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숭배 사회]
[商高가 사라진 야구장에서 한 생각]
[商高]
[다시 개천에서 龍 나게 하자.. ]
껍데기 숭배 사회
[朝鮮칼럼]
강원도와 전북도 특별자치도
세종은 12년부터 특별자치시
17개 광역지자체 중 5개가 '특별'
언제부턴가 우린 '간판' 우선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나
매사 폼부터 잡는 허례허식
중요한 건 간판보다 내실
오래된 한국병 이젠 끝내자
요즘 전국을 다니다 보면 달라진 지자체 간판을 자주 접한다. 무엇보다 ‘특별’이라는 말이 들어간 지자체가 크게 늘었다.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강원과 전북이 요 몇 년 사이 특별자치도가 되었다. 제주는 2006년부터 특별자치도이고 세종은 2012년 이후 특별자치시다.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서울을 포함한 5개 시·도가 ‘특별한’ 셈이다. 이게 끝이 아닐 수 있다. 대구경북특별시가 추진 중인가 하면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도 논의 중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광역시 권한을 갖는 특례시도 많이 생겼다. 경기도에서는 고양, 수원, 용인, 화성이, 그리고 경상남도에서는 창원이 현재 특례시다. 이 가운데 작년 말 인구가 100만 이하로 떨어진 창원이 특례시 자격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가운데, 비수도권의 경우 특례시 지정 및 유지 기준을 인구 50만 명으로 하향 조정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특별이든 특례든 그것이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지를 따지는 실증적 분석은 뒤로 미룬 채 말이다.
‘특(特)' 자를 붙인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나 지역민 가운데는 그렇게 불러주지 않으면 발끈하거나 서운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닌 게 아니라 가장 최근에 특례시가 된 화성시의 슬로건은 ‘특별한 시민’으로 시작한다. 그저 그런 보통 도시가 아니라는 일종의 특권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특례시의 영어 명칭은 전국적으로 ‘special case city’인데, 이는 전형적인 ‘콩글리시’로 보인다. 영어권에서는 이를 ‘예외시(例外市)‘로 간주하기 십상이다.
하긴 서울특별시에서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해방 직후 미군정 당국은 서울시의 위상을 ‘Independent City’ 곧 독립시나 자치시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District of Columbia)를 ‘특별구’로 오해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컬럼비아 디스트릭트’ 어디에도 ‘특별’이라는 의미가 없다. 그나마 얼마 전부터 서울시가 서울특별시 대신 ‘동행·매력 특별시’라는 슬로건을 애용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특수한 사정이 있다면 특별시, 특별도, 특례시라는 구분이 필요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와 같은 차별과 등급은 하위 법령 등을 통해 조용히 실무적으로 규정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장소성이 발원하는 본래 지명(地名) 뒤에 특별이니 특례니 하는 말을 굳이 덧붙이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본말 전도에 가깝다. 나아가 특별 내지 특례라는 꼬리표를 붙인 도(道)나 시(市)가 양적으로 점점 더 많아지게 되면 결국에는 모든 곳이 평준화하고 유사해진다. 특(特) 자의 가치가 하락하는 언어의 인플레이션 효과 탓이다.
이때 쉽게 연상되는 것은 한강 다리다. 물에 잠기도록 설계된 잠수교를 제외하고 현재 한강 다리는 죄다 ‘대교(大橋)‘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옛날에는 그저 제1, 제2, 제3한강교였는데 말이다. 일제히 대교라면 일제히 대(大) 자를 빼도 상관없지 않을까? 시나브로 전국 모든 대학이 ‘대학교’ 간판을 지향하는 현상도 이와 비슷하다. 전문대나 단과대, 종합대는 서로 특성만 다를 뿐 결코 우열 관계가 아닌데도 그렇다.
이것도 모자라 언제부턴가 우리는 무언가 뜬다 싶으면, 무언가 된다 싶으면 우선 간판부터 새로 달거나 바꾸기에 바쁘다. 전통 있는 상업고등학교가 비즈니스고(高)나 인터넷고로, 공고나 농고가 인공지능고나 생명과학고로 개명(改名)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학들은 시류에 따라 AI나 기후변화, 스마트도시, 데이터사이언스 등의 이름을 붙인 학과나 대학원을 앞다투어 세운다. 그러다 또 다른 바람이 불면 또 다른 전공을 일단 신설부터 하고 본다. 이에 비해 농과대나 상과대, 공고, 상고, 농고라는 옛날식 교명이 그대로 남아있는 일본 같은 나라도 있다. 그러면서 노벨상은 잘도 받는다.
