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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눈물인가, 악어의 눈물인가… 그들이 우는 까닭은]

뚝섬 2024. 12. 8. 05:55

뜨거운 눈물인가, 악어의 눈물인가… 그들이 우는 까닭은

 

너무 흔해빠진 정치인의 눈물 

정치인에게 어떤 눈물은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변호사 시절이던 2004년 성남 시립의료원 설립이 무산되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우는 모습. 오세훈 시장은 2011년 시장직을 걸고 무상급식 여부를 주민투표에 부치며 눈물을 보였고,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측과 갈등을 빚으며 탈당, 신당 창당을 하기까지 수차례 울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7년, 16년 만에 광주광역시 망월동 5·18 묘역을 찾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왼쪽부터 순서대로). /조선일보DB

 

사람이 평생 흘리는 눈물은 약 1.5L라고 한다. 성인이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과 비슷하다. 미국에서 나온 한 통계에 따르면 남자는 한 달에 1.4회, 여자는 5.3회 운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법 앞에 모여 연신 눈가를 닦았다. 환희의 눈물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위증교사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 김민석·이언주·윤종군·한민수 의원 등이 얼싸안고 우는 장면이 포착됐다. ‘나꼼수’ 김용민씨는 “눈물 흘린 정치인들”이라면서 박찬대·강선우·김태선 의원 등을 추가한 ‘받(받은글·지라시라는 뜻)’ 명단을 올리기도 했다. 이들은 ‘개딸(야당 강성 지지층)’에게 점수를 땄다.

 

이날 여권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울었다. 이유는 전혀 달랐다. 오 시장은 경남 사천에서 열린 한강버스 ‘누리’ 진수식에서 “우리 직원들 정말 수고 많았다. 제가 너무 고생시킨 것 같다”면서 눈물을 내비쳤다. 한강버스의 경제성·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첫 삽을 뜬 순간,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감격·감동·환희·분노·슬픔·공포…. 여러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는 눈물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의 발로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에게도, 적어도 사회생활에서는 가능한 한 자제해야 할 감정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렇다 보니 대중에게 포착된 어떤 정치인의 눈물은 지극히 공적이면서 폭발력 있는 소통 수단이 된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정치 인생의 변곡점이다.

 

그런데 요즘 여의도에서는 정치인의 눈물이 너무 흔해진 것 같다는 말이 많다. 울 일도 아닌데 와락 눈물을 쏟는 정치인이 많다 보니, 눈물이 주는 공감과 감동에 오히려 박해진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민주당 사람들이 흘린 눈물은 이재명 대표의 개인 신변 문제와 관련돼 있었다. 체포동의안 가결 파동, 단식, 일주일 간격으로 유무죄 판결이 엇갈린 두 개의 사건까지. 아무리 일극(一極) 정당이 됐다지만, 이름 석 자로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당대표 개인의 일에 울음보를 터트리는 건 보기 민망한 일이다. 여권에서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자주 눈물을 보여 ‘울보’ 이미지가 생겼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위증교사' 혐의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뒤 민주당 의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설이 된 눈물들

 

과거의 큰 정치인은 눈물을 극히 제한적으로 보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눈물을 비친 게 네댓 번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에게 각인된 장면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다. 휠체어에 앉아 권양숙 여사에게 조의를 표하던 DJ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1년 차에 ‘대북 송금 특검’을 가동해 당시 박지원·임동원 등 전 정권 실세들이 옥고를 치렀다. 동교동계와 친노계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보인 DJ의 눈물은 야권 진영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접착제가 됐다.

 

DJ는 1973년 중앙정보부에 납치됐다 구사일생으로 생환했을 당시 사건을 설명하며 눈물을 흘렸다. 오랜 망명과 연금 생활로 가지 못한 광주 망월동 묘역을 1987년 9월 찾았을 때, 1994년 1월 민주화 운동 동지였던 문익환 목사의 장례식에서도 눈물을 보였다.

 

정치인의 눈물이 가장 성공한 사례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눈물이 꼽힌다. 16대 대선 때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을 배경음악으로 눈물 흘리는 그의 모습을 담은 광고가 TV 전파를 타자 국민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이전의 대선 TV 광고들과 다르게 감성적 코드를 강조한 것이었다. 노동·인권 변호사, 지역 구도에 맞선 정치인으로서 노무현의 삶을 보여주면서 말미에 그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대세 후보’ 이회창의 추격자였던 노무현의 처지와 어우러지면서 기득권에 맞서 싸운 서민의 대변자 이미지를 가져갈 수 있었다. 이 눈물은 50만표 차 역전승의 이유로 꼽히기도 했다.

