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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軍 위기를 국방개혁의 ‘골든타임’으로 삼아야] ....

뚝섬 2025. 4. 8. 09:48

[지금의 軍 위기를 국방개혁의 ‘골든타임’으로 삼아야]

[일본 스케이트와 핵추진잠수함]

[100년 전 딜레마의 반복]

 

 

 

지금의 軍 위기를 국방개혁의 ‘골든타임’으로 삼아야 

 

지난달 11일 경기 파주시 무건리 훈련장에서 진행된 한미 연합 공중강습 훈련에서 한미 군 장병들이 수리온 헬기에서 내려 목표 지역 점령을 위해 전술 기동 훈련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10월 국가정보원이 북한의 대규모 러시아 파병 사실을 공개하자 국내외 다수 언론과 전문가들은 ‘총알받이’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실제 파병 초기 북한군은 우크라이나군의 포격과 드론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사상자도 4000∼5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올해 초 추가 파병 이후 북한군의 전투력은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평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첫 파병 때 습득한 전투 경험치를 토대로 드론 등을 활용한 현대전에 놀라울 정도로 숙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군이 최대 격전지인 쿠르스크의 통제권을 상실한 데는 북한군의 반격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이 쌓은 실전 경험은 고스란히 대남 전략 전술에 스며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파병 대가로 러시아에서 얻은 첨단 군사기술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재래식 군사력 강화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지난달 김정은이 ‘북한판 전략핵잠수함(SSBN)’의 건조 현장과 ‘북한판 조기경보기’를 잇달아 공개한 것이 그 예고편일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군의 현주소를 냉철히 짚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12·3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 이후 우리 군은 ‘총체적 난국’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전투기의 민간 오폭과 무인기 충돌 사건 등 사건사고가 잇따르면서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더 큰 문제는 미래 안보와 우리 군의 청사진을 그려 갈 국방개혁이 사실상 ‘올 스톱’ 상황이라는 점이다. 국방부 장관 등 다수 군 지휘부가 비상계엄 사태에 연루돼 공석 또는 대행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국방개혁은 추동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이래서는 인공지능(AI)과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해 ‘스마트 강군’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는 요원할 뿐이다. 병력 급감과 북한의 핵위협 고도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동맹 청구서’ 등 켜켜이 쌓여 가는 안보 난제를 제대로 풀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는 경고음이 군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방위비분담금이나 국방예산의 대규모 증액을 한국이 거부할 경우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수를 압박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 국방부가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 등을 최우선으로 하고 동맹국들이 북한, 러시아 등의 위협 억제를 주도하는 내용의 내부 보고서를 작성한 데 이어 대북 요격 핵심 전력인 주한미군의 패트리엇 포대 일부가 최근 중동 지역에 이동 배치된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일각에선 주한미군이 없는 대북 안보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관론까지 나온다.

하지만 작금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무엇보다 국방 전 분야에 걸친 대대적인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첨단 정예 강군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그 요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선 범정부 차원의 ‘국방 컨트롤타워’를 구성해 민관군 협력으로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기술을 최단 기간에 군에 접목시켜 전력화하는 데 가속도를 붙여야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3군 사관학교 통합과 합동참모본부의 합동성 강화, 상부지휘구조 및 인사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편 등을 통해 ‘싸우는 군대’로 변모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다각적인 혁신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대안을 도출하는 작업도 더 이상 미뤄선 안 될 것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지금이야말로 국방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달 뒤 조기 대선을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하면 ‘안보 백년지계’를 위해 정치권이 조속히 머리를 맞대길 바란다. 이념과 정파를 떠나 탄탄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자주적 국방 역량을 강화하고, 미래전에 대비한 정예 과학기술군을 건설하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군과 안보가 정쟁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군이 권력의 불의에 맹종하고,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할 경우 국민과 나라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비상계엄 사태로 드러난 군의 폐습과 구태는 과감히 도려내고, 국민의 무한 신뢰와 지지를 받은 최정예 강군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하는 데 국방개혁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안보 국론을 결집시키고, 초유의 안보 위기를 돌파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동아일보(2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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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케이트와 핵추진잠수함

 

2월 12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에서 열린 2025 겨울아시안게임 페어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렴대옥-한금철 조가 연기를 펼치는 모습. 하얼빈=뉴시스

 

2월 초 2025 하얼빈 겨울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스케이트를 보고 마음이 짠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부츠처럼 발목을 높이 잡아주는 스케이트를 신어야 부상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 선수들은 마치 초보자용처럼 발목이 낮은, 한눈에도 저렴해 보이는 스케이트를 신고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그걸 신고 렴대옥-한금철 조는 은메달까지 받았으니, 각각 26세와 25세가 되도록 저들이 흘렸을 피눈물은 가늠하기 어렵다.

이번 겨울아시안게임에 북한은 단 3명의 선수만을 보냈다. 하얼빈은 북한에서 열차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치러지는 국제대회라고 할 수 있음에도 3명밖에 보내지 못했다는 것은 북한의 겨울 스포츠는 피겨스케이팅을 빼곤 사실상 전멸 상태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한때 스피드스케이팅이 매우 강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메달을 차지한 선수가 바로 북한 한필화 선수다. 그는 1964 인스브루크 겨울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3000m 종목에서 은메달을 받았다. 이는 아시아 여성 선수 최초의 겨울올림픽 메달이기도 했다.