시쳇말로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다. 책상 바꾼다고 성적이 바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과거 유교 문화의 부정적 잔재일까, 우리에게는 매사 폼부터 잡거나 모양 내기가 먼저인 허례허식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중요한 것은 간판이 아닌 내실일진대, 우리는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 숭배 사회에 가깝다. 이 또한 일종의 한국병(病)일 것이다.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조선일보(25-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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商高가 사라진 야구장에서 한 생각
고교 야구 무대에서 ‘상고(商高)’ 교명을 고수하는 팀을 발견할 확률은 연기 오디션 장에서 성형수술을 하나도 안 받은 배우를 찾을 확률과 맞먹는다. 지난달 열린 제75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 40고교가 참가했는데 상고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학교는 단 한 곳,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뿐이다.(올해는 순천효천고에 역전패해 첫판 탈락했다)
쌍꺼풀 수술이 스무 살 통과의례가 된 것처럼 많은 상고가 21세기 들어 교명을 성형했다. 이번 청룡기 준우승 팀 광주동성고는 원래 이순철·박충식 등을 배출한 광주상고였다. 1984년 롯데 우승의 주역 유두열의 마산상고는 마산용마고, 장효조·이만수·양준혁의 대구상고는 대구상원고, OB베어스 스타 윤동균과 심정수의 동대문상고는 청원고로 달라졌다. 박노준·김건우의 선린상고는 선린인터넷고가 됐고, 덕수상고는 덕수고로 변했다. 지역별로 아직 건재한 공고(工高)와 달리 상고는 강박적으로 이름에서 ‘상(商)’을 덜어냈다.
상고가 한국 경제의 희생번트였던 시절이 있었다. 너무 똑똑했지만 너무 가난했던 아이들은 취직이 보장된 상고를 갔다. 또래들이 대학 강의 노트를 쓸 때 은행에서 주판알 튕겨가며 달러를 세고 수출 기업을 위한 신용장을 썼고, 급여와 승진에 차별 대우를 받아도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묵묵히 일했다. 그 와중에 야간대학을 다니고 국가고시에 합격해 법조인이나 고위 공무원이 되기도 했다. 대통령도 셋이나 나왔다. 그런데도 ‘상고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향한 이 사회의 폄하는 계속됐고, 누적된 멸시에 질린 상고는 공룡이 멸종하듯 자취를 감췄다. 대외무역 의존도가 70%에 달하는 한국에선 상업이 나라의 기틀인데 말이다.
부산상고는 1946년 청룡기 초대 우승 학교다. 1921년 조선 지역 최초로 일본 고시엔(甲子園)에 진출해 8강까지 올랐고, 해태 왕조를 건설한 김응용 감독과 롯데를 2번 우승시킨 강병철 감독 등이 동문이다. 부산상고 교가(校歌)는 야구보다 더 인상적이다.
“부산의 항구는 대한의 문호/해륙의 물산이 모여들으며/각국의 상선이 나고드노니/우리의 나라는 산이요 바다/산보다 바다로 살아야 하네.”
1610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가 생길 때 광해군 앞에서 북인과 남인이 싸웠고, 1848년 미국 시카고가 세계 최초 선물거래소를 열 때 헌종은 천주교인을 학살했다. 무역이나 금융과 담쌓고 살았던 이 땅이 수백년의 시차를 단숨에 극복하고 연간 무역액 1조달러가 넘는 나라가 됐다. “산보다 바다로 살자”는 상고 학생들의 노래는 가발과 오징어를 자동차와 반도체로 바꾼 마법의 주문이었다. 그러나 부산상고도 15년 전 개성고로 이름을 바꿔 달고 인문계 학교가 됐다. 실업계 학교를 혐오 시설처럼 취급한 눈초리들이 만든 일이다.
누구나 대학을 가는 세상이 됐는데 한국 사회의 심박수는 갈수록 떨어진다. 일 안 하는 대졸 인력이 400만명에 육박하고 청년들은 공무원이 못 돼 아우성이다. 1980년대 아스팔트에서 운동했다던 인사들은 거리낌 없이 온갖 편법을 동원해 제 자식을 명문대에 입학시킨다. 오늘의 번영은 가난이라는 숙명을 삼키고 협소한 나라 안 대신 광대한 나라 밖을 바라보며 노력했던 사람들의 수고가 모인 결과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실업계 학교들마저 설 자리가 줄고 고학력 백수가 양산되는 현실은 이 사회가 실리보다 사농공상 따지는 과거로 역행한다는 증거 아닐까. 홈런 타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많은데, 희생번트를 대겠다는 사람은 잘 안 보인다. 이런 야구는 이기기 어렵다.
