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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서 남산뷰 보는 '가상 유리창'… 이게 '展望 민주화'?]

뚝섬 2025. 3. 4. 10:16

반지하서 남산뷰 보는 '가상 유리창'… 이게 '展望 민주화'?

 

[장강명의 근미래의 풍경]

최고층 높이 전망? 모든 세대서 누릴 수 있는 '가상 유리창' 개발
고층 '전망 가치'는 폭락… 하지만 어딜 가나 창밖의 풍경 같아졌다
아파트에선 실제 창문 사라져, 지하 17층짜리 주택마저 등장하는데…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연구)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가상 전망

 

한국의 IT 대기업 네카팡의 가상 유리창 ‘전망 좋은 집’은 처음에는 개인 고객에게도, 한국 고객에게도 판매하지 않았다. 탁월한 전략이었다. 네카팡이 택한 기업 고객은 고급 아파트 임대업자들이었고, 네카팡이 택한 두 도시는 뉴욕과 런던이었다.

 

뉴욕과 런던에는 고소득 직장인이 많지만 그곳의 집값은 어지간한 고소득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런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이 두 대도시에서 엄청난 월세를 내며 살았다. 시간이 곧 돈인 이들이라 아파트를 고를 때 교통 접근성을 가장 중시했고, 다음 고려 사항은 집 크기와 상태, 치안과 주변 환경, 계약 조건 등이었다. 이들이라고 탁 트인 뷰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으나 그런 부동산은 구매도 임대도 너무 비쌌다. 전망 좋은 식당이나 카페를 가는 걸로, 혹은 여행지에서 그런 호텔에 묵는 걸로 욕구를 달래는 수밖에.

 

그런 때 시장에 나온 네카팡의 가상 유리창은 기존 제품과는 차원이 달랐다. 바로 그 시각 바깥 날씨를 반영해 탁 트인 전망을 제공했는데, 단순히 화질만 좋은 게 아니었다. 정말 자연광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라 ‘창밖 풍경’을 오래 봐도 눈이 피곤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그 앞에서 걸어 다녀도 풍경이 각각의 시선에 맞춰 조정돼 가짜임을 눈치챌 수 없었다. 설치된 장소의 100층 높이 전망을 기본으로 제공했지만, 원한다면 다른 도시 상공이나 해저 풍경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네카팡의 기업 고객이 된 뉴욕과 런던의 부동산 임대업자들은 가상 유리창을 자신들이 소유한 저층 아파트에 설치하고 대신 임대료를 인상했다. 그래도 전망 좋은 고층 아파트 임대료에 비하면 경쟁력 있는 가격이었다. 게다가 가상 유리창이 보여주는 전망이 워낙 압도적이었다. 원한다면 우주정거장에서 내려다보는 지구의 모습을 창밖에 띄울 수도 있었다. 대형 TV나 모니터도 따로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든지 창 일부분을 TV 모드로 바꿀 수 있었다. 뉴욕과 런던의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자 가상 유리창은 핫한 아이템이 됐다. 네카팡은 파리, 도쿄, 홍콩, 상하이 등 다른 도시의 부동산 임대업자들과도 계약을 맺었다. 그즈음 경쟁업체들도 네카팡의 기술 수준을 따라잡은 모방품들을 내놨다.

 

사람들이 서울에서는 왜 ‘전망 좋은 집’을 서비스하지 않는지 궁금해할 때 네카팡은 새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였다. 서울 곳곳의 초역세권 건물들을 사들인 뒤 재건축하면서 창문이 하나도 없는 빌딩을 지은 것이다. 이 방식으로 막대한 개발 이익을 거둔 네카팡은 아파트 재건축에도 뛰어들었다.

 

네카팡의 이매리 의장이 조합원 설명회에 직접 참석해 말했다. “과거 방식으로 재건축을 해서 추첨으로 동·호수를 배정하면 몇 세대나 ‘로열층’을 받을 수 있죠? 그게 납득이 되십니까. 몇억짜리 도박 아닌가요. 저희는 모든 세대에게 최고의 전망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유리창 없이 건물을 지으면 훨씬 저렴하게 빨리 지을 수 있고, 그로 인한 이익은 고스란히 조합원님들이 가져가십니다. 유리가 얼마나 단열이 안 되고 충격에 약한 소재인지 아시나요? 저희가 짓는 아파트는 에너지 효율이 높아 관리비도 저렴합니다. 중앙 냉난방을 24시간 가동하니 환기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창문 없는 아파트가 대세가 됐다. 네카팡은 ‘뷰맛집’이라는 서비스도 개시했다. 식당과 숙박 시설의 진짜 유리창을 가상 유리창으로 교체해주고 이후 매출에서 일정액을 가져가는 사업 모델이었다. 식당과 숙박 시설은 가상 유리창을 천장에 설치해 ‘가상 하늘’을 꾸미기도 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가상 유리창 기술 때문에 고층 아파트 주민들의 자산이 폭락했고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 창호 회사가 문을 닫았다’는 질문을 받은 이매리 의장은 피식 웃었다. “파괴 없는 혁신은 없어요. ‘전망 민주화’에 대해서는 왜 말하지 않는 거죠? 극소수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좋은 전망을 이제 많은 사람이 누려요. 저희 목표는 저층 빌라, 반지하 주택, 고시원에도 좋은 전망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는 겁니다.”

 

이매리 의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던 시각, 서울 남산타워 전망대에서는 젊은 커플이 데이트 중이었다.

 

“막상 올라와 보니 별거 없네. 남산타워 전망을 남산타워에서 보면 별로라더니 진짜구나. 하늘도 뿌옇고 경치가 몇십 분째 변함이 없어.”

 

“왜, 나름 신선한데. 요즘은 어딜 가도 창밖이 똑같잖아. 난 파스타 집에서 노을이랑 오로라 좀 그만 보면 좋겠더라.”

 

커플은 서울시에서 짓는 남산 청년임대주택에 입주할 예정이었다. 용적률이 1200%인 단지에, 지하 17층 세대였다. 창문을 만들지 않으니 건물을 빽빽하게 배치해도, 지하층에 가구가 있어도 괜찮았다. 서울시는 이 건물 고층 외벽에 초대형 가상 유리창을 둘러 행인들에게도 멋진 남산 경관을 선사하겠다고 밝혔다.

 

-장강명 소설가, 조선일보(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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