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사춘기로 살 수는 없다]
[LG와 GS의 '문화 라이벌戰']
영원히 사춘기로 살 수는 없다
콜드플레이를 좋아하진 않는다. 이 문장을 쓰는 순간 나는 24만 명의 화를 돋웠다. 내한한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는 4월에 모두 6회 공연을 했다. 관객 수 24만명이다. 해외 아티스트 최장 공연이다. 최다 관객이다. 이쯤 되면 국민 밴드다. 한국민 밴드다.
콜드플레이를 좋아했다. 2000년 첫 앨범의 ‘Yellow’를 들은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음울하게 밝았다. 2집 앨범의 ‘The Scientist’는 음울하게 슬펐다. 3집 앨범의 ‘Fix You’는 음울하게 따뜻했다. 맞다. 나는 음울한 음악을 좋아한다.
사춘기 시절에는 신해철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싫어했다.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며 말했다. “얘 음악은 너무 염세적이야.” 나는 염세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멋지게 들렸다. 나는 신해철 음악을 아버지 몰래 듣는 염세적인 아이로 자랐다.
더는 콜드플레이를 듣지 않는다. 너무 밝아져서. 그들은 음울하고 염세적인 친구들을 위한 밴드에서 멀어졌다. 꿈, 희망, 인류, 우주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쉽다는 소린 안 했잖아”라며 위로하던 친구가 “넌 특별한 힘을 가진 특별한 아이야”라고 외치며 춤을 춘다. 방구석에서 록 음악 함께 듣던 절친이 20년 만에 나타나 헬륨 가스 마신 표정으로 “도를 아냐”고 물어보는 기분이다.
미국 록 밴드 머틀리 크루의 최근 공연을 유튜브로 보다 깨달음을 얻었다. 1980년대 방탕한 록 스타 행각으로 유명했던 밴드다. 그게 좋았다. 오랜만의 복귀 무대를 보다 슬퍼졌다. 칠순이 다 된 양반들이 젊은 시절 스타일 그대로 “여자들! 여자들! 여자들!”이라 외치고 있었다. 멋이 없었다.
사람은 영원히 사춘기 상태에 머무를 순 없다. 록 밴드도 마찬가지다. 콜드플레이 멤버들은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고 이혼한 아이 양육비도 꼬박꼬박 내야 하는 어른이 됐다. 인생이 달라지면 음악도 바뀐다. 바뀌어야 한다. 나는 다음 콜드플레이 공연은 꼭 갈 생각이다. 첫 문장에 화가 났을 많은 늙은 콜드플레이 팬들의 환대를 바란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일보(25-04-30)-
______________
LG와 GS의 '문화 라이벌戰'
서울 강남구 GS타워 'GS아트센터' 내부 모습./연합뉴스
오랜만에 친척이나 친구 집에 찾아가는 것 같았다고 할까. 3년 만에 다시 문을 연 서울 역삼동의 GS아트센터로 향하는 기분은 살짝 묘했다. 옛 LG아트센터가 지난 2022년 강서구 마곡으로 옮겨간 뒤 리노베이션 공사를 거쳐서 최근 개관했다. 물론 공연장 간판을 ‘GS아트센터’로 바꿔 달았고 전체적인 색감도 화사한 베이지색 톤으로 변했다. 하지만 입구까지 이어지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복도 유리창에 걸린 블라인드까지 모두 그대로였다. 전체 객석만 1103석에서 1211석으로 살짝 늘었을 뿐, 내부 골격도 옛 모습을 유지했다. “예전 공연장을 즐겨 찾았던 관객들에게 추억을 전해 드리고 싶었다”는 박선희 GS아트센터 대표의 말이 실감 났다.
지난 2000년 개관한 구(舊) LG아트센터는 강남 한복판에서 참신한 기획들로 연일 화제를 일으켰다. 재즈 색소폰 명인 소니 롤린스와 현대음악 작곡가 스티브 라이시, 브라질 문화부 장관을 지낸 저항적 음악가 지우베르투 지우 등이 이 극장을 통해서 처음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여성 백조를 근육질 남성으로 바꾼 매슈 본의 도발적인 발레 ‘백조의 호수’를 국내에 소개한 곳도 LG아트센터였다. 순수 문화와 대중문화, 현대음악과 고음악의 장르 경계가 이 공연장에서는 없었다. ‘낮에는 산업, 밤에는 유흥’이 전부인 줄 알았던 강남 테헤란로가 문화 예술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곳이기도 했다.
두 대기업이 계열 분리한 지도 올해 20년이다. LG와 GS그룹의 계열 분리에 따라서 공연장도 자연스럽게 ‘두 지붕 두 가족’이 됐다. LG아트센터의 명칭과 인력은 마곡의 LG아트센터에서 흡수했고, 입지와 건물은 역삼동의 GS아트센터에서 물려받았다. 그동안 사업 분야가 겹치는 일이 드물었던 이 두 기업이 문화 예술 분야에서 조우(遭遇)한 것이다.
두 기업의 ‘문화 라이벌전’이 벌어진 셈이지만, 이 경쟁이 여느 산업 분야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매출과 수익성에서 ‘황금알’을 낳는 분야라기보다는 손해나 적자를 감수해야만 하는 일종의 ‘출혈 경쟁’에 가깝다는 점이다. 서울시에 기부 체납한 뒤 20년간 운영하는 마곡의 LG아트센터나 금싸라기 같은 강남 한복판에 들어선 GS아트센터 모두 마찬가지다.
돌아보면 미국 최고의 공연장인 뉴욕 카네기홀 역시 기부자인 미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의 이름을 딴 것이다. 전설적 록 프로듀서이자 음반사 사장 출신의 데이비드 게펜(82) 역시 뉴욕 필하모닉의 전용 음악당인 ‘데이비드 게펜홀’ 리노베이션 공사에만 1억달러를 쾌척했다. 개인과 기업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잃는 건 돈이요, 얻는 것은 명예’라는 사회 공헌의 본질은 같을 것이다. 부디 이 즐거운 라이벌전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5-04-30)-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餘暇-City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IT 골프' 김영찬의 도전은 진행 중] [스크린 골프의 진화] .... (0) | 2025.05.28 |
---|---|
[들어는 봤나, 파인 다이닝 돼지국밥?] [ .. 나 홀로 홀짝] (0) | 2025.05.04 |
["북어야, 손님들 쓰린 속 풀어드리자" 새벽마다 작두질하는 남자] (5) | 2025.04.27 |
[골프도 매 홀 다시 시작한다] .... [아널드 파머] (0) | 2025.04.21 |
['퀸', 대한민국을 훔치다] .... [비틀스의 잊혀진 멤버] (0) | 2025.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