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전쟁]
[화약고 카슈미르서 6년 만에 분쟁 재개]
[코카콜라와 부시맨]
물 전쟁
어릴 적 고향에서 본 풍경 중에서 제일 살벌한 것은 물싸움이었다. 모내기 철에 가뭄이라도 들면 어른들은 삽을 들고 핏발이 선 눈으로 쫄쫄쫄 흐르는 도랑을 지켜보다 툭하면 언성을 높였다. 때로는 큰 물꼬를 두고 동네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물꼬 싸움에 살인 난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다.
▶관개시설을 잘 갖추면서 동네 물꼬 싸움은 거의 사라졌지만 국가 간 물 분쟁은 갈수록 늘고 있다. 하나의 강을 여러 국가가 공유하는 지역에서는 거의 예외가 없다. 이스라엘은 1967년 시리아가 요르단강 상류에 댐을 지으려 하자 댐을 폭격했다. 나일강 상류 에티오피아가 2011년 거대한 댐 공사를 시작하자 하류의 이집트는 실제 물 부족이 발생할 경우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는 관세 말고도 접경지대를 흐르는 리오그란데강을 두고 물 갈등도 심각하다. 멕시코는 미국과 맺은 협약에 따라 리오그란데강 유량 중 일정량을 매년 흘려보내야 하는데 심각해진 가뭄과 수요 급증으로 정해진 유량을 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흐르는 강물만이 아니다. 남미엔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우루과이에 걸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지하수층(과라니 대수층)이 있다. 추정치가 전 세계 인구가 200년 쓸 수 있는 엄청난 양이라고 한다. 다국적기업들이 이 지하수 개발권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이 지하수를 마구잡이로 개발하면 오염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 4국이 얽혀 있어서 국제분쟁 거리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충돌은 카슈미르 영유권이 근본 원인이지만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인더스강 6개 지류를 둘러싼 ‘물 분쟁’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파키스탄은 인더스강 물 없이는 농업과 산업의 생존이 사실상 어렵다. 최근 인도가 지난달 26명이 사망한 총기 테러를 이유로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강물을 차단하자 파키스탄은 전쟁 행위로 간주하겠다며 핵 공격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반발하고 있다. 중국이 티베트 점령을 고집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곳이 동남아 물길의 주요 수원지라는 전략적 위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길은 자연이 만들었지만 국경은 사람이 그었으니 그 사이 부조화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은행은 “20세기 전쟁이 석유를 둘러싼 것이라면 21세기 전쟁은 물을 둘러싼 전쟁일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물 부족에 시달리는 지역이 많은데 인구 증가로 물 수요는 폭발하고 기후변화로 가뭄은 심해지고 있다. 세계은행 예언이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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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고 카슈미르서 6년 만에 분쟁 재개
핵무기 쥔 인도·파키스탄의 위험한 대결… 전쟁 또 터지나
7일 인도 미사일 공격이 있었던 파키스탄 펀자브주의 도시 무리드케에서 잔해를 치우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핵무기 보유국 인도와 파키스탄이 7일 두 나라의 영토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에서 무력 충돌하면서 국제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인도군이 이날 파키스탄 무장 단체 본거지 아홉 곳을 미사일로 타격하고 파키스탄도 보복 공습에 나서 최소 36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여 명이 다쳤다. 파키스탄은 인도군 전투기 다섯 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했지만 인도가 이를 부인하는 등 신경전도 벌였다. 앞서 지난달 파키스탄 이슬람 무장 단체 테러로 인도인들이 대거 사망하자 인도는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강물을 차단하고 국경 교역을 전면 중단하는 등 보복 조치에 나서면서 두 나라 관계는 경색돼왔다. 이번 충돌로 주요 항공사들은 카슈미르 일대를 지나는 항로를 긴급 변경하기까지 했다. 카슈미르는 80년 가까이 인도와 파키스탄이 충돌해온 화약고다. 이런 갈등이 지속되는 이유, 이번 무력 충돌의 전면전 비화 가능성 등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Q1. 인도는 왜 파키스탄을 공습했나
총기 테러로 인도인 26명 사망해… 배후로 파키스탄 지목, 보복 조치
자국민이 파키스탄 무장 단체 테러에 희생된 것에 대한 보복 조치다. 지난달 22일 인도 쪽 카슈미르의 유명 관광지 바이사란 계곡에서 총기 난사 테러로 26명이 숨졌는데 희생자 상당수가 인도 남성이었다. 이번 테러가 파키스탄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단체 연계 조직인 ‘저항전선’이 인도 힌두교도 살해를 목적으로 벌였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인도 전역이 분노로 들끓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해외 순방 도중 귀국해 강력 보복을 천명했고, 파키스탄을 겨냥한 경제 제재와 주요 인사들의 입국 금지와 추방 등 외교 보복 조치가 가해졌다.
