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안 보이는 공약, 경제계 건의 듣는 척이라도]
['쉰내' 가득한 AI 대선 공약]
['빅 텐트'와 '그랜드 텐트', 어떻게 다를까]
[성장률은 최저, 부채는 급증… 대책 없이 막 오른 21대 대선]
[무섭게 불어나는 국가부채, 非기축통화국 평균 처음 넘어]
[‘말하면 찍힐까’ 숨죽인 韓 경제인들]
[10년 앞당겨진 '성장률 0%', 포퓰리즘의 결과]
'성장' 안 보이는 공약, 경제계 건의 듣는 척이라도
21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12일 시작됐다. 왼쪽부터 지지를 호소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남강호 기자·뉴스1
21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12일 시작됐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경제 강국’,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일 잘하는 정부’를 제1 공약으로 제시했다. 성장률 추락과 관세전쟁 등 대내외 경제 위기 상황을 의식한 듯, 경제 살리기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구체성이 부족하고, 실현 가능성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성장 전략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 없다.
민주당은 인공지능(AI) 100조원 투자, 전략산업 국민 펀드 조성 등을 통해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정부와 민간에 돈이 없어 AI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에서 매년 100조원 안팎의 재정 적자가 발생한 상황인데, 법인세·근로소득세 인하 등 또 무작정 감세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은 중국·베트남 공장 리쇼어링(한국 재유치), 압도적 규제 혁파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중요한 문제이지만 기득권 집단의 저항을 넘어설 전략은 보이지 않았다.
상공회의소, 경제인협회, 경영자총협회, 무역협회, 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5단체가 정책 제언 형식으로 ‘미래 성장을 위한 제안’ 100대 정책 과제를 발표했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5단체가 공동으로 정책 제언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제 5단체는 “이제 과거의 성장 공식이 통하지 않게 됐고 새 전략이 절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존 우리 산업이 거의 모두 중국에 잡아먹히게 된 상황에서 경제계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제안이다.
경제 5단체는 새 정부 임기인 향후 3~4년이 AI 강국 도약의 골든 타임이 된다고 예상하면서, 에너지·데이터·인재 3대 투입 요소와 인프라·모델·AI 전환 등 3대 밸류 체인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라고 제안했다. 항공우주·로봇·바이오·친환경 선박 등 신산업 지원 전략을 세우고, 대통령 직속 국가에너지위원회를 만들어 전력망 확충, 전기 요금제 다양화를 추진하고, 보호무역주의 확산 대응책으로 아시아·아프리카·중동·중남미 등 신흥 시장 거점 국가들과 신규 FTA(자유무역협정)를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기업들이 국내외 현장 상황을 반영해 뽑아낸,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책 대안들이다.
조기 대선으로 선출되는 새 정부는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하게 된다. 대선 과정에서 이익집단의 표를 얻기 위해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무리한 퍼주기 공약을 내놓고, 그런 공약을 실행하다 국가 재정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재정 적자 상황인데도 각종 포퓰리즘 공약으로 앞으로 70조~100조원이 더 소요될 전망이다. 불가능한 일을 밀어붙이면 경제 암을 키운다. 대선 후보와 각 정당은 경제 분야만큼은 경제 5단체의 절박한 건의를 듣는 척이라도 했으면 한다.