그런 전통을 갖고 있음에도 지금 북한 스피드스케이팅은 국제무대에서 사라졌다. 한국은 쇼트트랙에서 세계를 제패하고 있고,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세계 기록을 세운 이상화나 올림픽 금메달을 받은 모태범 같은 우수한 선수들을 계속 배출한다. 같은 민족인 데다 지옥 훈련이라면 세계 최고 수준일 북한이니 우수한 선수들을 배출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우수한 선수들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시설과 장비 문제다. 북한에도 당연히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있지만 훈련장이 없어 늦가을에 돼서야 함경남도 부전에 가서 야외 훈련을 시작한다. 장진호 바로 옆인 부전은 춥기로 악명 높다. 영하 수십 도의 날씨에 밖에서 훈련을 하다 보니 동상을 입거나 방광염에 걸리고, 발톱이 빠지는 일이 잦다.

선수들은 실력에 따라 스케이트를 차등 지급받는데, 4등급은 북한제 스케이트를 지급한다. 이게 스케이트냐 할 정도로 한심한 것이다. 3등급으로 인정되면 러시아제 스케이트를, 2등급으로 인정되면 독일제 스케이트를 준다. 국가대표급인 1등급으로 인정받은 선수 한두 명에게는 일본제 스케이트를 지급한다. 그런데 이 외제 스케이트도 새것이 아니다. 선배들이 타고 또 타던 것이라 스케이트 날이 쉽게 무뎌져서 전문적으로 날을 갈아주는 사람을 매 조에 한 명씩 두고 있다. 선수보다 스케이트가 더 귀한 상황이니 스키니 하키니 하는 종목은 어림도 없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이런 북한에서 종목을 막론하고 우수한 선수들이 나오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난하고 슬픈 이야기들은 두꺼운 얼음장 아래에 깊숙이 숨겨져 있다. 밖으로 드러나는 북한의 모습엔 허세만 가득하다.

지난달 김정은은 전략핵잠수함(SSBN)인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 건조 현장을 공개했다. SSBN은 세계 6개국밖에 보유하지 못한 수십억 달러짜리 무기이다. 유지비도 너무 비싸서 공짜로 줘도 운용하지 못할 나라들이 태반이다. 지난달 말에는 조기경보통제기도 공개했다. 북한과 동일하게 Il-76 수송기 기반인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는 업그레이드 성능에 따라 가격이 4억∼6억 달러에 이른다. 핵무기에, 미국까지 도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정찰위성 등등 북한이 최근 공개하는 무기들은 하나같이 천문학적인 가격을 자랑하는 것이다.

무기뿐만이 아니다. 평양에는 화려한 거리들이 매년 건설되고, 원산엔 제주도 전체 객실 수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객실 2만 개짜리 거대한 해안관광단지가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것도 분명히 북한의 현실이다. 김정은은 그걸 봐달라고 딸과 함께 열심히 돌아친다. 그의 눈과 귀는 늘 무기나 건물에 머물러 있을 뿐, 사람에게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러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장에서 죽어가는 수천 북한군 병사의 울부짖음이나 최전방에서 지뢰를 매몰하다 수시로 사고로 죽어가는 군인들의 비명이 들릴 리가 만무한 것이다.

목숨이 하찮은 곳에선 꿈도 하찮다. 너덜너덜해진 일본제 스케이트를 받는 것이 북한 빙상 선수들의 꿈이다. 그 꿈을 이뤄도 렴대옥처럼 외국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의 스케이트를 부럽게 바라볼 기회는 극소수에게만 돌아갈 뿐이다.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동아일보(2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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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딜레마의 반복

 

[임용한의 전쟁사] 

 

1920년대 선진국들은 두 가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첫째는 미국에서 촉발한 경제공황과 그로 인한 블록경제 체제였고, 둘째는 러시아 혁명 이후 유럽 각국에서 촉발된 이념과 계급 갈등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기성 정치와 사회 체제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불만이 확산됐는데, 여기에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며 상황은 더 악화됐다. 경제는 어려워지는데 강대국들이 앞장서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자 약소국, 비주류, 가난한 노동자의 불안과 분노는 증폭됐다.

강한 나라의 중산층이라고 해서 불만과 억울함이 없지는 않았다. 더 센 나라의 횡포 앞에는 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정치든, 이념이든, 상식이든 중간과 타협이 사라지고 극단이 힘을 받았다.

영국에서는 자유당이 몰락하고, 보수당과 노동당에 의해 보수와 진보라는 대립 구도가 형성됐다. 유럽에서 중산층이 가장 두껍고 보편적인 교육 수준이 높았던 독일에선 중산층이 나치즘으로 기울고 유대인에게 사회문제를 뒤집어씌우는 반유대주의 회오리가 일었다. 미국은 치명적인 독재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연방정부와 국가의 권한을 대폭 늘렸다.

 

100년 뒤인 지금, 한국을 포함해 유사한 현상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자국 중심주의, 반유대주의를 대신해 이슬람권과 이슬람 난민들에 대한 혐오, 정치적 극단화와 상대 세력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 블록화…. 1929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대공황을 악화시켰던 미국은 이번엔 자국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관세 정책으로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무도 과거에서 교훈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는 선동과 증오를 위해 사용되고, 맹목적인 불만과 지지가 우리를 유토피아로 안내할 것이라는 황당한 믿음이 횡행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심각한 위기의 시작이라는 사실부터 자각해야 한다.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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