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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말, 거짓, 무책임… 대통령답지도 ‘우두머리’답지도 않다] ....

뚝섬 2024. 12. 23. 10:10

[빈말, 거짓, 무책임… 대통령답지도 ‘우두머리’답지도 않다]

[현직 대법관·판사 체포 모의… 군사정권도 안 한 사법부 유린]

[2월 16일 일어난 일은 12월 3일 벌어질 일의 전조였다]

 

 

 

빈말, 거짓, 무책임… 대통령답지도 ‘우두머리’답지도 않다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가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16일부터 보낸 탄핵심판 접수통지 및 출석요구서, 준비명령 등의 서류를 22일까지 수령하지 않았다. 송은석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서류 접수를 일주일째 거부하고 있다. 헌재는 이달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16일부터 우편과 인편을 통해 탄핵 심판 접수 통지와 출석요구서 등을 순차적으로 보냈지만 윤 대통령 측에서 ‘수취 거절’하거나 ‘수취인 부재’를 이유로 접수하지 않은 상태다. 12·3 비상계엄 선포 사건을 수사 중인 공조수사본부도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게 25일 오전 10시까지 나오라는 2차 출석요구서를 보냈으나 대통령 측은 출석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 이전에도 두 차례 대통령 탄핵 심판이 있었지만 첫 관문인 서류 송달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3월 12일 국회 탄핵안 가결 다음 날,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탄핵안 가결 직후 약 1시간 만에 서류를 수령했다. 법조계에선 윤 대통령이 여론 반전의 계기를 모색하며 의도적인 지연 작전을 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더니 탄핵이고 수사고 모두 피하면서 국정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

수사와 탄핵 심판엔 소극적인 반면 여론전엔 적극적이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 구성을 돕고 있는 석동현 변호사는 19일 “윤 대통령은 체포의 ‘체’자도 꺼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된 현장 지휘관들과 경찰청장이 모두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대통령에게서 직접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4명이 들어가 한 명씩은 데리고 나올 수 있지 않느냐”는 대통령 지시를 받았고, 계엄 해제 표결이 임박하자 전화로 “그것도 못 데리고 나오느냐”는 질책을 들었다고 했다.

 

석 변호사는 또 “(야당의 입법 독주 등을) 망국적 비상 상황으로 봤기 때문에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이 야당의 잇단 탄핵소추와 특검 발의, 예산 삭감 등을 이유로 들며 비상계엄을 정당화한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하지만 계엄이 “야당에 대한 경고용”이었다는 주장과 달리 대통령이 비상조치를 언급한 건 지난해 말부터라는 여인형 방첩사령관 진술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꺼져가던 부정선거 음모론까지 꺼내 들었는데 이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선동 행위 아닌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나라 전체가 유례없는 안보와 경제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장관들은 줄줄이 검찰에 불려 나가고 있다.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명령을 수행했다 구속된 현직 장성만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해 5명이고,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이 동시에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로 안보와 치안 공백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동시다발적 위기 극복을 위한 선결 조건이 신속한 탄핵 심판과 수사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일임에도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대통령은 공식 서류 접수조차 거부하며 사법적 심판을 회피하고 있다. 1차 탄핵안 표결 직전 ‘2분 담화’에서 한 번 고개를 숙였을 뿐 이후로는 너절한 빈말과 거짓, 무책임과 버티기, “끝까지 싸우겠다”는 여론 선동으로 일관할 뿐이다. 대통령답지도 않고, 한낱 ‘우두머리’답지도 못하다.

 

-동아일보(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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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법관·판사 체포 모의… 군사정권도 안 한 사법부 유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지난달 17일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체포할 직원 30여 명의 명단을 문서로 전달한 데 이어 이달 1일 ‘롯데리아 모임’에서 선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노태악 대법관의 체포를 구두로 지시했다는 진술을 경찰이 확보했다고 한다.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재판장 김동현 부장판사의 이름이 경찰이 위치 추적을 부탁받은 명단에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보도가 나온 다음 날 국회 현안 질의응답에서 노 대법관은 “사법권에 대한 직접적이고 중대한 침해”라며 비판했는데 그보다 더한 체포 모의가 바로 그를 향해 있었다는 것이다.

비상계엄 때라도 입법 기능은 제한할 수 없으니 정치인 체포가 불법적으로 일어나곤 한다. 과거 군사정권의 비상계엄 때도 그랬고 이번 12·3 비상계엄에도 체포할 정치인 명단이 작성됐다. 그러나 대법관이나 부장판사 체포까지 모의·시도했다면 이는 과거 군사정권 때도 못 보던 사법부 유린이다.

 

윤 대통령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선관위가 헌법기관이고 사법부 관계자들이 위원으로 있어 강제수사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구체적 혐의가 있으면 왜 강제수사가 불가능하겠나. 선관위는 부정 채용 사건으로 강제수사를 받고 기소돼 재판까지 받고 있지 않은가. 또 윤 대통령이 이 대표 위증교사 무죄 선고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한들 그런 선고에 대해 판사를 처벌할 수 있는가. 특수부 검사 시절 하던 버릇대로 별건이라도 찾아내서 협박하고 그래도 원하는 혐의가 안 나오면 별건으로라도 처벌하겠다는 것이었나. 윤 대통령이 계엄을 무슨 국가 비상사태의 해결보다는 평상시의 수사 절차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여겼을 수도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너무나 ‘검사스러운’ 계엄이었다.