-조선일보(2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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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내' 가득한 AI 대선 공약
李의 '한국형 AI', 金의 100조원…
20년 전 낡은 실패담 떠올라
비현실적 양적 투입에만 골몰
제대로 된 전략이 보고 싶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 인근 미팅룸에서 열린 IT 개발자들과의 'K-혁신' 브라운백 미팅에서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2000년대는 각종 ‘한국형’ IT 기술의 전성시대였다. 컴퓨터 운영체제(OS)나 휴대용 게임기 개발이 시도되고, 정부 주도로 진행된 와이브로(차세대 이동통신 기술·WiBro), 위피(휴대폰 인터넷 플랫폼·WIPI) 같은 굵직한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다. 국산 수입 대체품은 쓰려는 사람이 없었다. 와이브로는 국제 표준 경쟁에 밀려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위피는 휴대폰 생태계를 외딴섬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기술력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많은 이용자와 기업을 끌어들여야 하는 분야에서, 그저 ‘열심히 기술을 만들면 된다’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자본과 인력을 집중 투입하면 됐던 추격형 성장 전략의 관성이 낳은 참사였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AI 공약을 보니 ‘한국형’ IT들의 낡은 실패담이 떠올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달 중순 사실상의 첫 대선 공약으로 정부 주도 ‘한국형 챗GPT’를 만들겠다며 20여 년 전 유행했던 논리를 답습했다. 이 후보는 “전 국민이 사용하게 된다면 순식간에 수많은 데이터를 쌓을 수 있습니다….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모두가 선진국 수준의 AI를 무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며 기본사회를 얹은 것 정도만 다르다.
다른 후보들도 피차일반이다. 100조원 투자, 20만명 전문 인력 양성을 내세운 김문수 후보처럼 비현실적인 투입 일변도다. 이 후보 역시 숫자는 100조원이다. 2023년 연구개발 투자는 정부와 민간을 모두 합쳐 119조원이다. 국내총생산(GDP)의 5.0%다.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이스라엘(6.3%)뿐이고 미국·일본·독일 같은 나라는 3%대다. 인력도 마찬가지다. 전일제 근무 기준 연구원(FTE)은 49만명으로 취업자 1000명당 17.3명꼴이다. 프랑스(11.5명), 미국(10.6명)을 앞선 세계 1위다.
한국은 이미 연구개발에 전력을 다하는 나라다. 단순한 양적 확장이 추가 효과를 낼 가능성은 낮다. 초중등 교육부터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인력 공급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이 2.4%에 불과하던 2004년에나 통했을 ‘100조원 투자’ 공약은 시대착오적이다. 한덕수 전 총리는 60년대 몇 안 됐던 유학파를 돌아오게 하려고 주택을 줬던 정책을 되살려오기도 했다.
게다가 연구개발 투자의 78.6%는 민간 기업이 담당한다. 이재명 후보가 정부가 지분 30%를 소유한 AI 거대 기업 이야기를 꺼내 논란을 자초한 건, 민간이 주도하는 판에 정부가 공격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는 공기업을 만드는 것 이외에 뾰족한 수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민간 역할을 강조하는 이준석 후보도 뚜렷한 청사진이 없는 건 매한가지다.
1990년대 초·중반 얼윈 영, 폴 크루그먼 등 경제학자들은 당시 동아시아의 경제 기적이 생산성 향상 없이 자본이나 노동을 집중 투입한 결과라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그들의 지적은 IMF 외환 위기로 현실화됐다. 대선 후보들의 AI 공약을 보면서 불안한 건 정부 주도로 생산 요소 투입을 늘리는 데 골몰했던 당시 한국의 모습과 판박이라서다. 산업과 연구개발의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AI 시대에 한국이 경쟁력을 갖춘 분야는 어디에 있을지 고민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어떻게 제대로 투자할 것인가’다. 어떤 전략으로 AI 분야의 수퍼스타 기업을 만들어낼 것인지, 기존 기업들의 적응과 변화를 어떻게 도울 것인지, 그리고 변화에 뒤처질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 교육, 과학기술 정책을 긴밀하게 엮은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너무나 쉰내 나는 정책 대신, 새로운 성장 전략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이유다.
-조귀동 경제칼럼니스트, 조선일보(2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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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텐트'와 '그랜드 텐트', 어떻게 다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presidential candidate)가 자신을 축출하려(oust him) 했던 당 지도부를 포용하기로 하고, 새 비상대책위원장에 최연소 의원인 1990년생 초선 김용태(35) 의원을 내정하는 등 본격적인 ‘빅 텐트’ 치기에 나섰다(put up a full-fledged “Big Tent”).