-양지혜 기자, 조선일보(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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商高
김대중·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된 15·16대 대선은 '상고 출신이 경기고 출신을 이긴 선거'로 표현되기도 한다. 두 전 대통령은 각각 목포상고와 부산상고를 나왔다. 1970년대까지 명문 상고에 진학하려면 중학교 성적이 상위 5% 이내에 들어야 했다. 공부를 잘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주로 인문계 고교 대신 진학했다. 1977년 고입 연합고사를 치렀다는 선배는 "당시 인문계 커트라인이 200점 만점에 117점이었는데 덕수상고·서울여상은 180점이 넘었다"고 했다.
▶1980년대 들어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상고로 진학하는 인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90년대 중반 대입 정원 자율화 조치가 내려지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인문계 고교로 진학했다. 상고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수과목이던 주산·부기를 없애고 비즈니스영어·국제금융·정보처리시스템 같은 과목을 신설했다.
▶상고들이 앞다퉈 교명에서 '상업'이란 단어를 없앤 시기도 이때쯤이다. 대동상고가 대동정보산업고를 거쳐 대동세무고로 바뀌었고 경복여상은 경복비즈니스고가 됐다. 영등포여상은 서울영상고가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교인 목포상고는 2001년 일반계 고교가 되면서 교명을 전남제일고로 바꿨는데 동문들 항의가 끊이지 않자 2014년 다시 '목상고'로 바꿨다. 부산상고는 일반계로 전환되면서 1895년 설립 당시 이름인 개성고를 되가져왔다.
▶우리나라 명문 상고들 중엔 일제시대 때 개교한 학교가 많다. 3·1운동 후 식민지 전략을 문화 통치로 바꾼 일본이 1920년대 초 전국 주요 도시에 상업학교를 세웠다. 한국인을 기능직과 사무직 인력으로 양성한다는 계획이었다. 머리 좋은 학생들이 이들 학교에 진학했고 결국 광복 후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인적 토대가 됐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 은행 창구 직원 대부분이 여상 출신이었고 일반 기업의 회계·경리 부서 인력도 상고 출신이 많았다.
▶1920년 설립된 덕수상고도 2007년 특성화계(실업계)와 일반계 과정이 모두 있는 학교가 되면서 이름을 덕수고로 바꿨다. 이 학교를 둘로 나눠 특성화계는 경기상고로 통합하고 일반계 덕수고는 서울 위례신도시로 이전한다고 한다. 고졸 취업률 하락으로 특성화고 인기가 떨어지고 학생도 계속 줄어드는 탓이 크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부터 진옥동 현 신한은행장까지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덕출이(덕수상고 출신)'들의 모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19-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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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개천에서 龍 나게 하자..
어려서 부친 잃고 兩試 합격해 官僚 지낸 김동연 아주대 총장
'좌절한 친구 留學 먼저 보내기' 프로그램으로 '유쾌한 반란'
'우리 사회 가장 필요한 일은 신분 상승 사다리 세우는 것'
편지 한 통이 그를 일깨웠다. 김동연(58) 아주대 총장이 기획재정부 2차관이던 시절의 일이었다. 옛 강원도 춘성군 동산중학교 선생님이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전교생이 21명뿐입니다. 어렵게 성공하신 차관께서 꿈을 잃은 제자들에게…."
얼마 뒤 김동연이 그 학교를 찾았다. 스물한 명에게 각기 다른 책 한 권씩을 선물로 싸들고 갔다. 한참 이야기하는데 학생들이 하나둘 흐느끼더니 이윽고 학교 전체가 울음바다가 됐다. 김동연의 뿌옇게 변한 눈시울에 열한 살 때 제 모습이 비쳤다. 그때 미곡상 하던 아버지가 숨졌다. 서른셋 젊은 나이였다. 간질환으로 지친 몸이 심장마비에 무너져버렸다. 남은 것은 한 살 아래 아내와 4남매였다. 초등학생이던 김동연은 그때 '천붕(天崩)', 즉 하늘이 무너지는 게 뭔지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서울 신당동 양옥집에서 쫓겨나 일가는 청계천 7가 판자촌으로 떠밀려갔다. 청상(靑孀) 어머니에 기대 겨우 연명한 게 그나마 행복인 줄 가족은 몰랐을 것이다. 개천을 뒤덮은 집들이 헐리자 그들은 경기도 광주, 지금의 성남 단대동 벌판으로 내몰렸다.
