드시 위법·위헌적인 비상계엄을 막아낼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친한계 의원들과 함께 막아냈다. ‘위법·위헌적 비상계엄’이라고 했으니 탄핵에 찬성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정치적·실존적으로는 쉽지 않다. 탄핵에 찬성하면 자신이 ‘범죄자’로 규정한 이재명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딜레마다. 또 보수의 궤멸을 불러올 ‘배신자’가 된다면 보수에서 잃은 지지를 넘어서는 지지를 다른 곳에서 얻어야 하는데 그게 전혀 안 보인다. 탄핵 반대 당론은 한 대표로서는 고육지책이다.

 

하야나 탄핵이 아니라면 ‘임기 단축 개헌’을 포함한 ‘질서 있는 퇴진’은 어떨까. 안철수 의원은 “탄핵만큼은 안 된다. 한번 탄핵을 경험하니 국민이 반으로 쪼개지고 나라도 혼란스러워지지 않았느냐”면서 “지금이 대통령이 결정할 마지막 기회인 것 같다”며 질서 있는 퇴진을 요구했다. ‘질서 있는 퇴진’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야에도 있었다. ‘단계적 퇴진’으로 불린 질서 있는 퇴진은 ①대통령의 ‘기한을 정한 퇴진’ 선언 ②여야 합의 국무총리 임명·과도 내각 구성 ③조기 대선 일정 확정 ④ 대통령 사임 ⓹60일 내 차기 대통령 선출이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와 질서 있는 퇴진을 모두 거부한 결과, 탄핵됐다.

 

임기 단축 개헌’은 사실 민주당의 카드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의 카드로 쓸 수 있었다. 어차피 2032년에는 대선과 총선이 3월과 4월로 일치하므로 개헌의 적기다. 윤 대통령이 임기 단축 없이도 선제적으로 ‘정치 지도자 연석회의’를 주도해서 ‘개헌 특위’를 띄울 수도 있었다. 민주당이 임기 단축을 요구한다면 “좋다 내 임기를 1년 줄이겠다. 2026년에 대선 하자. 대신 국회의원도 임기 2년 줄여서 동시선거 하자”고 역제안했다면 민주당은 못 받았을 것이다. 얼마든지 ‘개헌 카드’를 쓸 수 있었는데 ‘비상계엄’이라니.

 

지금은 분명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위기 국면이다. 하지만 민주당도 마냥 꽃길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탄핵 사유가 충분하더라도 국민의힘 8명을 확보하지 못하면 탄핵 불가다. 한동훈 대표 선택에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운명이 달려 있는 형국이다. 탄핵이나 하야 없이 대치가 길어지면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가 다시 민주당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한동훈 대표 손에 모든 것이 달려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에게 탄핵이나 특검에 동조하지 않을 명분을 주느냐에 달려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극단적 대립이 한동훈 대표에게 공간을 열어주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조선일보(2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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