그러자 다른 곳에 천막을 치려 했던(pitch their own tent) 인사들조차 “오로지 단합(unity)과 통합(integration)만이 승리의 길”이라며 텐트 안으로 들어와 “9회 말 투아웃 역전 만루 홈런(bottom-of-the-ninth, two-out, grand slam) 대역전극을 이뤄내자(pull off a dramatic come-from-behind victory)”고 화답했다.
‘빅 텐트’는 서커스 용어였다. 한자리에 다양한 공연을 펼쳐 대중을 끌어모으던 대형 천막이 어원이다. 이 ‘빅 텐트’ 안에서는 공중곡예(aerial acrobatics)부터 광대놀이(clown acts), 동물 묘기(animal tricks)까지 온갖 기교가 시너지를 냈다.
그랬던 것이 20세기 중반 미국 정치권에서 선거 전략 용어로 차용됐다(be adopted). 여러 분파를 하나의 정당 내에 결속시키는 타협(compromise)과 연합(coalition)을 묘사하는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representative example)로는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들 수 있다. 공화당 후보였던 그는 흑인 노예 해방(emancipation of Black slaves), 인권 등을 주장하는 진보 인사들까지 포용해(embrace progressive figures) 공화당을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빅 텐트 정당으로 세웠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도 한 예로 꼽힌다. 보수주의자(conservative)와 자유주의자(liberal), 종교인(religious)과 세속주의자(secularist), 도시 엘리트와 지방 농민까지 다양한 세력을 아울러 공산주의·과도한 정부 개입 등 공동의 적에 맞서는(confront common enemies) 큰 텐트 아래 결집시켰다.
ABC방송에 따르면, ‘빅 텐트’ 용어를 대중화시킨(popularize the term) 이는 2016년 대선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다.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보수·진보를 한데 묶는 ‘빅 텐트’를 펼쳤고, 그 효과로 전국 득표수에서는 앞섰으나(win the national popular vote), 선거인단 숫자에서 밀려(fall short in the Electoral College)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에게 대통령직을 내줬었다(concede the presidency).
‘그랜드 텐트(Grand Tent)’라는 용어도 있다. ‘빅 텐트’가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과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와도 연대하자는 것이라면, ‘그랜드 텐트’는 민주당 소속이었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민주당 내 반(反)이재명 세력(anti-Lee faction)까지 아우르자는 개념이다.
‘포괄 정당’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특정 이념·계층에 국한되지 않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표방하는 정당으로, 보수·중도·진보를 모두 잡으려(appeal to conservatives, moderates, and progressives alike) 한다는 뜻에서 영어로는 ‘catch-all party’라고 한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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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選 공식 선거운동 시작, 물량 면에선 3년 준비한 후보가 자격 취소될 뻔한 후보 압도. 투표함 까보면?
-팔면봉, 조선일보(2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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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은 최저, 부채는 급증… 대책 없이 막 오른 21대 대선
6·3 대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12일 시작됐다. 이번 대선은 탄핵에 따른 대통령 궐위로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선거다. 새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없이 곧장 선거 다음 날부터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 만큼 선거운동 과정에서 정책과 공약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와는 반대로 유례없이 정책과 논쟁이 실종된 상태에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을 맞게 됐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선 후보의 사법 리스크, 국민의힘은 후보 단일화 내홍에 갇혀 제대로 된 정책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민주당은 민생 회복과 경제 성장을 키워드로 던졌지만 아직은 구체적 실행 전략 없는 정치 구호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렇다 할 경제 공약 하나 내놓은 것이 없는 상태다. 그나마 각당이 간간이 내놓은 약속은 재원 대책 없는 감세·돈풀기 공약뿐이었다.
국민들은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로 경제 활성화를 꼽고 있다. 저성장과 관세 전쟁의 내우외환에 빠진 경제 상황이 국민의 삶과 민생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1분기 한국 경제 성장률은 ―0.2%에 그쳤는데, 지금까지 1분기 성장률을 공개한 주요 19개국 중 꼴찌다. 국가부채 비율은 빠르게 증가해 2030년 60%에 육박할 것이란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 나왔다.