오랫동안 힌두교·이슬람교 간 종교 갈등을 겪으며 인도 내에 만연한 반(反)이슬람 정서에 이번 사태가 불을 붙인 측면도 있다. 인도군의 파키스탄 공습 작전명은 힌두교 여성이 결혼 후 머리에 바르는 붉은색 분말인 ‘신두르’였다. 뉴욕타임스는 “많은 여성이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본 끔찍함을 나타낸다”고 했다.
Q2. 카슈미르는 어떤 곳인가
지하자원 풍부, 경제적 가치 높아… 인도·파키스탄·중국이 영토 분할
히말라야 서쪽 산맥을 따라 위치한 고산지대로 면적(22만2236㎢)은 한반도와 비슷하다. 고급 옷감으로 유명한 ‘캐시미어(카슈미르의 프랑스어 발음)’의 어원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 지역에서 자라는 염소 품종인 캐시미어 털로 만든 제품은 세계적인 명품으로 알려져 있다.
각종 기반 시설은 낙후됐지만, 수려한 풍광으로 이름나 관광지로 인기가 많고, 지하자원이 풍부해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도·파키스탄·중국 등 세 나라의 접경 지역인데, 세 나라 모두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각 나라가 실효 지배하는 지역 간 경계선이 실질적인 국경 역할을 하고 있다. 카슈미르 전체의 46%가 인도 지배 지역이고 파키스탄(35%), 중국(19%) 순이다.
Q3. 카슈미르는 어쩌다 화약고가 됐나
英에 독립 후 영유권 분쟁 계속… 印 모디 직할 통치로 갈등 고조
인도와 파키스탄의 복잡한 근현대사와 관련이 있다. 카슈미르는 전체 인구(2000만명)의 70%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힌두교가 절대 다수인 인도보다는 이슬람 국가 정체성이 강한 파키스탄과 유대감이 크다. 그런데 1947년 영국 식민지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할 때 자치권을 가진 왕국이었던 카슈미르에 ‘인도와 파키스탄 중 한 곳에 편입’ 또는 ‘독립’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당시 카슈미르 통치자는 독립이 여의치 않자 인도 편입을 추진해 다수 이슬람계 주민의 반발을 불렀고 1947년 10월 카슈미르를 쟁취하기 위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면전으로 이어졌다. 두 나라는 1965년과 1971년에도 전면전을 벌였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으로 2000년대 이후에는 비교적 안정을 찾았지만 2019년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대규모 폭발 테러가 벌어져 40여 명이 숨지고 파키스탄 무장 단체가 배후로 지목되면서 긴장이 다시 고조됐다. 힌두 민족주의자로 알려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박탈하고 직할 통치에 나서면서 이슬람교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해왔다.
Q4. 인도는 왜 강물을 끊었나
파키스탄 농업용수의 80% 의존… 인더스강 막아 젖줄 끊으려는 의도
파키스탄의 약점을 노린 고사(枯死) 작전이다. 티베트고원에서 발원해 카슈미르를 거쳐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2900㎞의 인더스강은 파키스탄의 젖줄이다. 그런데 인도는 지난달 23일 파키스탄에 대한 보복 조치로 1960년 파키스탄과 체결한 인더스강 조약의 효력을 중지시켰다. 7일에는 파키스탄이 인더스강에 건설한 닐룸제룸 댐도 공격했다. 세계은행 중재로 체결한 인더스강 조약은 두 나라가 수자원을 두고 벌인 분쟁을 종식하고 관개 시설과 농업 용수를 공동으로 이용하되 강의 동쪽 통제권은 인도에, 서쪽 통제권은 파키스탄에 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인더스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인도가 자국 통제권에 있는 댐 등 관개 시설을 활용해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물길을 끊을 수 있다. 파키스탄은 농업용수의 약 80%를 인더스강에 의존한다. 안 그래도 폭염과 가뭄으로 만성적인 물 부족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에 인더스강 물길을 끊으면 농사에 차질을 겪어 대규모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인도는 조약 이행 중단 해제 조건으로 파키스탄의 이슬람 무장 단체 지원 중단을 내걸었다.
