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28%가 영양 부족]
[외신도 놀란 한국의 ‘Hagwon’]
청소년 28%가 영양 부족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는 궁핍한 시절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밥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서울로 간 딸이 홀로 실연의 아픔을 견디는 걸 보면서 제주 사는 부모가 전화 걸어 묻는 말이 “밥 먹었냐”다. 딸은 “밥 먹었냐는 전화를 1000통쯤 받았을 때 강렬한 허기가 느껴졌다. 엄마 밥이 먹고 싶어졌다”고 했다. 제주도 집에 들어선 딸의 첫마디가 “엄마, 나, 밥. 배고파”였다. 마음이 허기진 딸에게 부모는 쉴 새 없이 집밥을 해 먹인다. “살찐다” 투정하면서도 딸은 부모의 보살핌을 “내가 세상에서 100g도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학원 다음으로 많이 가는 곳이 편의점이다. 집에서 제대로 밥을 챙겨 먹는 대신,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이동하는 자투리 시간에 삼각김밥이나 컵라면 같은 간편식으로 한 끼를 때우는 것이다. 학원 가느라 바쁜 아이들만 ‘길밥’(길에서 밥을 먹는 것) ‘혼밥’(혼자 밥 먹는 것) 하는 게 아니다. 얼마 전 한 개그우먼이 수백만 원짜리 패딩 입고 고급 외제차 운전석에 앉아 명품 백에 넣어둔 김밥 한 줄을 꺼내 먹으며 자녀의 학원 스케줄을 관리하는 ‘대치맘’을 익살스럽게 보여줘 화제를 모았다.
▶12~18세의 28%가 영양 섭취 부족이라는 충격적인 통계가 나왔다. 10여 년 전에는 이 비율이 15%였는데 2배 가까이로 늘었다. 고소득 가정인데도 영양 부족인 청소년이 많아졌다. 따뜻한 집밥이 아니라 학원 중간에 컵라면을 먹은 결과일 것이다. 사교육에 올인하는 학부모 전쟁이 모성애를 무색하게 한다. 하루 한 끼를 ‘혼밥’ 하는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에 비해 스트레스 지수가 1.4배 높고, 두 끼 이상 ‘혼밥’ 하면 우울증 발생 가능성이 2.6배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성별로 따져보면 20대 여성의 영양 부족도 심각한 지경이다. 넷 중 하나꼴로 영양 섭취 부족자다. 우리나라 20대 여성 6~7명 중 1명꼴로는 저체중 상태다. 마른 몸매에 집착하는 경향이 도를 넘어 체중이 정상인 여성조차 스스로를 뚱뚱하다고 여기고 절반 넘게 다이어트를 시도한다.
▶얼마 전 발표된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우리나라 행복도 지수는 세계 147국 중 58위였다. 12년 전 첫 발표 때보다 하락했다. 가족이나 타인과 어울려 식사하는 사람이 행복한데 ‘혼밥족’이 늘고 끼니를 대충 해결하는 것이 행복도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식구들과 어울려 먹는 밥 한 끼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준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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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도 놀란 한국의 ‘Hagwon’
16일(현지 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는 “한국 6세 미만 아동의 절반이 입시 학원에 몰린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미취학 자녀들에게 사교육을 시키느라 가구 소득 3분의 1을 쓰는 공무원 사례를 소개하며 한국의 ‘학원(Hagwon)’ 시스템을 다뤘다. 기사에는 댓글이 50개 달렸는데 그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건 “6세 미만이? 진심으로 미쳤다”는 짧은 글이었다. 여기에는 다시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봐라. 영어 자막도 있다”는 대댓글이 달렸다.
‘4·7세 고시’ 기승에도 정부 속수무책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Hagwon’이 등록된 건 2021년이다. 이후 외신에 학원을 고유명사로 표기하며 한국의 사교육 열풍을 다룬 기사가 심심찮게 게재됐지만 대부분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초중고교생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FT가 이번에 정부 조사 결과가 처음 발표되며 실태가 드러난 미취학 대상 사교육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정부가 13일 발표한 영유아 사교육 조사 결과에 따르면 6세 미만 아동의 47.6%가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2000원이었는데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경우 월평균 154만5000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2세 이하에서도 4명 중 1명이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 의대반’으로 대표되는 사교육 연소화는 최근 나타난 트렌드다. 1인당 사교육비 추이를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초등학생 사교육비가 중고생에 비해 가파르게 늘어나는 경향이 뚜렷하다. 특히 지난해는 교육부가 “늘봄학교 시행으로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음에도 초등학생 사교육비가 전년 대비 11.1% 늘어 증가율이 고교생(5.8%)의 두 배에 육박했다.
교육부는 브리핑에서 초등학생 사교육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제대로 키워 보겠다는 부모 심리가 있는 것 같다. 학부모 인식 개선을 병행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한가한 말을 하는 사이 현장에선 초등학교 입학 전 유명 영어학원에 다니기 위한 ‘7세 고시’, 영어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한 ‘4세 고시’까지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다.
지난해 사교육을 다룬 소설집에서 박서련 작가는 영어유치원 입학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입학설명회 참석권을 따내는 1차에선 아이돌 콘서트 티케팅처럼 피 튀기는 예매 경쟁이 벌어졌고, 학부모를 인터뷰하는 2차는 대학 입시 면접을 연상케 했으며, 합격선에 들어간 이들을 대상으로 추첨하는 3차는 아파트 청약처럼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사교육 연소화 막아야 망국병 고친다
사교육은 지역 불균형과 계층 양극화를 고착화하고 저출산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망국병’으로 불린다. 또 사교육 연소화가 진행될수록 격차는 더 확대되고 출산율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며 온갖 정책을 내놓은 지난 4년 동안 사교육비 총액은 매년 사상 최대를 경신했다. 해당 기간 학령인구는 770만 명에서 714만7000명으로 55만 명 이상 줄었는데 말이다.
이번 정부에서 ‘킬러 문항’ 논란과 ‘사교육 카르텔과의 전쟁’을 거치며 다시 확인된 것은 사교육 문제를 누구도 쾌도난마식으로 해결할 순 없다는 것이다. 경쟁적 사회 분위기,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 누더기가 된 입시제도 등이 결합해 나타난 고차원 방정식인 만큼 보다 정교한 분석과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 정부에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은 꼭 명심했으면 한다. 바로 사교육은 불안을 먹고 자라니, 더 이상 즉흥적으로 정책을 발표하거나 오락가락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그나마 상황이 더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장원재 논설위원, 동아일보(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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