대선 후보들은 이제라도 국민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11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5단체가 성장동력 확보, 신산업 육성, 경제영토 확장 등 차기 정부의 100대 정책과제를 제안했는데, 경제 살리기를 위한 본격적인 공약 경쟁의 계기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다. 남은 20여 일 동안에라도 꺼져가는 경제성장 엔진을 재점화하고 끝이 안 보이는 내수 침체 터널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공약을 제시하기 바란다.
-동아일보(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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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게 불어나는 국가부채, 非기축통화국 평균 처음 넘어
우리나라 국가 부채 비율이 GDP(국내총생산)의 54.5%로, 올해 처음으로 비(非)기축통화국 평균보다 높아진다고 국제통화기금(IMF)이 분석했다.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비기축통화국은 덴마크, 이스라엘, 뉴질랜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등 11국인데 올해 이 나라들의 국가 부채 평균은 54.3%이다. 비기축통화는 미국 달러, 유로, 일본 엔화처럼 국제 외환보유고의 구성 통화로 널리 쓰이는 통화가 아닌 나라의 통화를 말한다. 우리나라 국가 부채는 2016년에 39.1%로 비기축통화국 평균(47.4%)보다 훨씬 낮았는데 2020년 이후 국가 부채가 빠르게 늘어난 결과다.
IMF는 우리나라 국가 부채 비율이 향후 5년간 4.7%포인트 높아져 2030년에 59.2%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채 증가 속도가 체코(6.1%포인트) 다음으로 빠르다. IMF의 국가부채는 국가채무(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부채의 합)에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포함한다. 국내에서 주로 쓰는 국가채무도 지난해 말 GDP의 47%를 넘었다.
우리나라는 재정이 건전한 덕분에 IMF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신속하게 회복됐다. 이제는 세수보다 씀씀이가 훨씬 큰 재정 적자국이 됐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부가 매년 100조원 안팎의 적자 살림을 하고 있다. 비기축통화국은 기축통화국과는 처지가 다르다. 경상수지 흑자와 재정 건전성이 국가 경제를 지키는 양대 보루인데 포퓰리즘 공약이 습관화되면서 재정 건전성을 지킬 의지도, 역량도 다 무너졌다.
경제가 순조롭게 성장한다면 정부가 지금 씀씀이를 유지해도 버틸 수 있는데 그럴 가능성도 없다.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가 오는 2040년에 잠재성장률이 0%로 추락하고 2040년대 후반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KDI가 전망했다. 잠재성장률 0% 시점이 10년이나 앞당겨졌다. 과잉 규제와 고비용·저효율의 경제 구조는 개혁하지 않은 채 정부가 빚내서 재정 퍼주기 정책으로만 내달리는 나라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겠나.
-조선일보(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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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면 찍힐까’ 숨죽인 韓 경제인들
지난해 이맘때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를 취재차 찾았다. 94세의 버핏이 5시간 동안 쏟아지는 질문에 차분히 답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지만, 더 눈길이 간 건 새벽부터 줄을 서며 입장을 기다리던 3만여 명의 주주들이었다.
관광명소 하나 없는 미국 중서부의 작은 도시,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모였을까. 그들에게 물으니 “지혜를 얻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검소한 삶의 태도를 보여주고 싶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투자 비법보다도 ‘성실하게 돈을 벌고 생활은 검소한’ 버핏의 미국적 가치에 목마른 모습이었다. 버핏만의 신념에 기반한 이야기를 들으러 해마다 주총이 열리는 5월 첫째 주 토요일, 오마하에 수만 명이 몰리는 것이다.
트럼프에게도 직언하는 美 CEO들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는 편인 버핏은 필요할 땐 목소리를 내 왔다. 올해에도 많은 이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혼란스러운 관세 정책에 대해 버핏이 목소리를 내주길 기대했다. 그는 “무역은 무기가 아니다”, 동맹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엄청난 실수”라며 직언했고, 이는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소셜미디어로 여론을 몰아가는 시대에 버핏 같은 인물의 한마디가 여론의 균형추 역할을 한 셈이다.
