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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나무들이 죽고 있다] [하와이 할레아칼라 닮아가는 한라산]

뚝섬 2025. 5. 21. 06:29

[산에 나무들이 죽고 있다]

[하와이 할레아칼라 닮아가는 제주도 한라산]

 

 

 

산에 나무들이 죽고 있다

 

중동 국가 레바논의 국기 한가운데엔 초록색 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다. 레바논시다(Cedar), 레바논삼나무다. 백향목으로도 불리는 이 나무는 레바논의 과거 영광을 상징하고 있다. 페니키아인들은 이 나무로 배를 만들어 지중해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카르타고 등 여러 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등 번영했다. 그러나 남벌로 이 나무가 고갈되자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해 결국 로마 등 주변 세력에 흡수되는 운명에 처했다.

 

우리 숲 나무들은 남벌이 아니라 고사(枯死)가 문제다. 온통 푸르러야 할 요즘 산 곳곳에서 잎이 누렇게 말라 갈색으로 변한 나무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소나무·잣나무·낙엽송 같은 침엽수는 물론 잎이 넓은 참나무 종류도 있다. 예전에 비해 이렇게 고사한 나무들이 늘고 있고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는 우리나라 숲에서 각각 25% 안팎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소나무는 소나무재선충병에, 참나무는 참나무시들음병에 시달리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실 모양의 선충이 소나무에 침입해 수분 이동 통로를 막아 말라 죽게 하는 병이다. 한 해 소나무 100만그루가 재선충으로 고사하고 있다. 현재까지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서 걸리면 100% 죽는다. 꼭 보호해야 할 소나무는 예방주사를 놓아 보호하고 있다. 참나무시들음병도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매개충과 병원균 공격으로 나무가 급속히 말라 죽는다. 수도권 산에선 이 병을 예방하기 위해 줄기에 끈끈이롤을 잔뜩 감아 놓은 나무를 볼 수 있다.

 

▶소나무·참나무가 병충해 피해를 보고 있다면 구상나무와 낙엽송은 기후변화 영향으로 집단 고사하고 있다. 한라산에 오르다 보면 하얗게 말라 죽은 나무 무리를 수없이 볼 수 있다. 죽은 구상나무다. 추운 곳을 좋아하는 나무인데 기후변화 영향으로 제주도에서만 최근 100년 새 48%가 사라졌다고 한다. 지리산·덕유산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나무와 숲이 한 국가나 문명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준 사례는 꽤 많다. 영국은 16~18세기 해군력 강화를 위해 참나무 보호와 식재 정책을 편 결과, 강력한 해군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반면 9세기 노르웨이 바이킹은 아이슬란드에 정착해 100년도 지나기 전에 삼림의 97%를 벌채했다. 아이슬란드는 오늘까지도 산림을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 많은 나무들이 고사하기 전에 합리적인 관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선심성 예산이 아니라 이런 예산을 늘리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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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할레아칼라 닮아가는 제주도 한라산 

 

2021년 9월 한라산 진달래밭대피소(해발 1500m) 부근 구상나무 숲에 나무들이 하얗게 말라죽어 있는 장면(왼쪽 사진). 소나뭇과인 구상나무는 원래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14일 제주 서귀포시 효돈초교 교정 안에 있는 구실밤잣나무에 아열대성 기생 식물 참나무겨우살이가 갈색 잎으로 둥지를 틀듯 붙어 자라고 있는 모습이다. /산림청, 신현종 기자,

 

지난 14일 오후 제주 한라산 진달래밭(해발 1500m)에서 바라본 성판악 오름. 푸른 숲 군데군데 흰 페인트를 칠해놓은 듯 하얗게 말라죽은 구상나무들이 반쯤 쓰러져 있었다. 소나뭇과인 구상나무는 추운 곳을 좋아해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한라산과 지리산·덕유산 고지대에서 주로 자생한다. 한라산엔 1918년 구상나무 숲이 여의도 면적(290ha·헥타르)의 약 4배인 1168ha에 달했다. 그러나 온난화 여파로 현재는 구상나무 숲 면적이 606ha로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울창했던 침엽수 군락이 백골(白骨)처럼 변해가고 있다.