 

-동아일보(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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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일어난 일은 12월 3일 벌어질 일의 전조였다

 

[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내가 뽑은 올해의 보도사진
카이스트 졸업생의 고성 항의에… 대통령 경호원이 입 틀어막아
권력의 촉수가 호흡을 막는 듯… 대통령실 “불가피한 조치” 해명
‘불필요한 조치’는 아니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2월 16일 방문한 대전 유성구 KAIST 학위 수여식에서 윤 대통령에게 항의하던 한 졸업생이 대통령경호처 요원의 제지를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의 축사 중 “연구개발(R&D)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친 그는 곧바로 경호원들에게 팔다리를 들려 끌려 나갔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법과 규정, 경호원칙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뉴스1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올해의 보도사진이다. 물론 이에 못지않게 강렬한 사진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사진, 대통령의 계엄 선포 사진, 여의도에 운집한 시민들의 사진, 그리고 해외의 전쟁 사진 등등. 해외 전쟁 사진은 충격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온다. 끔찍하긴 해도 그곳은 한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끔찍하긴 해도 전장은 폭력이 예상되는 장소니까. 2024년 12월 3일 밤 충격의 일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군대를 본 데서 온다.》

학생 한 명이 메신저에 소리치듯 적었다. “근데 지금 무슨 일이죠?” “다들 TV 켜셔요.” “당장.” ‘당장’이라는 부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오랜만에 켠 TV에서는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 중이었고, 얼마 안 있어 군인들이 총을 들고 국회로 들어왔고, TV와 휴대전화를 타고 그 장면들은 일상으로 난입해 왔다.

이 계엄 선포 사태의 어느 측면을 찍어도 올해의 보도사진으로 손색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올해 KAIST의 졸업식장 사진을 뇌리에서 떨쳐버릴 수 없다. 그리고 이 사진은 12월 3일 계엄 선포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2024년 2월 16일 KAIST의 학위수여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축사를 했다. 그 도중, 한 졸업생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항의하는 취지로 고성을 질렀다. “R&D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치자마자 그는 곧바로 대통령경호처 요원들에게 팔다리를 들려 끌려 나갔다.

 

이 상황을 찍은 사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부져 보이는 경호원이 졸업식 예복을 입은 신진 박사의 입을 처누르고 있는 부분이다. 이것은 권력의 촉수가 생물의 호흡기를 막는 장면처럼 보인다. 물리적 폭력이 말의 힘을 찍어 누르는 장면처럼 보인다. 상대적 연장자가 상대적 연소자를 힘으로 찍어 누르고 있는 장면처럼 보인다.

그다음에 눈에 들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다. 아직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조차 모르는 채, 망연자실하여 눈앞의 폭력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서 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은 예상치 못했던 소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 사진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폭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폭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그 시선을 개의치 않는다. 칼은 칼집 안에 있을 때 가장 강하다고 하지 않던가. 폭력이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뻔뻔하게 칼집 밖으로 나오는 순간, 권력자는 실패하기 시작한다.

그 실패한 권력자는 이 사진 프레임 내에서 보이지 않는다. 사진을 읽는 일은 결코 프레임 안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 사진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프레임 밖에 엄존하면서 이 사태를 초래한 권력자를 떠올려야 한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이 사달이 벌어졌는가. 그날 대통령은 “과학 강국으로의 퀀텀 점프를 위한 R&D 예산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는 취지의 축사를 했다. 훗날 이러한 축사 내용만 보면, 타당하기 짝이 없는 그럴듯한 말의 성찬일 것이다. 도대체 이 축사가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그러나 글을 읽는 일은 결코 눈앞의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 축사를 제대로 읽어내려면 축사 내용에만 집중해서는 안 되고, 축사를 포함하되 축사를 넘어서 있는 맥락까지 읽어야 한다. “R&D 예산 복원하십시오!”라는 항의의 내용은 단지 R&D 예산이 부족하다는 외침이 아니다. 과학 강국으로의 퀀텀 점프에 반대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복원”이라는 말이 지시하듯이, 시혜를 베풀 듯 예산 확대를 말하는 바로 저 사람이 바로 그 예산을 느닷없이 감축한 장본인이라는 사실, 바로 그 사실에 대한 항의인 것이다. 마치 자신이 사태의 원인이 아닌 듯 구는 것에 대한 항의인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은 저 예복 입은 신진 박사가 특정 정당 소속이었다고 해도 바뀌지 않는다.

이 일이 일어난 후 대통령실은 “법과 규정, 경호원칙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정말 불가피한 조치였나? 경호팀에 그렇게 하라는 규정이 있었다면, 당일 그 자리에 있던 경호원에게는 불가피한 조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이 솔직했다면 그러한 진압 사태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한 수사적 역량이 있었다면 그러한 진압 사태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애초에 느닷없이 R&D 예산을 감축하지 않았다면 이런 폭력 사태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이 예산 감축의 원인이 아닌 듯이 굴지 않았다면 이런 폭력 사태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민감하게 의식했다면 이런 폭력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2024년 2월 16일에 벌어진 일은 2024년 12월 3일에 벌어질 일의 전조였다. 대통령은 그날 축사에서 졸업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나아가는 길에 분명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 길고 길었던 2024년 12월에 분명해진 것은 대통령 자신이 바로 그러한 어려움이며, 국민 대다수는 그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도전했다는 사실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동아일보(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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