정권 초 서슬 퍼런 트럼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날린 이들은 또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이대로 가다간 미국에 대한 신뢰가 추락할 것”이라고 했고, 공화당의 큰손 후원자인 켄 그리핀 시타델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가 미 국채 가치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제조업 CEO들은 주주들에게 상세한 ‘관세 청구서’를 공개했다. 팀 쿡 애플 CEO가 대표적이다. 그는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트럼프 관세로 이번 분기에만 9억 달러(약 1조2600억 원)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때로는 단순한 팩트가 정치적 논란을 낳기도 하지만 주주들에게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지는 것이다. 흔들리는 미국 민주주의 속에서도 그나마 경제계 리더들의 직언은 여론을 지탱하는 공공의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각계의 직언에 목마른 한국
하지만 한국 경제계는 더욱더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경제단체장을 제외하고는 이름을 걸고 직언하는 기업이나 금융권 인사들을 보기 어렵다. “말하면 찍힌다”는 인식이 지난 10년 사이 공고해진 탓이다. 그나마 사석에서 ‘관계자’ 코멘트를 전제로만 솔직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실명이 아닌 익명의 발언은 힘이 덜하다. 매번 같은 경제단체의 같은 주장도 신뢰를 유지하기 어렵다.
재계에서 실명으로 정부 정책을 정면 비판한 마지막 사례는 아마도 2011년 이명박 정부가 초과이익공유제를 추진했을 때였을 것이다.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사회주의 용어인지, 들어본 적도 없고 이해도 안 된다”고 발언해 파장이 일었다. 사회 각계의 솔직한 의견이 부딪치며 일어나는 이런 파장은 민주주의에서 꼭 필요한 존재다.
하지만 요즘의 ‘파장’은 주로 정치권이나 유튜버들의 요란한 주장에서 나온다. 경제계뿐 아니라 각계의 상식적인 목소리는 그 소음에 묻히고 있다. 정치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때, 이를 견제하고 바로잡을 목소리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섰다가 찍혔다’는 경험, 흠결을 용납하지 않는 대중, 그 모든 리스크를 지기 두려운 경제인들. 상식적인 직언이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한국판 버핏들의 지혜를 들을 수 없게 됐다. ‘관계자’ 코멘트에 숨을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이미 극단적 갈등을 그 대가로 치르고 있다.
-김현수 경제부장, 동아일보(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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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앞당겨진 '성장률 0%', 포퓰리즘의 결과
한국 경제가 현재의 생산성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달성 가능한 성장률인 잠재 성장률이 2040년엔 0%로 추락하고, 2040년대 후반부턴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망했다. KDI는 3년 전엔 성장률이 0%가 되는 시점을 2050년으로 예상했는데 10년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 5% 안팎이었지만 20년 만에 2%로 반 토막이 난 데 이어, 계속 떨어져 15년 뒤엔 0%가 된다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의 지속적인 하락은 과도한 기업 규제와 높은 인건비 등 고비용·저효율의 경제 구조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가운데, 저출생·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구조 변화는 불가항력 요인이지만, 규제 개혁과 신산업 육성, 기업 활동 장려 등의 정책적 노력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경제 규모가 한국의 15배인 미국의 잠재성장률(2.1%)이 한국보다 더 높은 것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디지털 혁신에 기반한 신산업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KDI는 성장률 0% 추락을 막기 위해선 혁신 기업이 새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규제 개선을 통해 경쟁을 더 촉진하며, 임금 체계 개편과 노동시간 규제를 완화해 생산성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래전부터 거론돼 온 낯익은 처방들이다. 하지만 기득권 이익집단의 저항과 표만 보고 기득권에 영합하는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발목 잡혀 왔다.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대폭 낮추면서 “이게 현재 우리의 실력”이라고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그동안 구조 조정도 하지 않고, 새 성장 동력이 될 만한 산업도 키우지 않은 채 기존 산업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장률 0% 사회’가 어떻게 될지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보면 안다. 우리보다 근대화가 100년 빨랐던 일본은 그동안 벌어 놓은 자산으로 버티지만, 우리나라가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 어떻게 되겠나. 더 이상 포퓰리즘은 안 된다.
-조선일보(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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