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한국 '초격차', 벼랑 끝 몰린 주력 산업들]
[관세폭탄이나 딥시크보다 더 두려운 것]
무너지는 한국 '초격차', 벼랑 끝 몰린 주력 산업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20일 연임 취임식에서 "한국 경제가 벼랑 끝에 놓여 있다"고 진단하면서 성장엔진 되살리기가 시급하다고 말했다./한경협 제공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에 재선임된 류진 회장이 취임식에서 “한국의 기업 환경은 1997년 외환 위기 때보다 열악하다”고 했다. 류 회장은 또 “첨단 산업 육성 법안들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성장 엔진을 되살릴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한국 경제는 갈림길이 아니라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했다.
같은 날 열린 여야정 국정협의회는 반도체 특별법, 추경예산 편성, 연금 개혁 등 민생 현안에 대해 또 결과 없이 막을 내렸다. 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가 관세 폭탄을 쏟아내고, 대통령 탄핵 사태에 따른 국정 리더십 공백이 겹쳐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와중에도 정치권은 선거를 의식한 작은 다툼만 벌이며 ‘민생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다.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중국의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 출현 이후, AI, 양자컴퓨터, 자율 주행 등 미래 첨단 산업 분야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국 간 기술 경쟁에 더욱 속도가 붙고 있다. 미국에선 오픈AI가 한층 진화한 AI 모델 딥리서치를 공개했고, 테슬라는 AI 그록3 모델을 새로 내놨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양자컴퓨터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인 ‘마요나라1’을 공개했다.
반도체 부활을 위해 국가 총력전을 벌이는 일본에선 키옥시아가 세계 최초로 332단까지 쌓아 올린 낸드 메모리를 내놓으며 적층(積層) 경쟁에서 한국을 앞질렀다. 중국 화웨이는 세계 최초 3단 폴더블 스마트폰을 선보이며 ‘세계 최초’ 경쟁에서 처음으로 삼성전자를 제쳤다. 중국 전기차 기업 BYD는 세계 최고 자율 주행 성능을 앞세워 현대차는 물론, 테슬라까지 제치고 전기차 수출 1위로 도약했다. 한국이 기술 초격차를 유지해 온 반도체, 스마트폰, 자동차 분야에서 경쟁국에 밀리기 시작했다.
류진 회장 말처럼 주력 산업들이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인데도 돌파구를 열어야 할 정치권은 노조에 아첨하는 기업 규제에 열심이다. 반도체 연구 개발을 위한 ‘주 52시간 예외 조항’ 하나조차 못 풀고 있다. 계속 이대로 가면 정말 외환 위기를 넘어서는 경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조선일보(2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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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폭탄이나 딥시크보다 더 두려운 것
최고 권력자가 등장하는 행사는 그 나라의 지향점을 말해 준다. 그 집단이 중국 같은 권위주의 체제 국가라면 더욱 그렇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며칠 전 소집한 좌담회에는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과 알리바바의 마윈, 화웨이의 런정페이, 비야디 회장 왕촨푸 등이 모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죄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정보기술(IT) 기업 총수라는 점. 값싸고도 품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로 서방의 공포심을 자극하면서, 미국과 기술패권 경쟁의 선봉에 선 인물들이었다. 갈수록 독해지는 미국의 대중 압박과 고립 작전을 견뎌내고 14억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으로 읽혔다.
최강대국도 미래 생존 위해 분투하는데
국가 차원의 ‘생존 본능’이 감지되는 모멘트는 최근 미국서도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쟁 참화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를 쥐어짜서 안보 보장을 대가로 희토류의 50%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중국이 전 세계 희토류 공급망을 독차지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방국의 약점을 들춰내 자원 확보를 노리는 약탈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는 환경 보존이라는 인류 공통의 희망을 배신하고 자국 에너지 공급 안정화를 위해 화석연료 개발도 맹추진 중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흠결 많은 권력자란 건 누구나 안다. 자국이나 정권의 이익을 위해 국제사회 규범을 수시로 무시하고, 지도자의 품격을 지키기는커녕 이웃 나라를 상대로 조폭 같은 협박이나 인권유린을 일삼는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이들이 현존하는 위협에 맞서 국가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인드를 갖췄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취임식 때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같은 첨단 산업의 거물들을 연단 제일 앞자리에 세웠다. 건국 100주년인 2049년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대국이 돼보겠다는 중국에 “감히 꿈도 꾸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시진핑은 이에 맞서 수만 명의 디지털 전사를 집중 양성해 중국 중심의 AI 생태계를 완성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수호하겠다는 두 권력자의 다짐은 이제 글로벌 사회가 과거처럼 상호 공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홀로 각자도생해야 살아남는 시대라는 점을 간파한 결과다.
우리는 무기력증 언제 벗어던질 건가
이처럼 세계 최강대국들조차 자기 먹고사는 문제를 챙기기 바쁜 와중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성장률은 경제 규모가 몇 배는 더 큰 미국에 추월당한 지 오래고, 정치권이 혁신기업의 싹을 말려 죽이는 동안 투자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한국을 탈출하고 있다. 복지부동에 빠져 맹탕 정책만 양산하는 탄핵 정부 공무원들, 기업가정신을 잃고 현상 유지에 급급한 창업 3∼4세대 대기업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트럼프의 관세폭탄이나 딥시크의 공습이 아니라 이런 무기력함을 어느샌가 정상으로 여기고 위기 극복의 의욕마저 꺾여버린 모습이 아닌가 싶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지독한 생존 의지는 안타깝게도 요즘 많은 한국인들이 부러워하는 지도자의 면모이기도 하다.
미국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전기 충격에도 속수무책인 경험을 반복한 개들은 나중에 피할 방법이 생겨도 탈출 의지를 상실한다는 실험 결과를 통해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넛크래커에 끼인 호두’,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한국 경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표현이 많았는데, 여기에 ‘셀리그먼의 강아지’가 추가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다. 모두가 살기 위해 앞만 보고 내달리는 전쟁터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계속 이렇게 엉거주춤 헤매고만 있을 건가. 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 절박함이 아직도 모자란 건지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
-유재동 산업1부장, 동아일보(2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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