 

노무현의 눈물 /조선일보DB

 

◇악어의 눈물?

 

정치인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냥감을 잡아먹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악어에 빗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거짓으로 짜낸 눈물이라는 것.

 

지금의 여야도 상대가 눈물을 보이면 ‘악어의 눈물’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올해 총선 선거운동 당시 여당의 읍소 작전이 ‘엄살’이라면서 “악어의 눈물에 이번에는 속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당시 비대위원장)는 “이 대표가 형수에게 정말 쓰레기 같은 욕설을 한 게 드러나자 국민한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는데, 그게 악어의 눈물”이라고 맞받았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표의 아킬레스건이던 ‘형수 욕설’ 논란을 재소환한 것. 이 대표는 당시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성남 상대원 시장을 찾아 친형과의 다툼 등 불행한 가족사를 언급하며 눈물을 보였고, 여권은 ‘가짜 눈물’이라며 비난했다. 한 대표는 이 대표가 지난 4월 법정에 출석하며 눈물을 보였을 때는 “자기 죄에 대한 반성의 눈물이 아니라 국민에게 자기를 살려달라는 ‘영업의 눈물’”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한 달여 뒤 대국민 담화에서 눈물을 흘렸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30초 넘게 눈 깜빡임이 없었다. 눈물이 떨어질 때 카메라 클로즈업이 들어갔다고 지적하며 일각에서 “연출된 눈물 연기”라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 사전 연출인지 아닌지 따져 그 눈물의 진심 여부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국가적 비극 앞에 대통령이라는 책임을 떠나 감정이 복받쳤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결국 탄핵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당시 그의 눈물에 공감한 사람이 다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 세계가 확신하는 ‘악어의 눈물’로는 한 사람이 있다. 북한 김정은. 그는 독재자론 매우 드물게 자주 눈물을 보이는 희한한 통치술을 편다. 열병식과 장례식, 공연, 각종 현지 지도 등 상황과 주제를 가리지 않고 자주 울고, 북한이 관영매체를 통해 이를 공개한 것만 두 자릿수가 넘어간다. 인간적이고 자애로운 ‘위대한 수령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선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상화 작업을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에서 리일환 당비서의 대회보고 도중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울보 정치인들

 

요즘 정치인들에게 눈물은 그다지 금기가 아닌 같다. 이재명 대표도 자주 눈물을 비치는 편이다. 변호사 이재명이 정치인 이재명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된 성남 시립의료원 설립 불발(2004년) 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우는 모습은 그의 정치인생에서 대표적 장면 중 하나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 세월호 참사 추모제, 화재 사고 영결식, 시국 촛불집회 등에서도 눈물을 보였다. 대선 때는 상대원 시장 연설을 비롯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눈물을 보였고, 마지막 청계광장 연설에서도 울었다. 올해만 해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과 4·10 총선 하루 전 대장동·성남FC·백현동 관련 재판에 참석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김수민 시사평론가는 “노무현은 들으면서 울었지만 이재명은 말하면서 운다. 이재명은 자신의 아픔이나 겁에 대해 말하며 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의 눈물을 같은 성격으로 분류했다. 냉소와 독설이 무기인 이 의원이 입꼬리를 내리며 울먹이는 모습은 그 비대칭성 때문에 더 각인됐다. 그는 국민의힘 시절 ‘13분 눈물의 기자회견’, 탈당 회견, 개혁신당 창당대회 수락연설 등에서 울고 울고 또 울었다. 같은 당 천하람 의원이 “울보 신당 같은 느낌이 될까 봐 저는 억지로 (눈물을) 많이 참았다”고 했을 정도.

 

오세훈 서울시장도 눈물이 많은 편이다. 실책으로 꼽히는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시장직을 건 그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보이며 지지를 호소했다. 정치 인생의 큰 고비를 넘어 다시 시장이 된 지금도 눈물을 보이는 일이 잦다. 지난달에만 한강버스 진수식, ‘광복 80주년 기념사업 시민위원회 위촉식’에서 두 차례 눈물을 보였고, 지난 4월에는 서울시 치매극복 행사에서 모친의 치매 투병 사실을 언급하며 울었다. 작년 말에는 쪽방 주민 무료 치과진료사업 성과 보고회 자리에서 눈물을 보였고, 핼러윈 참사 당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며 눈물로 사죄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본인이 아프거나 슬퍼서가 아니라 타인에 공감해서, 혹은 대신해서 울어야 감흥이 커진다”며 “DJ 이후로 기억에 남는 정치인의 눈물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광해'를 본 정치인 문재인의 눈물

 

-김경화 기자, 조선일보(24-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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