초등학교 입학 전 고향인 충북 음성을 떠날 때만 해도 소년은 청운(靑雲)의 꿈을 꾸었다. 몇 해 만에 그는 차꼬와 수갑 찬 것 같은 신세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는 게 제 팔자이며 '개천에서 난 용(龍)'이 되지 않는 한 굴레를 벗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광희초등학교와 광희중을 거쳐 김동연은 명문(名門) 덕수상고에 들어갔다. 6개반 중 1개가 진학반이었는데 그는 "취업반 성적이 더 좋았다"고 했다. 외할머니·어머니·동생들을 부양해야 했기에 대학 대신에 직장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을 그는 그렇게 말했다.
졸업 후 서울신탁은행에 들어간 그는 국제대 야간에 다니며 공부를 계속해 1982년 행정고시와 국회사무관 시험에 동시 합격했다. 1950년대 후반에 태어난 가난한 베이비붐 세대의 전형적인 출세 행로(行路)였다. 그래서 그는 '용'이 됐을까. 열일곱 나이에 은행 본점에서도 핵심 보직인 신용조사부에서 일했지만 '고졸'이란 장벽이 그를 막아섰다. 양대(兩大) 고시에 합격하자 이번엔 'SKY 출신이 아니다'라는 질시를 그는 느꼈다. 상고(商高)와 야간대 출신인 그는 영원한 비주류였다.
역경(逆境)에 굴하면 젊음이 아니며, 오기(傲氣)가 없으면 청춘이 아니다. 김동연은 풀브라이트장학금을 받고 미국 미시간대학으로 향했다. 비(非) SKY 출신으론 서강대 외에 그가 처음이었다. 지식에 대한 오랜 갈증을 푼 그는 일에 매진했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시작해 기획재정부 사회재정과장, 재정협력과장, 재정정책기획관, 청와대 금융비서관, 기재부 예산실장, 제2차관을 거친 김동연은 마침내 국무조정실장을 지내다 지난해 7월 공직을 떠나 아주대 총장으로 부임했다.
이렇게 숨 가쁘게 달려오기까지 그를 뒷받침한 것은 1977년 은행에서 만난 동갑내기 아내였다. 김동연이 군에 갔을 때 고무신을 바꿔 신지 않았던 아내는 그가 고시에 합격한 지 1년 뒤인 1983년 결혼했다. 6년의 연애 끝에 부부가 된 것이다. "고시 붙은 후 유혹이 많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동연은 "고생한 의리 때문에 딴맘을 품은 적이 없다"고 했다.
여기까지라면 질주한 말(馬)에게 당근을 상(賞)으로 내리듯 평생을 달려온 그를 달콤하게 위로하고 작별을 고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왜 이젠 개천에서 용을 볼 수 없는가. 용을 보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대답할 틈도 없이 김동연은 백지 한 장을 펴더니 볼펜으로 핀(Pin) 10개를 그렸다. 그러더니 "이걸 한 번에 쓰러뜨리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하고 물었다. 묵묵부답이 된 기자를 앞에 놓고 그는 5번 핀, 즉 킹핀(King Pin)을 겨냥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이제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구조가 됐습니다. 진입장벽 때문입니다. 양극화·성장률 하락 같은 문제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게 신분의 이동성을 높이는 겁니다." 말이야 옳지만 어떻게 다시 개천에서 용을 부화한다는 것인가.
그는 내 심중을 뚫어보듯 미소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유쾌한 반란'을 학교에서 일으키고 있어요. '그 친구를 보내자'는 프로그램인데 미국 미시간·존스홉킨스대(각 30명)와 중국 상해 교통대(20명)에서 한 달 동안 집중 훈련을 시키는 거죠." 이 프로그램은 고달픈 현실에 좌절한 젊은이들을 친구가 추천해 해외로 보내는 것이다. '내'가 아닌 '네가 먼저'이며, 문호도 도내 타 대학생에게도 개방됐다. 성적보다 의지를 우선해 대상자 선발도 오랜 시간 면접을 해 정한다. 그는 '아주 희망 SOS'라는 네트워크도 개설했다. SOS는 '우리 학생을 구하자(Save Our Student)'의 약자다. 부모의 실직이나 질병 같은 어려움에 처한 학생이 도움을 청하면 월 60만~100만원을 기한 없이 지원하는 제도인데 1주일 만에 17명이 도움을 받았다.
나는 역술가가 아니어도 그가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렇게 힘껏 살았는데도 하늘은 안타깝게도 대학에 다니던 그의 큰아들을 앗아갔다. 백혈병으로 아들이 숨진 다음 날, 그는 TV 앞에서 원전(原電) 비리 대책을 발표해야 했다. 대체 그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갑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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