 

기후변화로 제주도가 뜨거워지면서 해발고도가 높은 한라산에서도 난·온대림의 북상이 가속되고 있다. 한라산은 고도별로 난대림(해발 600m 미만), 온대림(600~1200m), 냉온대림(1200~1500m), 아고산대림(1500~1950m)이 구분되며 공존해 왔는데 이런 특색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라산의 온난화를 설명하는 대표적 식물은 ‘구상나무’와 ‘참나무겨우살이’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고유 수종이다. 1920년 영국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이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관찰한 구상나무를 학계에 보고하면서 알려졌다. 미국·유럽으로 수출돼 개량을 거쳐 크리스마스트리로 사랑받는 수종이 됐으나 온난화로 고사가 늘어나고 있다. 

 

아열대 기후로 제주도 고산지대의 식생이 변하고 있다.그래픽=이진영

 

해발 1200~1600m 북사면(북쪽을 향해 경사진 면)에 주로 분포하는 구상나무는 한라산에서 최근 100년 새 48%가 사라졌다. 현재 한라산 구상나무 중 고사목 비율은 28.2%로 지리산(22.9%), 덕유산(25.3%)보다 많다. 산림과학원은 2016년부터 구상나무의 멸종을 막으려 서귀포시 한남사려니오름숲에 4.6ha의 구상나무 보존지를 만들어 관리 중이다.

 

참나무겨우살이는 참나무류 등을 숙주로 하는 아열대성 기생식물이다. 숙주 나무에 붙어 수분과 무기 양분을 흡수하며 살아간다. 성장 속도는 느리지만 한번 정착하면 숙주 나무가 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에 따르면, 1980년대 서귀포시 효돈천 하류의 해발 100m 이하 저지대에서 드물게 관찰되던 이 식물은 2010년대 해발고도 220m 이상으로 올라오더니 현재는 한라산 중산간 지역(해발 600~900m)까지 서식지가 확대됐다. 임은영 산림과학원 박사는 “참나무겨우살이가 햇볕을 좋아하기 때문에 숙주인 참나무류 등에 붙어 자라면서도 볕을 잘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장악한다”고 했다.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지구 전체는 적도 부근 저위도의 기후적 특성에 수렴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단 제주도가 온난화에 가장 먼저 잠식되고 있다. 제주도 기후는 온대에서 난대, 이제는 아열대화돼 가고 있다. 기상청은 2021년 제주도의 아열대 기후권 진입을 선언한 바 있다.

 

한라산은 9000㎞ 떨어진 하와이 마우이섬의 최고봉 할레아칼라(3055m)와 닮아가고 있다. 제주도(북위 33.5도)와 하와이(북위 20.8도)는 위도가 12.7도 차이 나는데도 기상과 해양 조건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1990년대 제주도 해수면 온도는 섭씨 16~24도, 마우이섬은 24~27도였다. 이후 30년간 마우이섬의 해수면 온도가 거의 변하지 않는 동안 제주도는 16~27도로 올라 한여름 바닷물 온도가 사실상 같아졌다. 2020년대의 여름철 평균기온도 마우이섬이 섭씨 30~31도, 제주도 29~30도로 비슷하다.

 

열대기후라 겨울이 없는 마우이섬처럼 제주도도 연평균 한파(영하 12도 이하) 일수가 과거(1924~1953년 평균) 5.9일에서 최근(1994~2023년 평균) 1일로 줄었다. 제주도의 기상학적 겨울은 1920년대 평균 36일에서 2000년대 이후 ‘0일’로 겨울이 사라졌다. 겨울의 계절적 정의는 ‘일평균 기온이 섭씨 5도 미만으로 내려간 후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날부터 마지막 날’이다.

 

-제주=박상현 기자, 조선일보(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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