Q5. 전쟁 또 하나 늘어나나
인도 군사력 파키스탄 두 배지만 전면전 등 최악 시나리오 피할 듯
국제사회는 이번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비화해 교착 상태에 빠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은 ‘세 개의 전쟁’ 상황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두 나라가 국제사회의 핵무기 통제 체제인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핵보유국이라는 점도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핵무기 사용이나 전면전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도의 정규군은 140만명으로 파키스탄(70만명)의 두 배에 달한다. 그러나 보유 핵탄두 수는 170개 안팎으로 큰 차이가 없고 군함과 전투기 등 재래식 전력까지 감안한다 해도 인도가 파키스탄을 완전히 압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장기간 무력 충돌을 통해 두 나라가 상대방을 샅샅이 파악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향후 인도가 군사뿐 아니라 경제·외교 등 여러 분야에서 파키스탄을 압박해 고립시키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서보범/김보경 기자, 조선일보(2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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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파키스탄 폭격하며 짙어지는 戰雲. 이미 두 전쟁에 지친 세계의 기도 ‘화약고 더는 폭발하지 않기를.’
-팔면봉, 조선일보(2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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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와 부시맨
나는 1886년 5월 8일 미국 애틀랜타시의 한 약국 앞에 서서 오늘 처음 판매하는 코카콜라를 손에 들고 있다. 이걸 발명(?)한 이가 저 약국의 약사 좀 펨버튼이다. 시럽에 탄산수를 넣었더니 반응이 괜찮았는데 바로 그것이 커피에 비견되는 역사의 시작이었다. 필요성에 매진(邁進)했다고 해서 그게 계획대로 세상을 움직이는 일은 막상 드물다. 기실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오히려 인간들을 꼬시고 홀릴 적에 상업적 지배종(支配種)이 되기 마련이다. 내용이 뭐든, ‘유행하느냐는 것’과 그 유행이 ‘문화’로까지 자리 잡느냐가 핵심이다.
코카콜라는 140년 가까이 대유행 중이고 전 세계적 문화로 자리 잡았다. 매일 20억잔 이상, 초당 2만잔 이상이 팔려나간다. 인류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단어 2위에 오른 적도 있고, 1985년 7월 12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에 보급됨으로써 최초의 우주 비행 청량음료가 되었다.
코카콜라병 하면 보츠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합작 영화 ‘부시맨’이 떠오른다. 원제는 ‘The God Must Be Crazy(신은 미친 게 틀림없다)’로 20세기폭스가 배급했다. 한국에서는 뒤늦게 1983년 종로 피카디리극장에서 개봉해 30만 관객에 육박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동시 상영관 관객, 지방 극장 관객, TV 더빙 방영 시청자, 비디오테이프 시청자까지 더하면 그 시대의 아카이브에 보관되기에 충분하다. 칼라하리사막 상공에서 경비행기 조종사가 빈 코카콜라병을 버린다. 이걸 주운 부시맨족 마을은 콜라병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과 그 유용성 때문에 분쟁한다. 주인공 부시맨 자이는 이 콜라병을 신에게 돌려주기 위해 세상 끝으로 여행을 떠난다.
착하고 지혜로운 원시적 인간이 어리석고 사악한 문명인들에게 깨달음을 전하는 패러다임(Paradigm)은 당시에만 유행한 게 아니라 훨씬 더 유서 깊고, 현대사회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최면의 기만(欺瞞)과 위험성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조선일보(2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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